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학자의 시선은 어떨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세계사의 편린들은 어떻게 정렬되는가? 30-40년의 흐름들을 읽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극우파시스트의 역사로 읽어내서 히틀러의 <<나의투쟁>>을 강독하는 친구들이 버젓이 정치를 하고 의원을 하고 테러를 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것을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선은 관조라는 약간은 피해갔다는 안도감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현실을 비껴간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러시아문학을 하는 평화학자로 알고있던 이문영교수는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의 문학들 사이에서 삶의 결을 찾는 문학도로 알고 있던 것은 착각이었나보다. 책에 중간중간 나오는 도표와 그림들은 이해가 쏙쏙될 정도로 간결하고 일관된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간추리고 다른 결들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까? 덕분에 주마간산의 사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정욱식, 김종대 보다 어쩌면 더 넓은 결과 안목을 갖는 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소련의 멸망이후, 고르바초프 옐친. 동유럽이 하나하나 무너지며 펼쳐진 국제질서에 미국의 배후와 그물망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것이 나토이고 나토의 파급효과를 봐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짜르제국의 역사나 레닌의 정책, 스탈린의 무도함까지 살펴봐야 그래도 좀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십분 한시간에 정리해주는 전쟁사나 역사 유투브들이 넘친다. 정보과잉뿐만이 아니라 그 흡수속도만큼이나 더 빨리 증발하는 정보가 문제다. 그만큼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접근 목적도 얇다.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라는 책을 반복해서 본 경험이 있다. 열 번 가까이 읽다보니 사건들은 또 다른 관통의 힘을 갖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남의 일이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의 시선은 자신의 삶과 맞닿아 넓고 깊어야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삶들은 어렵고 복잡하다. 단 한 명, 단 한 마리, 단 한 숨이라도 붙어있는 것들을 없애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국가라는 명목으로 민족이라는 명목으로 남을 죽이고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야만의 역사는 언제 끝이 날까. 어쩌면 평화-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문영작가의 결처럼 서로 전쟁의 망상을 일상에서 깨뜨려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은 구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날카로워지고 더 예민해지는 일상인들의 시선이 저 무도한 무리들, 국가와 민족을 울부짓고 명분을 쳐바르는 족속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그렇게 간절하게 실천한 비폭력의 세상은 전쟁무기로 범벅이 되어있다. 지금 여기도 그 당사자이다. 전쟁무기라니..누굴 죽여서 버는 돈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죽여서 없애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볕뉘
읽는 내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이 떠올랐고 바쿠닌의 숨결도, 그리고 박홍규교수님이 바쿠닌평전을 새로써서 출간했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유럽과는 다른 결의 전망, 세상은 이전과 다른 전망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란-미국,이스라엘...전쟁들은 역사를 부여잡고 연결되어 있다. 부디 휴전과 평화가 오길.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틀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편집도 가독성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