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들
사회주의는 태동 단계부터 생시몽, 푸리에, 로버트 오언으로 대표되는 3개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생시몽주의는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했고, 푸리에주의는 아나키즘이 되었으며, 오언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노동조합주의, 협동조합주의 및 자치사회주의로 발전했다. 국가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를 적대시하는 오언주의는 많은 점에서 아나키즘과 일치했다. 그런데 그들은 세 운동이 서로 다른 길을 통해 공동의 목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자의 두 가지 역시 인류의 진보에 귀중한 공헌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회민주주의적 형태의 노동운동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25년 동안이나, 헛된 노력을 기울여 왔다. 492
지식인의 한계
- 추상성과 구체성,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소통
훗날 나는 농민들에게 사회주의사상을 선전할 때 나보다도 훨씬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농민이나 시골 출신 노동자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앗다. 소위 '민중적 언어'를 많이 쓰면서 '농민의 말'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민중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만 빌려왔기 때문이다. 농민과 대화하거나 농민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러시아의 농민도 외국어만 잔뜩 쓰지 않는다면 지식인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농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평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은-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과학적, 사회적, 자연적 총체에서 추출된 일반화가 아니다. 이것은 만국공통의 진리이다.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점은 일련의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다. 지식인들은 처음 한 두 번은 인내심을 가지고 농민과 대화한다. 그러나 그 다음 번부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166-167
어린아이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추상적으로 배운 것을 실제로 응용해보고 싶어 하며 습득한 지식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는 구체적인 응용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어리석은 교육자들은 이런 사실을 흔히 간과하곤 한다.
프랑스 혁명과 교훈
노동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빼앗지 않을가 하는 공포 속에서 두 달을 보낸 프랑스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에게 복수했다. 혁명의 수행과정에서도 살아남았던 노동자들이 싸움이 끝난 후 대규모로 학살당했다. 그 수가 무려 3만 명이었다. 노동자가 소유의 사회화에 첫발을 내디딘 의미를 인정하더라도 보복이 남긴 상흔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다. 인류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충돌이 불가피하고, 시민 전쟁이 특정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이었더라도 적어도 막연한 열망이 아니라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충돌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폭력투쟁은 부차적인 문제다. 충돌의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상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했다. 그래야 충돌의 마지막 국면에서 총과 화기보다 창조적인 힘에 의해 재건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심지어 변화를 반대했던 계급에게도 동의를 얻는 수준 높은 작업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이와 같은 광범위한 사상적 동의 위에서 행해지는 충돌은 양쪽의 희생자 수를 훨씬 줄일 것이다. 369
인터내셔널의 근본적인 문제
마르크스 파와 바쿠닌 파의 갈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연합주의와 중앙집권주의, 자유로운 공동체와 국가의 가부장적 지배, 민중의 자유로운 운동과 입법을 통한 자본주의 개선, 남부의 정신과 독일 정신의 충돌이었다. 전쟁에서 프랑스를 패배시킨 후 과학, 정치, 철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던 독일은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공상주의자'로 몰아세웠다. 1872년 열린 국제노동자협회의 헤이그대회에서 런던평의회는 위선적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바쿠닌과 그의 동지 기욤, 심지어 쥐라연합까지 제명시켜버렸다. 그러나 아직 협회에 남아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의 연합 대다수가 쥐라연합을 지지할 것이 확실해지자 대회는 협회 자체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474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데 쥐라연합은 거대한 역할을 했다. 나는 좋은 환경에서 아나키즘은 지금까지 인문과학에서 사용해 온 형이상학적 방법이나 변증법적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철학이었다. 나는 아나키즘이 자연과학과 동일하게 다루어져 왔다고 본다. 490-1
올바른 사회적 전망을 위한 매체전략
사회주의신문은 단지 현 상황에 대한 불평의 연대기로 그치는 경향이 있었다. 광산 공장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 파업할 때의 노동자들의 참상과 고통, 고용주에 맞선 투쟁의 불가항력만 나열하면 독자들에게 심한 절망감을 심어주기에 알맞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신념을 고취시키려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혁명적 신문은 무엇보다도 곳곳에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형태의 사회생활이 도래하는 징후, 그리고 낡은 체제에 반발하는 저항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징후를 보여주면 머뭇거리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진보적인 사상이 부활할 때 무의식중에 진보적인 사상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에 약동하는 인간의 심장박동, 오랜 부정에 대한 반역, 새로운 형태의 생활에 대해 공감하게 하기 위해 이것은 혁명적인 신문의 중요한 의무가 되어야 한다. 혁명을 성공시키는 것은 희망이지 절망이 아니다.....올바른 사회적 전망은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의 징후에 주목하지 않으면, 산재한 우연적인 요소들을 조직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반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506-7
활동과 돈
나는 진보적인 정당들이 돈이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팸플렛 작업을 한 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주된 어려움은 돈의 부족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전전하고 다른 사람을 고취시키는 '사람'의 부족이라고 설득하게 되었다. 우리는 1면에 후원금 모금을 호소하며 21년간 발행을 계속해 왔다. 510
뱀발.
1. 밀린책을 주말에 오고가면 읽다. 57세때 잡지사에 1년간 연재한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과정과 생각을 너무도 쉽게 전달받아 오히려 낱개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 출렁거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진리는 너무도 쉬운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세상은 이론의 난무를 벗어버리고 무구하게 주춧돌이 과연 제대로 서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시고 있는 것들을 누구나 다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순진해지는 것이 또 다른 한걸음을 딛게 만드는 것을 아닐까? 자본주의와 시도한 사회주의의 사이 가야할 무수한 길이 정글처럼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길에는 아직 이정표가 있을까? 그 길에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길에는 또 다른 삶과 일상이 있을까?
2. 어리석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존스튜어트밀, 베버, 러셀, 케인즈의 일생과 삶은 천재이기 이전 부유함과 삶, 교육방식, 문화의 응축 등 그들의 전방위 관심사와 기여를 너머 장조의 활달함이 세상을 또 다르게 바꾸어내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