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운동의 과제와 방향_사람중심-건강우선-건강형평사회

 
 

  보통의 경우라면, 이 책의 저자 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은 '사랑의 리퀘스트'나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출연했어야 했다. 그 어렵고 힘들었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투병 생활, 가족과 친구의 사랑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간 인간 승리의 사연은 TV 앞에 앉은 우리들로 하여금 아직 꺼지지 않은 자신의 인간애를 확인하며 기꺼이 ARS 번호를 누르게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에 훈훈한 감동의 댓글을 남기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쁜 피를 가졌던 나. 수시로 많은 사람들의 피가 필요해서 수혈도 받지만 정작 자신은 헌혈로 피를 함께 나눌 수도 없는 나. 피를 나눌 수 없다면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그는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대신, 자신의 피를 나누지 못하는 대신, 건강과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연대의 소중함을 나누는 '활동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병원 드나드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할 책
  
▲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강주성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2007). ⓒ프레시안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프레시안북 펴냄)는 그가 골수 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고 난 뒤 2001년부터 계속해온 건강권 운동의 직ㆍ간접적 경험을 정리한 '보고서'이자, 제목 그대로 의료 이용자를 위한 일종의 '설명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건강에도 형평이 있다'에서는 건강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이 책의 전제가 되고 있는 건강권의 개념을 소개했다.
  
  제 2부 '병원이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사례 중심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움을 먼저 겪은 선배 환자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제 3부 '우리들이 만드는 희망 의료'에서는 현재 한국 보건의료 체계가 처한 위기와 나아갈 방향들을 모색하고 있으며, 제 4부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똑똑하고 알뜰하게 의료이용을 할 수 있는지 요령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 따라 그 의미와 쓰임새가 다를 것이다. 우선, 환자와 그 가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일단 굉장히 쓸모 있는 실용 서적이다. 그 자신이 생사를 넘나들며 누구보다도 잦은 병원 출입을 했고, 또 '백혈병 환우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서 같이 했던 베테랑(?) 선배 환자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처방전은 왜 두 장을 받아야 하고, 불법 청구된 진료비는 어떻게 찾아야 하며, 좋은 동네 약국을 찾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생활의 지혜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어떻게 이 복잡한 의료체계를 헤쳐 나가야 할지 가르쳐줄 뿐 아니라, 각 개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운명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 그것이 일부 악덕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의 일탈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제도와 체계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즉, 나 홀로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방법을 넘어서, 건강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고 작은 실천부터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혜택도 별로 없는 건강보험료 내기 싫으니 차라리 원하는 사람만 민간 보험 들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주변의 흔한 푸념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것인지, 우리는 그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
  
  불편한 '진실' 담은 교과서
  
  하지만 보건의료인, 특히 병원 관리자나 의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불쾌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편향되어 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나 정부에 편향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약자였던 환자의 입장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렇기에 보건의료계는 저자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의사들은 이 책이 불합리한 보험 수가 체계와 규제 위주의 정부 정책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을 의료계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억울해 할 것이다.
  
  혹은 전문적인 판단에 근거한 진료 행위를 비전문가인 저자가 함부로 속단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 의사나 병원의 불법 청구가 불합리한 수가 체계 때문이라면 의료계는 국민들과 함께 그걸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일이지, 그 손실을 (심지어 환자 모르게) 환자와 가족들의 주머니로부터 보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 1만 원짜리 슈퍼마켓 영수증에도 품목과 가격이 상세히 기록되는 마당에, 수백만 원, 수천만 원짜리 진료비 영수증에 상세한 내역이 기록되지 않는 것은 분명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다.
  
  저자가 의사들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그는 보건의료인 '개개인'과 공통의 이해를 갖는 '집단'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의료계에 대한 자신의 비판이, 그동안 자신의 주변에서 그 누구보다 환자 진료에 열심이었던 훌륭한 의사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양약은 입에 쓰다 했다. 의사와 의대생이 부디 이 책을 읽고, 부당한 체계의 소모품이나 낡은 체계를 수호하는 용병이 아니라 진정한 전문가로서, 환자들의 권리와 보건의료인의 전문성, 자긍심을 동시에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
  
  백혈병 환자의 세상 구하기
  
  마지막으로, 보건학 연구자로서 나는 이 책이 고맙고도 부럽다. 만일 내가 썼다면, 이 책은 복잡한 도표와 어지러운 숫자들, 혹은 영어 논문 인용 표시가 가득한, 난해하고도 딱딱한 보고서가 되었을 것이다. 예상컨대, 아주 인내심 있는 독자 아니라면 대부분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이토록 쉽고 생생하게 설명하는 그의 능력이 부럽고, 또 연구자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물론 이른바 업계 '전문가'로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예방 접종의 효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저자가 밝혔듯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 '민영보험'보다는 '사보험'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 비추어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작은 부분이며, 그동안 당연시되던 것,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책의 미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이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장차 환자가 될 수 있는 누구나가 읽어보아야 할 생활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료 현장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들이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과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보아야 할 마음 불편한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읽어보아야 할, 진정한 풀뿌리 투쟁의 역사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아파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 눈을 갖게 된 한 백혈병 환자가 그토록 나누고 싶어 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자, 당신은 그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명희 을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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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과 현실의 경계 = 전염(作)

기획의 말
중독 권하는 사회 - 중독의 이율배반 / 김현철

테마
테마 1. 대통령들의 취임사, 국가를 앵벌이하다 - 국가중독 / 고지훈
테마 2. 소원함의 폐기와 친밀성의 중대 - 접속중독 / 송종현
테마 3. 문화 현상으로서의 일과 소비 - 일중독 / 강수돌
테마 4. 종교와 근대적 자아의 대립 - 종교중독 / 장석만
테마 5. 사상, 연애 그리고 유행:한국 근대의 중독들 / 이영아
테마 6. 멜랑콜리, 그 우울한 에너지:서양 미술에 나타난 중독 / 김연희
테마 7. 채워지지 않는 정신의 갈증 - 중독자를 위한 변명 / 강신욱

 

0.  책을 받아든 순간이 한달쯤 되었을까? 배판이 스케치북처럼 큰 의아함, 주제와 글이 분간이 되지 않는...어~ 요즘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어제 마저보니, 의도가 내용에 비해 너무 진도가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포스트386?, 스타일이 너무 포스트모던?하다.

1. <중독>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소통>, 소문=소통+문화라는 말꼬리에도 관심이 있었으니, 일견 생각꼬리는 통한 셈이다.  따로 묶어 살림책으로 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개인적으로도 일중독에선 나름 벗어난? 것 같은데, 접속중독엔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궤를 같이 하는 일상인의 한사람일뿐,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2. <국가-접속-일-종교-사상-연애-유행-(주식-도박-섹스)->를 꼬치 꿰듯 수평으로 중독이란 표현으로 걸어놓는다.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상실감을 얻기위한 발버둥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그 상실감을 다독거릴려고 시작한 것이 제 몸을 앗아가 본마음과 따로 노는 일이 생겨버린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까? 그런 면에서 일견 천박한 자본주의사회를 살아내는 우리는 아무리 아니라고 애를 써도 중독자이다. 그 그물의 한꼭지에는 걸려있다.

3. 내가 자본가라면, 돈 좀 벌어볼 요량이면, 소비자가 중독되는 것이 필요하다. 쇼핑중독이 될수록 많이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중독이라는 구덩이는, 아니 우물이라고 하자? 옆의 우물에서 일어나는 중독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끊임없이 마음과 몸의 갈증을 채우려는 발버둥은 깊숙이 매몰되는 일만 생기니 말이다. 함께 지금이나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반면 매력덩어리이다.

4. 현실이라는 땅덩어리에서, 지표면에서 끊임없이 중독이란 우물을 파내려가는 일, 그리고 애초의 출발점, 모두가 연결된 지표면, 땅위의 연결지점을 고려하지 않는 현실. 문화적인 해석의 하나로 , 아니 역으로보면 자본이 사물만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나 과정을 상품화하는 전략이 매섭게 느껴진다. 중독의 흔적을 쫓다보니 모두 과정이나 관계가 상품화된 셈이다. 과정을 다루려하지도, 보지도 않거나, 볼 수도 없는 활동의 시선에서 보면 엄청난 진화?가 아닌가 싶다.

5. 현실과 유리시키는 일이, 통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일련의 흐름,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집단무의식이랄까? 접속은 더욱 더 쉬워지지만, 문자로도 네트워크 공간으로 점점 소외의 원심이 커지는 아이러니,이율배반은 현세태와 중독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6. 그런면에서 보면, 과학의 위기, 기술의 위기, 철학의 위기, 종교의 위기, 문학의 종언이니, 도덕의 위기, 윤리를 문제삼는 모든 것이 같은 궤는 아닌가 싶다. 현실을 토대로 각기 자란 나무들이 모두 제 나무의 인식에 맞출 것을 강요하고, 교언영색하지만, 현실이란 토양은 자본이란 문화의 흐름으로 썪을대로 썩어가는 것은 아닐까? 밑둥이 썪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과학-기술-철학-종교-문학-예술-**과학이라 이름짓는 부류는 현실과 유격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7. 중독이란 나무나 우물을 밑둥을, 출발점을 따지다보면, 온전히 서 있는 자아와 너무 넓어 끝도 보이지 않는 현실은 아닐까? 통으로 본다면, 과도 성장한 제 색깔의 나무가 현실을 기름지게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분절하여 진도가 나간 덕에, 몸과 마음이 사이가 벌어져 제한몸 추스리지 못하는 자아와 현실에 응시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8. 여럿이함께늘 같이 있는 것을 마치 아닌 것처럼 이렇게 따로따로 떼어논 것이, 따로따로 가상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문제의 단초는 아닐까? [국가-접속-일-종교-사상-연애-유행-섹스]에서 유행을 빼내버리면 별일이 없는 것일까? 나-너를 관계짓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촉구하는 이런 일이 합당한가? 어찌하다 미시만 난무하는 현실은 거시라는 틀을 복귀시킬 여력은 있는 것일까?

9. 하루하루 중독의 니코친과 카페인으로 연명하는 생활인에게 가당찮은 일인가? 연애,패션,알콜로 연명하는 일상은 안녕할 수 있을까? 관계중독, 회수-양으로만 만족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모임-계급-집단-사회 중독의 틀, 단위가 커지면서 또 다른 되돌아봄이 필요하겠지만 공통된 것은 정신없이 가고 있는 스스로 자각이 새로운 출발이란 점은 아닐까?

10.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당신 한점을 천개로 뿔뿔이 갈래찟고 나누는 것이 이 사회와 문화와 습속....자본이란 흡인력... 아니면 당신 한점을 키우는 일..천개의 선의 고리를 풀어내는 일, 아니 우리 한점을 키우는 일... 우리 한점을 연결해내는 일...공진화한 자본의 빨판의 CPU를 갈아치우는 일..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란 흡인력으로, 새로운 관계란 흡인력으로... ...우물 사이를 관통해서 연결짓는 일, 중독자 모임의 허전함을 공감하는 일...또 다른 우물을 연결짓는 일...그렇게 연결하다 현실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  많이 알수록 모르는 헛똑똑이들이 문맹을 통탄하게 하는 일...

11. 중독의 근저에는 강자와 동일시하는 현신이 큰 문제라한다. 황우석에 치이고, 디워에 치이고, 이명박에 치이지만 문제는 그가 나라는 착각,  나는 택시운전사, 자영업자이고, 일터의 직장인이고, 학생이라는 존재에 생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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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놓고 참* 워크샵에 푸욱 생각과 마음을 담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터 일이 토요일 오전까지 비집고 들어왔네요. 질문꾸러미를 듬뿍 가져온 학생 덕에 보람있는 자리는 되었지만, 워크샵의 여진이 남아 이렇게 남깁니다.

 논의를 이어가다보니 슬슬 생각낙서를 하게 됩니다. 일들이 매트릭스처럼 촘촘해지는 것도 느껴지고 굵직굵직 가닥을 잡으며 보일 듯도 하더군요. 하지만 슬그머니 생각은 다른 길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물, 제법 틈실하지만 매트릭스 그물을 오무려봅니다. 그물코처럼 걸려있는 일들이 겹칩니다. 또 위쪽으로 오무려봅니다. 서서히 일들이 겹치고 공모양으로 겹치고 촘촘해졌습니다. ㄱ란일, ㄴ이란 일, ㄷ일이 겹치기도 하고, ㅁ홀로 있는 일들도 있고, 하지만 공처럼 모아 놓으니 중심을 모두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심을 갖게되고 중첩된 일이 제한된 힘을 바탕으로 통통 튀겨봅니다. 어느정도 힘을 가지게 될지? 아니 눈덩이로 해볼까요? 구르면서 얼마나 눈을 더 묻히게 될지? 함박눈인지? 싸락눈인지 아직 모릅니다. 대중의 설원에, 대중의 바다에, 주민의 설원에, 주민의 바다에 아직 닿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법 힘도, 시선도, 마음도 모음 일-시선의 공을 물방울을 던져봅시다. 나뭇잎 끝에 살며시 잔잔하기만 한 수평면에 살포시 놓아봅시다. 과연 마음을 매개로한 원심을 가지고 스며들고 전달될까요? 퍼져나갈까요? 한번, 두번, 파고는 점점 멀리가나요. 이번엔 파란 물방울을, 다음은 갈색 물방울을 , 그리고 또 다른 색깔의 응축된 물방울을 살며시 놓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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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사업도 좋지만, 호수위 잔잔한 물결같은 대중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리게 할지? 흔들린 마음의 파고가 얼마나 원심을 가지고 퍼지는지로 부족하거나 넉넉한 것은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조급해도, 급해도 , 요란을 떤다고 되는 일도 아닐테고. 생각이 낙서를 여기저기 만들어 놓칠까봐 남깁니다.(사진, 엠파스 <물방울> 검색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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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하게 움직이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유격은 사실과 욕망의 차이, 현실의 사이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시야는 늘 안개처럼 혼미하며, 가리고, 신뢰를 두는 것은 언제나 이미지일 수 있다. 영상의 과잉은 현상에 대한 재고의 여지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문자의 간극은 그래도 균형점을 주는 것인데도...

"세계인구의 약 1/6이 기아선상에 있고, 그 기아선상에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 경작가능지가 사막화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앞에 서면, "아프리카에서 1970년대 이후 43차례의 전쟁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 일이다. 자본의 증식 속도만큼 반대편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2.

이렇게 사실이 아픔으로 마음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방법으로 토해내는 것은 아닐까? 의무감으로 단체에 가입하거나, 일반적인 생활패턴의 변화로 고기를 줄이고, 커피를 줄이고, 소비자로서 구매자로서 역할을 개인의 차원에서 고려해보는 일, 바꾸어가는 일. 하지만 단체에 가입하여 지원하는 경로까지에 대해, 그 한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주는 것일까? 고기를 줄이는 일로 대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조감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커피를 줄이고 또 다른 일을 하는 것에 그만큼 다른 곡절이 나타난다면 어이할 것인가?

아픔이 개인적인 수준의 앎이나 양심을 어루만지는 일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남보다 낫다고 하는 양심의 우위도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일은 대단한 시작이면서도 나머지에 대한 사고를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아닐까? 제도나 시스템의 차이, 여러가지 도덕, 의무의 아이러니를 가져오는 상황에 다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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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아프다

                                                                                      길상호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떄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 없이 떠들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네가 없어도 나는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녘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낙엽. 모르는 척, 아프다.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괜히 본 영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랑마저 말라버린 세상,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이지만, 감전된 사랑이라는 것, 모르는 척, 모르는 척해도 인연이라는 것이 아파오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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