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과 목포의 거리이름이 일상의 심미성에 미치는 서설 연구(ing)

고객은 왕이 아니다
- (생협일터) 호칭의 변화로 만들어 보는 또 다른 이정표

 

문화공간 상상, 연구공간 수작  연구원 000

 

초록

 

소비자는 왕이다. 소비 지상주의의 중독은 모든 관계를 상품과 나로 환원한다. 물건 외에 다른 관계는 묻지도 보지도 않는다.

 

착한 소비만 볼 것이냐? 이것 역시 자유롭지 않다. 소비일뿐 착한은 곁눈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착한 소비로 안심이다. 나머지는 관심없다.


소비라는 깃발이 남긴 잔흔은 깊다. 승리의 쾌감은 짜릿하다. 주인이 되어보는 쾌감, 순간 귀족이 되는 관계의 역전. 종업원, 하인?, 소비만 탐하고 누리는 생산의 저편과 주변의 생태를 응시하지 못하는 아둔함을 문화란 방법으로 균열낼 수 없는가? 아주 자그마한 시작을 해볼 수 없을까?

 

 

열자


선행연구 [포항과 목포의 대로이름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언어경관이 우리의 무의식에 관여하며, 문화적 자산이나 자장에도 파급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보았다. 이번 짜투리 연구에서는 보다 직접, 물리적으로 관여하는 호칭으로 들어가본다. 아무것도 아닐까? 아니면 어떤 역할을 할까? 어떤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 적용해볼 만한 곳이 없을까? 한번 생협을 문제제기 해본다.  한참 뜨고 있고 잘나가는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석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조합원들의 잦은 왕래의 원인이 소비와 경제적, 건강에 대한 이익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혹시 문턱을 두어 소비만이 아니라 좀더 다른 문화적 장을 만들거나 낯설게 해서 잠시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른 사회문화의 장도 고려해볼 시점이지 않겠나 싶어서이다.


먼저 호칭이 왜 중요한가를 호칭의 인문학이란 만화로 살펴본다.
 

 

 

 

 

 

 호칭의 호불호를 넘어서 한번 새롭게 만들고 나누는 경험은 어떤가?  동호회의 아이디나 별칭이 위계를 무너뜨리면서 서로 호흡하는데 일조를 하였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몸을 부대끼고 있거나 돈벌이라는 조직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한 근거를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만화가 가볍다는 느끼는 분들을 위해 연구논문을 뒤적여 보자. 호칭과 연관된 외연을 어디까지 사고해볼 수 있을까? 
 
사전검토: 호칭이 가질 수 있는 함유와 잠재력


[이름이 사라진 공간, 학교] 김희옥은 하자센터의 사례를 들면서 청소년들이 번호로 불리는 현실에서 교장,선생님, 아이들 구분없이 별명으로 부르는 관계를 살펴본다. 가족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는 이름이 발붙일 곳이 없다. 그렇다고 비인간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조차 불릴 수 없는 관계에서 호칭이 필요하고 그것이 청소년들에게는 특히 더 자존감을 불러 일으키는 주요한 기제라고 한다. 5)


송현 한국호칭연구회장은 호칭은 현관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한다. 최초의 문을 열지 못하면 안으로 한발도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호칭은 중요하며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하며, 종업원이나 환경미화원에 대한 하대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을 개탄하기도 한다. 선생님이란 호칭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고급스럽기때문에 잘 쓴다고 한다.6)


[독일어 호칭의 시학]에서는 독일의 호칭변화를 연구했는데 호칭은 대화의 틀을 마련하는 일차적 기능인 언어적 기능과 대화 당사자간의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사회적기능이 있다고 한다. 호칭의 시적 사용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19세기까지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다른 호칭을 사용하였고,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는 이에 상관없이 사용하였다고 하나 심리적인 거리가 있는 의례적인 관계나 심리적인 변화가 호칭 속에 드러나는 것을 밝히고 있다.1)

[불어와 슬라브어의 호칭에 관한 연구]에서도 인간관계나 권력, 결속력, 거리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2),3)


[조선시대 언간 자료의 부부 호칭의 변화를 살펴본 연구]에서는 남편->아내의 호칭으로 '자내, 계, 계셔, 마누라'등이 관찰되며 일반적으로 '자내-하소체 종결형'에서 '게셔-하압류 종결형'으로 옮겨갔다고 하며 19세기 언간에 궁중의 높은 인물을 지시하는 '마노라'가 '마누라'로 극존대의 종결형과 함께 쓰인 예가 발견된다고 한다. 아내->남편의 호칭으로는 '자내, 게셔, 나으리'등이 관찰된다고 한다. 16세기 언간에는 '자내'로 대등한 호칭과 화계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고, 17-8세기에는 차등적인 화계 사용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19세기 언간에 나오는 '나으리'는 당하관을 지칭하던 '나아리'가 남편을 초칭하는 데 전용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4)


여러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호칭은 시대적으로 보거나, 지금 여기로 살펴보거나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호칭은 새로운 위계나 관계를 만들어가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역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 신분적 계급은 호칭을 고착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변화가 역으로 호칭의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넓고 큰 공간이 아니라 작은 공간에서 호칭의 변화와 강제가 위계가 있는 문화나 소통의 벽을 많이 허물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호칭은 권력, 사회적 관계, 친밀감을 두루 드러내기도 하며, 오히려 사회문화적 관계도 만들 수 있음을 연구논문들은 지적하고 있다.

 

소비를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소비 협동조합들은 여러가지 상황을 두루 판별할 줄 아는 조합원으로 이뤄진 경우는 많지 않다. 경제적인 손익이나 가족의 건강한 먹거리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처음의 시작이자 접점인 매장의 사회적인 시도와 모습은 응당 받아야할 고객은 왕이다. 소비가 능사라는 관점을 흔들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협이 지향하는 착한이라는 꼬리표는 소비에 잠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적 권리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권리를 지향하는 문턱을 만들어가는 작업과 새로운 사회문화적인 자본이 생협의 울타리 안에 고이게 만드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생협일터, 서로 어떻게 부르고 나눌까


조합원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 불편한 대안공간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누려야 되는 권리로서 소비자가 아니라 그 대안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손수 품을 팔고 해야할 일이 많은 공간 말이다. 그 수고로움으로 인해 뿌듯한 공간들이 많다. 자본의 역발상으로 굳이 찾아가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소비공간들을 편의점과 대형마트와 같은 선상에서 사고하는 것이 몸에 배여있다. 소비를 넘어서 다른 문화의 습속에 배이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해라라고 사례를 제시하고 싶지만 여백으로 남겨두거나 후속연구로 남겨두려 한다.  단지 의도만 명확하게 해두고자 한다.


 

호칭만이 아니라 호칭으로 여는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위한 시도는 생협의 조합원의 사회권, 노동권, 문화권의 변화를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로 읽혀야 한다. 맥락은 무시한 채 별명만이 난무하는 상황도 호칭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존 소비업체와 다른 생산자와 조합원들이 생태를 두루 고려할 줄 아는 감수성의 출발매체로서 다시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창구, 독일어 호칭의 시학
2. 김예숙, 불어의 호칭에 관한 연구 -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3. 정정원, 슬라브어의 호칭체계 - 권력, 결속력, 거리감의 상관관계
4. 황문환(2007), 조선시대 언간 자료의 부부간 호칭과 화계, 장서각 17집
5. 김희옥, 이름이 사라진 공간 학교, 하자센터
6. 송현, 호칭문제연구소장 특강자료
7. 호칭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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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3-03-1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호칭은 너무 어려운 문제에요. 일단 저는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누구는 의사선생님이고 누구는 수위아저씨인 게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이걸 너무 어색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어서 고민입니다.
우리 회사 동료 하나는 모든 분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장님이 될 수 있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이라나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과 '사장님'을 적절히 섞어서 쓰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참 쉽지 않네요.

여울 2013-03-15 09:02   좋아요 0 | URL
저는 주로 후배들에게도 존대를 하는 편인데....받아들이는 후배들이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말을 놓게되면 생각까지 하대를 하는 경우가 생겨 조절을 하는 편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렇지 않아, 가끔 섞기도 하고...애매한 경우가 많죠. ㅎㅎ. 호칭을 새롭게 만드는 가정을 하는데, 별칭도 권위적인 조직문화에서 먹히기가 힘든 것 같아요. 뭔가 방법이 있을텐데 생각하고 있는거죠. ㅎㅎ 두서없이 길어졌네요. 저도 샘이 좋아요. 선생님도 말에요. 식당에서는 무조건 사장님 하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