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기념하고 다시 1회다. 작년 기적의 마라톤의 날에는 비가 애꿎게도 차갑게 내렸다. 지금까지는 5k 위주의 행사였다면, 공식마라톤대회와 결합한 첫회인 셈이다. 관계자 가족인 덕분에 자원활동 겸 운영 전반에 대해 짚어볼 행운?까지 누리게 된다. 전 날 저녁도 행사장을 꼼꼼이 살펴보고 장애인화장실까지 그리고 주차문제까지 세심하게 준비한 관계자를 동행시키며 알아본다.


다음날 대회장까지는 타슈를 이용한다. 4.5k 정도, 성심당 DCC점 앞에 타슈자전거를 반납하고 행사장까지 횡단보도를 2번 건너면 된다. DCC 주차장도 마라톤 인증샷을 링크하면 무료다. 장애인가족, 국군간호사관학교 런팩은 일일이 따로 챙겨둔다. 


핫한 인증샷코너. 아무래도 첫대회이고 사전예고 기간이 충분치 않아 천여명의 인원이 참가한다. 5K,10K 천여명 하프코스 200여명의 러너들이 행사장에 북적인다. 오히려 많지 않아 부산스럽지는 않아보인다. 


원촌교와 전민동을 오가는 갑천변길은 무척 익숙한 곳이다. 숱하게 러닝했던 기억도 돋고 달리는 내내 주마등처럼 교차하던 일들이 꿈속으로까지 밀려오기도 한 주다. 군대는 아니지만 연구소의 일원으로 등장하던 인물에 친척외삼촌까지 꿈속에서는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기도 하다. 뒤풀이는 사전에 만남을 갖기로 한 10여명의 멤버리멤버 이멤버들과 갖은 술에 얘기와 마음을 섞는다. 지금까지 블로그서재에 올린 내용들이겠지만,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날도 드물 것이다. 거기에 2차 집알이 겸 차에 과일로 얘기를 나누고, 3차는 장군님닭 이층호프 코너에서 다른멤버 창작멤버와 합류에서 또 갖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돌아와 가족과 4차다.  이야기마라톤인 날이다. 


관계자가 아니라 관계자의 가족 또한 흘러가는 일들을 채우고 메꾸기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보태야 하는가를 알게해 준 날이기도 하다. (언어의 그물을 쳐서 잡아내도 얼마나 언어에 걸리지 않는 것들은 이유도 모른 채 빠져나가는가란 대유를 겹쳐 기억에 남겨본다.)


이 날을 빛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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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힐 것이라 여긴지는 오래되었네요.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책꽂이에서 하나하나 빼서 모아둡니다. 그래요. 어느 봄 새벽, 불쑥 책에 손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책들을 차에 싣고 다니기가 몇 주가 됩니다. 저에게 잡힌 책은 <공간의 시학과 무욕의 상상력>이 먼저 였습니다. 읽고 싶었다곤 말할 수 없었는데, 읽다보니 개론서의 느낌이기도 하고 덕질이 느껴져 마지막 페이지를 막 덮습니다. 


바슈ㄹ라르. 촛불의 이미지와 시인이 번역해놓은 책들로만 다가왔죠. 하지만 알고나니 우체국 보조원으로부터 물리화학교사까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미친 것은 약과입니다. <인식론의 단절>로 프랑스 과학, 과학철학, 사상사의 분기점을 이룬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불싸 그동안 이 사람을 대체 뭘로 본거야. 부끄럽기가 한정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읽어내야 한 뒤가 벌써 몇 년째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 품에 들어와서 야금야금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다니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그것도 봄의 말미에 말입니다.


개론서의 보면서 느낀 가운데 하나. <공간의 시학>이 일상서의 탐미라고 평한다는 점입니다.  방. 서랍, 장농, 구석....지극히 일상의 사물들, 하루하루 겪는 일들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몽상과 꿈이라니 말입니다. 그것도 상상력으로서 이미지들. 지극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제가 꽂힌 것은 상상력도 몸상도 꿈도 아닙니다. 일상을 다루거나 출발점으로 삼은 철학자들 사상가들이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손을 댄 것이 <공간의 시학>이기도 합니다. 한문어로 개념들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질감을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십년의 번역작업 결과물이라 끝까지 성실하게 토씨하나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애썼습니다.


다음은 물불대지공기 4원소. 예전같으면 달리 생각했지만 저는 루크레티우스, 그러니 그리스철학의 결정판 에피쿠로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불흙공기. 이것만으로도 세상과 만물을 순탄하게 그려내고 모든 변화를 눈치챌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편취하지 않고 둥그렇게 모아 역동성을 발휘하면 온갖 죽어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로 실감을, 그 실감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구요. 더 읽어보면서 과연 그러한 지 밝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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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모임에서 읽었던 책. 그리고 <이런이론>에서 해러웨이를 읽는다. 1장과 2장. 개와 인간, 기묘한 친척 그리고 심포이에시스.  함께 나눈다.


모임에 앞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거의 모든 성원이 거의 완독을 한 듯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다. 이자벨의 책이 어렵다고 발제자도 서너 번을 읽고 요약해도 잘 알 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읽힐 리가 없을텐데. 하면서도  이자벨의 탁월함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물음표를 던지게도 된다.


덕분에 해러웨이를 이렇게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니 흥분되는 모임이기도 하다. 오늘도 키워드 노트를 사고 책 제목과 달팽이로고를 뒷장에 붙인다.


브루노와 셋은 친구들이기도 한데, 해러웨이가 브루노보고 부엌 싱크대 증후군이 있어 모든 정보를 우겨넣는다고 놀려먹은 일화도 소개하는 해러웨인 선언문의 인터뷰 장면이 정말 많은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뷰 대목들이 위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목차와 닮아있기도 하다. 


다음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들은 되기 하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더불어 -되기. 방법, 방법들 그리고 삶의 광채에 대해서 나눈다. 우선 급하다면 최유미 해설본과 해러웨이 선언문, 다른과학은 가능하다 세권을 보면 요점을 추수릴 수 있고 헛갈리지 않게 관점을 잡아낼 수 있겠다 싶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저녁독서모임이 된 것 같다. 말미 봄밤에 이런 선물이라니.


볕뉘


천주교 독실한 신자인 해러웨이는 요한복음을 얘기한다. 육화된 말. 예수를 먹는다. 서울행사를 다녀오면서 막내가 건넨 말과 겹친다. 요한복음서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덕분에.


거기에다가 어린 시절 자신은 이분법으로 사유한 적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캐런 바라드까지 절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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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자의 시선은 어떨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세계사의 편린들은 어떻게 정렬되는가? 30-40년의 흐름들을 읽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극우파시스트의 역사로 읽어내서 히틀러의 <<나의투쟁>>을 강독하는 친구들이 버젓이 정치를 하고 의원을 하고 테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것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선은 관조라는 약간은 피해갔다는 안도감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현실을 비껴간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러시아문학을 하는 평화학자로 알고있던 이문영교수는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의 문학들 사이에서 삶의 결을 찾는 문학도로 알고 있던 것은 착각이었나보다. 책에 중간중간 나오는 도표와 그림들은 이해가 쏙쏙될 정도로 간결하고 일관된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간추리고 다른 결들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까? 덕분에 주마간산의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정욱식, 김종대 보다 어쩌면 더 넓은 결과 안목을 갖는 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소련의 멸망이후, 고르바초프 옐친. 동유럽이 하나하나 무너지며 펼쳐진 국제질서에 미국의 배후와 그물망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것이 나토이고 나토의 파급효과를 봐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짜르제국의 역사나 레닌의 정책, 스탈린의 무도함까지 살펴봐야 그래도 좀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십분 한시간에 정리해주는 전쟁사나 역사 유투브들이 넘친다. 정보과잉뿐만이 아니라 그 흡수속도만큼이나 더 빨리 증발하는 정보가 문제다. 그만큼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접근 목적도 얇다.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라는 책을 반복해서 본 경험이 있다. 열 번 가까이 읽다보니 사건들은 또 다른 관통의 힘을 갖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남의 일이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의 시선은 자신의 삶과 맞닿아 넓고 깊어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삶들은 어렵고 복잡하다. 단 한 명, 단 한 마리, 단 한 숨이라도 붙어있는 것들을 없애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국가라는 명목으로 민족이라는 명목으로 남을 죽이고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야만의 역사는 언제 끝이 날까. 어쩌면 평화-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문영작가의 결처럼 서로 전쟁의 망상을 일상에서 깨뜨려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은 구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날카로워지고 더 예민해지는 일상인들의 시선이 저 무도한 무리들, 국가와 민족을 울부짓고 명분을 쳐바르는 족속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그렇게 간절하게 실천한 비폭력의 세상은 전쟁무기로 범벅이 되어있다. 지금 여기도 그 당사자이다. 전쟁무기라니..누굴 죽여서 버는 돈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죽여서 없애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볕뉘


읽는 내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이 떠올랐고 바쿠닌의 숨결도, 그리고 박홍규교수님이 바쿠닌평전을 새로써서 출간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유럽과는 다른 결의 전망, 세상은 이전과 다른 전망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란-미국,이스라엘...전쟁들은 역사를 부여잡고 연결되어 있다. 부디 휴전과 평화가 오길.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틀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도 가독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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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4-1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한국에서 러우 전쟁을 다루는 시각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러우 전쟁의 이유야 책에서 밝히듯이 여러가지 복잡 다단한 이유가 많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기존 서유럽으 끊임없는 나토팽창 정책이 가장 큰 이유라고 여겨집니다.쏘련의 해체이후 미국과 서유럽(나토)는 러시아와 나토의 동방추진정책(동유럽의 나토화)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90년대 러시아가 쇠약해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러사아 바향으로 나토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러시아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은밀히 추진했지요.러시아는 사실 유럽에 큰 피해 의식(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수천만명의 피해자 발생)이 있어서 러시아 본토와 유럽간에 완충 지대를 필요로 했고 냉전시대에는 동유럽(바르샤바 조약기구)이 있었고 냉전후에는 친척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가 최후의 보루였지요.
하지만 부패했던 젤렌스키와 친 유럽파들이 이를 무시했고 러시아의 몇번의 경고에도 유럽과 손발을 맞추자 결국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BBC에서 밝혔지만 실제 전쟁 초기에 정전할 수 있었는데 영국 전 총리가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유럽의 도움(이라고 하고 실제는 고리의 전쟁자금 지원임)을 약속했고 그 결과 젤렌스카기 장기간 전쟁을 하게 된 것이죠.이는 전쟁준비를 등한시 앴던 유럽과 나토가 러시아의 힘을 빼놓고 전쟁물자 수급 시간을 벌기 위해서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 잡아 둠으로써 피해를 주고자 한 것인데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실제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잘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유럽과 나토의 동진전쟁탓에 우크라이나가 피해를 입은 것이죠.
책 제목에서 밝혔듯이 러우 전쟁은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 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울 2026-04-1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요약해주셨네요. 다극 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지금현실이다라고 전문가들 의견이 모아지는 듯요.
 

 어느 책에서인가? 누구인지 기억까지 바랬지만 이부자리 곁에 늘 있던 책이 잡힌다. 너무도 유명해서 가까이 가기 먼 당신. 책날개를 펼쳐 꼼꼼이 본다.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도 가련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찰스부고스키는 안락한 삶을 누린 셈이다. 막연한 생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은 가혹하다. 검침원(검사원)의 일자리를 얻고서야 글을 쓸 수 있음에야. 


<빌리 버드>때문에 구입한 책이다. 바틀비야 너무도 인용이 많이 되는 소설이기에, 이 <빌리 버드>를 읽지 않고서야 멜빌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문구였던 것 같다. 


세상은 늘 모르는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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