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바람결에 하늘거린다. 꽂히는 햇살빼곤 그나마 견딜만한가~ 

저 구름에 늦은가을을 넣고 한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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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나

 

즉자적인 대자적인....자유나 평등에서 물러나 인정이나 배려를 기본적인 개념으로 삼는다. 곁이 맨들맨들하여 미끌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표면이 울퉁불퉁하거나 뿌리가 내려있는 말들을 생각의 단위로 여긴다. 사고의 단위를 개인적인 나로 멈춰두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함께 하거나 일상의 몸의 겹침이 있거나 원하는 삶의 뿌리가 붙어있는 관계로 열어둔다. 나는 여기저기 붙어있다. 그것이 따로따로 반응이 없는 낱개가 아니다.

 

고민에 살이 붙고, 그 고민의 결에 연동하는 사회적인 나는 겹치면 겹칠수록 자란다. 일상이 섞이고, 꿈이 섞이고, 지금의 현실이 섞여 서로 아프다. 세상을 바라보는 밋밋한 직선의 시선이 아니라 섞인 나만큼 예민하고 세세히 다르고 실뿌리가 내린다. 

뱀발 .

아이는 아프고, 일터 일로 인한 신경은 예민해지고, 모임은 넘친다. 스크랩한 자율평론 6호와 아나키즘 관련 자료를 살핀다. 모임의 고민 사이를 좀더 깊이 걸어본다. 만나는 사람들 사이는 너무 다져져 있는 것은 아닌가? 단단한 흙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흙들 사이로 축축한 물이 스며들어 서릿발을 만든다 한다. 내가 너무 단단하게 다져져서 너와 관계가 소원하다. 나를 쑥 뽑아 흔들거리고, 너를 뽑아 쑥 너와 사이가 흔들거린다. 그래야 우리는 좀더 물처럼 다른 것들이 스며들지 모른다. 고민의 연동이 좀더 세밀해지고 세심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한여름은 장마빛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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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0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10329 수다가 수작이다.

 수작친구들과 [오늘밤]을 함께 보내다. 수작에 대한 생각은 약간씩 어긋나면서도 차이가 있다. 연구공간이다. 부설연구소다. 아니면 아카데미 잡지일 등 기획업무를 포함한 대행공간이다. 각각의 구분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연구공간일 경우 합의된 연구이며 2년으로 체류기간으로 잡을 것인지? 아니면 6개월? 아니면 일터를 잡을 때까지 머물 수 있다라고 할 것인지? 만약 수유너머의 모델를 갖고 있다면 함께 연구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한다라는 기본적인 살을 붙일 수 있겠다. 한편으로 자율성을 보장한다라는 의미를 붙일 수도 있다. 부설연구소라면 아카데미가 과제를 정해주고 결과물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월40만원은 작다. 별도로 백만원은 줘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온다. 느슨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제의 의미로 연구소는 아카데미가 주문하는 이런저런 과제를 언제까지 하고, 잡지발간을 별도의 업무로 맡는다라는 설명도 할 수 있겠다. 세번째는 아카데미가 하고 있는 뉴스레터의 별도의 꼭지운영, 연구자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콜로키움을 진행하며, 잡지발간과 아카데미 모니터링을 체계적으로 한다.라고 범위를 좁히는 수도 있겠다.

 이렇게 경우의 수를 놓고 논의를 해본다. 수작은 논의되고 합의되는 수준을 바탕으로 움직일 수 있다. 논의되고 합의되는 과정은 다른 이의 이견을 내것으로 가져가 숙고하고 다시 논의를 지피는 것을 가정한다.

 수작에 대한 위상을 검토하려면 초기 아카데미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활동이 인문을 주창한 소기의 효과는 있다고 보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다. 주제가 좋고, 멋진 강사가 있고 나름 여파가 있지만, 소비보다는 직접 만드는 과정, 유명강사보다 박사급의 젊은 연구원들의 강사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고민들이 있었다.  또 하나는 깊이에 대한 필요성이다. 어떤 주제에 누구나 파고 들어 작지만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거창한 보고서 형태를 결과물이 아니라 에세이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누는 것이 의미있고 그런 형태로 나아가고 싶은 의도도 있다. 깊이에 대한 고민, 직접 만들고 나눈다. 누구나 연구하고픈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공간이 있어야 된다는 의도가 있다.

 수작은 연구하는 공간으로 파급력이 있고 기준을 흔드는 유의미한 연구결과물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 팀웍 외에 덤으로 이런 고민들을 품고 여력이 있을때 그것까지 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가닥을 잡는 방법도 있겠지만, 생각이 나눠지고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일을 실행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 지난 운영위에서 대전시민운동에 대한 계획을 제출하고 가닥을 잡는 것을 보고, 이제 수작이 무엇을 하고 있구나가 공유되는 것 같아 좋았다. 뭔가 함께 해나간다면 무엇을 하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일정정도 재정을 부담하는데 결과물이 없다는 회원들을 의식할 수는 있지만, 잔잔한 일들의 합으로 공감을 얻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수작에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뉴스레터의 한꼭지를 맡는 것도 좋다. 콜로키움을 통해 좀더 깊이있는 토론을 보여줘도 좋겠다.

 [오늘밤]을 함께해서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일정정도 해소는 된 것 아닌가? 수작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라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일을 정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 의도적으로 나눈 세꼭지의 이야기에 살을 더붙여 숙고시켜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장단점이 있기에 공유과 고민의 깊이를 다뤄보는 것이 수작에 대한 세세한 일들을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파란 하늘이 있는 바람 좋은 가을에 결론내도 괜찮은 것 아닌가?

 오늘은 지역내 문화자본(부르디외)과 보수-진보를 좌우에 두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x-y-z축에 입체적을 조망해볼 수 있는 연구방향을 잡은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이에 대한 여파, 파급, 기준점을 흔드는 작업으로 수작이 수면위에 떠오르면 위상과 일이 함께 갈 수도 있는 것은 아닌가? 


 

뱀발. 성큼성큼 열음의 중심으로 선다. 비는 퍼붓고, 하늘색은 잊은지 오래다. 나비만 간간히 넘실남실 , 달도 별도 궁금해 갑갑하다. 별도 달도 이 구름과 비가 그치면 톡톡 뜰 것이다. 툭툭 어깨를 건드릴 것이다. 어제 연구공간 [수작]친구들과 밤을 보냈다. 오롯이 [오늘밤]. 아마 이렇게 [오늘밤]을 몇번 지새우면 수작의 지문이 몸에 배일 것이다. 장마비에도 씻겨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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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와 몸: 몸이란 말이 '모으다'에서 왔다고 한다. 이것저것, 여기저기에 흔적을 모으는 일들. 모아놓은 책들을 들고 감기몸살로 불잠을 자고 있는 유니를 훼방놓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몸을 옮기며 본다. 오랜만에 신문도 보고, 저녁짬을 알뜰하게 챙겨본다. 이태호님의 겸재 정선의 진경에 대한 부분을 살펴읽다. 그림 속의 장면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본다. 금강산과 박연폭포를 생생하게 몸품을 팔아 비교검토했다. 그래서야 진경의 뿌리와 새로운 눈이 삐죽 솟아 오른다. 모두 몸과 깊이가 느껴지는 연구의 덕택이다. 



2. 행복의 정복: 지난 번에 빌려보다가 산 책이다. 역자의 말처럼 행복의 정복이 전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루지 않고 개인에 관한 부분이라면, 이 책은 행복의 정복 2 (사회편)인셈이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탐구인 셈이다. 그는 싸움(전쟁)의 시발점을 집요하게 캔다. 나누고 나누고 나누는 일이 차별을 낳고 이렇게 강연을 한지 백년이 되어가는 지점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이성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충동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움직이는 바탕은 목적이 아니다. 목적과 욕구의 이면에는 충동이 달라붙어 있는데 이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목적을 갖는다는 것, 이성은 사람을 아주 조금밖에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나무는 적정한 토양과 환경이 주어지면 자란다. 사람 역시 적정한 여건이 되면 움직인다. 그런데 그 충동이 죽음과 파멸로 이끌도록 충동을 잘게쪼개어 거세시켜 욕구불만이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이 생명과 성장에 보탬이 되도록 조절하고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대부분의 제도가 안타깝게도 생명과 성장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사회는 경제적 이득만을 바라보며 움직여 대부분의 사람은 힘겹다. 그는 사회주의가  경제성장에 경도되어 문제가 심각할 것을 우려했다.

사람들의 행위의 근저는 합리성이 아니다. 충동을 보살피고 키울 줄 알아야 사랑, 건설, 삶의 기쁨을 겨우 논할 수 있다한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설 수 있다 한다. 



3. 유적존재: 사회적 존재론은 유의미하다. 이론은 근육이 아니라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책을 다시 본다. 이론의 발전이 개인을 신에게서 구해내고,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낸 결과 압축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 등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식론과 존재론에 있어 칸트와 헤겔을 분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가 그렇게 발라낼 수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청년 맑스가 이야기했듯이 사람이란 人 서로 기댈 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 그물에 출렁이는 존재라면 인식론까지 바뀌어야 한다. 때론 "서사적인 나"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기준점이 바뀌는 순간, 쌓아놓은 상아탑과 구축물은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의 "-너-나-너-"로 인식되는 순간, 한순간에 밀이 이론적 해명을 했던 "자유"는 영락없이 무너진다. "평등"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 니체가 서있다.  신에서 구해낸 나의 확장, 위버멘쉬, 초인은 다른 관점을 삼켜야 한다. 그 앞에 바쿠닌과 막스 슈티리니가 있다 한다. 

 

- 제대로 된 혁명 -


뱀발. 비가 그치지 않는다. 장마 속을 바지런히 걷는다. 머지않아 장마가 걷힐 것이라 다짐해본다. 생각의 동무들이 하나 둘 생길 때, 길도 날도 점점 밝아지고, 파랑으로 개일 것이다. 긴 회색톤의 비구름도 물러날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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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한다. 누구보다 질길 수 있다. 다시 시작이다."


세상은 수면위에 불쑥 삐져 올라온 것만 본다. 뿌리를 어떻게 드리우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그래서 올라온 건 다시 짓이겨 다시 눌러놓는다. 뿌리를 드러내고 상처를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표피만 매꾸어놓고 만다. 그리고 그 표면만보고 환호하고, 비난하고 건망으로 일상을 난다.

매체는 그저 뒤늦게 분석만하고 해설같지 않은 해석도 별반 하지 못한다. 수면아래는 드러나는 일이 없다. 또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군대는 어느 순간 기수열외로 가학이 뿌리를 내리고, 자기땅 한푼없는 평창사람은 환호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평창의 돈그늘이 얼마나 허망하게 삶을 황폐화하는지, 군대도 얼마나 인권이 요구되어야 하는지 조사되고 보이도록 드러내야 한다. 

 뱀발. 1. 뿌리를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의 강은 유유히 흘러가기만 한다. 그렇게 드러난 것만 보고 세상은 다 그렇다고 한다. 묵묵히 악착같이 표현해내는 작가가 고맙다. 며칠 전 밤 두시가 훨씬 넘어서 텔레비전에 나온 작가를 처음 보았다. 블로그의 시, 사진, 음악을 접하긴 하지만 [나쁜 피]와 황해문화 작품의 건조함과는 사뭇 다르다.   

2. 큰녀석과 [나쁜피]의 작품 인상을 나눈 적이 있다. 불쑥 커버려 생각을 섞을 친구사이가 되긴 하였지만 현실은 너무도 빨리 도망간다. 현실의 아픔을 부여잡는 법들, 그리고 허망을 재촉하지 않고 현실로 가져오는 노력들...이 간절하다. 

3. 늦은 오후, 저녁, 밤 희망버스를 타고 온 ㅅㅁ, 연두부와 이야기를  나눈다. ...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좀더 다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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