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부분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카데미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도로시 크로포드 dorothy crawford  [바이러스의 위협] 인터뷰의 말미가 생각거리를 준다.  

"인간종의 유전적 다양성 덕분에 우리는 가장 참혹한 전염병을 마주치더라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답: 어떤 전염병이 오더라고, 감염되어서 앓게 되는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빙산효과라고 부르죠. 어떤 바이러스의 경우든, 역학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한 감염된 건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갖 비율로 존재할 겁니다. 독감의 경우도 분명 그렇고 소아마비의 경우는 그 비율이 어마어마 합니다. 

천연두나 바이러스가 생물인가 무생물인가하는 부분의 언급도 있는데 생각이 튄다. 마틴리즈, 정신병과 정신의학 코멘트를 먼저보다. 

 2.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의 저자다. 사진자료를 훑어보다. 고려시대 연리문 자기가 끌린다. 신안앞바다 유물도 그렇고 유사한 기법이 남는다. 조금 더 이어 보기로 하다. 

 

 

 

 

 

  

 3. 아무래도 너무 이분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디아스포라 기행으로 연재되는 이야기를 흘려 들어서인지, 조각조각 읽으며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겹친다. 루쉰에 대해 적절한 소개서가 없었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일본에 그렇게 왕성하게 소개되고 연구되는지 몰랐다. 루쉰에 대한 어설픈 단편 앎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슬픔, 죽음, 자살, 예술, 철학 전방위적인 물음표를 던지는 것 같다. 생명사상에 개인에 대해, 나에 대해 희망이 아니라 냉정한 절망의 버전으로 보는 법. 그래야 현실을 더욱 단단히 느끼고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너-나]의 물음표가 의외로 깊이가 얕고 그저 주류의 생각에 버무려져 있을뿐, 그래서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도 얕다. 얕음만이 회자되니 절망을 감싸거나 현실을 감아올릴 수 없다.  반틈 중동나고 있지만 매섭고 무서운 책이다. 

 

 

 4. 서언을 읽고 말미를 읽을 요량이었는데, 서언이 정리한 내용이 아니라 바로 본론이다. 그것도 1818년 한 강사의 이야기다. 말미 해석을 읽고서야 매우 논쟁적인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자 부르디외의 교육철학을 적용해 교육정책에 반영한 적이 있고, 그 뒤를 이어 공화주의자의 지적엘리트 정책이 정반대 교육정책으로 이어졌는데,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교육방법이나 교육철학이라고 하기에도 위험하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아*** 근대사 세미나 내내 잔영이 남을 정도로 여파가 크고,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음악...이 모든 것이 언어이고 즐겁고 고통스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 느낌을 소통하고 싶고, 그 느낌을 만들어낸 소통수단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모든 사람의 지적능력은 평등하다. 거기에서 출발해야...평등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 개인의 지적해방이 관건이다. 평등은 쟁취하여 준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보통사람 자신이 인간적 존엄함을 파악하고, 자신의 능력의 진가를 알아보고 쓰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진보적 사회주의자든 공화주의자든 앎의 통로, 소통의 능력을 차단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5. 위의 정신병, 정신의학과 겹치는 이야기인데, [권력의 병리학]과 겹쳐읽어진다. 

 

 

 

 

 

 6. 사회진화론, 애국계몽운동, 이완용, 안중근, 영화-시계-교회-신파극이 논의되다. 근대의 결절점 속에 들어와 있다. 신파가 유행한 것. 하층민은 그렇다치고 일제시대 흥청망청이었다고 한다. 조선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유곽과 술집이 넘쳐나고 세상은 어찌 돌아가건 상관없이 말이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역시 이런 모순적인 일상을 달래기에 적격이었고, 그렇게 흐물흐물... ... 일제면 어떻고 변신은 어떻고 돈만 최고라는 심보는 이완용의 변신과 닮아있다. 세상이 망가지건 말건, 비정규직이 되건말건 지금 당장의 내일이 아니니 지금을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무슨 고민이냐는...촛불 1년 함께하는 고민의 깊이는 얼마나 깊어진 것일까? 그대로 얼음처럼 얼어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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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극한,평등과 진리 그리고 지금 우리(酌)
    from 木筆 2009-05-11 23:37 
        >> 접힌 부분 펼치기 >> 지능은 타인의 검증을 거쳐 자신을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이성과 의지가 동의어이듯, 평등과 지능은 동의어다. 낱낱의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을 정립하는 이 동의관계는 사회 일반을 가능케 하는 동의관계이기도 하다. 지능의 평등은 인류를 이어주는 공통의 끈이자 인간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사진 네이버 하람) 

보리물결

난 보리밭을 지나면서 취한 척만 했을 뿐이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 거길 지나가는 들병이의 손목을 잡았음만은 시인한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보리밭에서 종다리가 날아올랐는지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종다리가 분홍 목젖이 보이도록 저렇게 공중에서 재잘대는 것은
그건 종다리가 노래하는 것이다
나는 보리밭 한가운데를 저토록 깔고 뭉개지 않았다
거기서 뒹굴지도 숨결이 거칠어지지도 숨을 포개지도 들썩거리지도
구름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보리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허나
오늘은 보리 까끌까끌 익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거니와
나 이번엔 진짜로 취해봐야겠다

신현정

>> 접힌 부분 펼치기 >>

뱀발.  

1. 차편으로 이동하면서 남도의 보리밭을 정신없이 보았다. 시립미술관의 신오감도 한편 보리밭의 직선과 직선무리의 곡선이 바람결에 실리는 모습은 숨이 막힐 듯하다. 보리밭 사이를 일렁이는 바람의 결과 변주는 잊혀지기 어렵다. 사진하나 구해와야겠다. 

2. 초식동물의 뿔, 풀. 그걸 먹고자라는 우리들의 상흔엔 벌써 뿔이 자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메이데이와 촛불 2주년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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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만에 일터산책공간으로 가는데 도마뱀녀석이 다른 곳에 갔는 모양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질 않고, 그때 파랑나비녀석에게 친구가 생겼는지 두놈이 노닌다. 손바닥낙서를 디카로 찍으니 손바닥이 아니라 팝콘처럼 부푼다. 고사리 새순을 쫓아가다보니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고 촉촉 귀엽고 리듬이 붙어보인다. 재미난 녀석들이다. 며칠전 본 철쭉의 꽃술은 말려있고 잎은 짙어진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뱀발. 나비도 노니는 것이 불쑥 커버렸다. 고사리도 손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장무장 큰 것이 벌써 장대하다 싶다. 090507  사진을 덧붙여본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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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몇주전부터 이 말이 생각주위를 배회한다. 냉혹하게 말하면 블로그에서 뿜어내는 향을 보면서 박제화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한줌도 전시만 될 뿐. 전람회의 그림처럼 그저 일상이 전시될뿐. 그 향은 번지지 않는다. 그 향은 인공감미료의 느낌만 낸다. 설령 그 틈을 비집고 나온 향기는 섞이지 않는다. 상가집의 향처럼 그저  

-1. 블로그가 개별자의 성처럼, 부드러운 점선이 아니라 실선의 영역내만 움직이며, 일상은 필터로 가공되어 전시된다는 느낌. 나르시스의 성에 갇혀 그 고민은 탈출하지 않으며, 설령 탈출하더라도 섞이지 않고 품어지지 않는다. 블로그가 숨쉬지 않고, 일상의 결이 한점도 섞이지 않는 방부의 나날이라면 

-2. 왜 일상의 날 것. 고민이라는 닻이나 결을 내지 못하는 것일까? 고민할 수도 없는 일상의 늪. 살아내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분투의 울음을 삭일 수 있을텐데. 방부처리된 일상은 균열의 틈조차 찾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공주의 삶, 왕자의 삶은 아닐텐데. 전시나 과시의 아우라가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진부함이란 것을 알 수 있을텐데. 

-3. 문제를 피해가거나 회피하거나 고민이나 다름을 나누는 연습도 경험도 없는 것은 아닐까? 너무도 강한 나의 공간은 접근금지라는 푯말이 서있는 듯. 너의 숨결이 섞이지 않는다. 나란 강박은 모든 너를 물과 기름처럼 뱉는다. 그래서 블로그는 성이다. 나만의 영역이다. 강건한 휴전선의 출입문은 없다. 

-4. 일상의 아픔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무감각과 고요에 숨죽인다. 담쟁이처럼 손을 뻗고 아픔을 어루만지며 한걸음 내딛는 것이 아니라 감미료 짙은 일상의 향에 한쪽 구석으로 몰린다. 대기중인 아픔은 여전히 저어 멀리 몸을 뒤틀면서 잊혀지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폐기된다. 

-5. 행여 이쁜 것만 교감되는 것은 아닌가? 슬프거나 아픈 것이 다독거려지거나 아플 것의 결로 스며들 수는 없는 것일까? 청각과 가슴이, 몸이, 촉각의 예민함이 발휘될 수는 없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보여지는 것만 등급을 나눠 추려진 것만 소통의 기미를 갖는 것은 아닐까? 

-6. 이쁘지 못한 것. 잘나지 못한 것. 한마디 말은 다 못하더라도 울컥거리는 것에 대한 명민함. 때로 그 나눔이 그 잔영이 깊고 긴 자양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블로거의 저축하는 성곽이 아니라 아픔에 겨운, 나누지 못하면 미칠 것 같은 절박들이 저지선을 뚫고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뚫고 나와 성곽의 그 무수한 표현도구가 나-너의 무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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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로거의 인문 (2)
    from 木筆 2009-07-24 10:38 
    1. 가끔 사람들이 그리워지면, 내 마음이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지? 몸이 썰물처럼 밀려나가고 마음만 온전히 남게 되면, 마음 속엔 온통 사람들이 머물고 있음을,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내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이 그렇게 사유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 이렇게 생각 속에서만 배회해서는 되지 않는 것이란 것. 2.  그런데 블로거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교차되지 않는 동선, 마음의 그림자만
  2. 서재 민주주의에 대한 잡생각
    from 木筆 2009-12-15 14:49 
    알라딘서재나 블로그에 대한 생각 #1. 내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블로그와 사람들의 유격때문이다. 사실 블로그의 정보보다 오프의 만남에서 정보가 훨씬 풍부하기때문이다. 기껏 시각의 활자로 대면하는 것보다, 사람을 볼 수 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 던 다른 면을 느낄 수 있기때문이다. 설명으로 부족한 무엇들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오프모임의 만남이 친하다는 주례사 기조의 격려로 흐른다면 이것 역시 혈연이나 지연에 버금가는 습속일 것이다.
 
 
밀밭 2009-04-3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건 아니지 싶어요. 증언자들에 따르면 향이 참으로 그윽해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다며 내 향인지 네 향인지 이젠 구분조차 어렵다 하더이다. 이상 큰밭에서 향기자였슴다.ㅎㅎ
 

blog.naver.com/nimbus707/10022093651 



-1. 슬로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몇달이 되어간다. 남도에 내려온 뒤, 이곳을 경계로 몇군데가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궁금증은 번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관광이나 돈산업으로 전락할 도정의 하나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그렇다. 일터 출장으로 대전을 들러 동료들과 이런저런 반가움을 섞다보니, 참여홈컴잉데이도 놓친다. 열차편으로 내려오는데 기차시간이 한시간 반정도나 남아 아이스커피 한잔하며 시간을 때운다. 그러다가 잡지 기사에 치타슬로가 다시 걸려든다. 

 0. 5만명이하, 먹고살거리가 있을 것, 5백km이내의 농수?산물을 먹어야 함.(궁금하시면 위 연결블로그 참조) 

1. 여전히 의심의 눈길이 가지만 궁금증이 조금 번진다. 5백km이내의 먹을거리. 5만명이하의 삶. 자립. 구미가 당긴다. 그래서 위 로고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달팽이 집을 타고 있는 아름다운 집들을 바라다보니, 달팽이 이녀석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아래에서도 올려다보고하는 낙서를 덧보태고 싶다. 

2. 전남의 4곳이다. 청산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보고싶은 곳으로. 그래서 위험하다. 신안, 담양, 장흥의 면들도 위험하다. 행정이 끼고 관광이 끼고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끼워넣는 행보가 겹치기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한 삶이 자본의 때가 덕지덕지 뭍을까 두려워진다. 

3. 소금하나로 5만명이 실직하지 않고 전통을 향유하며 즐기는 삶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현재까지 개인적인 상식으로... 

4. 5만명을 단위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둥바둥이 아니라...5만명의 따듯한 남쪽을 만드는 것이 과연 어려울까?  

5. 도시형인간들이 생각을 짜내 먹고살 도심의 치타시티, 마을을 기획해낼 수 없을까? 도심의 공간을 뻥튀기처럼 부풀려 5배가m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400km....40km의 공간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6. 평준화되고 획일화되고 어디나 같은 도시 같은 먹거리에 나름 느린마을만들기는 구미가 당긴다. 자본에 행정에 포섭되지 말고 마을의 힘으로 일어서는 능력이 자란다면...한번 꿈도 꿔보고 생각이 깃들도록 튀어보고도 싶은 것은 아닐까? 

7. 살아지는 것들, 삶에 밀려가는 장막의 의외로 별 것이 아닐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어둠이라고 장막이라고 생각만 할뿐 어둠 속에 보이는 실루엣을 선명히 하려는 노력들이 함께한다면 남쪽은 따듯한 남쪽은 돈도 명예도 힘도 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지는 것을 끝내고 살아가는, 살아오는 것들을 명료화하면 어떨까?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이 무한의 뺄셈의 개미지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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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렇게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마음도 몸도 서울로 향하지 않고 락향하듯 그렇게 자리잡은 남쪽에 둥지를 틀고 부풀려지고 생각의 거름이 풍부한 사람들에 섞여 공간을 균열내거나 다르게 산다면 당신의 재산은 따듯한 남쪽들의 물길을 돌리는 자양분도 종잣시험도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9.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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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4-3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번 이하 공감*200.ㅎㅎ
제 주변 사람들도 만나면 그런 얘기들을 나누곤 한답니다. 꼭 남쪽으로 튀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ㅎㅎ

여울 2009-05-07 09:41   좋아요 0 | URL
많이들 회자되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극단에서 극단까지. 그래야 현실이란 결을 이겨내는 방법의 힘이 조금이나마 생길 듯합니다. 아마츄어타이~ 란!!! 소릴 들으면 그렇찮아요.

극단과 극단사이는 다르게 색다르게. 그렇게 색 달라야 아주 조금 현실이 무엇인지 아는 힘이 생기는 것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