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들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김수영 ‘봄밤’

 


 

 

'15  사업계획

 

“갈림길을 만나 어쩔 줄 몰라 돌아서지 않겠습니다.

길을 아는 누군가를 찾지 않겠습니다.

아카데미가 가는 길이 첫 길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막다른 길에 막혀 주저앉지 않겠습니다.

아직 진짜 막다른 길을 만나지 못했고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상상후원회 안내문에서)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가능성보다는 삶을 연명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이러한 전락에서 삶의 가능성을 복원하는 힘을 발견하는 것이 출발에 놓여야 한다. 소외된 삶을 강요하는 중심의 해체와 전복의 가능성이야말로 오늘날 인문주의의 형식과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 ...

오늘날의 인문주의는 교양과 우아함을 넘어서는 인간과 그 삶에서의 사회·역사·정치적인 것의 근원과 현상 그리고 그 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상상 창간호 여는 글에서)

 

❚ 슬로건 : 삶과 사람의 무늬로

 

삶의 해체, 자율적인 활동과 참여를 통해서도 제도가 관성처럼 유지된 기존 질서의 구조는 더욱 더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기성의 제도와 시스템은 광장의 절규와 약자의 삶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냉랭함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소외시켜 나가고 있으며 똑같이 제도와 시스템의 이름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시스템과 제도를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엄단과 차단으로 맞서면서도, 저항을 논의조차 못하도록 탐미와 자기주도 자기계발이란 이름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덧씌우고 있습니다. 개인은 무력해지면서도 구조를 탓하지 않습니다. 광장은 잊혀지고 밀실은 더욱 유혹합니다. 인문은 새로움으로 가장하는 어떠한 유행들처럼 소비되어 증발하고 맙니다. 이제는 인문과 삶을, 그리고 기술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사람이란 프리즘으로 새롭게 거듭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사람의 아픔으로, 한 생명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의 무늬로 모든 것을 다시 토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사람도 조직도 삶도 없는 일상이 회색이나 검정으로 또 다른 일상으로 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마저 터부나 금기로 되는 세상이 머지않은지도 모릅니다.

 

삶은 밀려나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질 수밖에 없는 나날은 삶을 고역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삶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곁의 삶이 나의 삶의 추락과 맞물려 있음을 아파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삶에 밀려가지 않도록 좋은 삶들과 아픈 삶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좋은 삶, 나은 삶들의 흔적을 모으고 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고민과 흔적들이 가득담긴 그릇에서 우리는 다시 상상해야 합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몸과 마음의 길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단순한 일상이지만 그 농도와 온도, 밀도는 서로 다른 것임을 서로 느껴가야 합니다. 당신에게 세상의 답이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 이어진 나의 마음이 더 따듯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삶, 사람의 무늬로, 사랑의 무늬로 더 다가서야 합니다. 사랑은 늘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하루를 바꾸어내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아카데미는 당신을 늘 기다립니다.

 

❚ 목표

 

인문을 되묻고, 삶을 나누며 人紋의 결을 만들어갑니다.

 

 

◆ 지역 - 다름을 새롭게 모으고 나누자 (생각지렛대 밈, 상상, 뉴스레터)

 

평균적인 삶, 평균적인 가족, 평균적인 주거는 이미 없습니다. 마음에 자리 잡은 평균이라는 균형추는 어느 사이 주가처럼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것도 어느 새 몰락하는 삶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식은 머물러 있지도 고여 있지도 않습니다. 몰상식이 하루하루 끝을 모르도록 변하는 것처럼 상식 또한 그 안부를 되물어야 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바깥의 안부를 묻는 법을 잊는 순간, 그토록 집착하던 내 안의, 우리의 안부는 여지없이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삶과 안부를 묻고 탐색하는 일이 곧 나와 내 가족과 우리의 삶을 다시 짚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그러진 주변과 삶의 공간, 추락하는 주변부를 살피고 아파하는 일은 상식을 회복하는 일이자 삶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좋은 삶은 아니더라도 평균이하의 삶을 강요하고 억누르는 체제에 맞서 아픈 삶들이 회자되도록 끌어내야 합니다. 보이지 않고, 목이 없는 자들의 외침이 들리도록 사문화된 구조와 틀에 균열 내는 작업이 시작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삶 - 낮, 모임과 만남을 통해 인문의 안부를 묻다.

 

 

달관세대, 자발적, 재능기부, 열정페이란 말이 이렇게 강의 하류에 내려온 연유는 무엇입니까? 사회가 받아 안지 못하는 것을 애써 무책임하게 변명하기 위한 말은 아닙니까? 달관이라기보다는 포기이며, 자발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 이것이라도 한다는 것은 아닙니까? 신조어의 곁에는 늘 사회적 모순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힘의 자장을 반영하면서 절망을 절망이라 말하지 않고,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순간 사회적 모순들은 삶에 마치 없는 것처럼 공기처럼 흘러 다닙니다. 00사회라는 수사는 결코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증상을 말하거나 외칠 뿐, 삶을 묶고 복원시킬 단초도 마련하지 못합니다. 힐링이 그러하듯 일시적인 갈증만 해결할 뿐 더욱 더 타들어가는 삶은 나아질 수 없습니다. 삶으로 되물어야 합니다. 곁의 삶, 나의 삶으로 다시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 아카데미 – 저녁과 밤, 인문을 배우고 나눈다. 대안을 묻다.

 

껄끄러운 말, 부담되는 말, 까칠한 말들이 가슴을 후벼 파더라도 논쟁을 보듬고 아끼고 서로 다른 변화를 지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앎이 머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따듯한 가슴에 닿고 또 다른 마음과 몸으로 번져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픔은 애정으로 논쟁은 아주 작은 일상에서도 대안을 낳을 수 있도록, 일상을 흔들고 뒤뚱거리게 하지만 서서히 서로의 삶의 근력으로 붙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교양과 우아함은 물론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끈질기게 기득권과 허세, 삶을 무너뜨리는 사소함에 딴지를 걸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딴지들이 구조와 틀에 달라붙어 다시 흔들도록 강도를 높여나가겠습니다. 좋은 삶은 결코 혼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족애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와 사회 속의 서사로서 나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도록 사회에 말을 걸겠습니다.

 

볕뉘. 이제서야 사무실에 오롯이 앉는다. 달포 아카데미 지난 평가와 사업계획을 함께 손을 보았다. 귀동냥이나 지난 생각들을 넣고 다시 듣곤했지만 이해관계자들과 대면하고 마음나눌 시간과 여건이 그러하지 않았다.  추상성을 극복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가슴에 와닿는 기획과 일일 것이다. 먼 공간이지만 마음을 번지게 하고 채우고 싶다. 지나친 욕심일까? 지나친 추상일까? 진심이 부족한 것일까? 마음의 댓글들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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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봄밤이 새겨지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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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3-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뻐라~~~~~
첫번째 그림은 고요와 편안함,
두번째 그림은 발랄, 상쾌합니다^^

여울 2015-03-18 11:34   좋아요 0 | URL
넘 늦었네요.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요^^

소슬바람 2015-03-1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점점 작품이 훌륭해지십니다 ^^

여울 2015-03-18 11:34   좋아요 0 | URL
실물은 별로에요. 사진이라 잘 나온 듯^^
 

살다. 삶, 좋은 삶, 좋은 삶의 여집합, 좋은 삶들의 여집합 ᆞ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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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멈퍼드 글을 읽다보면 그에겐 지독한 휴머니스트의 향기가 난다. 예술과 기술의 사이 그 심연의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일까? 어렵게만 느껴지는 기술, 그리고 도무지 길이와 방향도 알 수 없는 예술에 다시 말을 건넨다. 그리스의 테크네가 예술과 기술을 분리시키지 않았듯이 그 연원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이 신의 위치에 어떻게 군림하게 되었는지, 예술이 어떻게 미를 넘어서 탐미에 빠지게 되었는지 살핀다. 학문의 길이 어떻게 갈라서게 된 것일까? 서로 모르쇠로만 일관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안타깝게도 예술도 과학도, 기술도 사람의 온도, 삶의 온도로 되짚어보지 않은 사소한 분리심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낳은, 삶이 낳은 기술과 예술이 사람을 짓누르고, 삶을 억압하며, 개인의 극단적인 병리를 작품 속에 가두어 놓고 만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강연록을 정리해 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입문서로, 전체성을 강조하는 그의 관점을 보기에 쉬우면서도 통찰력을 갖게 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기도 하다. 단 중요한 것은 지적인 관심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사귈 수 있다는 거만한 독서자의 입장이 필요하다. 예술이든 기술이든 당신과 당신의 삶, 우리의 삶으로 번역되거나 우리의 온도로 재해석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갖는 마음자세가 필요하긴 하다.

 

과학과 예술, 지식과 몽상, 지적활동과 정서적 활동을 분리시키는 순수한 논리적 근거는 없다. 이는 편의의 문제에 불과하다. 모든 활동은 형식은 달라도 모두 혼동 상태에 있는 자신을 깨달은 인간이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휴머니스트의 관점이라고 전한다. 예술과 기술에 머무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철학이든 문학이든 그가 말걸고 있는 것인 사람과 삶의 시선으로 일상에서 종합인이 될 것을 당신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가 말하는 변화는 다름아닌 유기체와 인격 전체를 향한 관심의 변화입니다. 즉 가치의 전환입니다.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틀입니다. 새로운 생활습관입니다....우리가 하나의 철학을 수립하기 전까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철학이란 우리가 자연의 해석자이자 변형자로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의 창조자로서, 기계를 밀어내고 인간을 우주의 바로 중심으로 복귀시켜 이 사회를 재조정할 수 있는 철학입니다. 인간은 지금 여기에 있는 피조물일뿐 아니라 무한과 영혼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193-198

 

봄이 내리는 어느 날, 당신 손안에, 마음 안에 이 책의 한 구절이 들어온다면, 그래도 후회할 수 없는 한 나절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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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하라, 포기하라, 고립한다, 시인한다ᆞᆞᆞ채운다는 것, 된다는 것, 파쇄기에 신음처럼 걸리는 마지막 싯구, 울부 짓음ᆞᆞᆞ구호와 외침은 발견되어야 하는 것인가? 자막에 걸린 싯구를 씹는다. 몇번은 발걸음이 꽃이 피거나 석양이 질 무렵 빈 구멍에 채워질 것이다. 시인의 함성과 멀리걸린 시선으로 ᆞᆞᆞ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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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주의하라
    from 木筆 2016-03-30 10:48 
    사회주의하라 지금은 없는허름하고꼭 불편한산호여인숙의전시회가 흐릿해져간다 덕수궁미술관보다더 도드라지는빈 기억의 구멍으로스며 올라오는 詩展.‘시인한다’ ‘고립한다’를상기한다 ‘한다’만 넘쳐도동네는 이리 초라하거나 한적하지 않을텐데‘한다’의 그림자에 몸을 숨겨 사는비겁한 관음의 시대. ‘냉소하라’에 ‘하라’를 잘라낸다파쇄한 하라한다하자의 대지에구근을 심는다 영혼에서떨어져나가이젠 박제화된 삶씨를청춘의 팔목에 새긴다심장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