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화들짝 피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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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남 좌파는 이념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엘리트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만 강남좌파에 관한 논의가 생산적일 수 있다. 
8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라는 전제 아래 우리 모두의 삶에 보탬이 될 진지하고 성실한 논의와 연구를 해보자. 들여다보면 강남 좌파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을 것이다. 강남좌파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함의가 있는지, 그런 걸 차분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9. 인물 중심주의 문화의 토양에선 이성적인 정치적 논의와 토론은 물론이고 소통 자체가 매우 어려워진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진다. 매사를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 대한 유불리의 관점에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재앙이라 할 만하다. 

13. 정당과 정치인들이 표방한 이념과 노선보다는 각기 생각이 다른 정치 세력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과 화합을 이뤄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14. 정치에서 아무런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으면서 소통을 열망하는 소통파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이게 우리의 남겨진 숙제다. 우선 공감대부터 넓혀 나가는 일이 필요하겠다.

 

뱀발.  

1. 강남좌파란 말로 조중동을 비롯한 매체는 이야기의 본질은 회피한 채, 강남좌파의 파고에 대응하느라 열을 올리는 듯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그룹에서도 단어에 함몰되어 애초의 논의를 비껴서는 것은 마찬가지 인 듯싶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정치적 냉소주의와 엘리트주의 문제점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지점으로 논의를 모아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강남좌파 논쟁은 자칫하면  갈길을 잃어 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2. 보다 중요한 것은 좌/우의 이분법의 분류와 인물중심주의 사고를 벗어나서, 얼마나 일반인들이 과일의 종류만큼, 한우의 부위만큼, 좋아하는 생선의 가지수만큼 다양하게 입장을 열어둘 것인가에 있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엘리트주의 한계를 곰곰이 되짚어보아야 한다. 정치냉소주의에 기반한 정치인 인물에 갇히고, 두번째는 -되기에 근간하는 몸말의 저변을 되돌이킬 틈도 없이, 엘리트에 기반한 정치인만 생산하는 구조의 변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좌와 우라는 X축만 논하는 삼류정치논법이 아니라, 생활수준을 고려하는 Y축의 매개물을 증폭시키는 일, 보다 중요한 것은 Y축이라는 시간에 얼마나 우리 일반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바꿔내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가라는 시선을 우리 삶에 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3. 따라서 논의의 핵심은 철저히 바로 옆에있는 당신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고기맛을 보듯 다양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냉소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을 획득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렇게 꼬리표를 붙이고 꼬리표로 논의가 산으로 가는 매체의 저급함이 갈지자 행보를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SNS 는 가끔 기회가 굴러오기도 하는 것 같다. 올바로 삼켜낼지는 또한 모르는 일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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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 향한 시선에 바란다.

원래 받은 제목은 "아***에 바란다." 였는데, 아무래도 짐이 버거워 이렇게 제목을 살짝 표시나게 바꿉니다. 얼마 전 읽은 소설의 한구절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아주 평범한 30대중반의 보험원인 주인공 이야기입니다.1) 우연한 기회에 몇년 책에 송두리채 몰입을 할 수 있었고, 책을 가릴 줄 알게된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책을 매개로 달라진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요지인즉, 오히려 책을 통해서 그가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상이라고 하는 것들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인문 人紋은 앎을 너머 서는 일이죠. 사회운동을 하고 단체일을 하면 선일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일까요? 머리 속으로는 끄덕이지만, 당신의 말과 행동에는 은연중 그 선善으로 몰고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글머리부터 이러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앎의 과정이 불편함과 맞닿아 있다니, 앎이 삶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아카데미에 마음을 주는 일은 애석하게도 불편함을 얻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불편해서 그 불편함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어 당신에게 기댈 수 밖에 없음을 토로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앎을 소비하고 몸밖으로 겨워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다른 갈증나는 앎을 찾아 소비하고 몸밖으로 토해내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앎에 짓눌린다면, 앎의 연민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면 어떡하죠. 스멀스멀 일상의 틈으로 기어들어와 딴지를 건다면 말입니다.

편안하고, 깊이가 있고, 고민한점 양념으로 올려놓고 가슴도 따듯한 분들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레입니다. 그런데 자꾸 딴욕심이나 딴청을 부리고 싶어집니다. 좋기만한 운영위원님들이 아무 고민없이 자리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색깔이 다른 고민이 여기저기 섞이길 바라는 것이죠. 이왕이면 고민끼리 만나 사골 우려내듯 고아도 좋을 것 같다고 여깁니다. 거름이라도 된다면, 언젠가 예쁜 싹을 피울 수도 있겠죠. 번듯한 말과 주변 생각에 예스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회적 대의가 있다고 강변하더라도 아마 불편을 스며들게 할지 모릅니다. 슬로건처럼 걸려있는 말과 로고, 단어가 아니라, 아마 당신의 삶에 배여난 말과 언어를 되새길 겁니다. 당신 말에 놓여있는 명사꾸러미에 딴지를 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쓰는 말은 마냥 그모양 그꼴이냐구 말입니다.

한술 더 뜬다면, 사무적인 일들이 여러 핑계들로 보이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 있길 바라지 않습니다. 바빠서 챙기지 못할 일들이라도 보이거나 보이도록 해서 누구나 쉬운 궁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 일들이 행동의 자유와 운신의 반경과 그리 상충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회원님이 아***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선문답보다, 님의 나누고 싶은 것은? 님이 월담하고 싶은 삶의 경계를 묻는 것은 어떨까요? 님이 하고픈 것에 도움이 될지 고통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속내를 듣고 싶고, 들어주고 싶은 것이 먼저라고 말입니다.  이런? 선문답같은 실속없는 이야기만 하고 자빠졌네요. 그쵸. 모임과 모임 사이, 우리는 그 애매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불안함때문이기도 하죠. 삶의 버거움때문에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듭니다. 그렇게 아픔들이 물밀듯이 쇄도해서 하루하루 나기도 버거운 것이 오히려 현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버거움을 뒤집어내놓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책 속에 있는 이야기만 할지도 모릅니다. 낯선 단어의 배열에 지칠지도 모르겠어요. 몸말은 없고, 머리말만 배회하는 분위기는 그 모양 그꼴이지 않겠어요.그렇게 사회와 접하면서 스며나오는 세상에 대한 아픔은 지위고하도 재산의 많고적음도 우열도 서열도 없겠죠. 강도의 차이를 우열이나 서열로 바라보는 시선도 거둬야겠죠. 다 아픈 것이겠죠. 아프다는 점에 있어 공감입니다.

이렇게 가중해서 이야기를 잇다보니 자꾸 불편의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네요.  체념이나 아픔을 강조하는 것이 어쩌면 불편의 담을 넘어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되풀이 되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회원임을 접고 싶은 충동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로받고 싶고, 여기서라도 기대고 싶은데, 어쩌자고 이 웬수들은 가슴에 못질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 동안, 즐거운 갈래길, 아쉬움의 갈래길에 접하면서, 어떻게 아파할 것인지? 불감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는지? 좀더 가까운 이들은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당신의 삶의 입구를 톡톡, 제발 당신의 마음을, 일상을 가입해주시길 권면해봅니다. 좀더 다른 삶을 살아내는 기술을, 좀 더 다른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좀더 기대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기쁨들이 툭툭 터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어디쯤 쓸쓸함이 섞인 님의 고민과 생각에 동무되는 이가 곁으로 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이 발견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이 나누고 싶어 안달이면 좋겠습니다. 가을 어느날 님과 동행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1) 숨 쉬러 나가다, 조지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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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사이 산책 겸 완보, 짙은 여름엔 가을을 향해 달리 꽃을 피운다. 

제 각기 다른 속도로 여름을 간다 싶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성찰인  

강남좌파를 간간히 보고 있다.  비가 장대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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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1. 전쟁을 바라볼 때 흔히 사람들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더 많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전쟁은 집단적 광기라고 여긴다. 충동이 더 억제되고 이성이 열정에 압도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정신이 전쟁의 열병에 감염되지 않게 보호할 것이고 분쟁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정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옳은 이야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0. 올바르게 사고하려는 욕구를 열정의 형태로 품은 사람들만이 전쟁의 열정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열정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열정뿐이고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상반되는 충동 또는 욕구뿐이다.

1. 이성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너무나 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한다. 이성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전쟁을 야기하는 충동과 열정에 반대되는 충동과 열정에서 기인한 적극적인 활동이다.

2.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인 이성의 활동만이 아니라 충동의 활동까지 변화시켜야 한다.
 


둘. 


0. 본능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충동은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나 개보다 합리적이라고 상상하고 싶어하고 자기 행동에서 충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자신이 깨닫지 못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은폐해버린다.

1. 일반적인 계획 뒤에는 항상 이런 무의식적인 은폐가 따른다.
2. 어떤 충동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충동이 충족된 결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라난다.
3.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예상되는 결과가 달갑지 않은 경우에는 예상과 충동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4. 충동이 약할 경우에는 예상이 이긴다. 충동을 이기고 예상을 따르는 행동이 바로 이성에 따른 행동이다.
5. 인생관은 충동의 충족에 대해 준합리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즉 충동에 종속된 사고가 집약된 것이다. 

 

셋. 



-1. 산업주의와 조직은 문명국가의 국민들에게 충동이 아니라 목적에 의거하여 생활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한다.

0.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생활 방식은 생명력의 원천을 고갈시키지는 않는다 해도 의지에 의한 통제에 익숙해진, 그리고 사고가 이미 알고 있는 새로운 충동을 만들어 낸다.
0. 충동이 완전히 배제된 채 목적과 욕구에 의해서 좌우되는 인생은 지루하다. 그런 생활은 생명력을 고갈시키고 결국에는 자신이 달성하려던 목적 그 자체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든다.

1. 과도한 계율, 특히 외부에서 강요되는 과도한 계율은 종종 잔학과 파괴의 충동을 야기한다.
2. 자연스러운 충동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은 대개 활력을 잃어버리거나 생명에 반하는 포악한 충동을 지니게 된다.
3. 인간의 충동은 타고난 기질에 의해서 날 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생활방식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넷. 



-1. 우리 인생에는 특별한 정신적 재능이 요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며 사회 제도가 개선될 경우에는 아주 흔해질 수 있는 세 가지 힘이 있다. 

 

0. 사랑, 건설의 본능 그리고 삶의 기쁨이다.

1. 이 세 가지는 지금은 우리의 생활 조건 때문에 억제되고 약화되어 있다.
2.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부자도 마찬가지이다.
3. 우리의 제도는 불의와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억압과 불의를 견뎌낼 수 있으려면 우리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닫고 진리를 돌아보지 않도록 정신을 닫아야만 한다.
4. 인습적인 성공관에 젖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충동을 대부분 희생하고 삶의 기쁨을 상실한 채 맥 빠진 권태감 속에서 살아간다.
5. 우리의 경제 제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보다는 타인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진 채 얼마 되지 않는 수동적인 위안을 누리는 것만을 허용한다.
6. 이 모든 것은 공동체의 활력, 개개인의 개방적인 애정, 관대한 세계관을 파괴한다.
7. 이 모두는 불필요한 것으로 지혜와 용기를 동원하면 종식시킬 수 있다.
  

 

 

  
-1. 복잡하지 않았던 시대로부터 내려온 제도 때문에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성장의 원리가 저해되고 있다. 사상과 지식이 발전해가고 물리적 세계의 여러 위력을 제어하는 지배력이 늘어남에 따라서 새로운 성장의 가능성이 출현하고 새로운 요구가 나타난다. 새로운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새로운 요구를 내놓은 사람들은 좌절을 겪는다. 예전에는 피할 수 없었던 한계가 이제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므로 이 한계를 묵인하는 태도는 나날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 한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삶의 행복을 누릴 가능성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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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쓸데없는 딸들', 역사를 쓰다
    from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2011-07-27 12:07 
     모처럼 ‘묵직한 책’을 읽었다. 컨디션 난조에다가(여름에는 시들하다), 냄비에 오른 손 엄지 손가락을 데여서 자판치는 것도 귀찮았다. 상처는 거의 아물었지만 성가시다. 나다니는 것도, 누구더러 오라는 것도 사양하고 며칠 들어앉아 ‘목침’ 두 권을 묶어 읽었다. (음, 여름이고 손가락 데인 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린비 출판사의 두 권짜리《나, 여성노동자》는 ‘역사와 사회에 묻힌 여성노동자’들 이야기다. 1권은 <1970~80년대 민주..
 
 
여울 2011-07-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 --> "우리는 있었다. 우리는 있다. 우리는 있으리라."로...여우님의 글로 있었던 일들, 있는 일들, 있을 일들에 곰곰 생각을 가누어봅니다. 존재를 휘청거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