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봄날씨다. 어제 모임을 에둘러 잔차로 가다. 16k-50', 맥주한잔하고 잔차로 돌아오다 3.5k 오늘은 날씨도 좋아 땀을 내준다. 동네한바퀴*화폐박물관 한바퀴 10k-60'  여전히 목련의 황홀한 자태는 내내 눈길을 뺏는다. 꽃눈만 보아도 이렇게 설레이니 말이다.

1. 지난주 학교 동창회에서 주소록을 만들고 후원하라고 하여, 동창회지도 받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 친구한테 퍼부었다. 그 많은 후원과 지지금을 도대체 어디에 쓰고, 이런 일까지 하느냐구 말이다. 그러니 욕을 먹지..생각같아서는 더 퍼붓고 싶었다. 그놈의 동창회 탈퇴할 수 없나?

2. 일터 인적드문 웹게시판에 한 꼭지 한 꼭지 올리고 있다. 평이 하지만, 논란이 될 꺼리로, 오늘이 일요일이라 잠시 들러, 착하게 일을 하고 왔다.

3. 저녁 안해와 [성형]과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논쟁을 했다. 아이들도 오랜만의 일이라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가끔 생각- 일상과 연결된 이것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은 나에게도 드문일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것만 나누었을뿐. 서로 생각하는 것을 설득하고 의견의 차이는 인정하였다.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논외의 일이므로... ...

4. 까칠한 것이 아니라 꺼칠해진 것일까?   참* 빌어온 책을 보고 있다.  운동에 근력를 덧붙였더니 조금 더 피곤한 듯, 조금 줄여야겠다.

 

 

 

 

 

 5. <도마위에 오른 밥상> 겉재미, 속재미


겉맛-속맛, 오감을 즐길 수 있을까?
조미료맛과 단맛에 길들여져 제맛을 모른다.

5.1 자본주의는 분위기(아우라)로 서있는 사물을 상품이란 컨베이어로 나른다.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욕망이란 무의식으로 잠재된다. 그리고 만들어져 허기진 욕망은 끊임없이 빠르고 간편한 것을 소비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는 별반 사물과 기억도 사건도 시작하지 않는다. 연애편지와 사진 한장에 그토록 애틋함이 묻어있는 사건들의 연속은  끊임없이 잊혀진다. 과정의 기억은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고 끊임없는 겉재미에 농락당한다. 그 안을 맛볼 수 없다. 예술도, 기술도, 건축도 복제되어 떠돌아다닐 뿐이다. 영혼마저도 복제된다. 끊임없는 소외의 쳇바퀴를 돈다. 외롭다. 죽도록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가진놈은 가진대로, 없는놈은 없는대로, 무한생성되는 욕망에 포로가 되어, 그것을 채워놓을 길이 없다.

5.2 점과 점이 만나 사건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사물로 유통되어버릴 뿐이다. 생성된 욕망의 유효기간만큼. 앎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간까지. 사람도 용도로 욕망의 포로로 소비된다. 그런면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점과 점을 늘리거나, 선과 선을 찢어 벌리거나 면과 면을 늘리거나, 공간과 공간을 비집고 벌리는  짓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 인간-인간이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칠 것이다.

5.3 길들여진 맛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에너지에 반란하는 것이 가능할까? 길들여진 탐욕스런 욕망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시공간을 돌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외로움과 외로움의 기관차가 정면충돌하여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서 외로움의 실체를 실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섭다. 자본주의 기관차의 연료가 바닥이 나거나, 자본주의 기관차가 더 이상 돌아다닐 곳이 없거나, 인간이란 엔진으로 갈아끼워 조금 수명을 연장하거나 하지 않을까?

5.4 욕망과 소외란 두바퀴가 속도에 응축시키는 공간과 사물을 느리게 가게 할 수 없을까?

5.5 분위기를  사물에 붙여 끌고 갈 수는 없을까?  숨이 죽은 시-청각에서 촉각, 미각, 후각, 육감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재미가 사람을 축으로 복원될 수 없을까? 미각, 촉각....익숙한 겉재미에서, 횡행하는 관계의 소원함에서 자신의 맛과 자본에 길들인 맛을 비교할 수는 없을까?

5.6 아름다움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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