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st 박쥐 , 많은 사람들이 화면을 뒤로하며 느낌이 어떠했을까? 극장엔 몇 명되지 않은 관객들 중간에 참지 못하고 나가는 커플도 있다. 그리고 자막이 오르기 시작하자 불편함에 튀어나오는 말들, 어이가 없는 듯하다.

가끔 거추장스런 도식이나, 관심을 넘어서는 영화평을 보면, 어쩌면 영화읽기가 한 두시선으로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보는 층위야 보는 사람 마음이나 눈의 시선이 아니겠는가? 시선을 넘어서는 평들이야 본인도 읽는 사람도 부담스러울테니 말이다. 또 지나친 전문외래어로 일상적인 관람을 넘어서거나 상식을 넘어서는 발언이 거추장스러울때도 간혹있으니 말이다. 편한 시선들이나 되새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두세번의 관람을 요구할 정도의 바램이나 마음이나 노력이 담겨있다면 그런 평도 감수해야하겠지만 작품과 평으로 인한 오해들이 얻을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것도 피해가게 만드는 불상사는 줄여야겠다. 감독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거나, 과정의 굴곡에 별반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깊숙한 코멘트에 오히려 반감이 많은 편이다.

그나마 아주 조금 독서매체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조금 주변에 영상관련한 지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인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오독을 하기로 작정하고, 여러가지 평에 기대지 않고, 스쳐지나간 편린들로 나름 소회를 보태고자 한다. 다소 식상하기도 할 법하지만, 중간중간 의도된 대사들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독특하다. 그 짧막한 의도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뻔한 스토리일지 모르지만 설정과 흐름이 긴장과 대립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자신의 몸이 이브의 과실을 먹은 덕에 흡혈의 원죄를 갖게 되었지만, 끊임없이 고뇌한다. 성자로서 추앙받는 모습도 지속적 연극적 요소를 가지고 반복되는데, 사랑의 양가감정 속에선 더 더욱 자제력을 지탱하지만, 끊임없이 간접적이거나 양심적인? 흡혈을 하는 모습은 그래도 갈등이 담겨있다. 흡혈의 이유도 원칙도, 일말의 양심도 인다. 또 다른 테두리에 갇힌 태주의 가혹한 무한궤도는 이것마저 한점 희망이다. 사랑과 배부른 흡혈 양심의 흔적은 긴장하고 살인의 테두리를 넘지 않기위한 발버둥이 살아있다.

사랑의 양가감정으로 시작한 흡혈은 점점 일상으로 다가오고, 사랑을 빙자하여 직접적인 폭력의 행사도 정당함을 가장하게 된다. 사랑?하는 태주를 질곡의 무한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흡혈의 유혹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흡혈의 갈증은 거침없는 폭주를 지나 사랑의 양가감정조차 넘어선다. 태주에게조차 흡혈은 어김없이 엄습한다. 이미 흡혈의 본능은 자신도 사랑도, 다른 저지선도 모두 넘어선다. 하지만 이 성자를 일상의 무리들은 변함없이 따른다. 절름뱅이도, 눈먼 장님도, 그리고 이땅의 우수마발 모두 변함없는 성자와 성자흡혈의 피 한점을 맛보려는 필사적이다. 하지만 흡혈의 본능은 피한방울을 남에게 줄 수 없다. 양심도 사제도, 사랑의 감정으로 인한 양식도 피한방울 줄 수 없는 것이 흡혈의 본능이다.

이렇게 도식적인 화면은 정지하지 않고 흐른다. 흡혈을 흡혈하는 반전이라니, 흡혈과 흡혈의 궤도로 그렇게 새로 태어난 흡혈은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런 가책도,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상현의 흔들리는 모습이 오히려 위선적이다. 끊임없는 만찬이 시작된다. 흡혈의 본능은 질주한다. 사제의 모습도 성자의 모습도 없이 귀멀고 절름발이이고 이젠 가리지 않고 보란듯이 파행을 일삼는다. 저 겨우존재하는 것들의 갈망도, 목숨 한점도, 그 시선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행복고전의상실안에 벌어지는 그 화려한 만찬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도 귀도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그저 눈뜬 채 쳐다보기만 하는 라여사가 있다. 화면의 한쪽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응시하는 눈빛은 몸빛은 그나마 언질을 준다. 흡혈의 광기는 자란다.살인의 추억은 가위눌림이나 현실과 혼재한 그것이 흡혈과 우리의 숨통을 서로 압박한다. 눈물도 없는 흡혈은 서로를 내동댕이 치지만, 서서히 동터오르는 흡혈의 추억은 고흐의 구두를 닮은, 그래도 질곡의 무한궤도를 탈주시키는 그 구두만 온전하고, 여전히 그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시선에 초점은 또렷해진다.

오독이길 바라지만, 흡혈을 내내 돈(자본)으로 병치시켜본다. 그래도 근검검약한 돈(자본)의 탄생은 어김없이 추한 모습만 드러내는 현실이 아니다. 시대의 구도자이자 구원자이다. 이브의 원죄일지 몰라도 애초 이타적일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늘 떠받들고 우리의 불치병을 그 한점만 있어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이 모른다. 그 증식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을 닮았다. 점점 더 신선하거나 직접적인 갈취는 조금 조금 백주, 흰 페인트칠을 하고 형광등 불빛을 요란하게 대낮처럼 밝히 그 방안과 닮아있다. 그 백주같은 환한 방안에서 어김없는 야만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성자이고 사제이다. 내가 헌신한다면 그는 피한방울이라도 줄 것이다라는 착란 속에 있다. 흡혈박쥐의 밤의 세계, 서로의 피까지 남김없이 빨아먹으려 덤비는 것은 지금을 닮았다. 조금조금 한방울의 피마저 핥아먹는 흡혈의 모습은 지금과 너무 흡사하다. 그나마 암울하지 않은 것이 움직일 수도 없지만, 아주 조금 판단할 능력이라도 남겨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동터오르는 햇살과, 그리고 그 구두을 남겨두어서 그나마 한점의 안도감이라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되나? 박쥐란 제목과 갈증 thirst란 제목에 맴돈다. 그렇게 마지막에 다시 상기되어 다행이다 싶다. 갈증의 하나로 읽는 것은 지나친 오독일까?

이렇게 흔적을 남기다나니 학교 작은 공간에서 벌어진 마당극들이 생각이 난다. 금관의 예수. 현실과 병치시켰던 기억이 나는데, 낡은 틀임에서 그 사이를 비집고 늘 현실이 들어갔던 기억이 났는데, 이렇게 낡은 틀사이를 비집고 현실을 들어가게하는 것은 지나친 오독일까? 감독자의 의도를 벗어나 지나치게 진도나간 것일까?

아침 고인이 된 박종태님의 유서와 황석영에 대해 전화인터뷰하는 김지하의 작가는 건망증이 심해야 한다는 찬조발언이 화면 속의 그 엄마아닌 엄마, 딸아닌 딸, …..해석도 어려운 가족을 설명해내야하는 것처럼 아이러니하다. 
 

뱀발. 

1. 무궁화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이곳에 다가서자 문득 이 영화생각이 감긴다. 시간도 혼자보기도 뻘쭘하지만, 산책코스를 편안히 여러생각을 담아 거닐다가, 인적드문 영화관에서 본다. 흡혈의 순환구조와 증식은 어찌 여기저기의 문제이겠는가? 온통 구린내와 전후좌우를 구분할 수 없다. 온전치 않은 개념은 곧곧에 산재해있고, 그 개념들은 풍치를 만난 듯 흔들린다. 지극히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게 의심해버릴 수 있을까? 이렇게 불편한 영화에 갈증의 꼬리표 하나 가져갈 수 있을까? 당신이 애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손에 넣으면 그것이 해결될 것이라 여기는가? 

2. 영화매체도 영화평도 너무 극단으로 달리는 것은 아닐까? 매체가 담는 정보량이 많기만 하겠지만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접근하기를 저어하는 비평들, 인식의 폭과 상관없는 매니아로 인한 인식의 협소함들이 난무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독립성이 오히려 아무것도 그저 일회성의 상거래로 자족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밀고나가서 늘 일상과 괴리되어 있는 저편은 아닐까? 영화매니아에게 늘 궁금하다. 그 징검다리은 없는 것일까? 정보량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 틀에 박혀 적은 것인지? 얇기만 한 문외한의 투정이 이러하다. 

3. 먹고싶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다소 씁쓸하고 짜고 향의 여운이 긴 슬로우푸드같은 영화들이 그래도 이렇게 고급스럽지 않아도 좋으니 삶의 사이로 현실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불편해도 좋으니, 풍치를 앓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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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觀이 생긴다는 일. 뚫어볼 수 있는 힘이 미약하게 나마 생기는 일. 현실이라는 괴물의 지극히 작은 단면을 비추어 볼 능력이 생긴다는 일. 작은 등대하나 만들어지는 일. 그것을 무기로 싸우는 허접한 일.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욕심. 자부심을 빙자한 선무당. 하지만 선무당이 필요한 이유. 그것도 많이많이 필요한 이유는. 조그만 그 욕심이 스스러진다면, 조금만 그 빛이 다른 빛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래도 어쩌면 현실이라는 괴물을 비추는 두개의 관점이 생긴다는 일. 그런면에서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다면, 덧셈을 사랑하는 합리주의자라면, 다른 관점의 생성을 반기는 일. 가진자의 자만이 아니라 가진자의 조심스런 연결망이 생기는 일. 바라보는 일이 크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범하고 소심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이 얼마나 섞일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 늘 다른 관이 궁금한 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조금만이라도 다른 시선이 있다면 사물이 굴곡을 더 잘 볼 수 있으므로, 느낄 수 있으므로, 만질 수 있으므로, 음미할 수 있으므로. 관觀이 생긴다는 일. 관은 두엄같아서 엇갈려 삭힐 수도 있고. 싸우고 나를 전부인 듯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나-너를 위한 조그만 출발점. 관의 목마름, 관에 대한 갈증. 갈망. 달라지는 시선의 일상. 그 누적의 상승을 향한 바램. 



뱀발. 관觀을 생각에 넣고 놀다보니, 그 눈길이 녀석들 뛰어다니는 가슴에도 몸에 발에도 있는 듯 싶다. 쿵쾅쿵쾅 섞이다보면 뒤짚어진 놈도 년도 보이는 세상이 다르다 싶다. 그제서야 저 까만밤의 색이 조금은 밝아지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더 현실을 예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안대에 가린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을 가리는 사람은 늘어나고, 그나마 가슴의 눈, 몸의 눈, 발의 눈은 퇴화하여 꼬리뼈처럼 흔적만 남은 것은 아닐까? 두근두근 쿵쾅쿵쾅 눈들이 활짝활짝 마음의 꽃을 피우듯 피울 수는 없는 것일까? 몽매한 눈가리개는 벗을 수 없는 것일까? 그 감옥의 독방에 햇살 한점 스며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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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 재회를 하다보면, 만남의 중심이, 표준어가 서울에 사는 중산층의 중산?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하는 듯이,  무의식 가운데 차를 가지고 평균적인 직업, 평균적인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평균적인 사교능력을 가진 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인다.  어느 사이에 기준점이 만들어지고 그 기준에 맞춰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일로 이어지는데, 평균적인인 운영의 기준점이 다양하거나,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을 생각할 수 있거나, 좀더 다른 기준점이 달리 운영되지 못하면, 은연중에 모임의 일상이 그러한 분류,부류로 고착되지나 않나하는 자책의 느낌이다. 

삶의 조건들이 나누어지지 않다보니, 그것은 늘 수면아래에 있다보니,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더 못된 일이지만, 가난해지는 것이 가장 환경운동을 많이 농도깊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일상, 느끼거나 나눠지거나 공감의 자리가 얼마나 다기해져야하는 것인지. 문득문득 평균적인 삶, 10%의 표준어에 묻힌 스스로의 일상이 무섭기까지 하다. 죽비를 맞고서야 문득문득 졸음에서 깨는 형국이라니 말이다. 기준점은 내려가거나 많거나....감수성도 문제지만 조건을 만드는 일들이 더 중요한 듯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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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관련책들>> 접힌 부분 펼치기 >>

뱀발. 

1.  주말 일터일이 비로 취소되어 다행!스럽게 일찍 *전으로 향하다. 꼼지락거리며 가벼운 이책을 보다. 풍경학 관련하여 이름은 들었고, 도서관에서 지나치면서 아직 아니다싶어 책을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관련책들을 찾아보았더니 풍경학에 관한 것은 없고 접힌 글처럼 주루룩 달려나온다. 비판적인 면을 다룬 [..두얼굴]의 소개글이 있나했더니, 백지상태다.
 

2.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학생들이 숙제하느라 바빠 정작 그림이나 전시물에는 관심이 없다. 소개글을 먼저 읽었으니 그 전시물에 갇혀 별반 새로운 느낌이 솟아나지 않는다. 나도 그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근자에 들어서나 그것이 오히려 느끼는데 방해가 되어 순서를 바꾸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니 문득 그리워지는 전시물들이 마음에 깃든다. 그래서 발길이 슬슬 그리로 향한다.  지금도 마음이 그곳에 향하는 전시장이 몇몇 곳이 생겼다. 어쩌면 책한권읽는 것보다 강열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종종있다. 

3. 민예운동과 두얼굴에 대한 지적은 다음으로 넘기기로 한다.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와 지식인이 저어해야할 부분의 경계가 고개를 내밀기도 하는 것 같다. 

4. 차창밖은 얕은 비가 내리고 밤으로 향하는 농촌의 전경은 아늑하다. 그리고 내내 책을 읽으면서 수집이란 말 대신에 사람이나 사람과 관계를 병치시켰다.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 역시 선입견이 필요하지 않다. 관계의 끈, 너-나의 공간을 만드는 일들이 과거에 연연해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나친 오독이지만 한번 연습해보고 읽는다고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도되지 않는다면... ... 주말 빗줄기가 짙어지고, 목련 잎도 목필도 짙어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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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5-1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위의 연적은 눈에 많이 익었어요. 어디에서 눈에 익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네요.
우리 나라 미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 한국인 누구보다도 '야나기'라는 일본 사람의 이름을 많이 접하게 되지요. 조선의 미술을 끔찍이 사랑했으나, 조선의 미술은 슬픔이 미학인, 슬픔에서 연유하는 미(美)라고 해서, 식민지 상황을 오히려 조선의 운명으로 미화시켜 이야기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비가 마치 장마비 처럼 내립니다.

여울 2009-05-17 13:01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많이 눈에 익어보이는데요. ㅎㅎ 실물이 사진의 크기가 될 것 같은데요. 은근하고 멋지네요. 김환기란 화가는 자신의 그림의 출발점들을 대부분 도자기에서 얻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색감도 그러하다구요. 오랫만에 비가 많이 내려 다행이다 싶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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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려고했으나 대출중이어서 없는 책들>> 접힌 부분 펼치기 >>
3. 가볍게 읽거나 읽은 책>> 접힌 부분 펼치기 >>

 

4. 가볍거나 무겁거나 한 영화>> 접힌 부분 펼치기 >>

 1. 의 뱀발 - 박이문님의 책소개 글을 보다 몇편 인상에 남는 책들. 박희진님의 시를 보고 싶고, 어제 아*** 에 논란이 되었을 [성과 속] 관련 단편들의 소묘읽기를 해보다. 바디우의 [철학]에 대한 생각, 책이 무지 두껍고 어렵다고 하는데, 간략 요약글에 힘을 얻어본다. 철학을 조건들이라고 명명한다면, 어찌 포스트모던의 골리앗에 이긴 철학의 정통계승 다윗이라 하긴에 앞뒤가 맞지 않는 듯 싶다. 암튼 조건들로 명기하고 다른 학과 연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 입문의 마음을 다져놓는다.  

2.의 뱀발 - 최신 책들을 볼 수 있다기에 검색메모를 하여 서가를 찾았건만,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이 대출된 상태인 듯 하다. 미래예측이나 다윈관련한 책들을 보고 싶었다. [고민하는 힘]이 유행하다니 조금 촌스럽지 않은가? 기획된 내음새로 한번 훑어보고 싶었는데, 숙성하거나 절박을 밀고나가거나 고민을 섞거나 고민이 피거나 생각이 피거나 마음들도 꽃처럼 피거나 하는 단어들이 세간에 꽃잎처럼 펼쳐지면 좋겠다는 핑계를 삼아본다. 고민할 시간도 달라. 고민할 틈조차없는 무지렁이의 삶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눈치도 채고 있을까~ 가끔 이런 유행을 제조하는 책들의 냄새가 싫다.  

3.의 뱀발 - 서경식님의 무거운 책들을 읽다보니, 마음이 무겁다. 쉽게 슬렁슬렁 지나갈 겸, 생각의 호흡을 가질 겸, 야나기 무네요시 책도 보고, 섬, 이곳 남도의 설화도 챙겨보는데, 일제시대 청자 수집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청자도요지가 어떻게 , 도자기들이 어떻게 유출되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개인의 좋고 나쁨, 유행을 만들어내는 지식인의 폐습(스스로는 반대하였다고 하나, 수집이란 유행을 만든 장본인?의...)이 말 그대로 초토화를 시키는 습속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보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4. 의 뱀발 - 공공의 적 시리즈는 여전히 현실을 잔인하게 반영한다. 미인도는 문봉선님의 그림자문이 자막에 나오는데, 어이이리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음. 미인도 한장을 그려 강물에 보이는 장면만 성에 찬다. 나머지는 그냥 보고 있다.  

5. 한날은 저녁도 제대로 못챙겨 먹었다. 정신이 팔려..그리고 아*** 강좌 중인 불교 구사론과 유식론입문 끄적끄적 생각을 뭍혀... 모임들이 강도가 진해진다 싶다. 멀리서 응원독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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