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과 목포의 거리이름이 일상의 심미성에 미치는 서설 연구

 

 

초록


이름을 짓고, 이름이 불리며, 이름에서 만나고, 이름을 나눈다. 언어가 갖는 무의식적 함침은 무딘듯하지만 날카롭다. 애써 경관 5)이란 말로 확장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문자에 서서히 몸은 익는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전자나 생활자로서 일상은 습속을 갖는다. 여행자나 낯선자의 시선은 그래서 또 다른 보기나 다른 문화자산을 향유하는 출구다. 그 실뿌리를 찾아 연구프로젝트4),5),6),7)의 손을 빌리지 않고 쓴다. 천천히 음미하는 산책자의 모습으로 품어온 흔적을 남긴다. 이름을 삼키는 아픔은 때로 거부하는 몸짓이고 싶다. 때로는 거리를 걷는 연인이 대화하듯 지나치는 예쁜 거리의 이름들을 음미해 지금과 달리 어루만지길 꿈꾼다. 아이들이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하는 속도로 거리를 몸에 배게 할 때를 생각해본다. 장소로서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시공간을 담고 있는 이름으로 거듭나며 불리길 상상해본다.

 

 

들어가며


세상은 이미 마을과 거리 이름으로 기억과 향기를 간직하지 못한다. 도시의 익명성과 잠시 머무름으로서만 거리를 기억할 뿐이다. 거리와 마을이 향기와 몸으로 체험되고 오감을 충동하는 시공간을 살아내기에는 너무 바쁘다. 거리의 나무한점, 구름한점 마음 속에 붙잡아 두지 못한다.  부질없이 보이지도 않는 무심한 거리이름을 겨워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과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추체험자로서 새로운 도시의 경험자로서 마추치는 거리이름를 비교하여 대면시켜본다.

 

 

목포

 

바닷가 물이끼같은 수분이 증발한다. 코끝과 살갗을 미끌거리며 비껴간다. 음미하듯 걷고 달리는 부주산을 품고 있는 부주로에서 보면 후광대로를 따라 줄지어선 당종려나무와 비파나무의 진초록이 파릇거리는 바다의 물결로 흔들린다. 근대사산책팀이 한밤을 통채로 쓸고 지나간 날 장미의 거리 부근의 순대국과 흐릿해진 기억들이 새롭다. 늙은 큐레이터의 거칠은 목소리의 남농기념관의 소나무 그림과 책자는 갓바위의 완만한 곡선을 따라 남농로로 이어진다. 미항로부터 시작하는 여객선들과 갈치낚시배들은 밤이 깊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계절이 있다. 연두네가 목포로 내려온 날 마신 평화주나 인동주, 그리고 맥주한잔 회포를 풀던 곳이 통일대로와 원형로 주변이다. 보름달이 잔잔한 영산강과 월악산에 서로 비치는 길 역시 녹색로이다. 2) 3)

 

 

포항

 

새벽 택시기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악센트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다. 몇번씩 되뇌이는 뭐라고요?는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빠져나간다. 엇 박자, 서로 공명하지 않는다.  그 모호한 리듬을 틈타 어느새 새천년대로를 지나 철강산단로를 달리고 있다. 또 하루는 옥산, 옥계계곡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목적지를 가리키는 네비는 연신 끝도 없이 새마을로만 가르친다. 콘크리트를 심어논 새마을은 증발하지 않는다. 하루 두대 새마을호는 포항 전역인 효자孝子역에 멈추지 않는다. 새마을이란 고유명사는 이렇게 인상깊다. 해병부대 근처 해병로, 어김없이 훈련병을 맞는 부모와 친척이 해후한다.  신흥로나 중흥로는 일제와 산업역군을 떠안듯 많은 도시의 동명이소이다. 한켠의 정몽주로나 포은로를 가장자리로 해서 철강로, , 포스코대로, 새천년대로와 희망대로가 삶의 젓줄이란 두툼한 옷을 입고 봄이와도 옷을 벗지 못한다.

 

 

호명이 일상에 미치는 사례

 

SNS에 오늘 철강로를 산책했네여...블라블라보다 장미의 거리에서 만나 활짝 핀 꽃속에 한참 머무르는 정경은 비교하기에도 머쓱하다. 그렇게 말들이 겹치거나 농축되는 사이 한 만번쯤 익숙해질때 광고에 노출된 무의식처럼 이 시공간에서는 무채색의 덧칠이 되어간다. 이름이 뭐 대단한 일이 되겠는가 하고 여기는 사람들의 소양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 이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새천년, 백년, 희망이란 레토릭 역시 삶과 일상을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가 마을의 색깔과 기획을 갖는 것은 더할 나위 없지만 던져진 이름으로 일상의 회자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좀더 시민의 소양과 상상력이 자랄 수 있는 토양과 자립적인 관심이 일상화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면에서 도시 앞의 거리를 나름대로 부르고 아끼는 것도 한 방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둔산초교 앞 골목을 아**미로라고 서로 호명하거나, 둔산 시*단체로로 불리는 순간, 또 다른 공간으로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지 않을까? 화분이나 무엇인가 주인없는 빈공간이 아니라 관여하고 싶은 거리로 다시 피어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부르는 거리 이름이 아니라 부르고 싶거나 불러주고 싶은, 너-나의 자장 속에 회자되는 이름으로 불린다면 어떨까? 아**미로의 1호 목련과, 은단풍나무, 그 사철나무를 공유하거나, 연산홍을 분양할 수 있는 관계공간이 확장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며든다.

 

행정의 편의에 사로잡힌 1로 2로가 아니라 또 다른 골목길의 이름을 공유하고 쓰이는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돈이 많이드는 일도 아닐 것이다. 문화자본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서로 부르다가 공개적인 이름짓기 위원회가 생겨 장사 속으로 매몰된 이름사수투쟁이 아니라 인문의 향기나는 경쟁이라도 벌어지면 더 좋은 것은 아닌가? 거리이름짓기가 아카데미로와 시(민)사(회단체)로로 팽팽하게 경쟁한다면 행정 편의 속에 함몰된 둔산로 74번길은 잊혀질 것이다. 머무르고 살고 궁금한 거리로 톡톡 두드리는 순간, 그 시공간은 심미적인 공간과 사회적자본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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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포항거리이름들    - 괴동로 · 기림로 · 기북로 · 남원로 · 남미질로 · 달전로 · 대송로 · 대신로 · 대이로 · 대해로 · 도솔로 · 도음로 · 동빈로 · 동해대로 · 동해안로 · 두호로 · 문덕로 · 문덕서로 · 문예로 · 법원로 · 보경로 · 봉좌로 · 부남로 · 불종로 · 비학로 · 새천년대로 · 상대로 · 새마을로 · 서원재로 · 소티재로 · 송덕로 · 송도로 · 송림로 · 신덕로 · 신흥로 · 삼호로 · 삼흥로 · 상공로 · 서동로 · 섬안로 · 성실로 · 수목원로 · 신덕로 · 신항로 · 아치로 · 아호로 · 양학로 · 양학천로 · 연일로 · 연지로 · 영일만항로 · 용당로 · 용흥로 · 우창로 · 운하로 · 월포로 · 이동로 · 자명로 · 장기로 · 장량로 · 장량중앙로 · 장성로 · 장흥로 · 정몽주로 · 중앙로 · 죽도로 · 죽장로 · 죽파로 · 중성로 · 중섬로 · 중원로 · 중흥로 · 지곡로 · 천마로 · 창흥로 · 철강로 · 철강산단로 · 청암로 · 축항로 · 충무로 · 칠성로 · 칠포로 · 포스코대로 · 포은로 · 하원로 · 학산로 · 한동로 · 해동로 · 해병로 · 해안로 · 호동로 · 호미로 · 효자로 · 환호로 · 흥해로 · 희망대로


 

2. 목포거리이름들  - 통일대로, 후광대로, 백년대로, 미항로,평화로,장미로,녹색로,비파로,교육로,삼학로,영산로, 유달로, 해양대학로, 번화로, 수강로, 만세로, 호남로, 삼일로,청호로, 호정로, 산대로, 산정로,연동로,동영로,남농로,안장산로,용두로,용해로,이로로, 마파지로, 연산로, 원산정로,터진목로,죽선로, 죽교천로,양을마을로,상동로,석현로,선곡로,부주로,옥암로,신흥로,삼각로,하당로,송림로,임성로,당가두로,정의로,남악로,원형로,포미로,대양로


 

3. 목포 자전거도로지도

 

 

 

 
4. 이시철, 도시정책과 토지 다이어트의 건강영향 모색, 한국도시행정학회 도시행정학보 제25집 제1호, 2012


5.국립국어원, 언어경관 조성 장기계획 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 2006: 언어 경관 조성에 대한 외국사례와 법,제도적 정착 시범지구 사업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를 한 논문.


6. 김효정,유승호,김민규, 문화도시 육성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2004 ; 도시의 활동성, 창조성, 쾌적성, 심미성, 문화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형 문화도시 조성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한 논문


7. 김미영,문정민, 도시 재생 관점에서 문화의 거리 공간특성 분석,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제19권 6호, 2010

 

연구 ▼

연구는 인문적 소양을 품어야 한다. 연구는 장황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는 삶의 경험을 데이터로 쓸 수 있다. 연구는 도표가 없어도 된다. 연구는 딱딱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연구는 그것을 바탕으로 그렇게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도록 충동을 일으켜야 한다. 통찰을 우선으로 한다. 이론적인 근거도 좋지만 일상을 꿰뚫는 삶의 경륜이나 사회의 막힌 혈을 뚫는 통찰을 엿볼 수 있으면 된다. 논문으로 도서관에 사장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나 술자리에 회자될 수 있는 연구를 더 환영한다. 논문들 사이를 간추려 또 다른 움직임의 근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가공물도 포함한다.

그리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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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짜투리연구] 고객은 왕이 아니다 - 호칭으로 바꾸는 문화(생협,ing)
    from 木筆 2013-03-13 12:32 
    고객은 왕이 아니다- (생협일터) 호칭의 변화로 만들어 보는 또 다른 이정표 초록소비자는 왕이다. 소비 지상주의의 중독은 모든 관계를 상품과 나로 환원한다. 물건 외에 다른 관계는 묻지도 보지도 않는다.착한 소비만 볼 것이냐? 이것 역시 자유롭지 않다. 소비일뿐 착한은 곁눈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착한 소비로 안심이다. 나머지는 관심없다. 소비라는 깃발이 남긴 잔흔은 깊다. 승리의 쾌감은 짜릿하다. 주인이 되어보는 쾌감, 순간 귀족이 되는 관계의 역전.
 
 
 

 

 

 

 

 

 

 

뱀발.

 

계절을 맞는 것도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 여기에는 매화는 너무 늦다. 봄맞이를 애써 먼저한다는 것이 이젠 너를 맞는 것으로 년례행사가 되어버렸다. 발길은 재촉하지만 무심히 줄기만 쭉쭉뻗을 뿐, 애써 앙다문 꽃잎들 사이로 삐죽 솟아나온 걸 본다.  아마 너도 급한 성질은 참지 못하는가 보다. 몸도 리듬도 익숙한 너의 실루엣을 멀리서나마 다시 음미해본다. 너를 다시 그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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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들

 

사회주의는 태동 단계부터 생시몽, 푸리에, 로버트 오언으로 대표되는 3개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생시몽주의는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했고, 푸리에주의는 아나키즘이 되었으며, 오언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노동조합주의, 협동조합주의 및 자치사회주의로 발전했다. 국가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를 적대시하는 오언주의는 많은 점에서 아나키즘과 일치했다. 그런데 그들은 세 운동이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공동의 목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자의 두 가지 역시 인류의 진보에 귀중한 공헌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회민주주의적 형태의 노동운동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25년 동안이나, 헛된 노력을 기울여 왔다. 492

 

지식인의 한계

- 추상성과 구체성,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소통

 

훗날 나는 농민들에게 사회주의사상을 선전할 때 나보다도 훨씬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농민이나 시골 출신 노동자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앗다. 소위 '민중적 언어'를 많이 쓰면서 '농민의 말'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민중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만 빌려왔기 때문이다. 농민과 대화하거나 농민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러시아의 농민도 외국어만 잔뜩 쓰지 않는다면 지식인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농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평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은-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과학적, 사회적, 자연적 총체에서 추출된 일반화가 아니다. 이것은 만국공통의 진리이다.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점은 일련의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다. 지식인들은 처음 한 두 번은 인내심을 가지고 농민과 대화한다. 그러나 그 다음 번부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166-167

 

어린아이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추상적으로 배운 것을 실제로 응용해보고 싶어 하며 습득한 지식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는 구체적인 응용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어리석은 교육자들은 이런 사실을 흔히 간과하곤 한다.

 

 

프랑스 혁명과 교훈


노동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빼앗지 않을가 하는 공포 속에서 두 달을 보낸 프랑스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에게 복수했다. 혁명의 수행과정에서도 살아남았던 노동자들이 싸움이 끝난 후 대규모로 학살당했다. 그 수가 무려 3만 명이었다. 노동자가 소유의 사회화에 첫발을 내디딘 의미를 인정하더라도 보복이 남긴 상흔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다. 인류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충돌이 불가피하고, 시민 전쟁이 특정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이었더라도 적어도 막연한 열망이 아니라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충돌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폭력투쟁은 부차적인 문제다. 충돌의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상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했다. 그래야 충돌의 마지막 국면에서 총과 화기보다 창조적인 힘에 의해 재건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심지어 변화를 반대했던 계급에게도 동의를 얻는 수준 높은 작업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이와 같은 광범위한 사상적 동의 위에서 행해지는 충돌은 양쪽의 희생자 수를 훨씬 줄일 것이다. 369

 

인터내셔널의 근본적인 문제

 

마르크스 파와 바쿠닌 파의 갈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합주의와 중앙집권주의, 자유로운 공동체와 국가의 가부장적 지배, 민중의 자유로운 운동과 입법을 통한 자본주의 개선, 남부의 정신과 독일 정신의 충돌이었다. 전쟁에서 프랑스를 패배시킨 후 과학, 정치, 철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던 독일은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공상주의자'로 몰아세웠다. 1872년 열린 국제노동자협회의 헤이그대회에서 런던평의회는 위선적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바쿠닌과 그의 동지 기욤, 심지어 쥐라연합까지 제명시켜버렸다. 그러나 아직 협회에 남아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의 연합 대다수가 쥐라연합을 지지할 것이 확실해지자 대회는 협회 자체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474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데 쥐라연합은 거대한 역할을 했다. 나는 좋은 환경에서 아나키즘은 지금까지 인문과학에서 사용해 온 형이상학적 방법이나 변증법적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철학이었다. 나는 아나키즘이 자연과학과 동일하게 다루어져 왔다고 본다. 490-1

 

올바른 사회적 전망을 위한 매체전략


사회주의신문은 단지 현 상황에 대한 불평의 연대기로 그치는 경향이 있었다. 광산 공장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 파업할 때의 노동자들의 참상과 고통, 고용주에 맞선 투쟁의 불가항력만 나열하면 독자들에게 심한 절망감을 심어주기에 알맞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신념을 고취시키려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혁명적 신문은 무엇보다도 곳곳에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형태의 사회생활이 도래하는 징후, 그리고 낡은 체제에 반발하는 저항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징후를 보여주면 머뭇거리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진보적인 사상이 부활할 때 무의식중에 진보적인 사상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에 약동하는 인간의 심장박동, 오랜 부정에 대한 반역, 새로운 형태의 생활에 대해 공감하게 하기 위해 이것은 혁명적인 신문의 중요한 의무가 되어야 한다.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은 희망이지 절망이 아니다.....올바른 사회적 전망은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의 징후에 주목하지 않으면, 산재한 우연적인 요소들을 조직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반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506-7

 

 

활동과 돈

 

나는 진보적인 정당들이 돈이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팸플렛 작업을 한 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주된 어려움은 돈의 부족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전전하고 다른 사람을 고취시키는 '사람'의 부족이라고 설득하게 되었다. 우리는 1면에 후원금 모금을 호소하며 21년간 발행을 계속해 왔다. 510

 

 

뱀발. 

 

1. 밀린책을 주말에 오고가면 읽다. 57세때 잡지사에 1년간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과정과 생각을 너무도 쉽게 전달받아 오히려 낱개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 출렁거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진리는 너무도 쉬운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세상은 이론의 난무를 벗어버리고 무구하게 주춧돌이 과연 제대로 서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시고 있는 것들을 누구나 다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순진해지는 것이 또 다른 한걸음을 딛게 만드는 것을 아닐까? 자본주의와 시도한 사회주의의 사이 가야할 무수한 길이 정글처럼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길에는 아직 이정표가 있을까? 그 길에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길에는 또 다른 삶과 일상이 있을까?

 

2. 어리석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존스튜어트밀, 베버, 러셀, 케인즈의 일생과 삶은 천재이기 이전 부유함과 삶, 교육방식, 문화의 응축 등 그들의 전방위 관심사와 기여를 너머 장조의 활달함이 세상을 또 다르게 바꾸어내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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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속!! 

 

나비한마리

나비한마리

나비두녀석

 

 

두녀석은같이노닐고

한녀석은봄과노닐고

 

 

멧새 한마리

멧새 두마리

 

 

멧새 멧새들도

 

 

봄속을노닐고봄속으로맘도노닐고...

 

 

 

110221 기억도 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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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 변화가 아니라 expand, 봉기(ing)

 

세계가 우리의 혁명에 의해 무언가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이 무언가 다른 것이 되고, 혁명적으로 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된다'는 것은 세계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것이다. 세계가 무언가가 '되는'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치욕, 세계로부터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치욕은 우리 자신이 무언가가 '되는' 것으로만, 우리가 세계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씻어 낼 수 있다. 이 책에서 '봉기'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언가가 '되는' 것, 그것에 관한 이중화된 비전, 디스토피아를 바꾸는 에티카, 게릴라전을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시작되는 '사랑'이란 아모르 파티 즉, '운명애'에 다름 아니다. 16

 

뱀발. 1.1  재미있다. 일본의 젊은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잘라라, 그 기도하는 손을], 읽고 있는 [나만의 독립국가]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되다]의 세 저자들은 다같이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꼭 그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을 집요하게 벌린다는 점에서 다른 표현이지만 유사한 맥락 속에 있기도 한 것 같다.

 

2. 가난, 성장 그리고 활동

 

10시간 동안 계속 같은 벽을 보고 있으면 이러저런 물음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이것은 벽에 일을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벽이 일을 함으로써 그 노동으로부터 다양한 '물음'이 잉여로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생산되는 '물음'이 잉여인 이유는 실제로 벽은 그저 벽일뿐이지만, '물음'은 거기에서 여분으로 생산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벽이나 여자에게는 그러한 여분의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29

 

'삶보다 커다란' 힘의 압도적인 강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의 유한성으로 규정된 단순한 '삶'의 힘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가능할 리 없다. '제국'의 역동성, 세계화의 역동성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에게 국가의 주권을 다시 강화하는 일, 즉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국가를 회복시키는 일 따위는 이미 선택지에서 빠져 버린 지 오래다.......불안정한 것은 아름답다  34-35

 

뱀발. 2.1   단순, 자발적 가난......책갈피에 대한 짬생각들이 달아나 버린 것일까? 읽고 있는 와중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단순, 가난이란 말을 듣자마자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어떤 것이라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일을 정서나 평균적인 정치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 정치에 있어서 성장하지 말자라는 말의 씨가 어떻게 먹힐 수 있을까? 그렇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한다면, 상황과 시야를 벌리는 노력을 좀더 구체적으로 한 일들이 아닌가 싶다.

 

3.  자유의 전략과 시도

 

베르그송과 더불어 오즈가 제안하는 자유의 전략은 여기에 있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지속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 '뿡뿡' 소리처럼 가벼운 신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가 '프로레타리아의 밤'을 이야기할 때 문제로 삼는 것도 이것과 다르지 않았다. 노동을 그만두고 시작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동시에 시를 쓰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란 여러 개의 지속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 그를 위해 가벼운 몸을 획득하는 것이며, 네트워크 또는 '생산 라인'으로부터 몸을 떼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41

 

뱀발

 

3.1 환원적 시각이나 관점을 대응하는 것은 몇개의 복선과 리듬을 구비해놓는 것이 좋다. 논리라는 것은 하나밖에 움직일 줄 모르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측면에서 그다지 권할 만한 것이 아니다. 좀더 배려하거나 상대의 뫔 깊숙이 들여다본다면 아닌 듯하면서도 몇개의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좋다. 습관이 되거나 숨겨둔 그림처럼 원색적이지 않게 보일 듯 말 듯하게 원하는 것을 배치해두는 것도 박자이기도 하다.  솔직하다, 안색이 바로 표시나는 나같은 이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몸의 문제이기도 할 것 같다.  학교 앞 전집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짧은 순간 몇가지 마음 기술을 쓰고 있던 것일까? 활동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성숙이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되지 않은 것이라는 배수진을 두고 생각하고 거듭 시도하는 능력들이 생기면 훨씬 여유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3.2 일터가 있다고 하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게 활동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의 표정 말이다. 큰녀석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아빤 직업이 둘이다. 아니 최소 두가지다. 총회자리에서 기선생님이 인사를 하자 다시 묻는다. 회사에 있다구요. 아직 은... ... 생각해보면 이 글로 안위를 삼는다면 여러 직업, 아니 하는 일을 더 가져도 되겠다 싶다. 짧은 시간 쪼개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더구나 객지에서 하루는 말이다.

 

4. 북한강가에서


 

-- 삶이 뭐 별거냐?/몸 헐거워져 흥이 죄 빠져나가기 전/사방에 색채들 제 때깔로 타고 있을 때/한 팔 들고 한 팔은 벌리고 근육에 리듬을 주어/ 춤을 일궈낼 수 있다면!!

 

 

뱀발

 

 4.1  올라가는 길 기차 안에서 황동규 시인의 [ 사는 기쁨 ] 이란 시집을 꾸역꾸역 읽다가 마지막 시 두편을 남겨 두었습니다. 식상한 표현에 일상적인 시를 접하는 마음을 그래도 꼬깃 접어두어야 겠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바닷가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바다를 가까이 보고싶어 낙상하여 고생중이라는 사실이 더 시를 닮았다 싶습니다.  술시에 술을 접고 내려오는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만,  뜬 달빛은 고요하고 은은하여 총회의 분위기를 되새기기에는 참 좋더군요.덕분에 잘 내려와 책 몇 소절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4.2 노시인은 말년의 삶을 이렇게 시로 기록하고 계시더군요. 돌아오면 접힌 쪽을 보니...삶이 뭐 별거냐? 이런 거 더군요.  춤추는 거라고 말에요.

 

4.3 막상 이동하면 읽어야 하는 책들은 읽히지 않아 읽고 있는 책, 읽고 싶은 책, 시집같이 가벼운 책을 버무려 가져가야 하네요. 열차안에서 읽고싶은 책은 아끼고, 가벼운 책을 들었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을 가져다닐 때보다 한결 책을 대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수월하더군요. 

 

4.4 돌아와 크로포트킨의 유년을 읽다 잠들었습니다. 유년의 암송 공부...풍요로움의 저장고 같기도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 베버, 케인즈...등등을 보면 부유와 앎의 증폭이 세상을 쫓아가지도 않으면서 쉬이 주무를 수 있는지 하는 부러움과 질투, 시새움이 은근히 스며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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