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완득이 토론 20080517
 
 
 
추천 :   이름 : 서## 작성일 : 2008-05-17  :  
 
 


 
[완득이]
- 김려령, 창비.

   소설 [완득이]는 한 편의 만화를 보는듯한 기분으로 키득거리다가도 또 때때로 가슴 찡한 기분을 읽는 이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완득이와 똥주선생님의 좌충우돌 갈등이 우리를 즐거움과 감동으로 이끌어가는 주된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득이를 둘러싼 아버지, 삼촌, 어머니, 윤하, 혁주 등은 우리가 애써 모른 척 지나쳐 왔던 우리 주변의 그늘들을 들춰내고 있지만 그 그늘 아래서 우울해 지기 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지요. 친구들은 완득이를 통해 친구들의 마음에 어떤 색깔이 칠해졌는지 이야기 나눠 봅시다. 이야기 나눈 날 : 2008년 5월 17일(토) 늦은 3시


1. 소설 [완득]이를 읽고 전체적인 평가를 해볼까요. 전체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 해 볼 수 있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지훈 : ‘뻔하다’. 완득의 캐릭터가 반항적인 것이, 여타 성장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에 많이 닮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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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 : ‘싸이코’.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완득이의 동네 전체가 싸이코 마을처럼 여겨졌다. 인물들이 비정상적이야. 내가 지금까지 평소에 겪어온 사람들과 많이 달라. 가령 완득이 여자친구인 윤하 경우 아무리 남자친구라지만 그렇게 킥복싱 하는데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채은 : 나는 그런 윤하의 행동이 이해가 되던데.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진배 : 그럼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걸까?
상아 : 돈....?
일동 : 웃음
진배 : 정의로움, 정직함, 잘생긴 외모, 인간성, 솔직함, 유모 이런 것들이 아닐까...
윤하가 완득이에게 끌렸던 점은 무엇일까? 완득이는 학교에서 그림자같은 애잖아. 가난한 집 아이이고, 공부도 못하는데...
상아 : 자기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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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찬 : ‘소외’.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들이잖아.
진배 : 그럼 각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소외층 중 어떤 계층을 상징하고 있는 걸까?
해찬 : 삼촌의 경우는 장애인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진배 : 아버지의 경우는 그럼 어느 계층을 상징하는 걸까?
해찬 : 아버지도 장애인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 아닐까?
상아 : 아버지는 장애인이면서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외로운 가장’을 상징하는 거 아닐까?
진배 : 그럼 어머니는?
해찬 : 외국인 노동자.
진배 : 그렇지.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각각 상징하고 있지. 똥주선생님은 기성 교사 모델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또라이 선생님이고, 윤하는 공부는 잘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따 당하는 왕따를, 혁주는 말 그대로 문제아를 상징하고 있지. 완득이는 이 모든 소외된 인물들의 집합체이고.
그런 점에서 해찬이가 떠올린 소외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소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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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 : ‘모순’. 등장인물들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순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똥주선생님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잘못 대하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하고, 완득이는 첫 장면에서 똥주선생님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정작 갈비뼈에 금이 가서 쓰러진 똥주선생님을 들쳐업고 뛰면서 하나님께 제발 똥주선생님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잖아.
진배 : 그렇지.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과 표현에서 해창이 말대로 모순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 그럼 인물들이 감정과 표현을 똑같이 하지 않고 이렇게 모순되게 글을 쓴 작가의 의도가 뭘까?
해찬 : 재밌으라고.
진배 : 그렇지. 인물들의 감정과 표현이 똑같다면 그 소설은 재미가 없겠지.
해창 : 소설 중에는 인물의 감정과 표현이 똑같은 소설도 있는데...
진배 : 그런데 왜 이 소설은 인물들의 감정과 표현이 모순되게 했을까. 좋으면서도 겉으로 표현은 반대로 하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정표현 아닐까...이런 걸 뭐라고 하면 좋지?
지훈: 미운정
진배 : 그렇지. 미운정. 그 말이 적절한 것 같애. 미운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되어 있잖아. 미운데 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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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 : 청소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가치 갈등이 내가 공감할 수 있어서 이 소설이 재밌게 느껴졌어.


2. 소설 속 명 장면을 친구들에게 소리내어 읽어 주세요.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는 것은 나만의 보물을 나눠갖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가슴 찡한 장면, 유쾌, 상쾌, 통쾌한 장면,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장면, 어떤 장면이라도 좋습니다.
진배 : [완득이] 양장본 p135~136
난 이 장면에서 부자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돼. 특히 앞 부분까지 완득이에게 수급품인 햇반을 챙기라고 반 친구들 많은데 소리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완득이 입장은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 “쪽팔린 줄 아는 가난이 가난이냐? 햇반 하나라도 더 챙겨 가는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진짜 가난이야. 햇반 하나 푹 끓여서 서너 명이 저녁으로 먹는 집도 있어!”라고 말하는 똥주선생님의 말이 인상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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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 [완득이] 양장본 p72
정윤하가 울었다.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고, 코를 푼 손수건을 반 접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가방에 넣었다. 안 버리고 또 쓸 생각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더러운 애다.

웃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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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 : [완득이] 양장본 p43
   정황상 나는 가출을 해야 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잠시 혼자 있고 싶어 떠납니다, 라고 쓴 쪽지 하나 남겨놓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버렸다. 잘못하면 가출하고 돌아와 내가 쓴 쪽지를 내가 읽게 될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된 집이 가출마저 원천 봉쇄해놓았는지.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곳이 결국 집이었다.

이 장면은 완득이의 불쌍한 처지가 나타난 장면인데, 이상하게 웃겨...

진배 : 그래. 채은이가 읽은 장면은 웃긴데 슬퍼. 슬픈데 웃기고. 이 소설의 힘이 그것 아닐까... 소설 속 상황이나 인물들이 나 죽네 나죽네 하고, 소설도 그렇게 썼다면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질 텐데, 이 소설은 그늘진 모습을 그리면서 웃음이 나게 하지. 그늘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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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배 :  [완득이] 양장본 p149~151
해창 : [완득이] 양장본 p98


3.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두 인물 , 완득이와 똥주선생님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들인지 그 둘을 집중적으로 해부해 볼까요? 가령,

완득 :
나이 : 올해 대한민국 나이 17세 고등학교 1학년, 소설 후반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됨.

특기 : 킥복싱
말투 : 쿨하다.
인간관계 :
지훈 : 존재감이 없다
진배 : 그렇지 학교에서 완득이는 그림자이지. 책에서도 묘사한 것처럼 공부 잘하는 몇 명을 위해 나머지 친구들은 들러리인 셈이니까. 어디까지나 성적이라는 잣대로 말할 때 존재감이 없다는 거지.
성격 : 막힘이 없다.

똥주선생님 :
- 나이 : 40대 중반이지만 앞집 아저씨한테는 절대 밝히지 않음.
- 특기 : 욕, 집행유예라는 체벌의 기발한 달인, 우기기
진배 : 선생님으서 똥주선생님의 전문적 능력을 암시한 장면도 있지. 오랜만에 사회선생님 같다고 완득이가 인정하는 장면이나, 똥주선생님 방을 방문하고 방에 책밖에 없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그렇지.
- 성격 : 괴팍하다. 쿨하다.
진배 : 괴팍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이지?
해찬 :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니까...
- 인간관계 :
지훈 : 의외로 정이 많다.
진배 : 그래 정말 의외로라는 말이 앞에 꼭 있어야 한다.
진배 : 완득이와 똥주선생님의 성격에서 모두 쿨하다고 말했는데, 쿨하다는 게 무슨 뜻이지?
해찬 : 가식이 없다는 거지.
지훈 : 감정표현이 솔직하다는 거지.
진배 : 거기에 계산적이지 않다는 것도 포함되지 않나? 가령 내가 저 친구한테 생일선물로 만 원짜리를 하면 저 친구도 나한테 만 원 이상의 선물을 해야 한다고 계산하거나, 그렇지 않았을 때, 마음에 두고두고 쌓아놓는 사람들은 쿨하지 않고 핫한거 아닌가?


4. 똥주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느끼는 똥주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이라 여겨집니다. 완득이도 처음에는 똥주선생님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똥주선생님이 좋아지는 눈치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본 똥주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이 뭉엇이라고 생각되나요?


5.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는 뜻 깊은 날이었죠. 여러분은 소설 [완득이]에 등장하는 똥주선생님을 지켜보며 바람직한 선생님의 모델을 생각해 보았는지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경험한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생님’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떠올려 보고 친구들에게 그 선생님이 내 인생의 최고의 선생님으로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말해 보세요.

해찬 : 똥주선생님은 아닌 거 같아. 선생님의 본분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건데, 똥주선생님은 학생들 공부는 안 시키잖아.
해창 : 선생님마다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 가치관이 다를 수 있잖아. 그런 점에서 선생님마다 가지고 있는 ‘공부’의 상이 다를 수 있다는 거지.

일동 : 오오오오

진배 : 그럼 소설 속 똥주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한 ‘공부’는 무엇일까?
지훈 : 현실?
해찬 : 인성?
지훈 : 인성은 아닌 것 같은데, 욕하고 때리고 그러는데...
해창 : 똥주선생님은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진배 : 마치 거울처럼?
해창 : 프리스타일이지.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변하는 모습...

진배 : 이야기를 나눌수록 새로운 질문들이 자꾸 나와서 재밌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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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겠다...
진배 : 그래 그럼 이 시간은 여기까지만 얘기하자. 단 이 질문만 하나씩 가지고 일주일간 생각해 보자. ‘똥주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공부는 과연 무엇일까?’


      
*** 중간고사 전에 함께 만들기 시작한 공동체 신문이 아직 편집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월이 가기 전에 우리 신문을 완성하려 하는데, 원고마감이 어느 정도까지 되었는지, 새로운 원고 작성에 대한 의견은 없는지 이야기 나눠 보세요.


*** 다음주는 5월 문화 주제의 네 번제 꼭지로 ‘문학체험’ 주간입니다. 문학작품의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 나도 직접 문학작품을 창작해 보는 경험을 가져 보는 주간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창작해 낸다는 것의 즐거움과 내 맘 속에 담겨 있던 그 무엇인가를 그 창작물에 담아내 다른 이들에게 선물한다는 것의 카타르시스를 느껴 보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주까지 내가 창작한 시 한편씩 준비해 오기 바랍니다. 다음 주는 음악과 차가 함께 있는 시 낭송의 시간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뱀발.

 음 소식을 전하게 되네요. 이어서 고딩 1,2년 친구들의 인문학과 스포츠란 주제로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샘님들의 뒷풀이였죠. 부럽군요. 부모님의 삶들도 의외로 소설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과 나가 아니라 서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로서, 서로 기대거나 함께 해결하거나, 고민들을 보듬는 문제이겠지요. 현실에 물리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는 일도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중요한 것은 아닐까합니다.

 고생하셨군요. 행간의 의미로 헤쳐나가는 모습들에도 관심과 격려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에서 이런 자리 한번 없던 그때와 지금이 동시에 그려집니다. 아무튼 다르게 살거나 느끼거나,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 뭔지 모르는 다른 숨결에 대한 낯선 무엇도 다가서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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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문화의 힘을 믿는가?,

이 세상에 대해서 철학과 예술과 문화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그 잣대를 스스로에게 가져오는가? 선명성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 마음을 혹시 중앙에 의탁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나누거나 의식해야 할 사람이나 물들거나 나눌 사람들은, 시선을 의식해야할 사람들은 형제나 자매나 가족같은 생활인이거나 일반인들이 아닌가?

 정해진 동선, 정해진 사람, 정해진 선명성은 혹시 아닌가? 그리고 그 선명성으로 일반인, 생활인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것은 아닌가? 그 무모함은 문화나 예술이나 철학을 생각지도 못해, 오로지 경제만 생각해 밧데리가 떨어진, 한계에 다다른 천박자본을 닮은 것은 아닐까? 한계를 이념으로만 넘으려는 무모함이 은연중에 몸에 배인 것은 아닐까?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 똑똑하고, 원칙적이고, 잘난 사람들은 여전히 여백도 빈공간도 지내보니 겉보기와 다르네 하는 달리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있는가? 자신있는가?

 늘 골치아픈 이야기만 하고, 이해못할 색깔다투기에, 익숙한 사람만 만나기에 흡족해있어 더 더욱 성벽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반인이, 생활인이 다가서기에 알량한 앎이나 지식을 통행세로 내야하는 것은 아닐까? 진보는 여백이 있는가? 물이 고일 수 있도록 낮춰질 수 있는가? 그들과 색깔이 겹치는 부분은 있는 것인가?

문화의 힘이 그러하다면, 예술의 힘, 철학의 힘... 어찌 강원도의 힘 같은 ..힘쓰는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없게 하는지... ... 혹 상처받는다면 제 책임. 말만 하는 저도 마찬가지겠죠. 조금 씁쓸 텁텁 미안.

뱀 발.

* 삼국장과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보니 둘,셋만의 만남이 은연중에 사라졌다. 바쁜 것일까? 편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이 그리웠고, 그 시간이 채워져 다행이다 싶었다. 080514, 뒤풀이에서 나온 생각들을 묶어본다. 물론 자의적인 편집이지만.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 수다쟁이가 되면 안되는데 하면서도...이렇게 남긴다.

* * 아*** 가지마라 (물든다)  ? 합당한 질문이고 물음인가? 괴담인가? 사실인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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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을 믿다]를 비평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소설의 독해방식엔 불콰하다. 가끔 다른 글읽기 방식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믿다]란 한 편의 시가 있다면, 사랑을 믿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사랑을 믿다라는 마지막 한줄의 반전에 대한 느낌만 갖는다. 그러고 보니, 그 느낌을 우려먹고 있다. 평론하듯, 비평하듯. 스스로 가져가지는 않고 말이다. 그래서 심화학습이다. 화살을 조금 사적인 공간으로 가져와 본다. [운동 sports? 을 믿다]/[활동 action? 을 믿다]로 오독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사랑을 믿다]/[연애를 믿다]로 오독해도 역시 상관없는 일이다.

차고 메마르다. 메마른데 차갑지 않다. 차갑지는 않은데 메마르다. 차겁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다. 자문자답을 해본다. 어디쯤에 걸려있는 것일까? 나란 놈은. 감성이나 감수성은 사람들에게 불공평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만, 어느 나라사람에게만, 어느 지역사람에게만. 그것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어리석은 물음을 해본다. 달러. 석유. 금화나 은화. 아니면 어린 느티나무. 아니면 겨울에 심은 매화한그루. 뒤의 것이 그래도 나은 듯하다. 편의상 타협해서 감성이나 감수성을 매화한그루로 하자.

다시 돌아가본다.  감성이 메마르거나 차거나 감수성이 차갑거나 메마르거나 해서, 아니 얄팍한 이기심이나 비겁함으로 인해 감성이나 감수성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수로를 내고 흐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싶다. 아무래도 나의 감수성이나 감성에 비겁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충만하고 넘치거나 샘솟는다는 것을 두려워해서, 어쩌면 그것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성이나 감수성을 저축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진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감성이란 통로, 감수성이란 통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얄팍한 소심들이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나의 의식체계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현실이라면 매화한그루를 어떻게 지금보다 달리 키울 수 있을까?

감정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수성은 극단으로 가면 어떨까? 위험한 시도일까? 위험한 발상일까? 갈 수 없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딴지거는 것들은 무엇일까?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의 극단은 절망일까? 자유일까? 해방감일까?

뱀 발.

1.건망이다. [사랑을 믿다]를 [사랑을 믿는다]로 기억하고 있었으니, 믿고싶은 것일까? 뒤풀이 자리 이야기가 이어져 내친 김에 더 잇는다. 그냥두자 [사랑을 믿는다]로. 에구 ㅇ. 후유증인가??

2. 설명하는 일과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음미하는 것과 알려주는 것의 간극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음미하는 것은 왜 동시에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음 그러면 딴 생각하고 있다고 오해를 받겠구나. 그치 한번에 한가지만 하는 것. 그게 낫겠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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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미국사람들이 잘 먹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할까?
5.1일 전격적인 허용은 매체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내가 먹고 마시는 문제의 광범위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중의 인식이 황우석때도 그러하며 며칠이 지나면 모두가 전문가가 된 것 같지만, 정작 몇달이 지나면 모두 잊는다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먹을 거리에 대해 다시 문제제기를 해본다. 광우병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도 좋지만, 먹을 거리 가운데 우리가 처한 현실은 암담하다. 뒤돌아서면 여전히 안방을 차지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위해가 나만 아니라 우리에게 향한다는 사실에 불감한 것일까?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새끼, 내자식, 내식구의 문제로만 국한하더라도 여전히 위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고기만 먹지 않는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감수성을 예민하게 회복하는 일과 함께, 두루 널리 아는 아마추어리즘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때는 아닐까?한다.

이 나라는 유독, 이런 위험한 일이 담론화되지 않는다. 내 먹고 살기도 바쁜데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사람들이 문제없이?(설마 그럴까?) 먹고있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은 GMO를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제도적 제약을 엄격하게 해놓은 나라들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작 정부가 외양간은 잃은 뒤에 원산지 표시를 하면 된다고 하는 모습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원산지표시가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진작 하지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꾸 고민해야할 지점을 흐리는 정부는 진정 우리는 어디를 배워야할 것이고, 어느 것을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인가? 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외양간 잃고 고치는 심보를 우리에게도 가져와보자. 검색만 해보면 널려있는 것이 정보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고 방기해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먹어봐야 무슨 걱정있겠어라든가? 피터지게 외치는 문제에 대해 한번도 우리의 경각이 달린 문제로 아파했던 적이 있던가? 전문가의 영역으로 등한시해왔던 것은 아닐까?


두루, 널리, 가슴에 가져가는 아마추어리즘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일련의 건망을 보면 혹시 우리가 판단마저 의탁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땅의 건강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합리화에 혈안에 안스러울 정도로 허걱거리는, 전문분야를 떠나면 아무말도 못하는 전문가, 합리화를 시키기 위해 전문성을 이용하는 뻔뻔함을 관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지식인이 아니라 기껏 한다는 일이 지식을 파는 일이라면 충분히 냉대받고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 그런 지식과 전문성은 아무런 쓸모가 없고 백해무익하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내가 먹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의 현재 수준을 아는 일이다. 식품안전, 건강예방, 건강평등을 위해 우리에게 가해지는 유해성에 대해 냉정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그런 일에 정부가 자본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전문가도 그러한 일에, 위해의 심각성에 대해 도움을 얻고 싶은 것이지 변론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위험은 계량화할 수 없지만, 아마 광우병의 몇곱절의 위험함이 이땅에 5월 장미의 계절에 이미 시작했다. 아픔을 넓혀라. 넓히지 않으면 잊혀진다. 그리고 검색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라. 아마추어로 거듭나라. 음식도 편식이 좋지 않다고 한다. 두루, 널리~ 그리고 오래. 관료도, 정부 나으리들도, 전문가도 당신의 아들, 딸, 형제에게 안전한 식탁을 꾸리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아닌가? 당신의 조직이나 위치를 대변할 수록 결코 당신들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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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 L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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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이 부제다. 종교개혁 시점인데, 인쇄술의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중문화에 새로운 조짐이나 가능성. 하지만 불쑥 떨어진 500년 뒤, 현재의 모습은 더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종교로 외피를 씌우고 현실에 눈감는 일상들이란 아둔하기 그지없는 것은 아닐까? 한 방앗간 주인..그러니 안경을 만드는 스피노자인가?의 관심사와 지적순항도 그러하고...

미시사; 경제사 일색에서 좀더 다양하게 벗어나고 논의되었으면 좋겠다싶다.

 

1.

긴휴가를 끝내고 퇴청하다. 편안하다. 짬짬이 본 책뭉치를 들고, 오늘 마무리하고 있는 위의 책과 함께. 쌓인 火 기운도 풀 겸해서 주로로 나선다. 녹음은 그늘을 잔뜩 드리우고, 짙은 바람에 어쩔 줄 몰라한다. 더욱 원색에 가까운 꽃들이 자리를 잡고, 바람에 풀은 눕는다.  아~  바람이 좋은 계절이다. 얕은 땀방울에 묵은 기운들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상쾌하다.  7k 45'  그러고보니 시집도 볼 걸 그랬다. 아쉬움이 남는다. 밀린 사진들은 내일 덧붙여야겠다. 많은 분들에게 괜히 미안하고 고맙다.



2.

 















 4.

하 루

희   망 하나
돌아봄 하나
불러냄 하나
相잇기 하나
새로움 하나

그리고 사사로움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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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7-16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늘 달리고 싶어하던 그 곳이군요.

여울 2008-07-16 14:45   좋아요 0 | URL
밀밭님이 누굴까? 가까운 이곳....궁금하네요. 아는 분이죠?. 함께 달려봐도 괜찮겠죠. ㅎㅎ

밀밭 2008-07-1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울마당님, 6.10에 중앙로 차로(?)에서 인사드린 적 있어요.^^
제가 늘 뵙고싶어하던 '그 분'이셨죠.ㅎㅎ

여울 2008-07-18 00:50   좋아요 0 | URL
아 하, 그 분이시군요. ㅎㅎ. 반가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