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밥에 대한 굶주림이었겠지. 원없이 먹고싶던 이밥! 쳐다만봐도 배부른?

그런 세상은 있을까? 

원없이 그 갈증을 채워줄!

그래 없겠지.

 

사실 바라지도 않잖아.

 

마음 한점만 줘도 감지덕지야!

 

붓꽃도 벌써 네마음을 적어보라 봉긋 올라와 있는, 오월의 깔닥고개. 

 

깊은 마음이라? 마음? 이성도 감성도 아닌 마음을 잡을 수 있다구?

그래 난 마음주의자다.

이성의 칼날은 늘 외롭고 감성의 눈물은 늘 푼수다.

그래서 마음을 믿는다. 

 

손에 더 잘 잡히고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머리와 발이 아니라 가슴에 사무쳐 있어 좋다.

가슴에 마음이 머무르면 참 세상은 따듯하고 살만 할텐데. ᆢᆞ

 

벌써 한해의 가슴같은 오월이다.

 

 

 

 

 

 

 

  뱀발.

몇권의 책이 겹친다. 계급, 상품, 잉여가치, 자본 등등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해논 이성으로 빚은 용어들은 찬란하기는 하지만 헛점이 많은 것은 아닐까? 마음이야기를 하면 불교를 이야기할텐데. 오히려 이론에 물구나무 서 있는 친구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얼마나 그것들이 덜그럭거려 현실을 제대로 비추어내는지도 아마 보일 것이다.

 

 '마음이 맞는다"란 말이 관념적으로 들리는가? 124주년 노동절에 노동도 이야기 못하는 비참이지만 거꾸로 노동만 건네려고 하기때문에 여전히 이런 것에 약간의 책임은 있어야 한다. '마음이 맞는가' 이 말은 늘 지역에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마음이 맞으려고 해본 적이 있는가?'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앎을 전달하려했지. 정녕 마음을 건네본 적이 있는가?  시간은 늘 속 마음을 읽어낸다. 지금 여기가 이 수준인 것은? 문화자본이든 상징자본, 가치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가운데 마음의 싱크로율을 맞추려는 것이 부족한 연유도 있을 것이다.

 

가슴이란 열정의 수위가 맞다면 굳이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묵묵히 열심히 제 할 일만 해도 다 우리 일인 것을... ...참  마음의 얼을 어루만지고 싶은 계절이다. 당신의 마음들을...나의 마음을 건네고 싶은 날들이다.  사실  '노동'이란 말을 더 일찍 건네고 나누고 싶은 것이 더 속내이긴 하다. 그렇다면 아직 이성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단 말인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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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말 좀 해줘요.

하루벌어 하루사는 실종자부모님께 아이 찾을 때까지 일 못해도 근심덜게

 

 

아 말 좀 해줘요.

아르바이트 생이라도 장례 치룰 수 있게 해준다고

 

 

아 말 좀해줘요

정의는 내편이라고 쓰레기같은 넘들 더 시궁창이라고 촌철살인 해줘요

 

 

아 말 좀 해줘요

단원고 학생 특례 입학시켜도 괜찮다고

 

 

 

아 말 좀해줘요

우리 여객선은 정원 초과 못하고 안전 최고니 제발 여행하셔도 된다고

 

 

 

아 말 좀 해줘요

우리 구청은 돈 때문에 수학여행 못 가는 일 없다고

 

 

 

아 말 좀 해 줘요

우리 대학은 어떻게 취직할 거냐보다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다고

 

 

 

볕뉘.

 

1. 이땅에 정치는 실종되고 눈치만 있는 지금을  똑똑히 기억할 겁니다.  정치인도 관료도 언론 뒤에 숨어 정작 움직일 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누가! 움직일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정치인들을 ᆞᆞᆞ특히.....

 

2. 늦밤, 몸과 마음의 갈증에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맺히는 후회와 한탄....정치의 실종, 한걸음 뒤가 아니라 한걸음 앞에서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능을 보면서 정말 속이 상한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 더 극명하게 무엇을 해야할지 할 수 있을지 생각조차 않는다는 반증은 아닐까?

 

3. 만일을 생각해두지 않으면서 정치를 한다. 그렇다면 아마 그런 정치인들은 일보다 명예, 명예보다 권력...누리고 싶은 것이 많아 그 일을 하는 것일테다. 그러지 정작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으로 누리는 혜택에 몸이 더 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더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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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상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늘 상상의 밖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최악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희망이 아니라 무시무시하지만 가능한 시나리오를 두고 정치인이 해야할 일부터 거꾸로 물결을 거스르며 올라오는 방법을 취했으면 어떨까? 돈과 결탁, 관료행정주의, 보신주의, 4류 언론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말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국회의원이 정치인이 양심적인 관료가 거들거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시민단체가 성명서 하나라도 보태어 거스르거나 단 하루라도 더 빨리하게 하는 작업은 가능했을까? 가능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까? 

 

-3.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지나 감정의 여운이 바래게 되는 순간,  후쿠시마와 같은 일이 상상의 밖이 아니라 더 자주 앞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 최악과 최후가 아니라, 현실의 최악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는 않을까? 어떻게 정치인들은 새누리든 새정치든...정치적 행위를 한번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또 다른 무능은 아닐까? 사후 약방문도 한 두번이지 위기의 순간에 돌파하라고 있는 것이 정치인은 아닌가? 어쩔 수 없고, 현실에 있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2. 사고의 시나리오, 사건의 덫.....여전히 남는 장사의 관행이라는 것은 도처에 치밀하고 정교하게 살고 있는 것이겠지. 사람의 목숨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식까지 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돈의 치욕이 현실을 이겨버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

 

-1. 염전 노예로 팔려가고, 고기잡이 배로 헐값에 매여가고...촘촘한 현실의 구조는 늘 상상 밖에 있어,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늘 최악을 가정하고, 그 위험에서 하나씩 줄여가는, 경각에 달린 목숨을 하나라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는 가정을 해야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0. 낙관낙관낙관만이 아니라 비관비관비관....그리고 그 비관의 바닥에서 몸부림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는 것이 정치라고 해야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서로의 무지는 닮았다. 곁에 있는 사건에서, 상상 안에 있는 사고에서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도 절대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뱀발.

 

1. '기우'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올 여름에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으라는 법이 있을까? 하늘에 구멍이 뚫려 몇날 며칠 장대같은 비가 와서 우**산처럼 와르르 무너지지 않으라는 법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기우일까? 

 

그래도 국정을 수행한다는 인물들이 최소한의 양심이나 일머리가 있지 않을까? 이것 역시 최악을 가정하지 않는 버릇때문에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기본적인 심리구조가 딴나라 세상인 것을 가정하지 않은 연유다.  장관이 그짓꺼리하면 차관을 불러세우고 움직이게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할 일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막장의 막장이라는 가정이 그래도 세모녀의 비극, 그 간두에 선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삶의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는 하나라도 해내는 것이 진보나 남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2. "돈"이 별의 별짓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눈치를 챘지만....사회의 집단지성은 모아지고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했다. 슬픔이라는 무장해제만, 넋놓지 않을 수 없지만 사회의 극단, 세상의 극단을 말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3. 불산누출, 고리원자력비리, 경주체육관....한파, 폭염, 집단지성이라는 것은 내 동네, 우리 동네에 최악을 대유하고, 밝혀내고, 조목조목 과거를 반추해내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시나리오를 주지시키도록 하지 않으면, 정작 일이 벌어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실험실 안전 , 수학여행, 해병대캠프사고, 사회단체든 시민단체든 집단의 요구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비치할 수 없다면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4. 그렇지 않다면 내부자가 양심에 거스르지 않게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전문성이 최소환 유통될 수 있게 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5. 일터에 새로운 일, 그래 돈도 되는 일이겠지만 그것이 움직이므로서 연동되는, 맥락의 가장자리에서, 최악의 가정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새로운 일때문에 후과를 얻게되는 것을 느낀다. 그 생각을 하다가 왜 한줌 희망에서 생각을 출발시키는 우둔함을 저질렀을까 후회되었다.

 

6. 솔직히 말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는 것은 정치인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애도하지 않고 선거에 전념한다는 인상을 비치지 않게 뒷선으로 빠졌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관 멱살이라도 잡고 고함을 치든지 서울시장에게 멀더라고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하든지, 경기도 교육감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었을까? 정치는 무장해제된 것은 아닐까? 과연 정치인인가? 안행부의 생리가 이러니 대책본부를 어떻게 하라든가? 등등 해볼 수 있는 것이, 해야되는 것이 정말 없었을까? 언제부터 언론의 뒷자리에 그늘에 포진하는 것이 정치인이 하는 일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정치는 돌격하고 국면을 깨나가는 것이 아닌가?

 

7. 무능하고 무지하고 상상이라는 것을 저기쯤에 두고 있는 스스로도 몹시 미워졌다. 언론의 취재라는 것도 기획이라는 것도 정말 해결하고는 거리가 멀구나 싶다. 안타깝게도 손*희사장 취재네트워크도 그러하다.

 

8. 똑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오합지졸인 세상에서 어떻게 단 한명이라도 위험 가장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최소한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숨을 버리지 않게 하는 경계를 넓히는 것이 진보의 활동이라고 한다면... ...

 

9.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의 정치이고 진보라면.......어느 정권이 들어서고 어느 정치인이 권력을 잡더라도 단 한 걸음도 못내딛는 것은 아닌가?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의 발악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무능이 더 실감나서 혼돈스럽다. 그 그림자가 너무도 짙어 칠흑같다. 아직까지 짖어대는 것이 그 역할일 뿐, 정치의 냉소가 만들어낸 것이 여기까지구나 하는 쓸데없는 느낌이 스몄다. 제대로된 성명서 하나 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구나...컹컹짖는 것이 스스로이구나란 자괴감도 섞인다.  미안하다. 진심으로....마음 한점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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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부. ..꽃이 질무렵 씨방이 생기는 모습을 보고 만든 글자가 不이라고 한다.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씨앗이 남겨지고 싹을 피울 수 있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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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페북소식을 어둑새벽에 살피다 몇몇 영상에 아픔이 저며 눈물이 파스처럼 번진다. [백년의급진]에 이어 [프티부르조아 사회주의 선언]을 마저 읽다. 그리고 지난 모임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을 곁에두고 등잔밑처럼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언론매체는 물론이며 지식인들은 하물며... 발간한 출판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페친(이종태)이 언급한 후기는 공감하지 못하겠다. 원하는 건 논란이고 이 나라와 대유의 꼭지이다. 역사는 이편 저편이 아니라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말이 박히는 아침이다. 아- 출근해야지!  06:59 

 

 

 

 

 

 

 

 

 

 

 

 

 

 

 

 

 

 

 

 

 

볕뉘. 

 

1. 다른 생각, 다른 사유, 다른 사상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라는 것은 있는가? 사건과 행위는 이미 벌어지고 그 관성을 가지고 뒤돌아보지 않고 간다.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자동차로, 브레이크없는 기차로 폭주한다.  과거를 삼키기 이전, 과거를 재대로 소화시키기 이전에도 동일반복의 행위와 사건은 저질러진다.  제도와 시스템이라는 기관차는 그저 질주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 살아간다. 세상을 눈치채기도 이전에 또 다시 삶은 명멸한다. 세상에 손내밀자 동지들은 어느새 시대의 배를 바꿔탄다.  그렇게 권력과 명예의 단내를 빨다가 죽는다. 세상의 아픔을 얻은 이는 속울음을 삼키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밑거름이 된다. 사람은 죽고 사회와 세상은 여전히 제갈길을 간다. 역사 속에 동일반복의 정황과 세상의 판이 벌어져도 거스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역사는 아군과 적군으로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우고 편리한 사유만 노예처럼 끌고 간다.  사건은 벌어지고 행위는 늘 있어도 남과 나과 구별도 되지 않고, 아와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데도 제 볼 것만 보려한다.

 

2. 백년 전에 멈춰 안중근의 시선으로 보거나, 여물지 않는 여러 상황으로 묻혀버린 시선으로 지금을 다시 보거나, 일본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헌법이나 근대를 벗어나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세상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  지금을 보는 시선을 달리한다고 전혀 밑질 것이 없는 장사는 아닐까? 지금을 보는 시선은 일본 제국주의, 수교이전의 중국, 소련의 붕괴이후 중국식 자본주의라는 관점이나, 일본의 정체에 대한 재고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3. 마르크스와 싸우고 논쟁하던 프루동의 시선으로 그 이후를 다시보고, 멕시코 프레다칼로의 집근처에서 암살을 당한 트로츠키의 시선으로 다시보고, 중국의 루쉰의 시선으로 지금을 복기한다고 해서, 알량한 살림살이와 시스템은 그리 변한게 없으므로 그 사유의 물꼬는 다시 터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4. 안중근이 함께 한 일본 지식인들의 명멸과 고민은 또 어떠한가? 서구에서 틀만 들여와 미치는 파장과 고민조차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굴욕의 사건]과 [근대의 초극]의 문제제기는 또 어떠한가?

 

5. 시대를 읽어내는 것은 또 다른 스토리와 시선을 필요로 한다. 논리와 정합성,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폄훼하거나 없앨 필요는 없다. 그 고민의 지점, 무엇을 보려하는지, 지식인들 사이의 호흡은 어떤 것인지? 현실을 바꾸어 내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세계자본주의에 대응해서 어떤 점이 다른지? 다른 시스템이나 제도, 운동을 지금 여기에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인지?

 

6. 저기와 거기의 사유가 그저 외래의 이론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해내는 것이라면, 또 다른 상황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면... ...

 

7. 주말을 낀 책 여행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스며든다. 딱히 뚜렷이 잡히는 것이 없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다는 미련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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