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이 아니고 곡선이거든,

돌고 돌아, 작은 마을을 감싸고 흐르려무나.

부드러운 직선도 아니고 부드러운 곡선~ .

부드러운 곡선으로...

작은 불씨 작은 마음들도, 자아근 아픔들도 챙기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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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셀브르 도자기 展 마실...(作)
    from 木筆 2008-08-06 22:33 
       상가집을 다녀온 뒤, 작정 좀 하고 읽을 것 좀 준비를 하려는데, 칙칙한 더위와 몽롱한 습기에 어질어질 한다. 좌탁을 꺼내고(밥상이다.) 영화구경차 몽땅 나가버린 빈 거실. 설겆이를 하고 나름 애를 쓴다. 도저히 이 상태로 지구력을 발휘할 것 같지 않아, 가벼운 달리기와 몸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힘들 듯하다. 이것저것 챙겨 완보에 가까운 달림이다. 흐느적거리며 몸을 조금 덥혀진 뒤에서야 샤워를 하고나서야 정신이 차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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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일상인데다가 건조한 책읽기만 이어져 가벼운 것으로 고른다. 아래 딱딱한 책들을 볼 때 야금야금 먹다가 네권은 돌려주고 [예술사란 무엇인가] 조금 남다. 잠시 짬을 내어 시립미술관 도자기전을 다녀오다. 다시 보고싶은 미련이 남는 것들은 사진으로 남겨두다. 내일쯤이나 올릴 수 있을 듯. 080620-21

  이책들과 아**미 자료실 관련논문들.

 

 

 

 

그리고 몇권을 더 빌려오다. 여전히 건조한 독서들이어서 야하고 호하는 책들로 고르다

 책읽는 명화들만 골랐다. 제목은 [책읽는 여자들은 위험하다] 이다.

 토지, 아래 책이 아니라 밍그적거리는 읽기...만화로 봐야하나... 오는 수요일 그냥 오시면 될 듯도 한데.....

  설명도 코멘트도 미뤄야겠다...촛불문화제에 간다....

 

 

 

아~  그리고 독립영화의 빼어난 수작 두편, 아니 세편을 보다. [적의 사과 apple] [십분간 휴식] 그리고 [너의 의미]... 흠잡을 곳이 없다. 연기도 구성도 모두... 단편치고는 무척이나 풍요롭고 뭉클하고 아름답다? ... 080621



적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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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2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초창기에 읽었습니다.
읽으시면 아시겠지만 '막사발'은 없어요.
일본애들이 국보로 떠받드는 다완이 조선제기 종류잖아요.
조선 도자기를 비하하는 표현인 '막사발'의 호칭은 이젠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래저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합니다.(따지는게 많아지므로 보수꼴통들은 피곤하죠.ㅎㅎ)

여울 2008-06-23 13: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도자기 관련 책을 보니 한쪽 다완이야기가 나왔는데, 어김없이 막사발이라고 하더군요. 님의 말씀처럼 발우...만나라의 발우 얘기가 인상깊었어요. 그런데 제목을 굳이 왜 그렇게 뽑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인상깊게 보았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읽고 있슴다. 가끔 생각도 번진다는 느낌입니다. 엊그제 제가 그 생각을 품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함께 품었고, 제가 이야기하자 다른 친구들도 그렇다구하구, 님의 별장에도 그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곰곰해보니,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책 품는 사람은 위험하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ㅎㅎ. 위험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잔뜩이네요....ㅎㅎ
 

- 이야기는 번지지 못하고, 계속 깊어진다.  군인아들과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는, 이 아이들은 예전과 너무나 다르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이 젊은이들이 절망에 근사한 것이 아니고 정치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를 뿐이라고. 어쩌면 연애하는 방식도 너무나 실용적이라, 그런 것을 보면 어른들보다 약싹빠르고 훨씬 진도도 더 나가있다. 사회적 관심에 다가서는 것도 그냥 그대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공간에 들어선 열정들때문에 아는 것도 그 열정으로 번져 풍부해지는 것은 아닐까? 사회와 관련짓는 방식도 엄면히 다른 것은 아닐까? 실용적이고 영악할 수 있지만, 지나친 우려가 아닐까? 열정을 지펴주는 일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삶과 어는 것 하나하나 구석구석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것은 아닐까?

- 그런 학생들의 열정과 삶에 대한 불안감에서 출발한 것들이 펼쳐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수다를 좀더 사회적인 공간으로 사회적 앎의 자리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은 외려 지금 우리의 책임은 아닐까? 오히려 주부와 학생들의 열정을 저 외딴방에 갇히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고 싶고, 알고 싶고...너무나 차분한 물결만으로 희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정과 사회적 앎과 아이디어가 만나는 도화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무도 되묻지 않는다. 좀더 그들의 가슴으로 다가서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꾸 뭔가 대행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멍석깔아주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들은 여러갈래길이 없는가? 모두 같은 땅떵어리에 같은 생각이나 느낌일텐데...망막한 가슴에 목축일, 시원한 냉수같은 일들을 너무 멀리서만 찾는 것은 아닐까?

- 거대한 물길이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물사유화한 남원을 에워돌고, 수입쇠고기 급식에 물의를 일으킨 강북구를 감싸고 돌고 작지만 샘솟는 작은 마을의 샘물들과 만나 더욱 더 새롭고 풍요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타는 듯한 가슴들을 촉촉히 적시며 느리지만 제대로 말하게하는 물길들로 퍼져  좀더 넓은 강에서 다시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를 한 예산군을 감싸안고 돌 수는 없을까? 삶의 문제로 품고, 새로움을 안고 흐를 수는 없는 것일까?

- 괜한 생각들만 맥주한잔에 깊어진다. 한번도 동네단위로 만난적 없는 사회단체사람들이 서로 만나 좋고, 구의원이나 구청에 대고 우리의 요구나 결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여서 좋고,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동네사람들과 더 의견도 품고 아이디어도 전의도 불태울 수 있어서 좋고, 튀는 사람들 있다고 하면 다음에 찍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사전 예방 관리할 수 있어서 좋고, 좋은 것 투성인데 굳이 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 시민사회단체나 정당, 그리고 상식선이 있는 분들과 지역문제로 돌리는 네트워크나 토론회를 하면 하는대로 좋고, 진전이 되면 진전이 되어서 좋고, 진전이 되지 않아도 않는대로 좋고... 그렇지 않을까? 시단위의 사고와 마을단위의 사고를 정녕 같이 가져갈 수 없을까? 학생들도 같은 것은 아닐까? 마을아저씨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등록금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녹아내다보면 달라질 거리는 없는 것일까? 접촉점의 시선을 조금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 눈높이의 수준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수준으로 낮출 수는 없을까? 가슴으로 낮춘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역으로 신자유주의로 머리만의 수준을 높인다고 매듭이 돌연 풍성해질까? 느끼거나 아파하는 만큼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행여 국면을 호도해서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조급함이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니겠지? 사회단체..회원들 좋은 사람들도 여전히 가슴높이에서 함께 느끼지 않는다면, 끌고 간다는 발상은 조금 키핑해주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해보고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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