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팔기 위해, 2세대에는 출하량이 적거나 거의 없애는 유전자조작을 한다고 하는데, 아무 죄없는 씨앗을 2세대 거세를 시키며, 그 거세를 위해 연구력을 총동원하는 짓이 이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치는 놈들 아닌가?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인가? 자본을 위해 하는 일인가? 자본을 위해 하는 행위가 사람에게 어떻게 민폐를 끼치는지? 결국 사람인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일인데, 유령같은 자본을 키워준 일이 유해한 칼날을 품은 아이를 낳고 어이없게 내 심장을 겨누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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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봄날씨다. 어제 모임을 에둘러 잔차로 가다. 16k-50', 맥주한잔하고 잔차로 돌아오다 3.5k 오늘은 날씨도 좋아 땀을 내준다. 동네한바퀴*화폐박물관 한바퀴 10k-60'  여전히 목련의 황홀한 자태는 내내 눈길을 뺏는다. 꽃눈만 보아도 이렇게 설레이니 말이다.

1. 지난주 학교 동창회에서 주소록을 만들고 후원하라고 하여, 동창회지도 받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 친구한테 퍼부었다. 그 많은 후원과 지지금을 도대체 어디에 쓰고, 이런 일까지 하느냐구 말이다. 그러니 욕을 먹지..생각같아서는 더 퍼붓고 싶었다. 그놈의 동창회 탈퇴할 수 없나?

2. 일터 인적드문 웹게시판에 한 꼭지 한 꼭지 올리고 있다. 평이 하지만, 논란이 될 꺼리로, 오늘이 일요일이라 잠시 들러, 착하게 일을 하고 왔다.

3. 저녁 안해와 [성형]과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했다. 아이들도 오랜만의 일이라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가끔 생각- 일상과 연결된 이것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은 나에게도 드문일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것만 나누었을뿐. 서로 생각하는 것을 설득하고 의견의 차이는 인정하였다.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논외의 일이므로... ...

4. 까칠한 것이 아니라 꺼칠해진 것일까?   참* 빌어온 책을 보고 있다.  운동에 근력를 덧붙였더니 조금 더 피곤한 듯, 조금 줄여야겠다.

 

 

 

 

 

 5. <도마위에 오른 밥상> 겉재미, 속재미


겉맛-속맛, 오감을 즐길 수 있을까?
조미료맛과 단맛에 길들여져 제맛을 모른다.

5.1 자본주의는 분위기(아우라)로 서있는 사물을 상품이란 컨베이어로 나른다.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욕망이란 무의식으로 잠재된다. 그리고 만들어져 허기진 욕망은 끊임없이 빠르고 간편한 것을 소비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는 별반 사물과 기억도 사건도 시작하지 않는다. 연애편지와 사진 한장에 그토록 애틋함이 묻어있는 사건들의 연속은  끊임없이 잊혀진다. 과정의 기억은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고 끊임없는 겉재미에 농락당한다. 그 안을 맛볼 수 없다. 예술도, 기술도, 건축도 복제되어 떠돌아다닐 뿐이다. 영혼마저도 복제된다. 끊임없는 소외의 쳇바퀴를 돈다. 외롭다. 죽도록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가진놈은 가진대로, 없는놈은 없는대로, 무한생성되는 욕망에 포로가 되어, 그것을 채워놓을 길이 없다.

5.2 점과 점이 만나 사건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사물로 유통되어버릴 뿐이다. 생성된 욕망의 유효기간만큼. 앎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간까지. 사람도 용도로 욕망의 포로로 소비된다. 그런면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점과 점을 늘리거나, 선과 선을 찢어 벌리거나 면과 면을 늘리거나, 공간과 공간을 비집고 벌리는  짓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 인간-인간이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칠 것이다.

5.3 길들여진 맛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에너지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탐욕스런 욕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공간을 돌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외로움과 외로움의 기관차가 정면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서 외로움의 실체를 실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섭다. 자본주의 기관차의 연료가 바닥이 나거나, 자본주의 기관차가 더 이상 돌아다닐 곳이 없거나, 인간이란 엔진으로 갈아끼워 조금 수명을 연장하거나 하지 않을까?

5.4 욕망과 소외란 두바퀴가 속도에 응축시키는 공간과 사물을 느리게 가게 할 수 없을까?

5.5 분위기를  사물에 붙여 끌고 갈 수는 없을까?  숨이 죽은 시-청각에서 촉각, 미각, 후각, 육감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재미가 사람을 축으로 복원될 수 없을까? 미각, 촉각....익숙한 겉재미에서, 횡행하는 관계의 소원함에서 자신의 맛과 자본에 길들인 맛을 비교할 수는 없을까?

5.6 아름다움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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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080105 아**미, 저녁함께 하다. 팔팔넷. 섞어마셔 취했다. 지난한해 고생들 정말 많았는데, 도움에 감사할 따름, 올해, 쌓은 것에 보태어 마음들을 조급하지 않게 모아서 올려놓았으면 좋겠다 싶다. 후유증으로 맘고생들 하는 듯...

 1. 080106 참*, 서울서 전 사무국장이 내려와, 여친을 소개시키러 왔다. 저녁 함께하고, 부인이 출산예정일인 현 사무국장과 몇분 맥주 한잔을 하다. 과*** 이야기, 민*당 내홍이야기, 공동모색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오늘 순산을 했다고 한다. 주변이 2세들 풍년이다. 일터는 작년이 셋, 곧 이어 둘... ... 아이들만 보면 기쁘다. 까르르 까르르

 2. 머리진보는 유행처럼 가져온 이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추종하는 몸진보는 경직된 이론과 정세를 주입당해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반복된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머리도 몸도 열리고 움직이고 마음-가슴진보로 결실을 맺으면 좋으련만, 평론의 시대라 머리도 가슴도 마음도, 몸도 발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상상속의 진보, 무섭지 않은 진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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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제가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작년 흔적을 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고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작은 제목에 이끌려 다시 보게 된다. 기업사회라는 표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연대의 주주운동의 성격으로 예단을 해서 일까? 87년체제 이후의 관점을 철저히 자본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점유로 다시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87년체제 평가나 토론에서 김교수의 발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대신해서 일까?

1. 총과 칼이 아니라 생산성, 효율성을 명분으로/구금,체포,고문,학살이 아니라 명퇴,분사,비정규직화,해고,비연고지근무를/반공포스터는 CEO라는 레토릭으로/천박한 자본의 무노조주의는 독재시절 무노조주의와 겹친다. 그런 당당함은 정부 공무원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재교육을 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14종의 경제교과서의 446곳의 수정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 않는가?

2. 지난 20년의 평가의 관점이 정치-대통령-국가에 치우쳐있어 정작 중요한 자본의 동선으로 본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엄한 곳에 표적을 두고 실현되지 않는 구호만 외쳤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사이, 대중은 자발적 동의와 헌신으로, 운동권들도 대거 깃발들고 투항하는 사이, 천박한, 아니 양아치같은 자본(기업사회)은 사회-정치영역을, 시장이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라고,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를 차곡차곡 했던 것은 아닐까?

3. 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럴 여력도 없는 노동운동은 정책과 운동방향이 전제된 노선투쟁이 아니라 노조 권력 장악을 위한 노선투쟁이 대신하였다고 한다.(117쪽,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글자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실용을 표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자본은 1인 1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유한 자본만큼 권리를 행사하려한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파쇼다. 미국보다 더한 기세로 완장을 찬 듯, 사회를 시장의 식민상태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행태는 어이할 것인가?

4. 대기업 정규직의 노조는 자본의 구심력으로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비정규직의 소리없는 주검과 더 많은 구속자와, 해고에 일관되게 행한 것은 무엇일까?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관료화에 익숙해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금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했을지 모르는 이것에 대해 객토하는 심정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사회를 재해석해내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모두는 정치경제 현장에서도 종업원 혹은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며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존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모든 이가 피해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 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처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페다고지(pedagogy)가 요청된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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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산업 운하’를 벤치마킹하나


[한겨레]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경부운하를 들여다보면 문제투성이다. 서울~부산 간의 그 넓은 바닷길도 실제 운항해 본 회사가 수지가 맞지 않아서 문을 닫았는데 수많은 댐을 만들고 다리를 허물고 산에 터널을 뚫어야 하는 운하가 무슨 경제성이 있겠는가? 서울에서 나가는 화물은 87%가 인천과 경기도로 가는 화물이고 부산에서 나가는 화물도 비슷하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화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에 실을 화물은 주로 석탄이나 철광석이나 시멘트같이 부피가 큰 것들인데 그런 화물이 경부 간에는 거의 없다.

운하는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이다. 미국의 운하도시 세인트루이스는 19세기 말까지 중서부 제일의 도시로서 미국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지금은 다니는 배도 별로 없는 심심한 도시로 전락했다. 경부운하가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독일의 아르엠디(RMD) 운하도 부두들은 다 텅텅 비어 있다. 한반도 대운하와 닮은 꼴의 사업이 바로 미국의 플로리다 운하다. (1) 플로리다는 반도의 구석구석을 다 운하로 연결하는 토목공사를 했다. 그러나 1928년에 공사가 끝나자마자 홍수로 범람하여 2000여명이 죽는 참사를 빚었다. 운하에는 물을 채워놓아야 하니 홍수 때에 범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수로를 따라 높은 둑을 죽 쌓아 올렸다. 지금 운하에 배는 거의 볼 수 없고 생태계 파괴로 인한 후유증만 심각하게 나타나 하천복원공사를 하고 있는데 복원공사비가 운하공사비의 10배나 들고 있다.

낙동강의 위천 상류는 갈수기에 평균 수심이 54㎝밖에 안 된다. 이런 강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올려놓으면 물이 흐르지를 않고, 열흘 정도면 바다로 빠지던 물이 100일 이상 수로에 고이게 된다. 지금 중국의 태호가 녹조로 뒤덮이면서 수돗물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나고 양쯔강 하류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낙동호’도 이럴 가능성은 너무나 충분하다. (2) 강이라는 것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흐르면서 웅덩이와 여울이 생기고 물살이 빠른 데와 느린 데, 돌과 자갈과 모래와 펄이 깔린 곳과 수초가 자라는 곳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각종 수중생물들이 제각기 살 곳을 찾고 물도 정화된다. 그런데 이 모든 구간을 깊은 웅덩이로 만들어 놓으면 많은 생물들은 살 수가 없고 물은 썩는다.

또 이 운하는 큰 홍수 피해를 일으킬 것이다. (3) 지금 한강이나 낙동강 본류에는 댐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다 만들었다. 만들지 않은 곳은 홍수 범람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하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유지하자면 댐의 하류 부분은 수심이 12m 이상 되는데 강의 수위가 오른 만큼 홍수는 범람하기 마련이다. 홍수가 오기 전에 물을 미리 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미리 알려줄 만한 용한 예언가가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

지금까지 행복도시다, 혁신도시다, 기업도시다, 첨단산업단지다 하는 개발사업들이 다 땅값을 크게 올려놓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땅값이 공시지가로 2천조원을 돌파하여 캐나다를 5개, 프랑스는 8개, 미국은 절반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우리 국민들은 열심히 일할 생각들은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무슨 개발사업이 일어나 땅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다. 한반도 대운하는 전국의 땅값을 한정 없이 더 올려놓을 것이다. 땅값이 오르면 기업하기 나빠지고 국가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국민들은 투기에 몰두하고 국운은 쇠퇴할 것이다.

국토는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다. 이런 정당성이 없는 사업에 온 국력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지식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차원 높은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김정욱/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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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식] 금강순례단
    from 木筆 2008-01-22 14:42 
    금강운하 저지 금강순례단이 보내온 메일의 사진을 옮겨온다. 추운날씨 1/14일부터 1/21까지 고생하셨단다. 함께하지 못해 사진으로 마음을 달랜다.
 
 
여울 2008-01-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정부>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올 여름이면 증명될테니,조급증에 막힌 귀라?? 아니 우리동네 땅값은 들썩거려 외려 좋아할까? 서로 바보이거나 멍청이이거나. 바보들아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펀집증의 논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 덥다.

누리꾼 한반도 대운하 잇기 국토순례나 하면 어떨까 싶다. 자발적으로 낙동강 하구부터 오밀조밀, 말랑말랑 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서 홍천, 강화도까지 운하길을 따라 살고 있는 모든 것을. 그 가운데 살고 있는 곡선의 작은 길들을 크게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인근 신동엽 시인의 <금강> 무지렁이들이나 찍어 두어야겠다. 운하길에 모두 내어줘야 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노아 2008-01-0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 자체에 x팔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절단날 이 땅과 환경은 막막합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