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사롱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67 조직의 공동체화는 사람 사는 어느 곳에서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정실주의가 발달한 한국에서 특히 심하다. 예컨대, 미국 워싱턴포스트(2005년 12월 24일)가 황우석 교수 연구실의 ‘공장 조립라인 같은 칸막이 문화’가 한국 과학계의 허점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 건 가볍게 넘길 지적이 아니다. 이 신문은 ‘연구원들끼리 의사소통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꿀벌통 같은 미국 실험실과 달리 황교수 실험실은 고도로 칸막이화된 공장조립라인을 닮았다’고 했다.
201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연줄망적 특성이 우리 사회의 유랑민적 성격에 의해 유감없이 강화돼왔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잠시 머물러 있는 공간이기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삶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생각하는 게 피란민의 자의식이다. 사물과 현상을 이중 잣대로 맘 편히 이해하고, 실제적 지식(know-how)보다 사람을 아는 것(know-who)이 더 중요한 게 피란민의 문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페와 권력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휴대전화에 빼곡이 입력된 전화번호들로 상징되는 연줄망을 극대화하는 게 피란민의 전략적 선택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피란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뱀발. 저자의 각고의 노력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느끼게 된다. 축구의 문화사, 어머니의 수난사를 비롯해 현대 역사를 그대로 남기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말이다. 일터에 잠깐 들러 돌아오는 길 몇권의 책을 함께 빌렸다.

나름 시큰거리는 것이 스며든다 싶다. 그림을 챙기다나니 가슴에 큰 **이 스민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