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내음도 보름을 바라보는 달도 은은하다. 잔잔한 수평선은 얇은 물결로 달을 품어 어른거린다. 아른거리는 달을 감싸면서 치어들이 떼를 지어 노니는 것도 둥글다.  모둠모둠 둥글게 동그랗게 연못같은 보행교에 주위에 핀 파래줄기 곁을 맴돈다.

깜박이는 불빛들. 별빛들. 촘촘히 박힌 배들을 안고 있는 둥근 바닷가를 거닌다. 그렇게 거닐다  벌써 시들해진 동백꽃 주위를 맴돈다
.


 

 

 

 

 

뱀발. 

1.  

* 우리의 고전읽기가 왜곡되었다면, 우리의 인문이란 것이 왜라고 묻지도 않고 지금에 대한 견해도 없어 전혀 다른 곳을 가르킨다면, 정작 왜 책을 번역하는지, 번역했는지? 지금과 아무런 비교도 없고 그저 유행에 따라 번역만 기계처럼 하는 것이라면?

** 그들이 말한 이백년전의 일들의 반추가 눈을 가리고 지금을 되새길 수 없는 능력을 갖고 몸이 시키는대로 한 일밖에 없는 것이 인문학자의 소명이라면?

*** 책들 사이를 맴돈다. 그들이 이백년 뒤라는 시점에 나는 서있고, 그들이 이백년 전이라는 지점에 서있다. 그들의 생각에 난 반론을 펼 수도 없으며, 그들의 열린 마음과 상상력, 현실을 짚어내는 놀라운 시선에 지금은 자꾸 끼어드는 것이다. 별반 달라지지도 않고 점점 단단해지는 키틴질의 각질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 있음을 그들의 시선으로 확인한다.

**** 생각의 각질을 벗겨내려는 노력에도 인문의 무지는 응답이 없다. 나의 전공이 아니므로 나는 알 수 없다. 응답할 수 없다. 

2. 

* 책은 사치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식도 그러할 것이고, 기껏 돈의 자양분으로 쓰이거나 삶의 언덕에도 가보지 못하고 중도에 폐기될 위기에 처하거나... 

** 처세 경영서적도 이젠 막바지에 다다른 것일까? 발라낸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이제 개인을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 착근시킨다. 하지만 돈에 경도되거나 성공에 경도된 이들은 아마 자신의 삶과 지금에 뿌리내리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비틀어읽기는 끊이지 않을 것이기에... 

*** 파란여우님의 책도, 방법이나 기술에 시선에 고정시킨 이라면 삶에 녹이려 부단히 애쓴 몸의 흔적이 별반 읽히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그 많은 책들을 연결시키는 행간을 읽으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3. 

이렇게 맴도는 것이 맴도는 쳇바퀴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각질의 벗겨낼 수 있을까? 그 허물을 벗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이란 희망도 삶의 몸의 흔적, 상채기가, 각인이 박히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끊임없이 그 배회를 넘어서지 못할테니, 삶도 그 배회를 넘어서지 못할테니 말이다. 발라낸 개인으로 어림도 없는 일일 수 있다. 아마 너 

4. 

시들어진 동백꽃은 그래도 핀다. 겨울내내. 아마 그러면 각질이나 허물은 점점 흐물흐물해질 것이다.란 희망을 ...
 




댓글(0) 먼댓글(4)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30000의 힘 - 고작 또는 이나 (ing)
    from 木筆 2009-12-04 11:33 
    플라톤 다시보기 - 고작과 이나 사이 3만명 중에 1만 2천명을 대통령을 한 셈이고, 민회에서 말한 사람은 면세의 특권도 있었다.(쿡!) 행정부인 평의회는 행정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시민 중에서 추첨된 5백 명으로 구성됐고, 매일 회의를 열어 국사를 처리했다. 임기는 1년이었다. 그 의장은 매일 아침 다시 뽑혔고, 민회의 의장도 겸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2. 다시 읽는 민주주의와 활동적인 삶(ing)
    from 木筆 2009-12-04 12:13 
       --결사에 대한 토크빌의 생각 (쿡!)-- 야심있는 사람은 많은데 고매한 야심은 찾아보기 힘드는가? 라는 장에서 말한다. "민주시대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못 가지게 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야심있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면 그가 감히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이 없다
  3. 160년 미래로부터 온 소식들(ING)
    from 木筆 2009-12-04 13:56 
      E.P 톰슨은 1960년 [뉴레프트 리뷰] 출간에 맞춰 모두에 모리스를 불러내었다. 모리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노력과 삶은 그 지평이 얼마나 넓어져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고 했으며, 그러한 노력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1890년, 벌써 120년전 이야기다. 모리스는 1951년 혁명으로 바뀌는 2150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140년이후의 일이니 그리 멀리있는 일도 아니다. 읽으면서 1951년 혁명
  4. 10000명이 행복해지는 방법(ING)
    from 木筆 2009-12-04 14:53 
    1. 우리는 생태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생태라는 것이 일상에 돌아오는 순간 모든 관계는 수포로 돌아선다. 1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란 가정이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IQ에 대한 집착은 터마이트란 삶의 프로젝트에서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경영일선에선 유효하다. 아웃라이어는 다른 대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치라 한다. 당신의 생태학이 얼마나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보자고 한다. --성공은 문화 embeded? --
 
 
 
세상이 나를 살게하고



-레파토리: 미친놈/힘내/김광석/너를보고있으면-

 

 

-------세상이 나를 살게하고 -

첨부파일 세상이 나를살게하고-01.wma
 



뱀발. 일전 소개한 가수 수미(v. 민주)님이 합류했답니다. 대전에 있는 분들은 좋은 공연이 될 것 같아 전합니다. 12월 4일 (금) 8시, 12월 5일(토)  2시, 5시, 12월 6일 (일) 2시, 5시. 공연이 많지 않네요. 내년에 앨범이 나온다고 하구요.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민주라는 가수에 대해
    from 木筆 2009-12-11 00:04 
    # 1. [음악을 추구하는 것](벡터 1)과 [음악을 사랑하는 것](벡터 2 or 스칼라 1)의 사이. 벡터 1과 벡터 2가 만나는 접점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것보다는 벡터 1과 스칼라 1의 만남은 쉽게 성사될 것이다. 벡터 1은 스칼라 1의 자장을 뚫고 지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스칼라 2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음악에 대한 선입견이나 밀쳐짐이 배인 나는 아직도 온전히 음에 심취하지 못한다. 문외한이 느끼는 단편 가운데 하나.&#
 
 
 
[깜짝이벤트] 누구일까요?

 

 ** 정답은 4번, 윌리엄 모리스였습니다. 네 분이 정확히 맞추어 주셨습니다. 비밀 댓글로 주소를 적어주세요. 축하드립니다. ㅎㅎ  (이매지님, 루체오페르님, 괴물님, 글샘님)

 윌리엄 모리스 평전에 나오는 글이었구요. 에코토피아 뉴스도 곁들여 보시기 바랄께요.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11-28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12-02 08:21   좋아요 0 | URL
어제 책 잘 받아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11-29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1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9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1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1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그래피티]

ch.gomtv.com/7799/22291/155577

**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란 멘트와 스케이트보드처럼 육체적 어려움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있다는 말에 여운이 남는다.(영상갈피: 21:35 -- 운동(스포츠)과 예술 - 육체적인 것을 예술로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스케이트보드와 그래피티를 결합한다. 초의 미학이란 점에서 동일성을 갖는다고..)


2. [캘리그래피]
 
ch.gomtv.com/7799/22291/222861


## 스치듯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몇몇 블로그나 작품들이 이것이다. 이렇게 상업친화적인지 몰랐는데 디자인계통에서 일상인 듯 학습효과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본 영상은  타짜나 혈의누 그리고 술의 한글 디자인 등이 이의 작품이다. 글자를 가지고 노는 일이 이렇게 진도를 많이 나갔는지 몰랐다. 그저 혼자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려니 했는데, 너무도 재미있고 성실하게 직업으로 만끽하는 듯하여 영상을 보는 내내 즐겁다. 더구나 비보이를 형상화해달라는 주문에 음악을 듣고 심취하는 모습이나 온몸으로 받아들인 연후에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반추하며, (우리라는 모둠이) 스스로  얼마나 속좁은지 몸좁은지 새삼느끼게 된다. 아래 홈피를 들어가보는데 냄새가 너무 많이 풍긴다. 그 이상 팔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로 그렇구 글씨예술, 글씨상품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blog.naver.com/howprint/120094972096

3. [움직임을 그리는]


ch.gomtv.com/7799/22291/194316(움직임을 그리는 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움직임을 그리는 화가]로 소개해달라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움직임을 그리는]으로 불러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달리 말해본다. [움직임을 소묘하는-만드는-누리는 사람(들)].

[화가] (영상갈피 9:00 - 12:00) 와 [루미네이트](영상갈피 시작부분)란 작품이 생생하고 좋다. [음악-그림-이야기]를 한몸으로 섞어 생명을 부여하는 재미가 있다한다.  불과 십여분만에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불어넣는 모습(기차안)에서도 볼 수 있고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찰나에 대한 포착(외도로 가는 배)으로 이어진다.

#1. 내 몸은 정지표시처럼 멈춰서있는 경우가 많다. 음악도 그림도, 이야기도, 더구나 일상은 움직임의 동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어쩌면 단락단락 끊어내는데 익숙해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불어넣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좀더 생생하려면 내 몸의 중심축을 정지선상에서 아니 아예 모멘텀 사이로 넣어버린다면 따로따로 떨어져있는 이야기도 그림도 음악도, 그리고 일상도 섞이게 될까? 몸을 그 속으로 넣어버리면 바꿀 수 있을까 좀더 생생하게 말이다. 그런 짜투리 생각을 해본다.

#2. 좀더 생각이 밀어붙여 [움직임을 만드는 사람(모임)들]으로 옮겨본다. 디테일도 요구도 원하는 것도 정지화면처럼 떨어져 제 각각 쓰임새만 가지려하는 것은 아닐까. 생생함을 부여한 자연스러움에 가까이 가려한다면, 모임의 몸은 정지한 듯 제각기 떨어져있는 것들의 결합이나 친밀함의 농도를 높여 제몸처럼 움직이는 것의 익숙을 필요로 하겠다 싶다. 아니면 몸을 모멘텀에 두어 단련을 해보는 것도...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나홀로지식인의 습속] 지식인들은 자신의 앎을 자장으로 해서 자신의 자장안으로 앎들을 숱하게  끌어들이려 한다. 그 욕망에 못지 않게 그로 인한 보수성은 자칫 그늘들을 만들어 놓지 않거나, 일리의 공간들을 놓아두지 못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 습속은 자칫 연대가 아니라 투쟁의 국면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에 다른 가지나 다른 생성을 지레 소멸시키는 위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앎이란 것도 집중의 강렬한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자신의 앎의 경직과 다른 자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오히려 생성이 자신의 앎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시간에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여백이 자랄 수 있다면, 자라지 못하고 움찔대는 새순이나 새싹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을 키우거나 자라게 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지식인들도 구획이나 편집증에서 조금 벗어나 앎의 연대를 기획할 수 있는 여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을 보면 지식인들이 앎의 향기엔 강한  앎파라치이긴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집과 경직에 대한 성찰의 문은 열려있지 못하다. 그래서 열이면 아홉이 머리는 커지나 몸이 단단히 굳어 더 이상 앎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이비로 전락하는 모양이다.


#2. [삶의 지수] 퇴근길, 매체언론은 출산율이 세계최저라구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구 말이다. 어쩌구저쩌구 통계를 들먹이며, 분석을 들먹이며, 아침에 언론에 나온다는 소리가 기껏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보낸다라구. 귀신신나락먹는 소리인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살율도 세계최고이고, 삶의 지수도 상대적으로 최악으로 달리고 있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다. 애꿎은 엄마를 볶을 것이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들볶을 것이며...거기에 애국심까지 거들먹거리며 개인의 문제로 가닥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삶의 나락이 왜 이렇게 형편없이 떨어졌는지? 아이도 어른도, 노후도 눈에 잡히게 하는 것이 최악의 서사밖에 없다. 그런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는단말인가? 형편없는 위정자는 아무걱정없어서 그런가? 그렇게 출산율에 관심이 많다면, 삶의 지수가 왜 이렇게 곤두박질 쳐져 있는지? 다른 사회가 받아들이는 완충장치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노처녀만을 마녀사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  

노후도, 아이들 키우는 것도, 집도 그저 풍족하지 않지만 살만하다면 누가 아이들키우기 싶지 않을 것이며, 일터도 젊은이에게 물려주고 노후를 즐기려할 것이며, 하다못해 집이 투기 목적이 아니라 오붓하게 살 요량을 할 것이다. 하다못해 교육비에 한숨짓겠는가? 엉뚱한데 손가락질하지말고 그 손가락을 네얼굴에 대길 바란다. 위정자도 국가도, 그 녹을 먹고사는 친구들도, 세상사는 일을 연결짓지 못하는 우리들의 아둔함도... ...


#3 [시간의 각질과 훈육된 허물] 훈육된 애벌레, 나를 키워온 30-40년, 이제야 내 생각도 마음도 자라고 키워진 것을 돌아보니 고스란히 훈육된 애벌레란 느낌이 든다. 생각이 자라는 것도 그 훈육의 결과이며 훈육의 울타리 안이며, 생각하고 몸이 기껏 움지기는 동선도 연신 그 안일 수밖에 없다. 자란 근대의 토양도, 식민지의 흔적도, 가족이나 사랑이나 연애나, 욕심이나 욕망이나 일이라는 것도 기껏 먹고 해치운 것이 애벌레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감금된 자유란 것도 더 적극적으로 몸을 키우는 작업이었을 뿐. 내몸의 각인, 생각의 상처, 끊임없이 자맥질만 하는 손발의 동선을 벗겨낼 수 있을까?  

몸은 점점 딱딱해지고 한 차례 더뎌지고 굳어지는 몸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 훈육된 허물을 벗길 수 있을까? 벗을 수 있을까? 허물을 벗고 유약한 날개가 점점 펴져 날 수 있을까? 훈육된 울타리는 훈육된 각질은 점점 켜를 쌓는데, 그것도 시간의 함수로 덧칠을 하며 옭아죄는데 10년도 50년도 100년도 500년도... .... 시간의 켜는 말랑말랑해지고 겹쳐지지도 않으며 시공간을 점점 부푼풍선처럼 벌리고 있는데...시간이란 껍질도 겹쳐져 말랑말랑해지거나 유약해지지는 않는걸까?  

시간이 녹아내리고, 그 유약해진 시간의 몸사이로 날개를 내밀어 시간의 각질을 벗겨내고 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