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한해의 마무리는 <저 낮은 중국>으로 맺는다. 김우창님의 <지상의 척도> 가운데 산업화, 시와 관련된 몇편도 이어 읽힌다. <기후변동>도 깊이가 있고 궁금해하던 최근 흐름들이나 지난 기억들을 되돌릴 수 있어 의미있다. 그리고 <소리없는 정복>은 기업과 자본의 흐름에 대해 적어 놓아 지난 해와 올해를 잇는 흐름으로 잘 맞는다 싶다.
1. 산업화, 아니 표현을 달리해서 자본화라고 하자. 자본은 필연으로 소외를 동반하는데, 상품으로 인한 소외와 인간 소외이다. 물건은 물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아우라)와 삶에 대한 삼투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이는 사진이 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연유기도 하다. 이 시대는 사건이 없는 시대이고, 개인이건,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것이 오로지 분위기로 만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한 구매만이 있기에 산 물건이, 상품이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힘들다 한다. 복제의 시대엔 이렇게 충족될 수 없는 욕망과 외화된 상품만이 만연하기에 마음도 만족감도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2. 동남아시아, 저 낮은 중국은 산업화의 물결을 고스란히 대물림하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과 미디어로 반복되는 메시지는 순박하기만 한 일상을 끊임없이 충동질한다. 무작정 상경이나 무작정 가출이나, 무작정 철거나 분위기를 가진 모든 것이 허망하게 마치 없는 것처럼 버려지고 만다. 소비해야되고 충족될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
3. 인신매매, 마약, 다방. 인력거..어찌 그리도 한결같은지? 철거민은 마음 둘 곳이 없다. 겨우존재하는 열외자에겐 아무런 시선도 대책도 없다. 개똥철학으로 내면화된 머리는 여전히 꿈과 욕망을 쫓는다. 마약으로 하루를 연명하여도 세상을 합리화란 내면으로 다져져있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긴 그림자를 남기는 이런 것에 대해 대책도, 목소리도, 관심도 없다. 더 큰 그림자가 더 빠른 속도에 길게 드리워질 뿐이다. 구매와 거래, 단순한 물품교환의 관계는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아주 조금 그때를 그리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