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늘 길을 묻고는 했지만, 마지못해 그렇게 했을 뿐이다. 물어물어 길을 가는 것, 언제나 내 취향에 거슬렸으니! 그래서 나 차라리 직접 그 길에게 물어 가며 길을 가려 시도해 보았던 것이다/이제는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의 길은 어디있지? 나는 내게 ‘길‘을 묻는 ㅈㅏ들에게 이렇게 대꾸해 왔다. 그런 길은 존재하지도 않으니!/예술가는 개인성의 지평에서 개별적 역량의 최고치를 독립적로 수행하는 ㅈㅏ로 간주될 것이다. 230


2.

모럴이란 선과 악에 대한 관습적 해석들에 대항하여 새로운 감각적 분배를 만들어 내는 정치적 활동을 의미한다. 134

문학의 정치란 작가의 현실참여나 참여문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문학은 문학적 실험으로서 감각적 분배 방식을 파열시켰고, 또 그 파열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습속으로서의 윤리를 넘어선 문학의 모럴을 실현한다. 그러나 이 모럴이 습속의 윤리로 환원되지 않기 위해서 문학은 다만 문학으로만 남아 있어야 ㅎㅏ고, 문학이 아닌 것, 즉 일상적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문학적 실험은 문학이 문학 아닌 것이 되기 직전에, 즉 문학의 고유성이 흐려지기 직전에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135

랑시에르는 문학과 예술의 역량에 대한 강력한 긍정 속에서 문학의 ‘삶에 저항하기(미학적 자율성)와 문학의 삶-되기(미학적 타율성)가 모두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가 보기에 숭고의 미학은 문학의 삶-되기라는 예술적 벡터를 무시한 것이다. 문학은 고발과 저항의 역량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도래할 삶의 물질적 틀들과 감각적 형태의 발명”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137

랑시에르는 투표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일 것을, 정치적 어젠다로 확정된 것 이상으로 불일치를 수행하는 정치적 활동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139

시인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기성‘의 스타일에 대한 금지이다. 이런 제한 조건을 엄수할 때만 시인은 익숙함과 구별되는 자유로움으로 나아가게 된다. 142

비밀결사 입문자 – 청년 말라르메의 편지는, 노동의 낮과 사유의 밤을 계속해서 유지시켜야 한다는 급박한 사태에 빠져 있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썼던 편지들을 모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밤 시간은 침입의 시간이다. 145

시인은 언어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는 언어를 탐구하는 자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경제와 분리된 공동체의 상징적 경제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기성 경제에 침입함으로써 새로운 상징 경제를 실혀ㄴ하려는 신화학자이다/세계의 사물을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감각적인 기화를 일으킨다.146

말라르케는 “가장 단단한 삶에 대한 열망과, 어떤 종류의 반항도 따를 수 없을 만큼 극렬한 비순응의 투지”를 보여주는 시인이다. 147

새로운 미학적 활동이란 침입의 모럴에 입각한 것이다/말라르메의 순수시와 프랑스 노동자들의 글쓰기 속에서 동일하게 미학적 혁명의 기획, 혹은 문학의 정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149/노동자 ㅅㅣ인이 노동자 계급의 방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른 삶에 침입하는 ㅅㅣ간을 자기 삶 속에 실제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는 말라르메를 읽고, 말라르메가 읽었던 보들레르를 읽는 시간을 삶 속에 기입해야 한다./작품들에 ㄷㅐ한 몰입은 자본주의에 적합한 ‘유순한 신체‘로의 훈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150

방언성에서 ㅅㅣ작한 문학은 다시 방언성을 넘어서 어떤 공동성의 삶을 창안해야 ㅎㅏ고 또다시 이 공동성의 삶 속에서 표준어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방언성을 발견하면서 또 다른 공동성의 삶의 형태를 창안하는 방식으로 미학적 두 극 사이의 진자운동을 지속해야만 한다. 152

노트 위에 쓰여진 시에는 테크닉과 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잉여적인 것이 존재한다./시가 쓰이는 순간이 세계의 인과뿐만 아니라 필기구를 쥔 시인의 모든 논리적 감각적 인과조차도 파열시키며 솟아오르는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154

모럴을 갖는다는 것은 오히려 결과로부터, 승패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성공적 결과만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미학적 아방가르드 시인은 계속되는 실패와 곤경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참여적 실험과 실험적 참여를 수행하며 경계를 넘어서고 그 탈경계의 활동 속에서 감각적 재분배를 가져오려는 시적 모럴을 참을성 있게 견지한다. 157

지금 삶의 구성은 확신보다는 훨씬 더 사실들의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ㅎㅏㄴ 번도, 단 한 번도 확신의 토대가 되어 보지 못한 사실들에 의해,/문학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 즉 전단지, 팸플릿, 신문기사와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처럼 기민한 ㅇㅓㄴ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발터벤야민, 주유소에서 158

문학의 토포스는 세계의 다양한 장소들 중 특수한 방식으로 점유된 하나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것은 상업적인 화폐의 공간과 우파와 좌파 모두의 도덕주의적 정치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 하나의 ㅅㅐ로운 장소이다. 163

미학적 벨레로폰주의 - 악ㅁㅏ적 우편 ‘제도‘는 새로운 우편 미학과 우편 정치학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악마적 우편물을 통해 우리는 제도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공간 사실들의 권역에서 우편배달부의 죽음과 수취인의 실종을 알리며 새로이 열리는 그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171

우리 ㅅㅣ대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 채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 더미 사이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다/어떤 사건을 거대한 무관심으로부터 환기시키고 그 사건의 공간을 채우는 정서들을 ㅇㅕ러 겹으로 만들어 그 겹겹이 쌓인 공간들, 정서의 미로들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오래 놀고 헤매고 사유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175

염장성이 강한 문학적인 반복 순환(등단..계간지 발표..시집 출간..계간지 발표..시집 출간으로 되풀이되는 문학적 선분들로 구획된)의 토포스에 거주하는 ㅎㅏㄴ ‘대체로‘ 문학의 천사는 추락하거나 타락하지 않으며 우편배달부는 자신을 살해할지도 모르는 위험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안전해진다. 178

정체가 모호한 공간, 문학적이라고 한 번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흘러들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일, 그럼으로써 문학의 공간을 바꾸고 또 문학에 의해 점유된 한 공간의 사회적-감각적 공간성을 또 다른 사회적-감각적 삶의 공간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의 아토포스이다. /그 일에 매혹될 때 우리는 그들을 공간의 연인이라 부른다. 180

공동체와 삶 전체에 근본적인 파열을 가져오는 숭고의 예술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획들, 경계들을 파열시키면서 동시에 그 파열을 그저 동공으로 남겨 두지 않고 생활의 지리멸렬한 감각을 만들어 내며 삶의 다른 생활양식을 발명하는 예술 활동 역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숭고한 ㅇㅖ술은 공동체의 파열에, 관계적 ㅇㅖ술은 공동체의 유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199

리오타르는 조화와 총체성을 추구하는 칸트 미학의 이상을 비판하고 20세기 역사를 얼룩지게 한 파시즘적 재앙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207


3.

개인들의 죽음과 함께 일어날 와해를 극복하기 위한 곳인 공동체가 파괴됨으로써 삶의 의미가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고 무의미함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공동체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그것의 붕괴로 인한 삶과 죽음의 무의미화를 언급한다.-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 212

그리스인들은 무엇인가 지속적이고 기억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다면 그것이 작업이든 행위든 언어든 전부 ‘작품 erga’이라고 불렀다/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된 것이 독특한 주관성의 영역이 아니라 그 반대의 영역인 폴리스였다는 것이다/행위하는 ㅈㅏ들은 시인의 도움없이도 세상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좋은 행위나 나쁜 행위의 영원한 기념비를 세울 수 있으며 현재와 미래에 찬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216,217

선ㄹㅑㅇ한 사람 고약한 ㅅㅏ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이 독배를 들어 죽어가는 곳을 국가라 부른다. 선량한 사람 고약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가 ㅈㅏ기 자신을 상실하게 되는 곳을 ㄴㅏ는 국가라고 부른다. 그리고 ㅁㅗ두가 ㅅㅓ서히 자신의 목숨을 끊어 가면서 “생”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국가라는 것이 무너지는 곳, 거기에서 잉여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시작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22
하이데거의 죽음 –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현존재의 “가장 고유하고 극단적이며, 다른 가능성들에 의해서 능가될 수 없고, 가장 확실한 가능성”으로 먼저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 앞에서 자기의 본래적 ㅈㅏ아로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한다. 죽음으로의 선구라고 불리는 이 실존적 결단은 개개인에게 고유한 개별성을 보장해 준다. 224

와쓰지 데쓰로 – 인간은 사이에 있는 존재로서 아이다가라(관계성) 바깥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인간은 무엇보다고 풍토적이고 공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돌아가야 할 절대적 전체성은 주체의 공간성에 바탕한 전체성이다. /죽음은 연대와 우애에 대한 상상의 표현으로 변용되었으며 고유한 죽음을 향한 결단성은 전체성과의 동일화를 향한 결단성으로 번역된다. 226,228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아무런 가상에 의존함 없이 죽음과 관계를 맺고 생성의 매순간에 직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얼음과 같은 냉정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깨침의 얼음이란 것으로 그는 우리까지 추위에 떨게 만든다”/그는 ㅈㅏ신이 겪고 있는 “겨울과 그 겨울의 한파를 숨기지 않는” 것이 “내 영혼의 지혜로운 방자함이자 호의”라고 대응한다. 229

중성적이고 ㅂㅣ인칭적인 죽음 - 낭시가 말하는 단독성은 “개인의 본성도, 개인성의 구조도 결코 갖지 않는” 것으로서 일종의 탈자태extase와 연관된다. 단독성이란 개별자가 홀로 자족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타자와 외부를 향해 자기를 벗어나는 탈자태다./개별성은 탈자태적 단독성을 무시하면서, 완전히 닫힌 채 세계와 ㅇㅏ무 관계가 없는 “분리된-유일한” 절대적인 주체를 상정하며, 이로써 공동체에 ㄷㅐ한 물음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다/어떤 외부와도 관계 맺지 않는 내밀한 개인, 그리고 그 내밀성의 표현으로서의 ㅇㅖ술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러한 ㅅㅏ유는 나의 죽음이 나 자신과만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를 회의함으로써만 ㅅㅣ작될 수 있다./블랑쇼는 비인칭적이고 중성적인 죽음에 대해 선명한 관점들을 제시함으로써 하이데거의 죽음론에 전면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ㅊㅏ이에도 불구하고 낭시의 ‘단독적인 죽음‘과 블랑쇼의 ‘비인칭적이고 중성적인 죽음‘은 유사한 함의를 갖는다/낭시는 ㅌㅏ자의 죽음과 접촉하는 순간 내가 변화한다는 ㅅㅏ실을 강조한다. 타자의 죽음이란 그 ㅇㅓ떤 것이든지 그것을 목격하는 나를 소멸시키며 새로운 ‘나들‘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기에 ㅅㅏ실상 ㄴㅏ의 죽음을 의미한다/타인의 죽음은 나의 벼ㄴ모를 가져오므로 타인의 죽음이야말로 곧 나의 죽음이다./죽음의 사건을 토ㅇ해 나와 타자가 만나는 순간, 나는 그 누구가 되어 죽고 ㅌㅏ자 역시 그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ㅂㅕㄴ모하기 때문에 명료한 방식으로는 이름을 부ㅌ이거나 밝힐 수 없는 하나의 공간이 열린다는 의미일 뿐이다. 231, 232,235

예술은 “인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바깥으로 그리고 가능성의 모든 형태 바깥으로 던져지는 그곳, 인간의 내밀성도 한계도 없는 바깥에의 소속을 긍정하는 탈자태적인 것이다. 235

블랑쇼는 책의 소유와 작품의 소유를 구별한다. 작가는 책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작품을 소유할 수 없다. 작품은 독서라는 사건을 통해 작가의 내밀성, 또는 이미 결정된 본질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독서는 작품을 작품 자체로, 그 익명의 현전으로, 있는 그대로의 격렬한 비인칭의 긍정으로 돌려주기 위해 작가를 무효화시키는 놀이이다./비인칭의 삶을 창조하라/그것은 어떤 작품, 어떤 사물, 어떤 타자와 접촉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분유되는 소통의 삶이다. 236 주권성은 ㅈㅏ기 아닌 비인칭적 ‘그 누구‘로 변모함으로써 내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능력, 자신을 초과하며 존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237 우리는 항상 우리 ㅈㅏ신을 ㄴㅓㅁ어서는 어떤 것과 마주하며 그것을 견뎌내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우ㅣ해”그 너머로 어떤 것을 겨냥하지도 않”아야, 즉 초월적 세계나 가상적 구제와 같은 것을 상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넘어섬이 바로 극복이다. 238

아름ㄷㅏ움이란 것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의지를 다 기울여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곳에 있다. 하나의 형상이 단지 하나의 형상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내가 ㅅㅏ랑하고 몰락하고자 하는 그런 곳 말이다/매 순간 수행되는 나의 기꺼운 죽음은 인간의 위대함을 ‘ㅎㅏ나의 과정‘이자 ‘몰락‘으로 보는 관점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ㄸㅐ문이다. 과정이자 몰락인 활동만이 단독성을 형성할 수 있다/그가 말하는 과정은 자기보존의 포기이며 ㅈㅏ아의 몰락, 탈자태적 활동이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만 ㅅㅐ로운 공동성의 운동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나는 ㅅㅏ랑하노라. 오ㅐ 몰락해야 ㅎㅏ며 제물이 되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먼저 별들 뒤편에서 찾는 ㄷㅐ신 언젠가 이 대지가 위버멘쉬의 것이 되도록 이 ㄷㅐ지에 헌신하는 자를 241, 242,243

언어를 수단처럼 다루어서는 결코 안 되며, 언어를 ㅊㅔ험하고 언어에 시달려야만 해요. 언어는 영원한 애인이죠/예술은 시계처럼 가끔 앞서가는 거울/예술가가 듣는 미래의 소리는 “그 자체로 욕망,기계,언표인 새로운 배치의 소문, 낡은 배치 속으로 침투하거나 그것과 절연하는 새로운 배치의 소문으로서 집합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253,257,258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아요. 오직 끊임없이 인내하며 헌신하는 모험만이 유효할 뿐이죠. 진리에 도달하는 특별 처방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굴복이고 불신인 동시에 오류의 시작이에요. 우리는 모든 것을 인내하며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수용해야 해요. 264

예술이 삶의 양식으로 되어 ㄱㅏ는 예술의 타율적 운동 속에서 다시 기지의 삶을 넘어서는 예술적인 어떤 것으로 솟아오르기, 이렇게 이해된 예술의 두 극인 타율성과 자율성의 이중운동은 소수적 정치학의 두 운동과 유사하다. 269

앞서가는 시계로서의 예술은 시대착오를 일으키는 정치와 실천의 거울이다/스스로를 반시대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가장 격렬한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평등한 소통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은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먹는 입의 흔적을 지우려고 ㅎㅏ기보다는 인간이 먹는 입으로 말하기도 할 뿐 아니라 말하는 입으로 먹기도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먹는 입들에 대해 말하기, 식탁에 초대받지 않은 자들에 대해 말하기, 식탁을 차렸지만 정작 식탁에 앉지 못하는 자들의 식사에 ㄷㅐ해 다시 말하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편주의적 소통이며 정치이다. 302 타자와 나의 소통은 고정된 정체성들 사이의 소통이라기보다는 만남을 ㄱㅖ기로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탈주함으로써 각자가 가닿을 수 없는 자아와 공동체들을 발명하는 사건이다. 305


볕뉘

0. 시집으로 시작해(사전 2003) 우리는 매일매일(16쇄본, 어떻게 이렇게 많이 판매되었을까?싶다 2007)을 읽다가 난해하여, 읽다가 중동난 문학의 아토포스(2014)를 다시 읽었다. 해설이 없는 훔쳐가는 노래(2012)는 오히려 쉽다.

1. 알랭바디우는 존재의 사고를 서양 중산층 중심사고에서 세계안 존재로 넓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디우의 실험적 사유를 궁금해하는 저자는 랑시에르를 바탕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재사유, 윤리와 모럴의 차이, 공동체, 소통의 재사유를 통해 아방가르드 색채를 풍기면서 문학과 정치를 붙잡아둔다. 그 와중에 니체, 아렌트, 하이데거, 낭시, 블랑쇼, 카프카를 불러낸다. 사상가와 철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복기를 해볼 수 있는 편이기에, 그리 많은 인물의 출현은 아니다. 저자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는 듯싶다.

2. 서울중심의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을 이런 관점에서 언급을 한다. 하지만 무척 낯설다. 인내심과 삶의 실천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 더욱 길고, 삶의 길을 감내하면서 만들어야 하는 것들일 것이다. 더 작은 곳, 낮은 곳, 넓은 주제로 녹아내리거나 스며들어야 한다. 여러 시인들이 자신의 시언어를 내려놓고 다른 시어로 사유하거나, 이동들을 통해 방언의 망가짐을 통해 새롭게 사유하는 방법들은 충분히 공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발명은 이렇게 몸의 겹침 속에서 겨우 싹이 돋는 것인지도 모른다.

3. 문학과 시와 예술이 이런 사유의 실험을 바탕으로 좀더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겠다. 전위적인 시도 역시 묻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인의 거침없는 죽음과 시간에 대한 사유, 유리조각의 별의 이미지가 뜻하는 바는 이 해설서로 조금 더 이해는 간다. 비단 문학과 예술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과학기술이든 사회학이든....삶의 문제이자 새로운 삶의 결에 대한 문제이므로 반지성주의를 너머, 좀더 핵심을 싶게 공유할 수 있도록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부하며 서로 깨뜨려나갔으면 좋겠다. 길은 저기에 있는 것도 저 사람이 간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우르르 몰려간다고 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안밖으로 사유의 깊이와 날카로운 비수의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길도 아니고 새로운 삶들도 아니다.

4. 아직 신형철의 발문은 읽지 않았다. 나머지 시의 집을 다 보고, 그 시어들과 생각의 응어리를 추려본 뒤 보려한다. 주례사인지 비평인지, 문학동네의 나름의 처신인지 헤아려보려 한다. 다행이다. 아무런 사적인 연이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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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리굴젓을 집어, 김이 모락거리는 공기밥에 넣고 꼼꼼하게 비빈다. 윤기나는 계란말이 반을 잘라 그 위에 보기 좋게 으깬다. 그리고 수저에 안다미로 채워 한 입 크게 넣는다.

2. 혓바닥 칫솔질. 맹물로 입을 행구다. 참다래를 알맞게 잘라 입안에 오물오물거려 입안에 가득 퍼지게 만든다. 과즙이 흥건해지면 다시 꼭꼭 씹는다. 검은씨가 터지며 나오는 신맛에 입안이 새그러워지며 눈물이 찔끔 감돈다.

3. 찻잔에 피운 매화에 물멍이 들었다. 꽃술은 힘을 잃어가며, 꽃잎은 색이 바래간다. 청매화는 꽃몽오리가 부풀어 오른다. 매화초옥 그림을 보내 온 벗을 통해, 그래도 헛짓이 아니구나하고 안심한다.

4. 출근길 장바구니를 챙기다. 며칠 빨리 피는 재미에 끌려, 미리 봐둔 조팝나무 새순이 마음에 걸려 흔들거렸다. 한 정거장 이전에 하차 벨을 누르고 내렸다. 에코백 안에 장바구니 자크를 열었다. 걸음은 앞선다. 잎이 난 것, 나지 않은 것, 가지가 풍성한 것을 나누어 담았다. 뭐하시냐고 검문을 받을 것 같은 눈치다. 그리고 막 가지치기를 해 둔 벚꽃 잔가지 몇 개, 버드나무 순 몇 개, 개나리 복잡한 놈 몇 개를 덤으로 챙겼다.

5. 손님이 와서 이른 저녁 겸 술 한잔. 서로 헤어지고 에둘러 돌아돌아 작은 책방에서 두근거리는 책들을 놓고, 홍차 한 잔에 ‘한 책‘하고 싶었다. 낮에 모신 책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아불싸. 헤어진 손님들과 이슥한 다리 한 귀퉁이에서 조우했다. 한 잔 콜. 그래. 마늘 듬뿍, 발라낸 통닭과 야채을 조물조물 섞고, 갖은 양념에 소주 한 잔 콜. 그렇게 거사가 무너져내렸다.

6. ‘ㄷㅏ르니 틀리다‘ 정신에 충만한 이들이 태극기 집회를 다녀왔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노망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다. 챙피하다. 그 놈의 ‘다르니틀리다‘ 정신은 빨갱이에서 종북 종북에서 또 무엇을 찾아다닐까. 그 끈질긴 생명력. ‘다르니 다르다‘로 가보지도 못하는 불퇴진의 정신. 사회적 유아. 다름을 경험해보려고 조차 않는 수구. 그렇게 누리고도 뭘 더 누리겠다고

7. ‘이재명‘을 다시 탐구하는 손님이 6.을 이야기한다. 강남에 사는 그는 자식들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고, 토지보유세로 재원을 만들어 기본소득을 취하는 정책이 실현가능성 높은 신뉴딜정책이라고 한다. 한번은 크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자식들의 삶이 안쓰러워 못보겠다고 한다.

8. 보들레르의 삶을 읽었다. 문학의 아토포스를 다 읽어간다. 정유라의 이인화교수의 답안지 가운데 하나로 적힌 이포토스?를 정답이라고 동그라미 친 그 단어. 토포스는 장소, a는 결여나 없는 이라고 설명하는 jtbc 부장 아나운서. 그를 보고 부장님은 도대체 모르는 게 뭡니까라고 농을 건네는 둥근 안경을 쓴 기자. 비장소, 비시간, 비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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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유유출판사 저작 가운데 우연히 눈길에 들어온 책이다. 단단한 과학공부: 셋째 장 “인간” 편을 읽었다. 스트레스와 인간에 대해 서술해놓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수긍가는 것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호르몬, 혈액, 뇌, 근육, 당 등등이 자연스럽게 통합되면서 서로 살아있는 앎이 된다. 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평이함의 놀라움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통찰로 이끄는 재주가 신통방통하시다.

1. 지식은 많지만 통찰이 부족한 시대이다. 알아도 아는 것이 없는 시대이다. 앎은 연결되지 않는다. 앎은 다른 앎들을 끌어안지 못한다. 김명남 과학전문 번역가가 서두에 이야기하듯 쉬운 앎은 없다. 하지만 처음이 수월하다면 어려운 것보다 천배 백배 낫다. 그것을 바탕으로 되돌아보면서 가면 한층 수월하고, 앎에 응집력이 붙을 것이다. 다른 앎에 가지를 뻗으면서...

2.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어깨에 지고, 입에 달고, 마음속에 담고 살아간다. 고혈압, 대사 증후근 등은 모두 스트레스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뇌는 여러가지 호르몬을 방출시키는데, 그중 하나에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통증을 잊게 하고 기억력을 높이기도 한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는 반대 효과를 낳는다. 수면은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줄어야 할 호르몬은 줄지 않고 많아야 할 호르몬은 부족해진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큰 부담이 된다. 어쨌든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인간 편, 소목차 요약내용들

3. 여러 일들 사이, 추위를 핑계로 움직임이 부족했다보다. 짬을 내 걷다보니, 봄꽃도 그리고 싶은 것도, 읽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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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계급을 고정하는 도구다/무엇이든 상관없는데 사람이 속한 공동체의 인간관계를 더 깊게 하고, 고정시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미디어가 인터넷이다/그 통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로지 하나. 구글이 예측할 수 없는 말을 검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것이 가능할가? 이 책의 답은 단순한다. ‘장소‘를 바꿔라. 그 뿐이다. 7

연상의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 연상하는 환경을 바꾸는 편이 빠르다/‘자기‘를 바꾸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환경에 저항할 수 없다. 환경을 ㄱㅐ조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환경을 ‘바꾸는‘수밖에 없다. 8

‘약한 유대관계‘는 사회의 다이나미즘(활력)을 사유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최첨단 네트워크 이론도 자주 참조하는 것이다/현재의 당신이 깊이를 추구한다면 강한 유대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신은 환경에 매몰되고 만다. 당신은 주어진 입력을 단지 출력할 뿐인 기계가 되고 만다. 13

실ㅈㅔ로는 신체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검색어가 바뀐다. 욕망의 상태에 따라 검색어가 바뀌고, 보이는 ㅅㅔ계가 바뀐다. 달리 말해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도 적절한 욕망이 없다면 새로운 것을 알길이 없다./인터넷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더 깊이 인터넷에 빠지기 위해 현실을 ㅂㅏ꾸는 여행 30, 31

인ㅌㅓ넷에는 누군가가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만 있다. 표상 불가능한 것은 거기에 없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69

정보를 향한 욕망은 신체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신체를 ‘구속‘하는 것이 제일 좋다/신체를 일정시간 동안 비일상 속에 ‘구속‘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욕망이 싹트는 것을 천천히 기다리는 것. 여행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정보를 만날 필요는 없다. 만나야 할 대상은 새로운 욕망이니까/ 정보는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지만 시간을 복제할 수 없다. 85,86

나는 한일 관계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요해야 한다‘고 본다/‘진실을 탐구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국민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도 ‘개인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제도를 설계하는 편이 현명하다. 98,99

루소는 다르다. 그는 원래 인간은 고립되어 살아야 하지만 타인의 고통 앞에서 ‘연민‘을 느끼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 인간이 연대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는 이념의 공유가 ㅇㅏ니라 ‘당신도 힘이 듭니까‘라는 상상력에 ㅂㅏ탕을 둔 물음이라고 리처드 로티는 말한다. 109,110

국민과 국민은 말을 매개로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지만 개인과 개인은 ‘연민‘을 통해 ‘약한 연결‘을 맺을 수 있다. 112

인간에게 성욕이 없었다면 계급은 지금보다 훨씬 고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성욕이 있기 때문에 서로 말을 섞지 않았을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교류를 갖기도 한다. 그 기능은 ‘연민‘과 매우 유사하다. 114

오프라인 서점에서 어쩌다 눈에 들어와 사게 되는, 그런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쪽이 훨씬 풍부한 독서 경험을 가져온다. 계획된 독서보다..142


볕뉘.

0. 책친구에게 더블린사람들을 아껴서 읽는다고 하고나니, 추천한 책이다. 일반의지 2.0은 읽었고 존재론적, 우편적은 제대로 읽지 못한 저자였다. 다소 간단하고 도발적인 주제는 강하다.

다크 투어리즘의 작년 경험이 가져온 것은 사고방식의 변화였다. 작년 나가사키 등 4,5일간 이동여정에서 끊임없이 함유하게 만들었던 질문들은 일본을 좀더 넓고 깊게 읽도록 만들었다. 청소년들의 공유지점들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도 올라왔다. 시공간의 변화가 가져오는 경험은 모두 있을 것이다. 그 경험들을 반복해서 저자는 말한다.

1. 강한 유대를 불러 일으킨다는 소셜미디어의 활동,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시공간을 변화시킨다는 점. 가벼우면서도 강력하다. 경험된 자아, 협력적 자아, 되기...등등 변환과 전환은 경계로부터 ㅅㅣ작한다.

2. 좀더 가벼워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끼리끼리 너무 무겁고 진지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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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목 – 책 속에서 김환기화가를 다시 만나다. 백자. 달항아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색감에 반해 끌리게 되는 묘한 은은함. 매화향에 달려있는 마음. 매화 꽃술에 비치는 달빛.

2. 더블린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입문. 그의 단편을 읽는다. 아껴아껴서. 엘리엇이 그랬다지. 더블린 사람들을 제일 먼저 읽으라고 말이다. 이 위대한 작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쫄깃함이란. 두근. 한문장 한문장. 아마 다 읽으면 봄끝이리라. 아껴서아껴.

3. 그림의 맛 – 배경을 그리고 주제와 부제를 나누고 세세히 원경과 중경, 근경을 그리듯이, 이제 국물과 양념, 조리순서를 나누게 되는 살림. 물감의 색을 맞추듯, 양념의 가지가지 구별이 될 쯤 요리가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민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나보다. 셰프의 맛과 플레이팅의 세계. 달콤함이 깊어간다. 그래 맞아. 그렇게 비교하면서 가보는 것이지. 유행이라는 것도 그렇게 어긋나면서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야.

4. 파리의 우울 – 산문시라구 압축된 단편소설인데. 46세에 목숨이 다한 그의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어, 그래 그래야지. 월트 휘트먼도 슬쩍 겹친다. 그 당당함과 열정이란. 야금야금. 밤은 선생이다의 황교수님 여전히 번역은 절묘하다. 다 읽으면 어떡하지. 오늘은 그만.여기까지.

5. 죽음의 한 연구 – 지난 여름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카페에서 읽은 대목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 그리 방대하며 분야를 넘나드는지 추천한 이의 감식안을 되삼키며 읽는다. 두려워 아직 손이 가지 않지만 그 안을, 그 틈새를 ㅈㅏ꾸 기웃거린다. 이리 와봐, 와보라구...

볕뉘.

소설을 한 다발로 몰았다. 잡지처럼 보면 어떨까하는 책들을 따로 모았다. 조금씩 아껴 보고 있는 중이다. 일터 인사이동으로 가고 오는 사람들 환영회, 환송회도 오늘 저녁이면 말미다. 조금 더 대화의 주제나 이야기들이 방향을 달리했으면 좋겠다. 육아나 교육 상담에서 조금 벗어나야겠다. 뭘 하고 싶은지 고민이라도 슬쩍 섞는 친구라도 있으면 더 반갑겠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안위를 하지만... 삶은 영락없는 것이 아니길 오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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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2-09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블린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가요?
사춘기 때 범우사에서 나온 거 도전했다 덮고
여태 못 읽고 있는데 님 페이퍼보고 솔깃해 집니다.ㅎ

2017-02-09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영미 시인의 에세이 중에 <시대의 우울>이라는 책이 있는데,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제목과 비슷하네요. 실제로 보들레르에 대한 이야기가 책 내용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여울님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무척 크신 것 같아요.

2017-02-09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