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클럽

시집 한권 읽다보니 시가 쓰고 싶어집니다.
커피 한잔 마시다보니 마음이 나누고 싶어집니다.
마음 한켠 나누다보니 친구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떠오르는 친구들 사이로 차 한잔, 시 한편 보듬고 싶어집니다.
시 한잔, 눈물 한홉, 지난 흔적 한말을 나누어도
밖은 칼바람부는 추위를 멈출줄 모릅니다.

 


뱀발.  

1. 지난 년말. 아직 참*송년모임의 잔향이 오롯이 남아있던 날, 추위로 햇살이 무척이나 가늘게 보였습니다. 아*** 사무실은 개벽을 하고 있는데 딴청을 부려봅니다. 차 한잔이 익을 무렵 여러 지난 흔적들이 겹쳤습니다. 따로 곰곰히 생각할 여유는 없었는데 좋은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펴보니 시간을 놓치거나 잘못하는 것들이 한올 두올 드러나기 시작하더군요. 쓴 소리들이 이어지고 덧셈의 사다리로 오르내리는 줄 알았는데, 말들은 벌써 그들로 그들을 저편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쓰는 말들이 이렇게 험악해 뺄셈으로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_들_사_이_에 너도 나도 넣고 싶지만 눈물만 주르르 흐릅니다. 그 들의 성벽은 너무도 높아 다닐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열 잘 된 윈도우에 가지런히 앉아 있어 볼 수만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이란 망원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이란 경로를 통해서만 교류를 해내는 우리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_들_은 여기에 있지만 지금 없습니다. 그들은 지역에 살지만 지역을 살지 않습니다. 우뚝선 그들은 아직도 지역을 살아내지 않습니다. 서울은 자석과 같아서, 자성이 있는 모든 것을 끌었다가 내었다가 붙였다가 밀쳤다가 합니다. 어쩌면 무극성을 그들에게 이식시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힘의 균형을 갖는 모임들의 긴장된 반대편의 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보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한가마니입니다. 그들의 시간과 좋아하는 사람의 자장도 늘 그리로 향하기 때문이죠. 아마 그들은 말로만 주의자죠. 말로만 그들을 껴안듯이. 그와 나는 이제서야 공통점이 생긴 것이죠. 말로만 연대. 몸으로도 연대를 향할 필요를 이제서야 느낀 것이겠죠. 반공 표어만큼 빛바랜 낡은 구호를 보게되진 않겠죠. 어느 것도 그의 마음에 닿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지 않게 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어봅니다.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의 것을 사고,  
 지역 사람이 되자." 



2.  그리고 이곳 둥지틀고 있는 분들도 꼭 올해엔 목요클럽에서 차한잔 하셔야 합니다.  

3.  함께 한 분께 남다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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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5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74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 위해,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나는 물었다. "이게 뭐지?" 완벽한 공허감이 몰려 왔다....내가 가르치고 있던 이론들은 지금 죽어 가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한 경제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단순한 인간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그 어떤 선입관으로부터도 나는 자유로워졌다....-무하마드 유누스 박사,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창시자.

 

1. 지난 참*송년모임에 둘째를 낳은 지 얼마되지 않는 아빠인 사***은  가사일과 주부,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에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경제학에 대해 분개를 한다. 091230 사람냄새 나지 않는 이론이란, 정갈한 것처럼 내비치는 이론은 이론이 아닌지 모른다. 그 생각이 번져 과학도 그러하고, 법학도 그러하고, 자본도 그러하단 느낌이 번진다. 학문이란 것이 어쩌다가 이렇게 사람을 빼먹거나 발라내게 된 것인지 의아하다. 학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양보해서 사람을 발라먹는 어떤 것이란 무엇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하는 것인가? 백분 양보해서 학學에 다시 사람을 붙이거나 아예 새로 시작하거나? 어느 편이 빠를까? 아마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란 생각을 해본다. 아니 사람도 이론도, 학문이라는 것도 다시 보듬고 같은 걸음을 해야한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능한 서걱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섞인다.
 

뱀발. 언제든지 너, 나는 손가락이 향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나 삶의 한 표적이 된다면, 그 원한이나 한이 서린다면, 사람과 행위를 분리하여 보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면 

2. 또 다른 편에서 생각을 해보면, 얻어야 할 것(목적을 가진 행위)과 힘을 가진 사람의 관계에서도 원하는 것을 위해 사람을 배제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우리는 어쩌면 다른 일, 다른 원하는 것에서 서먹함으로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의 진의를 의심할 것이다. 신뢰만 어긋나게 된 것이 아니라 삶도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감히 행위로 인해 그들의 삶을 발라내지 말아야한다. 약자든 강자든 사람이란 이유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활동에 운동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공약수에 대한 시선은 늘 넓고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활동이란 시간앞에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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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우리의 언어를 가져본 적이 있나요?

(관계된) 권력의 유용함  

권력이란 말이 피부를 잠입하면 소름이 끼치거나 답답함을 느끼나요? 권력이란 단어가 떠오르면 병리란 생각과 겹쳐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겠죠?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일까요? 그런 진보의 인식 가운데 서서히 들어서 있는 것은 역사의 흐름이나 일방통행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그 수동적인 인식, 만들어진 인식은 무탈한가? 안정적인가? 그 말에 다른 단어를 접붙이게 되면 전체적인 뉘앙스가 부정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미시파시즘이나 파시즘, 독재에 근사한 경험은 이러한 용어조차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집중된 무엇이기도 하고,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리잡은 것이겠죠. 위계로 형성된 힘, 응집으로 무수히 처리 처분해온 역사가 그다지 좋은 관념을 형성해온 것이 아닙니다.

1. 이런 진보의 평균적인 인식이 미칠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권력의 활용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권력 무용론이나 권력에 대한 본질적 혐오, 힘을 가진 것들에 대한 시기나 질투일 수 있겠습니다. 권력의 개념이 부족함으로 인한 권력을 넘기거나 만드는 일에 관심이 부족합니다. 권력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생각이나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없습니다. 생각이 그 울타리를 넘지 못합니다. 너가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쉽사리 용인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나와 연결시키는 능력이 서툽니다. 자신이나 모둠이 가진 것을 나누거나 쓸 줄 모릅니다. 힘을 연결시키는데 인색하거나 무능합니다. 자신이 미치는 한방울, 한점에 대해 미력하다고 여깁니다. 


1.1 독자적인 능력? 반대급부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자랍니다. 독립된 공간에 대한 사고를 키웁니다. 권력에 대한 부정적인 몸생각은 연결이나 갖게 되는 힘의 유용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은 시선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끊임없이 블로그의 공간이 나눔의 화살표가 있음에도 독립된 공간을 지향하는 것처럼 인지를 합니다.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부정적 사용례)

3. (긍정적 사용례)


4. 힘은 할 수 있음입니다. 나의 힘은 필연적으로 너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가능한 많은 힘이 만나고 울타리 안의 제한된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이 힘의 생성이고 분산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 힘을 위양하는 것이자. 울타리에 갖힌 [권력]에 대한 생각을 거둬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반대급부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폭력에 수렴하는 것으로만 언어구사 용어로 쓰지 마시고, 늘 일상 관계, 남녀노소,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수직적으로 힘이 일방통행하여 아이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손발을 꼭꼭 묶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수한 결재의 잔가지치기의 통제통로를 두어 정작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하는 것이 아닌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권력]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존레논의 노래 "Power to People"이 권력을 무시하자 권력을 없애자라는 이야기는 아니쟎습니까? 고립된 힘, 가진자가 많이 갖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될수록 풍부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서로 나눌수록 다양한 힘이 생기는 것을 원한 것이겠죠. 어쩌면 힘이라는 것을 모아야 하고, 이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눌수록 커지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힘(권력)에 대해 인정을 하고 검은 그림자를 벗게 되면, 힘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처지와 역할에 따라 힘을 넘겨주는 것이 새로운 힘을 증폭을 불러올 가능성,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게하는 훈련, 가능한 한 힘을 골고루 분산시킬 수 있는 능력. 힘을 연결시켜 새로운 것을 해볼 가능성이나 아이디어에 경계심이 사라집니다. 얼마든지 기성, 기존의 힘을 활용할 가능성을 고려합니다. 가령 자본의 힘을 차단하기 위해 그 힘이 생기는 지점을 주시하게 됩니다.

5. 이런 이야기는 푸코가 했으니, 니체가 했으니라고 철학적인 용어나 철학자를 들이밀 필요조차 없습니다. 시장에 인터넷에 누구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겠죠. 그러니 구차한 인용은 삼가해야겠지요. 얼마나 품고 새기느냐?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사고할 씨앗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겠죠. 좀더 새롭게 사고하고 생각하는데 거추장스런 고정관념이고 소통에 장애를 만드는 요소이니 보다 원활한 교류를 위해 정리가 되어야 할 우리의 용어라고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그건 나쁜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건 무력함이죠!


당신이 진보라고 생각하거나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용어나 용어구사법에 대해 좀더 명민하게, 그것이 미치는 용례까지, 그 용례로 인한 현실의 왜곡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용례가 있다면 이렇게, 이곳에 알려주셔도 좋겠습니다. 

뱀발.  

1. 힘을 지렛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많습니다.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 자본을 타넘기 위한 방법들도 많겠죠. 여러 사회단체를 활성화하는 방법들도 많겠죠. 여러 모임의 성원간에 교류하는 방법도 많겠죠. 혹시 당신이 배운 것이라고는 힘을 수도꼭지처럼 막고 틀고 하는 것은 아니었겠죠. 아니면 저기 금고에 보관하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니겠죠. 자본주의나 맑스주의나 [--]을 위한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편의대로, 그래서 민주주의를 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2. 그러고보니 [파워]란 말로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는데, 불매활동과 별 관계없이 남기고 있는 흔적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탤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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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네트워크의 두터운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면
    from 木筆 2010-01-05 10:43 
    우리가 네트워크의 두터운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통찰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변화시킬지 말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권력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 각자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1. 진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고민 지점은 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떻게 전복시킬지?에 생각이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맑스주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언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언어는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은 창조할 수 없다.      Rawrence Goodwyn

뱀발.  누에고치가 아니라 집에고치처럼 신년 며칠을 보냅니다. 절반은 수면, 절반은 꿈과 독서를 번갈아 드나들며 구매로 떠들썩하고 한참 교통체증을 낳은 코스**를 지나쳐 늦은 기차를 타고 내려옵니다. 차창가 낮은 평야와 산은 아담하고 답답함을 덜어내줍니다. 마저 읽은 책들 사이, 생각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이렇게 내려놓습니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라는 책을 가운데 놓고 시집과 가벼운 책들이 섞어 봅니다.  

얇디 얇은 앙상한 뼈만 남은 민주주의를 우리는 복원할 수 있을까요? 지난 년말의 어느 님의 책 한가운데도 이 말과 유사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결사학, 어쩌면 민주주의를 별반 해본 적이 없기에 또 다시 걸음마를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 기술 art란 것에도, 몸에 배인 언어란 것이 기껏해야 자본주의와 맑스 흉내내기 말투만 남은 것은 아닌지도 돌아봅니다. 입에 맴돌고 있는 단어도 다시 뱉어내어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쓰는 용어들이 얼마나 [살아있는? 민주주의]에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자본을 키우는데 씨앗이 되는 말인지? 얼마나 덧셈이 아니라 뺄셈을 향하는 언어로 버무려져있는 것인지?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씩 잇기로 하지요. 새해입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사람 많이 만나시고, 좋은 생각 많이 실천하시고, 어렵더라도 재미로 배부르시고, 어려운 이, 마음 서로서로 보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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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립언어](관계된) 권력의 유용함에 대해(ing)
    from 木筆 2010-01-04 12:00 
    (관계된) 권력의 유용함   권력이란 말이 피부를 잠입하면 소름이 끼치거나 답답함을 느끼나요? 권력이란 단어가 떠오르면 병리란 생각과 겹쳐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겠죠?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일까요? 그런 진보의 인식 가운데 서서히 들어서 있는 것은 역사의 흐름이나 일방통행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그 수동적인 인식, 만들어진 인식은 무탈한가? 안정적인가? 그 말에 다른 단
  2. 접습니다
    from 木筆 2010-01-09 08:51 
    1) 김종호씨의 거취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2)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식 입장 표명 이였습니다. 그리고 곁가지 문제는 3) '알라디너들 사이의 싸움' 이었습니다 - 드팀전/바람구두...외 제가 제일 관심있는 문제는 3)'알라디너 간 민주주의'입니다. 블로거들 사이의 문제- 블로거 인문의 문제, 관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2), 1)의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아  미루고 서재를 접습니다. 신밧드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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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8일 영국은 유럽연합 국가 중 최초로 탄소 배급제를 실시한다. 전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탄소카드를 발급하고 1인당 월 200포인트 이상 사용을 제한한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은 하루에 두시간, 샤워는 5분, 목욕은 주말에만 할 수 있다. 드라이기, 냉장고, 전자레인지는 선택사항이 되었다. 항공여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탄소 카드가 없으면 마을 버스도 탈 수 없다. 기상악화는 지독한 폭염이 지나자 혹독한 추위와 태풍이 몰려온다..  

------------------------ 잡감. 1 읽으면서 구유고의 독립과 내전을 다룬 발칸반도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가 겹친다. 전쟁이란 것이 불쑥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총부리를 겨누는 것처럼, 세상이란 것은 의도대로 다가서지 않는다. 기후도 양극화를 넘어서 폭염과 폭설, 가뭄과 산불, 그리고 기근을 잇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나 예측을 벗어난다. 

 위의 책은 설명대로 탄소배급제에 의한 상황을 가정하여 가족 성원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자발적 가난, 자발적 운동, 자발적 활동을 지나 집중적인 행위는 삶을 단일화시킨다. 전쟁이 삶을 생각조차 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처럼 그 삶의 결과 가지들은 없다. 자발적일 줄임, 윤리적인 소비, 윤리적인 생산에 대한 수많은 가정과 다른 관점의 섞임이 없다면 언제 그런 재앙이 서슴지 않고 뒤덮을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심리적-개인적-자발을 넘어서는 상상 이외의 것은 무엇일까? 

2. 그토록 잘 알고 있는 [동물농장]은 우리나라에 세계최초의 번역이 된다. 저자가 발표한 3년 뒤 1948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원주민은 맥락에 서툴다. 그리고 그 조지오웰이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유통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국 해외정보국이 반공정책의 일환으로 판권료까지 지불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라 한다.  현실은 자기 편리에 따라 그 등장인물들을 빗대어 완장을 찬 이들을 오웰의 삶과 무관하게 소비하고 윽박지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현실이 여전히 그대로 재생산되는 것이 교육계의 현실인 것은 아닐까? 카탈로니아 찬가,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그린 작품들이 읽혀지기나 하는 것일까? 

3.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면서, 그 전의 숱한 삶의 권역안을 다룬 책들이 불태워졌다 한다. 여전히 무지를 강요하는 가진자의 철학은 아무도 모르는 이들에게 귀에 깔대를 꽂아 지식을 주입한다. 도대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무슨 소리하는 것인지? 그렇게 잊혀지기를 반복하여 몰라야 정상적인 것이 된다. 삶 바깥이 아니라 삶 안이 어때야 하는지는 불태워져서 철저히 소각되었으므로... 

 

뱀발. 원고는 쓰지 않고 눈발스치는 차창가를 옆에두고 딴 짓이다. 오늘은 참* 송년모임. 내일 휴가까지 내고 일찍 나선다. 모임의 여운이 짙다. 밀린 만남들. 기쁜 마음을 삼키다보니 벌써 취중인가보다. 뭔가 고리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목요일클럽, 신성모임, 집안모임으로 이어져 많이 피곤하였다. 지난 한해 말미는 그렇게 마무리짓다.

 

  

맛, 미각에 대한 신간이 몇권 있었는데 밀린 책으로 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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