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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이했고 이로써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한국을 저자는 기업사회로의 변환에 들어갔다고 파악하는데, 이는 그 이전 시기의 군사형 사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간략히 후자가 강압적 동원과 공포를 통한 억압체제였다면, 전자는 사람들이 지배자들의 가치를 내면화함으로써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든다는 차이를 가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기업사회의 특징은 이러하다.
1. 자본의 고유한 권력인 생산 지휘권이 극대화되고 사회 영역으로 확대된다.
2. 정치-사회가 기업 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3. 기업의 생산성이 곧 국가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간주된다.
4. 1인1표의 원리가 아닌 소유 지분만큼의 권리 원칙이 기업 외의 사회조직에도 적용된다.
5. 대기업 및 기업가 단체가 단순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까지 간섭한다.
6. 정치 활동, 정책 생산, 법원, 미디어 등은 주로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7. 국민-시민-주민 혹은 기업의 판매망 안의 모든 사람들은 곧 소비자로 불린다.
8. 모든 정부-사회 조직의 우두머리는 경영자 CEO를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설정한다.
9. 조직의 목표가 기업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 예를 들면 교회와 학교까지도 기업의 모델을 따라서 자신을 재조직한다.
10. 정치-사회 엘리트층까지도 주로 기업 경영자 출신이 차지하게 된다.
11. 노조활동은 대체로 기업 경영의 방해물로 간주된다.
12. 행정부는 기업조직을 모델로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는 경제 부처가 다른 모든 부처를 압도한다.
13.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의 사회과학이 되고, 또다시 회계학과 경영학이 경제학을 대신한다.
14. 경쟁력이 없는 것은 곧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공공성은 곧 무책임과 동일시된다.
한국은 아직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사회는 아니지만 점점 그 쪽을 향해 가고 있다. 특히 소수 대기업들의 강해진 힘은 시장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 위험성을 증폭시킨다.
대기업들의 큰 영향력은 경제 수준에 비해 저조한 복지체제와 비정규직의 대량발생과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은 의회의원들과 고위관료들을 포섭하고, 검찰과 법원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공적 통제장치를 약화시킨다. 학계는 그들에 유리한 담론을 유포하고 대기업들에 장악된 언론은 이를 더욱 확산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초은하단과 행성님 리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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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제가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작년 흔적을 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고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작은 제목에 이끌려 다시 보게 된다. 기업사회라는 표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연대의 주주운동의 성격으로 예단을 해서 일까? 87년체제 이후의 관점을 철저히 자본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점유로 다시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87년체제 평가나 토론에서 김교수의 발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대신해서 일까?
1. 총과 칼이 아니라 생산성, 효율성을 명분으로/구금,체포,고문,학살이 아니라 명퇴,분사,비정규직화,해고,비연고지근무를/반공포스터는 CEO라는 레토릭으로/천박한 자본의 무노조주의는 독재시절 무노조주의와 겹친다. 그런 당당함은 정부 공무원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재교육을 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14종의 경제교과서의 446곳의 수정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 않는가?
2. 지난 20년의 평가의 관점이 정치-대통령-국가에 치우쳐있어 정작 중요한 자본의 동선으로 본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엄한 곳에 표적을 두고 실현되지 않는 구호만 외쳤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사이, 대중은 자발적 동의와 헌신으로, 운동권들도 대거 깃발들고 투항하는 사이, 천박한, 아니 양아치같은 자본(기업사회)은 사회-정치영역을, 시장이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라고,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를 차곡차곡 했던 것은 아닐까?
3. 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럴 여력도 없는 노동운동은 정책과 운동방향이 전제된 노선투쟁이 아니라 노조 권력 장악을 위한 노선투쟁이 대신하였다고 한다.(117쪽,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글자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실용을 표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자본은 1인 1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유한 자본만큼 권리를 행사하려한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파쇼다. 미국보다 더한 기세로 완장을 찬 듯, 사회를 시장의 식민상태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행태는 어이할 것인가?
4. 대기업 정규직의 노조는 자본의 구심력으로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비정규직의 소리없는 주검과 더 많은 구속자와, 해고에 일관되게 행한 것은 무엇일까?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관료화에 익숙해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금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했을지 모르는 이것에 대해 객토하는 심정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사회를 재해석해내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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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모두는 정치경제 현장에서도 종업원 혹은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며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존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모든 이가 피해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 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처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페다고지(pedagogy)가 요청된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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