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18

정신의 투쟁 역시 여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하다. 라고 한 랭보의 말이 적확하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는 냉혹한 말의 의미도 간파하게 되었다. 37

그들의 사고를 통찰하는 데 그들 각자의 나이를 아는 게 필수 조건임을 깨달은 건 처음이었다. 51

나의 생각을 언제나 더 크고 새로운 감탄으로 차오르게 하는 두가지가 있다...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도덕률이다..../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가ㅁ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71

사랑은 지고의 율법이며, 이런 사랑은 연민이다. 76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86

멋진 책을 펼쳐들면, 제대 앞에 선 신부의 부케처럼 책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88

평생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간 사람이 만차였다.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104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적을 두기 마련이다. 128

어린아이가 쓴 듯한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일론카. 그렇다. 이젠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132

볕뉘.

0. 메모지에 글을 쓴다. 글은 씌여지되 낯설은 느낌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글이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 내 글이되 내 글이 아닌 것 같아 무척 낯설다.

1. 책으로 사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 속의 책들이 대기하고 있지 않을 수 있을까. 글 속에는 만차라는 여성을 등장시킨다. 사랑들이 그 모든 것을 변화시켜 집 한채를 거뜬히 지었다고 쓴다. 돌로 된 날개도 퍼덕이며 비상한다고 말이다. 어느 한 편은 돈오돈수요 또 한편은 돈오점수란 말인가.

2. 보들레르는 여배우였던 혼혈여인을 사랑했다. 지성과는 거리가 먼 그녀는 보들레를를 그리 깊이 아끼지는 않았던 듯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 반편불수가 된 그녀를 보들레르는 극진히 보살핀다. 삶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썼던 그는 사랑을 믿었던 것인가.

3.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는 연민이 있다. 사랑에 다가서는 그 무엇이 있다. 책 속에도 현실에도 있다. 어느 문을 열더라도 그리로 통할 것이다. 삶을 놓치려하지 않는 안간힘들. 안타까움들.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4. 간간이 나오는 짚시의 삶. 몰아서 폐기시키는 삶이 아니라, 자족과 명랑의 삶, 그리고 그 시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또 다시 그려져야 할 것. 이름도 묻지 않고 학교도 묻지 않고, 직업도 묻지 않고 만남의 질로만 서로를 평가하는 관계들.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을 만들어가는 재미.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이와 관계없는 양식. 책의 즙을 짜내는 일을 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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