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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제가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작년 흔적을 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고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작은 제목에 이끌려 다시 보게 된다. 기업사회라는 표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연대의 주주운동의 성격으로 예단을 해서 일까? 87년체제 이후의 관점을 철저히 자본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점유로 다시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87년체제 평가나 토론에서 김교수의 발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대신해서 일까?

1. 총과 칼이 아니라 생산성, 효율성을 명분으로/구금,체포,고문,학살이 아니라 명퇴,분사,비정규직화,해고,비연고지근무를/반공포스터는 CEO라는 레토릭으로/천박한 자본의 무노조주의는 독재시절 무노조주의와 겹친다. 그런 당당함은 정부 공무원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재교육을 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14종의 경제교과서의 446곳의 수정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 않는가?

2. 지난 20년의 평가의 관점이 정치-대통령-국가에 치우쳐있어 정작 중요한 자본의 동선으로 본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엄한 곳에 표적을 두고 실현되지 않는 구호만 외쳤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사이, 대중은 자발적 동의와 헌신으로, 운동권들도 대거 깃발들고 투항하는 사이, 천박한, 아니 양아치같은 자본(기업사회)은 사회-정치영역을, 시장이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라고,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를 차곡차곡 했던 것은 아닐까?

3. 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럴 여력도 없는 노동운동은 정책과 운동방향이 전제된 노선투쟁이 아니라 노조 권력 장악을 위한 노선투쟁이 대신하였다고 한다.(117쪽,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글자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실용을 표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자본은 1인 1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유한 자본만큼 권리를 행사하려한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파쇼다. 미국보다 더한 기세로 완장을 찬 듯, 사회를 시장의 식민상태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행태는 어이할 것인가?

4. 대기업 정규직의 노조는 자본의 구심력으로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비정규직의 소리없는 주검과 더 많은 구속자와, 해고에 일관되게 행한 것은 무엇일까?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관료화에 익숙해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금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했을지 모르는 이것에 대해 객토하는 심정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사회를 재해석해내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모두는 정치경제 현장에서도 종업원 혹은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며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존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모든 이가 피해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 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처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페다고지(pedagogy)가 요청된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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