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 


동무론을 읽은 뒤, 홈피를 둘러보다. 한결같이 문체가 유사함에 놀랐다. 휘이 둘러보면서 드는 느낌은 문체와 경향이 비슷한 것 보다는, 술의 예를 들듯, 구체적인 삶의 결에 대한 숙고나 다양함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나]의 영역에 가두어둬서 생기는 것은 아닌가? 세세한 결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과다한 기대였던가? 더이상 다가서지 않기로 한다. 알면 알수록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외려 그런 전제없이 생각을 키우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뒤에 얼마든지 그 전제를 둘러보아도 될 것이므로...  www.sophy.pe.kr

이야기 

김연수의 소설집을 몇권 집어들고 있는데, 피곤을 덕지덕지 바르고 어제 내가 누구든 외롭...을 보다. 90년인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빨려들기도 하고 상큼 적나라한 표현이 끌리기도 한다. 추상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례들이 궁금해지는 연유다. 이야기 알기와 나누기를 취미로 갖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스토리라면 하야지거나 뒤돌아서면 기억하지 않으려는 반면이다. 


 

 

 


전 제 

사회과학방법론에 관한 책들을 역시 들고 있다. ...  술책들... 양적방법의 문제, 분석적인 방법이 갖는 문제들에 대해 경험적이고 중요한 지점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곁들여서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책들을 몇권 더 보태고 있다. 


 

 

 


기  타 

그리고 그림책 몇권... 새책 몇권. 일터 시무식부터 틀어지고 개인적 심사를 얕게 뱉어내는 보스로 인해 맘들이 상하다. 담날 밝혀진 것은 다를 따로따로 이차에 가서 뒷담화.  아마츄어같이 왜 그러는지 속이 뻔히 보인다. 있어도 없어도 모두 걱정이다. 동료들과 회의를 하여야만 했는데, 회의하게 되면 일 줄이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고, 건강들 챙기라구 말을 건네지만 말을 하면서도 줄지 않는 일때문에 상하는 건강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서로 남 걱정할 처지도 아니지만.  080105-6

                         

 스칼라와 벡터 

 090103 문제가 반복되는 지점이 생기는데도, 모두들 그 결과, 이미 결정된 지점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뒷담화가 필요하긴 하지만, 의사결정력이 있는 분의 의사결정습관(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협의이전에 통지하거나 알림)이 있음에도, 여건을 만들거나 함께 숙의하는 시스템을 고려해보지 않는다. 개인적인 문제로 처리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논의가 가능할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연* 학교보내는 일로 여러분들이 이야기를 나눈지가 꽤 오래된다. 의견이 나눠지기도 하는 것 같다. 몇번의 결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건네듣는데 여전히 여러 생각이 든다. 


 

에로스 - 타나토스(죽음충동). 그 사이 성과 섹스만 나다니는 것이겠죠. 그 극단의 사이에 있는 현실들. 이야기가 있는 그림들입니다. 0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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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면 우린 막다른 지점에 서면, 그것을 안고 가야한다거나 어쩔 수 없다고 하는지도 몰라 그래서 속울음을 삼키며 가슴 깊숙히 인두질을 그렇게 남기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것이 아마 내탓일 것이라고 자학을 하는지도 몰라. 그렇게 마음 속에 막다른 길을 내는 연습이란... 어쩔 수 없음이란...

2. 그래서 그 속을, 그 절망이나 그 상처를, 그 고민을 뒤짚어본다고,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그것을 뒤짚는다고 생각해봐. 내고민이 아니라고, 내상처만이 아니라고, 내아픔만이 아니라고 그렇게 좌판을 벌려놓는거야.

3. 그 막다른 지점을 터뜨려보는거야. 고민을 팝콘이나 꽃인 것처럼. 고민꽃이라고 해보는 거야. 고민은 처리하고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보는거야. 그렇게 생각해봐야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말이야. 그 고민을, 그 상처를 커밍아웃해보는 거야. 더 나빠질 것이 없으므로

4. 그래. 그 고민이 터지는 지점을 슬로-우--우 비-디-오로 누구나 볼 수 있게 해보는거야. 왜냐구 더 이상나빠질게 없으므로. 그렇게 꽃을 피우는거야 누구나 볼 수 있게 커밍아웃을 해보는거야. 안된다구. 막다른 골목길이었다구 말하지 말구. 늘 혼자 그 길을 갔으므로 절벽을 만났다고 해보는거야. 왜냐구 더 이상 손해볼길이 없잖아.

5. 아마. 그 길에 접어들면, 나의 버릇처럼 잠복근무중인 그것이, 나만이 아파한다고 착각하던 것에 조그마한 틈이 보일지 몰라. 아마 아마 미세한 현미경으로 봐야할 것 같은 금이 보일지도 몰라. 들여다보면 볼 수록 금이 커지고 틈이 벌어지고 넓어져 아마, 어쩌면 그 사이로 꽃들의 암술과 수술이 당신의 얼굴로 화악 달아오르게 할지몰라. 그 꽃을 피하지말고, 그 선물을 피하지 말고 가슴으로 안아봐.

6. 이쁜 말, 예쁜 말, 하고싶은 것, 얻고싶은 것도 좋지만 그 버릇때문에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도 몰라. 그 예쁜 말, 얻고 싶은 것으로 칭칭감겨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쳤는지 몰라. 이해바라고 내맘 알아주길 바라는 것으로 온통 나만을 너만을 수놓아 당신의 눈망울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지 몰라. 인형같은 서로를 스친 것인지도 몰라. 외면을 너무도 많이 연습해서 이런지도 몰라. 또 그렇게 이해를 구하기만 하고, 고민을 뿌려놓기만 하구.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한탄만하다가 하루를 보내는지 몰라.

7. 아픔이 머무는 곳, 슬픔이 배여나는 곳, 고민에 숨막히는 지점. 상처가 덧나는 지점에서 꽃이 핀다구.....불감의 치유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몰라.                                                   고민꽃, 상처꽃, 아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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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9-01-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아직도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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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저 유명한 칼세이건의 아내인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이 썼다. 두 과학자 모두 미생물학계의 거두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은연중에 명사를 요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무엇이다라고 규정짓는 이상, 그 위험함은 생명을 개념짓지 못하고 빠져나갈 확율이 크다. 따라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명사보다 동사가 적절할 것이다. 지구에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최근 광물도 공진화의 시각으로 연구한 논문의 기사도 본 적이 있고, 개인적인 시각도 광물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데 공감한다. 미생물학의 거두답계 우리 몸에는 진화의 흔적이 온전히 배여있다. 태아의 아가미호흡이나 꼬리, 미토콘트리아, 수많은 박테리아의 흔적은 어디에나 찾아볼 수 있다. 단독자가 아니라 그물망에서 호흡하고 숨쉬는 것.

말미 다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진화론과학자였고, 빼어놓아서 되지 않을 인물이 샤무엘 버틀러(작가이자 화자, 음악가였다.) 버틀러의 할아버지는 다윈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이었다. 이런 관계에 버틀러가 문제제기한 것은 [종의 기원]의 선행연구 결과를 알리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으로 가져가는 것에 분개한 것 같다. 하물며 다윈은 "생물학에서 생명을 도려냈다"라고 비판한다. 기계론이나 뉴튼론자로 환원하는 것에 분노했고, 실제 자비를 들여 많은 책들을 냈다한다. 오히려 경쟁의 단물만 빼먹은 지난 150년의 역사와 폐해는 버틀러의 시선에 더 가까이 더 현실적 이다. 안타깝게도 다윈과 버틀러가 함께 논의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척박한 인문의 한계는 아닐까?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잔 손탁의 에세이 묶음이다. 우연히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는 책을 발견하다. 일전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본적도 옮겨 밑줄을 그은 파란여우님 글과 겹친다. 1968년 6-7월에 쓴 [하노이 여행]을 읽다. 68혁명이 5월이니, 그 5월에 하노이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혁명이 어른거리던 시절에 쓴 글이다. 글을 읽다보니 쿠바를 다녀왔고 쿠바와 달리 유교적, 도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베트남의 분위기에 일주일 정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겹친 사고의 진전을 보여준다. 앤디 콥킨드, 밥 그린블랫과 동행취재하였는데 40년전 글이라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다 싶다. 더 자유스럽고 열린 친구, 개방적인 친구를 만난 듯. 끊임없이 넘나드는 사유가 부드럽고 좋다.   혁명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되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하고 경직된 껍질의 혁명이 아니라 일상과 삶, 친밀감...등등 말랑말랑하기도 딱딱하기도 한 혁명. 부드러우나 부드럽지 않은 혁명의 물결. 그 세월의 흔적, 물결을 되짚어도 손해보는 것은 없으리라. 



3. [달리기와 존재하기], 김연수 옮김. 도서관에서 김연수를 검색하니 볼만한 책들이 몇권없다. 최근 소설책을 보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스크롤하다보니 달리기와 어색하게 붙어있는 존재하기란 제목이 옆에 붙어있다. 호기심이 바짝인다. 역자는 그 김연수였다.(역서가 많다했더니 영문학과를 나오셨고 70년산이시다) 번역한 연유를 찾다보니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달리는 사람들이 그저 달릴 뿐, 나온 책들이란 어떻게 숨차게 뛸까하는 스포츠학 내지 건강서적뿐이어서 좀더 다른 것을 찾고자 했단다. 빨려들어가 읽으면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철학자들의 말들을 어찌 그리도 옮겨 놓으셨는지) 그리스, 미국의 팍팍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아무런 사유를 하지 못하는 달리기문화의 우리 현실을 보면 그래도 낫다. 20년의 시간 텀을 두고 장소만 달리 그대로 달리기 문화는 진전하는 것 같다.

이곳과 노은을 잇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래서 그 길로 달려본다.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어 좋다. 갈 때 30', 올때 25' 가다보니 반*마을이 벌써다. 되돌아오니 아파트에 걸린 달은 유난히 급하고 높이 보인다. 하루 24점 가운데 반점 한점 내 몸에 온전히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이겠지.  
 

뱀발. 김용석의 생명에 대한 정의가 이어 생각난다. 생명은 폭력적이다 낯선 것에 대해. 한편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말미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개체생명-보생명의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란 보탬글이 있다. 책을 넣다보니 김지하의 생명학도 있고, 박경리님의 생명도 걸린다. 지난번에 읽은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도... ... 생각을 덧보탤까? 덧붙일까?   

수잔손탁인지? 수잔손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 이지적 외모와 경계가 멈추지 않는 비평집을 앞에 두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짐짓 놀라고 아둔한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했건만 잔여생각의 꼭지를 이어본다. 아직도 몸에 녹아있지 않으므로 이물감만 가득, 그저 타인의 고통을 시식할 뿐.   

달림. 그래도 보지 않는 것보다 한번 보시면 좋을 듯. 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바쁜 일상으로 몸 추스리거나 챙기시기도 힘들겠지만, 몸으로 생각도 사고도, 때론 가슴도 머리도 트인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은 몸에 영양분을 줄 요량이나 며칠에 한점 몸을 충만하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오늘도 난 키보드좌파근육에 몸서리칠 뿐이고, 술독에 근육이 풀어져 유연해졌을 뿐이고... ... 살사댄스도...암튼 몸에 좋은 취향하나 가져보심도 괜찮으리라... ... 책상물림 당신에게 드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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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1-0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매번 헷갈리는게 수잔손택인지, 수전손택인지, 수잔손탁인지...
남의 이름을 이렇게 지 마음대로들 불러도 되는건지 모르겠어요.
누가 좀 정리좀 해줬으면 싶어요.

여울 2009-01-07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갈리다가 맞아요? 헷갈리다가 맞는 것이예요. 정리 좀 해주세요. ㅎㅎ

글샘 2009-02-03 08:32   좋아요 0 | URL
복수표준어입니다. 둘 다 맞죠. 정리 안 되긴 마찬가지... ㅎㅎㅎ

여울 2009-02-03 08:43   좋아요 0 | URL
글샘님 감사. 그냥 아무거나 쓰면 되는 것이네요. 이러면 좋을텐데 ㅎㅎ
 

 

   
 

[내쫓긴자], [내쫓길자], [무용한자] 당신은 어디? 자본주의의 변곡점은 지났다. 더 이상 자본주의는 더 이상의 노동력을 필요치 않는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늘었는가? 지난 15년, 그러했는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던가? 과연 그러했는가?  

자본주의가 10억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10억명의 굶주림을 일자리로 해결할 수 있을까? 존재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생존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일자리가 없는 것과 무능한 것과 같은 것인가? 당신의 아들 딸들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무능한 것인가? 일자리도 없으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것인가? 

유용하지 못한 자로 규정된(될) 자들은 신종마녀들인가?(이미 마녀취급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력없고 능력이 없어 그럴 수밖에 없는 자들인가?  도대체 누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가? 나만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사실을 대면하기 어렵겠지만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나라를 팔아먹는 정치, 없는 것이 있다하는 정치, 사회적약자를 한표로만 인지하고 무용하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강변하는 그들의 허구를 꿰뚫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다.

 
   

1.

꿈결의 말미. 생각은 아이러니와 유머에 밑줄을 긋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대체 뭐일까? 경쟁력이 없는 갑자기 병든 사람이나 사고로 장애를 얻게된 사람. 장애우. 퇴직한 노인, 소년소녀가장. 사회적 약자는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사지 멀쩡한 사람들도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지금.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이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난 20년 일자리 일자리 이야기를 하는데, 고용없는 성장의 지속이었다. 누군가 사탕발림을 하거나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거짓말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직도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되먹지도 않는 현란한 말잔치만 벌이고 있을 확율이 크다. 실업자가 317만이란다. 통계수치의 함정도 함정이거니와 경제활동인구라는 영역에 벗어난 노약자를 모두 제외하는 숫자일 것이다. 게다가 주당 몇시간의 함정까지 포함하고, 구직포기자까지 보태면 얼마나?

2.

읽으면서 걸리는 말들 - 약자는 약자의 언어를 쓰고 않고 강자의 언어를 쓰고 내면화한다. 그러기에 자기존재에서 출발하는 생각이 아니라 되고 싶은 것을 강변한다. 정반대편에 있는 사유로 자기를 끊임없이 잊는다. 존재의 언어를 되찾는 것이 처음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자] [밖으로 내쫓긴자] [안에 갇힌 자] [고요함의 폭력] [쓸모없는 잉여존재] [이용당할 기회마저 상실하는 시대] [이익과 삶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못하는 시대] [박탈의 삶] [쫓겨난 자] [희생자의 무리는 대단한 속도로 증가한다] [관찰력 결여와 흥미 상실] [어떤 체제가 대중적 동의를 얻는 것은 다름 아닌 대중들의 무관심에 의해서다] [대중 속의 트로이 목마] [생략의 원리-비참한 자들의 존재와 빈곤이란 문제를 아예 생략하고 무시] [사라진 미래] [재고품 존재] [매일매일 똑같이 되풀이 되는 날 속에 갇힌 채 끝없는 변화를 소망] [똑같은 식의 항만 바꿀 것이 아니라 식을 바꾸어야 한다] [교육은 확인사살중이다] [수치감 속에 학대 당하며 사는 삶] [성장이 고용감축을 만들어낸다] [고용창출 이전에 불안감을 창출한다] [불안감 아래는 모욕감-박탈감-위기감이 연결되어 있다] [강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약자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는 것이 더 쉽다] [만성적 시청각장애의 시대] [0시간 노동-일할 때만 보수를 받는다] [모두를 위한 무, 무를 위한 모두] [임금이 인하된 인력과 제거된 지방질들이 성공의 주역이라는 아이러니] [인간가축][소리없는 혁명] [모든 것을 빼앗긴 자들의 노동력이 넘쳐나고 있다]

3.

[고민의 샘물이 있는 곳],[연구-사고-농담-열정이 존재하는 곳],[직업없이도 지낼 수 있는 삶의 양식] [정말 위험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피할 수 없다고 제시된 사항이면 무조건 체념하고 맹목, 동의하려는 우리의 태도다] [우리 삶이 달려있는 문제앞에서, 마치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수동적 태도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다] [살아갈 권리를 갖기 위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한가] [수익성을 올리는 데 이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의 삶도 과연 유용할까] 

 4. 

세상은 경제일원화의 사회에 일찌감치 진입했다. 이윤-이익, 남지 않으면 할 것이 없다. 이 유일한 진리아래 국가는 애걸한다. 제발 사람 좀 뽑아주세요. 미쳤냐? 뽑게. 자선단체냐? 그리고 선동한다. 이런 기업이 성장하도록 해야, 구조조정도 하고 경쟁력도 더 생겨야 일자리가 생긴다구 입만 열면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해고자부터 저 가장자리에 차곡차곡 예비부대를 쌓는다. 산업예비군이 아니라 산업예비청춘들로 북적하다.은퇴자들로 인산인해다. 기업이 살찌면 일자리가 늘까? 그리고 그 일자리의 양과 질은 어떠할까? 

되지 않는 것은 된다고 해봐야, 고개를 넘으면 오아시스가 있습니다라는 것이 한두번이지, 그런 오아시스는 없다. 자가당착에 빠진 저 술책에, 나만이 낙타구멍을 뚫고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확율보다, [내쫓길자]의 확율이 수십배 수백배 높아지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성장 = 고용증가 = 복지 = .... 자본주의는 더이상 노동력을 필요치 않는다. 노동력이 거추장스럽다. 아쉬울 것이 하나없다. 없어도 잘 굴러간다. 

신화와 환상에 벗어나는 것이, 우리들의 권리, 삶을 만들어가는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가능하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따져보자.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지 말이다. 그들의 말로 따지면 정신장애를 갖거나, 나이가 들거나, 장애를 갖거나, 병력이 있거나 하면 솔직이 안중에도 없다. 이익을 남기는데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애초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가축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경제논리의 똥구멍을 핥는 것이 정부이고 모리정치꾼들이다. 우리는 이미 철저히 사회적 약자가 유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시장자유주의라는 마약에 취해 이익과 삶을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는 미친놈들에게 칼자루를 맡기고 있다. 

최소한 유용하지 않은자도 사람이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들이 살아갈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소비라도 하지 않은가? 그래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기업이 돈을 벌잖아. 그렇게 구조조정되면서 기업의 군살을 빼서 경쟁력이 강화되었으면 그렇게 빼앗긴 자들이 성장의 일등공신이잖아. 잘 해줘야되는 것 아냐. 벌은 것을 일등공신들에게 쓰고 있는 것 맞아. 도대체 너네 말은 일리란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지 않니. 맞아 ! 틀려!  

5. 

일자리를 찾고 있는 당신은 이미 경쟁력이 있어요.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눈길한번 주지 않기때문이죠. 아무리해도 노동력은 남아돈답니다. 직업없이도 지낼 수 있는 삶의 양식을 사회가 만들지 못하면, 우리는 늘 낭떨어지에 떨어질 순간을 기다려야해요. 떨어진 것이 마치 내탓인 것처럼 말입니다. 결코 주눅들지 마세요. 사회에 대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곤경을 품고 서로 아파하고 알려야해요. 속지 마시고 부끄러워 마시구.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모두 다 너무 젊어서 나이가 많아서, 업종에 사람들이 몰려서라고 때문에를 옆에 붙이죠. 하지만 속지 마세요.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하는 것이죠. 그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는 것이죠.
 

뱀발. 어제 참*에 잠깐 들렀다 사회과학방법론에 관한 책들 외 몇권을 주섬주섬 챙겨온다. 새벽 말미에 든 생각하고 책의 생각이 많이 겹친다. 소설가인 비비안느 포레스테가 1996년에 쓴 책이다. 프랑스 비소설부문 1위, 약 27만의 독자가 읽었다고 한다. 소설가의 감수성은 사회과학개념어보다 훨씬 느끼기 쉽다. 저자는 특유의 통찰로 [소리없는 혁명]이 이미 일어났다고 여긴다. 자동화와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사회에서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10년 고용없는 성장이다. 실물경제로 움직이는 것이 1,2 분량이라면 금융, 투기에 투기로 움직이는 것이 나머지 98,99배인 자본주의다. 그러니 더 더욱 고용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기업은 툭하면 정부에 대고 공갈협박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 간다고.. 애초에 짝사랑도 필요없다. 솔직한 기업이 그나마 적확하다. 제발 뽑아주세요라는 비현실적인 소리는 하지도 말아야 한다. 경제의 권력과 규모를 냉철히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구도 속에 우리 삶이 어떤 위치를 자치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으면, 이렇게 정신없이 뒤퉁수맞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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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1-0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림청에 이력서를 냈는데요, ㅎㅎㅎ 연령에, 전공에 두루두루 걸리더이다. 근데 하는일은 전혀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는데 있죠. 주눅은 안들어요 그러기에는 굶주림에 관한 공포가 훨씬 현실적이라서 거기까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잘 견딥시다.

여울 2009-01-04 11:15   좋아요 0 | URL
좋은 소식 날아들기를 (학수)고대할께요. ㅎㅎ. 잘 견딥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