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 향한 시선에 바란다.
원래 받은 제목은 "아***에 바란다." 였는데, 아무래도 짐이 버거워 이렇게 제목을 살짝 표시나게 바꿉니다. 얼마 전 읽은 소설의 한구절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아주 평범한 30대중반의 보험원인 주인공 이야기입니다.1) 우연한 기회에 몇년 책에 송두리채 몰입을 할 수 있었고, 책을 가릴 줄 알게된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책을 매개로 달라진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요지인즉, 오히려 책을 통해서 그가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상이라고 하는 것들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인문 人紋은 앎을 너머 서는 일이죠. 사회운동을 하고 단체일을 하면 선일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일까요? 머리 속으로는 끄덕이지만, 당신의 말과 행동에는 은연중 그 선善으로 몰고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글머리부터 이러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앎의 과정이 불편함과 맞닿아 있다니, 앎이 삶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아카데미에 마음을 주는 일은 애석하게도 불편함을 얻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불편해서 그 불편함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어 당신에게 기댈 수 밖에 없음을 토로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앎을 소비하고 몸밖으로 겨워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다른 갈증나는 앎을 찾아 소비하고 몸밖으로 토해내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앎에 짓눌린다면, 앎의 연민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면 어떡하죠. 스멀스멀 일상의 틈으로 기어들어와 딴지를 건다면 말입니다.
편안하고, 깊이가 있고, 고민한점 양념으로 올려놓고 가슴도 따듯한 분들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레입니다. 그런데 자꾸 딴욕심이나 딴청을 부리고 싶어집니다. 좋기만한 운영위원님들이 아무 고민없이 자리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색깔이 다른 고민이 여기저기 섞이길 바라는 것이죠. 이왕이면 고민끼리 만나 사골 우려내듯 고아도 좋을 것 같다고 여깁니다. 거름이라도 된다면, 언젠가 예쁜 싹을 피울 수도 있겠죠. 번듯한 말과 주변 생각에 예스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회적 대의가 있다고 강변하더라도 아마 불편을 스며들게 할지 모릅니다. 슬로건처럼 걸려있는 말과 로고, 단어가 아니라, 아마 당신의 삶에 배여난 말과 언어를 되새길 겁니다. 당신 말에 놓여있는 명사꾸러미에 딴지를 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쓰는 말은 마냥 그모양 그꼴이냐구 말입니다.
한술 더 뜬다면, 사무적인 일들이 여러 핑계들로 보이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 있길 바라지 않습니다. 바빠서 챙기지 못할 일들이라도 보이거나 보이도록 해서 누구나 쉬운 궁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 일들이 행동의 자유와 운신의 반경과 그리 상충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회원님이 아***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선문답보다, 님의 나누고 싶은 것은? 님이 월담하고 싶은 삶의 경계를 묻는 것은 어떨까요? 님이 하고픈 것에 도움이 될지 고통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속내를 듣고 싶고, 들어주고 싶은 것이 먼저라고 말입니다. 이런? 선문답같은 실속없는 이야기만 하고 자빠졌네요. 그쵸. 모임과 모임 사이, 우리는 그 애매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불안함때문이기도 하죠. 삶의 버거움때문에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듭니다. 그렇게 아픔들이 물밀듯이 쇄도해서 하루하루 나기도 버거운 것이 오히려 현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버거움을 뒤집어내놓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책 속에 있는 이야기만 할지도 모릅니다. 낯선 단어의 배열에 지칠지도 모르겠어요. 몸말은 없고, 머리말만 배회하는 분위기는 그 모양 그꼴이지 않겠어요.그렇게 사회와 접하면서 스며나오는 세상에 대한 아픔은 지위고하도 재산의 많고적음도 우열도 서열도 없겠죠. 강도의 차이를 우열이나 서열로 바라보는 시선도 거둬야겠죠. 다 아픈 것이겠죠. 아프다는 점에 있어 공감입니다.
이렇게 가중해서 이야기를 잇다보니 자꾸 불편의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네요. 체념이나 아픔을 강조하는 것이 어쩌면 불편의 담을 넘어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되풀이 되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회원임을 접고 싶은 충동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로받고 싶고, 여기서라도 기대고 싶은데, 어쩌자고 이 웬수들은 가슴에 못질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 동안, 즐거운 갈래길, 아쉬움의 갈래길에 접하면서, 어떻게 아파할 것인지? 불감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는지? 좀더 가까운 이들은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당신의 삶의 입구를 톡톡, 제발 당신의 마음을, 일상을 가입해주시길 권면해봅니다. 좀더 다른 삶을 살아내는 기술을, 좀 더 다른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좀더 기대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기쁨들이 툭툭 터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어디쯤 쓸쓸함이 섞인 님의 고민과 생각에 동무되는 이가 곁으로 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이 발견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이 나누고 싶어 안달이면 좋겠습니다. 가을 어느날 님과 동행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1) 숨 쉬러 나가다, 조지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