생명 그리고 생태적 삶 (3)

 

과학적 시선과 생명

이종장기 개발 - 종간 장벽의 파괴와 적응 사례. 슈퍼박테리아(flesh eating super bacteria) 항생제 내성 정보 상호 전달 - 내성과 생태적 관계 고려, 수의학 반려동물, 축산, 수생양식... 에이즈, 광우병(양의 스크래피)

생명과학자가 생명을 안다면 이종이식 받은 환자는 강력한 면역억제제도 투여받는다. (치명적인 동물병원체는 인체에 적응하여 새로운 인체 병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종이식이 일상화되면 될수록 위험해진다. 

이종 동물장기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이런 연구에 투자되는 수백억의 연구비는 어째서 지금 지구상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에게는 사용되지 못하는가? 현재에 우리나라에서만 연구비를 들이고 있다. 호주는 개인 연구도 금지시키고 있다.
 

신종전염병 종간접촉증대/교역과 이동증가/고령화/공중보건/지구온난화/병원 및 의료활동 증대/인간 위주의 과학기술/신자유주의적 소비문화, 육식에 의한 집단동물사육/유전다양성 소실 인수공통전염병도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나노입자의 생체 독성 - 화장품, 진폐증

********* 

구 제 역 초동방역 실패/FDA 유전자 분석 자료 무시(책임 회피)/살처분 방식 고수

강화도에서 4월에 있었던 것이 겨울에 안동에서 유행한 것이다. 따라서 4월의 방역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베트남 여행객을 지목한다. 원래는 김씨내가 먼저 갔다왔고 권씨를 지목한다.(감기처럼)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타살로 이어지게 되었다. 
 

 

뱀발.   

1. 위 내용은 (1)과 (2) 사이 발표한 것이다. 따로 한꼭지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따로둔다. 인터넷 정보대를 가동해보니 강연분량이 학생대상 4강정도의 분량이다. 그리고 발표자료와 정본은 아니지만, 공개된 것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물론 다시 연락해서 받으면 되겠지만 내친 김에 마무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수고로움을 던다.)  생명의 개체고유성, 다양성은 기본적으로 종간 장벽을 만들어 놓은 셈인데, 지금의 과학지식은 우매할 정도로 담론의 수준이 전쟁과 정복이다. 다른 동물의 장기를 꺼내어 이식하면 되고, 박멸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데도 하나밖에 모르는 현대과학은 브레이크없는 기관차처럼 돌진한다. 

2. 복잡계의 접목, 그리고 철학적 사고(나-너) 관계속의 나가 아니라 빚진 나, 지금여기, 삶을 연관하여 설명한 점이 돋보였다. 다소 무리하게 복잡계 과학의 특성과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결합시킨 것이 쉽지는 않았고 무리한 느낌이 있었지만 말이다. 서구의 과학, 철학적 시선은 무척 부족하다. 진배샘,연두부,삼국장과 몇가지를 덧보태었다.  

3. 일상에서 인문 人紋 속엔 과학도 철학도 삶도 너도 나도 따로 놀 곳이 없다. 서로 어우러지고 함께 느끼지 못하는 순간 또 다른 위험으로 향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생명 그리고 생태적 삶 (2) 

 

진실과 사실의 구별  (지혜와 지식)

진리-진실은 시대가 변화해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은 그 시대 집단의 합의된 믿음으로 볼 수 있다. 편리해졌다는 것은 욕망이 충족되었다는 점이다. 편리와 같은 속도로 욕망은 키워진다. 현대과학 역시 시대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침대는 과학이다처럼 막연한 신뢰를 주는 종교로 된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폭력이란 관계의 단절과 왜곡으로 볼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상대가 타자화시킨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왜곡된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 비폭력이라고 본다. 폭력은 강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약자도 체념이란 형태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측면으로보면 억압적 상황에서 침묵은 동참이다. 이에 비해 참여하는 존재는 억압적 상황에서 관계 회복을 위한 적극적 삶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폭력은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노출되어 있다. 생태적 관계-사회적 관계-심리적-생물학적-물리 화학적인 측면까지 폭력의 중층구조 속에 드러나 있다.

진실과 사실의 틈새 - 세상은 사실로 이루어져 있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지만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실과 사법적 사실. 세상은 원래 억울한 것이다. 사실이란 힘이자권력에 기반하고 있다.

복잡계과학의 특징 

복잡계 과학의 출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환원론에 의한 유물적 기계론이 한계에 맞닥뜨렸다. 다윈의 진화론과 생태학의 접목이 필요하며 자기조직화 현상과 초기조건과 예측 불가능성, 선형적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다룬다.

1. 상전이 현상(임계상태, 극심한 변화의 가장자리. 상전이를 통한 창발.) 2. 척도 독립성(대소현상의 동질성-초기조건의 중요성, 멱함수-지진, 산불) 불조심을 너무 철저히 해서 산불이 난다. 초기조건이 커지기 때문이다. 3. 부익부빈익빈 - 맛집이 덩치를 키우면 똑 같은 조건이어도 확장을 하면 잘 되지 않는다.

개체성과 나

개체성(개인 역사의 시간적 중층구조)은 세가지로 구분하여 보면 각기 다른 특징을 갖는다.

몸 - 시간의 누적, 이기적 유전자, 생사(개체의 반복) 정신 - 새로운 학습, 자의식(몸의 종속성), 마음 - 구체적인 실체나 직선적 시간없음. 개체화된 마음과 근원으로서 마음. 말의 감옥에 갇혀 있다. 중세사람이 미생물을 몰랐으므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정신은 물질화되지 않는 신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육체와 별도로 논다.

 

생명현상, 복잡계, 철학 그리고 나-너의 삶 

상전이 -깨달음 悟 (임계성, 은산철벽) 

척도독립- 대소의 차이없음(세수하며 코 만지기). 초기조건의 민감도, 나비효과, 작은 일상의 소중함-지금 이 자리
부익부빈익빈 - 각자 삶의 몫, 삶의 역사성(업)
깨달음(오悟) 깨어있음(각覺)-에머전시 깨어있을 때 차별이 아닌 차이로 보인다.
간절함이 있어야 인식의 전환은 저절로 생긴다.   

세수하며 코 만지기 -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고 상황을 만들어 준다. 



 

복잡계적 반복에 의한 삶의 의미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 삶이 얼마나 따분할 것이다. 오직 길들여지지 않을 때, 내 삶은 어린 시절과 같이 항상 새롭고 경이로운 나만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혜의 세계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지 않는다. 너무 알려고 하지 말고 느끼며 살아가기!

프랙탈적 삶의 반복과 차이 - 삶의 반복성이야말고 개체 고유성의 근거이며, 삶의 풍요로움. 변화와 반복 속의 창발되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일상의 소중함. - 각 개체적 삶의 경험이 지니는 고유성과 온전함, 그리고 엄숙함.(개체고유성이라는 의미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생명의 역사성과 진화의압력: 지금 이 자리에서의 진화.

생명체는 아름다운 욕망

- 삶 나의 욕망이 만들어 가는 관계 덩어리
- 사람,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 모두는 이 생태계를 이루는 대등한 구성원이자 동생
- 너와나, 상호의존적 관계성, 경계인의 삶과 나눔의 자세

나 자신 일상에서 반복되는 삶에서 스스로 열려 있다면, 매 순간 새로운 다양과 자유로운 해방을 체험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생명 그리고 생태적 삶 (1)

 

진정한 생명 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생명이란? 물질이 150여 원소밖에 되지 않지만 이 원소로부터 아름다운 생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형태와 대사작용(항상성), 자기복제, 진화를 생명의 요소라고 볼 수 있는데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겠지만 마지막 진화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쪼짠하게 파고 들기만 하는 이공계 박사의 시각도 있지만 미대의 한교수는 생명은 살아있다!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라고 말씀해서 더 가슴으로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대상이란 우리가 바라보는대로 존재한다. 세상은 나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짚어보자. 우주는 스티브호킹 등의 과학자에 따르면 150억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생명의 역사성), 그 시간의 기다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기 한 마리도 그 시간을 가지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생과 사를 담고 서있다. 죽음에 대해 근대가 사는 것만이 최고라는 인식을 불어넣게 되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데, 죽음을 평범하게 봐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중층 연계구조] 생태계는 극미세한 원자, 분자구조로 시작하는 물리화학적관계로부터 생물학적관계/심리적관계/사회적관계/생태적관계로 연결지어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관계마다 어느 시점에 비약적인 도약이 생긴다? 예측할 수 없지만 관계의 덩어리에서 뭔가 말랑말랑한 것이 생기는 것 같다. 몇가지 용어를 정리해두고 가자.
생명체(생명현상을 나타내는 물체, 개체고유성), 생태계(각 생명체의 어우러짐), 생명(진리, 길, 영성, 모든 존재의 근원) 

생명 현상의 특징은 개체고유성과 다양성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해부 생리적인 측면에서 개체고유성을 살펴보면 정신적 나와 신체적 나로 이뤄져있다. 신경(정신적 자기), 면역(신체적 자기)으로 구분해보자. 해부-생리적인 측면에서는 영양만 있으면 수정란을 거쳐 발생이 완료되지만, 기관이 제 기능을 하고 생명이 개체의 고유성을 가지려면 형성되기 위한 외부 자극의 필요성(자극,반응, 기억, 망각-관계의 총체적 누적)이 필요하다. 예전엔 농아가 많았는데 이는 가벼운 중이염이 커져서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져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금은 거의 없다.

철학의 근본 질문이 될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나가 어쩌면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신체의 자기의 경우 신장을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봐도 스스로 나를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개체고유성은 주위의 관계에 의존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서양식으로 분석한다. 전체에서 부분으로만 보려고 해서 정작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생명의 특징으로 또 하나 척도 독립성을 살펴볼 수 있다. 생명은 관계의 덩어리다. 된장찌개의 요소와 성분으로 구성되는 그 이상의 된장찌개처럼 기계적인 결합 이상의 무엇이다. 관계들도 어머니의 손맛처럼 바람직한 관계가 있다. 생명의 창발현상을 착안한다. 구성성분으로 예상할 수 없는 현상이 복잡계다. emergence 관계하다가 임계상황에 이르면 변화한다. 프랙탈로서 생명현상 - 자기반복을 통해 전체이면서 부분이고 부분이면서 전체인 관계이다. 생명체는 몸을 매체로 하여 개체고유성이라는 생명현상을 나타낸다. 프랙탈과 카오스라는 열린 관계 속에 생겨나는 창발현상이다. 개체고유성은 구체적 실체가 없는 관계로부터 나온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그의 직업은 시간-지도사이다. 마음 속에 있는 바램들을 모아 시간이라는 캔버스에 조각조각 붙여 그리로 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움이 봄볕에 바래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한올 한올 벗겨지더니 아질아질 눈앞에서 서성이다 사라지길 되풀이 한다. 문득 그리움을 모아 보았다. 아질거리는 그 녀석은 손을 가까이 대면 촉촉한 습기를 내밀면서 앉는다. 그렇게 바래는 그리움을 모아모아 파릇파릇한 새순들 위에 놓자 그리움은 푸릇푸릇해지더니 곧 끓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끓을 무렵, 서편엔 달이 쫑긋거리면서 달려오는 것이다. 별도 반짝거리며 그리움을 스카프처럼 두르는 것이었다. 

그리운 마을을 떠난 것은 그쯤이다.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오다 끓어넘칠 즈음이 되어서야 그 마을로 향하는 시간의 길이 조금조금 실루엣처럼 비치는 것이다. 이제 이 마을의 시간 지도가 마무리 되어간다. 그리움이 앞으로 열 번 정도 끓어넘치게 되면 안개처럼 묘연했던 시간의 길과 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리움이 결빙된 듯 바짝바짝 얼기만 할 뿐 도대체 따듯해지지 않는 것이다. 서글픔이 잦게 내리더니 그리움이 조금 조금 지쳐가는 것이다.

시간으로 난 문을 열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느낌을 쌓아두거나 느낌을 사고 팔 수 없는 그 마을을 다녀올 것이다. 
 

2.


 

시간의 틈이 빡빡하다. 꾸깃꾸깃 틈을 몇 번 접을 무렵 매쾌한 냄새가 스며든다. 그렇게 황급히 빠져나오자 투명한 타워가 저 멀리 비친다. 거리가 스산하다. 버스가 날카롭게 다가서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차창가 불빛들이 춤춘다. 춤추는 불빛들이 차창에 자꾸 튕겨 나간다. 

이 도시는 지층에 고이접어둔 석유, 석탄을 이백년만에 모조리 쓴 연유로 해수면의 상승과 지각판에 가하는 압력이 커져 지진이 끊이질 않았고, 중세의 페스트처럼 해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후로 사람들은 모두 몇시간 빨리 지진에 감응할 수 있도록 신경절에 지진감응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은 이들은 지적감응도 빨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보조자료> 참터위상 관련 논의자료

다들 힘들고 어려울겁니다. 시간들 쪼개어 쓰고, 여력이나마 참*에 보태는 마음들. 안쓰럽기도 하고 말입니다. 

앞으로 몇번 도움말씀을 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햇살에 바래지지 않는 것 없듯이 시간엔 의도도 의중도 드러나죠. 한번쯤 7년이란 시간의 햇살에 바랜 것이 없는지 기회삼아 돌아보죠. 결과보다는 과정이 걸리는 것은 아닐까 싶군요.여러차례 논쟁이나 논의확대를 포함해서 많은 일들이 겹치네요. 



1.

제 노트에 참*10대과제와 뿌리사업,줄기사업들을 붙여놓고 있어요. 아마 2006년쯤 만든것이겠죠. 무엇을할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되고 대부분 생각이 아마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겠죠. 무엇을할지는 누가 하더라도 그 틀안에서 진행이 될 듯 싶어요. 참터가 내일 접고, 한 십년뒤에 다시 더 젊은이들이 펼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게 일진一進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될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2.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을 덧보탭니다. 무엇보다 어떻게?겠죠.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모두  잘하기에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면에서 일을 많이 한 분들이 매를 더 많이 맞을 겁니다. 아니 매를 맞고 있으며 한번 더 제 종아리를 회초리로 내리치는 심정으로 아픔을 나눕니다.

사람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칫 태도에 대한 부분이라 저어스럽기도 합니다. 활동하는, **하는 선배의 마지막 조언이라 여기시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습니다.

참* 성원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몇년째. 주기적으로, 이번에는 접수하기를 바랄 겁니다. 이번에는. 시시비비를 가릴려고 그들이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 자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성격이라면, 성격을 고치는 것까지 넣어 이야기하는 겁니다.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론이나 옳은 것들의 숨을 죽이고, 어떤 느낌을 전달하는지 귀기울여 주세요. 머리로 판단하지 마시고 가슴의 귀를 열어주세요. 똑같은 메시지를 몇년동안 계속 보내고 있어요.

(잘 행동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듣고 판단은 모임이 끝나고 하는 겁니다. 모임의 내용이 내 아는 것과 비교하여 하찮은 건지, 아니면 어떤 의중으로 그 얘기를 했을 것인가 곰곰 새긴 뒤, 다음 모임에 그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


3.

사무국이라고 한다면, 여러 의견이 보듬어지길 바라는 것이지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없더라도, 오목한 그릇에 담기길 원하고, 관심갖길 바라는거죠. 지난 몇해 바쁨을 인정하더라도, 초창기와 달리, 너무 많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보듬고 키우지 못했어요. 관심사에 빗겨나는 안건이나 생각들도 모으려고 해야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는 습관이 익는다면 햇살에 바래지 않고, 시간에 강할 수 있습니다. 지금하지 못한다면 그 10대과제에 이력을 끼워넣는 겁니다.  사무국이 반상근이므로, 사무국 상황이 2명이었을땐 했는데 지금은 하지 못한다라구. 운영위원 누가 발의했는데, 이렇게 수소문해보았지만 안된다라고 기재하는 겁니다.

참*가 무엇이다라구 느끼면서 총회나 송년회 자리에 나온분들 모두 벡터가 있을겁니다. 의중, 지금 당장은 섞지 못하지만 함께 하고 싶은 것. 대부분 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것에는 관심들이 없어요.  만일 그가 이자놀이하고 싶다. 주식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해도 들어주며 한번 두번 그 주제로 모임에 섞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지혜창고를 만들어 두기로 했죠. 아무도 담지 않고 있어요.


4.

과학상점과 회원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운영을 하며 덧셈과 곱셈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덧셈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위*장의 곱셈이야기도 인상깊었습니다. 늘 주문처럼 회원이 다가서기를, 조금만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죠. 그런데 현실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변화만 있었을뿐, 생활을 나누는 분만이 운영위에 참여하고 겹칠 뿐이었던거죠. 그렇게 도와주십쇼하는 주문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집안일처럼 도와준다는 것이 벌써 기울어진 관계는 아닐까요. 사실은 내 일인 것이죠. 그런 관계가 되면 이상적일 겁니다.

그런데 가깝다고 하지만, 사실 우린 밥한번 먹기 힘든 사이입니다. *호도 *윤도 마찬가지예요. 공감하는 무엇이 있거나 그들의 친구의 친구까지 맥락이 스몄으면 좋겠는데....다 관계까지는 생각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 않지요. *호 개인만 관심갖을뿐. 개인에게 호소하면 회원이 늘지 않아요. 생활이나 삶을 섞으면 외려 *호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겠죠.

어쩜 덧셈이나 곱셈은 도움을 전제로, 머리로만 애원하는 형태가 아닌가합니다. 관심사와 삶을 섞으려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태극권과 생협의 겹침이 그래도 관계를 유지해낸 것은 아닌가요. 참*와 과학상점의 이론과 머리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린 이론을 주장하고 머리에서 멈춘 것은 아닌가요. 만들어내는 관계에 더 이상 깊숙히 들어가질 않았어요. 들어가서 얘기하고 들어보고 회원....에 대해 ... .... 회원의 회원에 대해. 회원이 관계짓고 있는 다른모임에 대해... ...


우리가 뱉어낸 분들은 왜?왜?왜? 멀어졌을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되죠. 입장이나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논의를 소멸시키거나 다시 재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것도 문제아닌가요.


벌써 예전의 열정이나 , 민주주의가 하수구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둔 것은 아니겠죠.  모두 별이에요. 참*와 연을 많이 두었다고 더 반짝이는 것은 아니죠. 더 돈독하다고 더 더욱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요. 나의 참*가 아니라 우리참*,우리참*, 제발 도와주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서로 믿고 맡기고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관심사는 뭐고 이렇게 하고 싶으니 제발 이것만 챙겨줘라 그러면 알아서하겠다.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온갖 궁리를 해보는 겁니다. 설겆이나 청소는 내 몫이다. 대신 그릇은 개수대로 옮겨라하는 사이로 진전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뱀발.

- 1.

다른 분의 의욕과 관심사와 상황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른 분이 무엇에 의향이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한번 더 확인하고 살펴봐도 늦지 않습니다. 다소 참*가 곁길로 가더라도(반면 내가 생각하는 더 옳다라는 주장은 상황타개에 덜 도움이 될 뿐) 모임이 있는 것은 조율의 가능성과 다른 길을 가정하기때문에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공간이라면 의견 한꾸러미씩 가져와 나누고 섞고 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모임의 운영이 통보에 가깝지는 않았는지? 참터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하는 마음들이 은연중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것은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늠하는 것은 아닌지? 옳고 당연한 것은 굳이 회의도 필요없고 지시하고 집행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하게합시다. 혼자 하지말고. 아님 접구. 참터에 대한 아는것만 구슬로 엮지말고, 참터와 닿은 인연이나 느낌들을 꿰어보면 어떨까요. 참터가 하고싶은 것 시키지말고, 함께하고 싶은 것을 못내 속는 척 같이 느낀다고 더디갈까요? 늦나요. 다른 길로 가서 주도권을 뺏기나요? 누구를 위한 주도권이죠?  단정하고 이야기를 하면,  논의가 풍성해지며 좋은 결말을 맺은 적이 별반 없던 기억입니다. (-이러이러하고 이렇게 될 것이므로 바람직한 멘트가 아닙니다. 어떻게 어떻게 느끼시는 것을  보니 이것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모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생각기조를 바꿔보는 겁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내 것만이 최선의 판단이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 무슨 얘기인지 반복되어 메시지를 던지는데,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지? 여력이 없어서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참*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3.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상에 대한 코멘트는 앞으로 없을 겁니다. 진심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혹 왜곡해서 상심을 끼쳐드리는 것은 저의 불찰이고 오로지 저의 책임입니다.  **드림.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일들을 해낸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다른 뱀발. 1. 어제 퇴근 무렵 별은 총총하고, 달은 탱탱하다. ㄱㅈ 도서관에 들러 짬독을 하다보니 공복에 졸음도 찾아와 다른 책을 곁들여 들곤 하다.  ㅁㅇ에 대한 짝사랑이 지나친 것인지? 오늘 편지를 보내고 나니 감비님의 시 한편이 듣고 싶다. 나무...제각기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희망은 체계의 바깥은 산다.고 ...날개짓을 하고 싶은데....봄은 늘 바깥에 있다 싶다. 

2. 편지내용만 보면 오해를 사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일터일과 겸직을 하고 있다. 모임 한둘은 기본이고 바쁘고 고민하고, 읽고 애정깊다. 그 점을 감안하고 혹 자신의 모임과 대위하면서 읽어주면 더 고마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