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국체를 부정하는 자들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그것을 받아적는 무리들의 호흡이 거칠다. 법이 아니라 법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는 자들이 법을 물려고 안간힘을 쓴다. 언어도단이 아니라 법치도단이자 절도다.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아둥바둥 거대한 물길을 막으려고 애써 보았자 더 큰 강물이 흘러오고 있다는 걸 말이다. 모든 것들이 기승전결이다. 목숨을 재촉한 자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했던 것처럼 틈틈이 요란하다. 입법을 하지 않고, 다른 당에 의해서 입법행위가 이루어지면, 국회의원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구 네거리에는 자기가 해서 통과된 것처럼 거짓을 일삼는다. 아마도 몇 개월을 지나 몇 년이 지나야 될 것 같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란을 하고도 그 내란행위를 옹호하는 무리들을 잡아쳐넣지 않는 공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은 모르리라.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었다는 사실과 불을 지피는 마지막 불쏘시개였다는 일도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접힌다. 




















볕뉘


주말 책방에 들러 차 한잔하다가 손에 넣는다. 쥔장과 현 시국을 논하다.  유튜브 라이브를 끼고보다나니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독서등에 책들을 펼치고 읽어본다. 이러다가 잠을 놓치겠다 싶다. 일터뿐만 아니라 세상은 이리 들쑥날쑥이지만 난, 우리를 믿는다. 단지 시간이 조금 길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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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배리어가 모래밭이었다면

며칠 반복되는 화면과 장면이 마음에 박혀 빠져나오질 않는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바램은 정년 뒤 본 항공사를 다니는 친구에겐 어려울 걸세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미리. 


알 수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 그런 것들이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오늘도 그런 시간들로 메꾸어진다.  


국회가 넘긴 일들을 행정이 미루지 않고 거부하지 않는 것이 원활한 흐름일 것이다. 매끄러운 흐름을 거부한 정권과 여당은 여전히 몽니와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명박정권부터 아전인수의 방송법은 언론과 미디어를 괴물로 키워놓았고, 거기에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는 무리의 시민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나씩 잘못 맞추어진 아귀는 다시 맞추면 되는 일이다. 좀더 시간을 길게 잡으면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자기만 아는 부류들의 말로를 우리는 어김없이 직시하고 있다. 그 소멸하는 권력을 부여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류들도 알고 있다. 한치도 어김없이 법에서 벗어나는 말종들은 법의 이름으로 행위를 멈추게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시류와 세상에 분탕질을 하는 인간들은 늘 있어왔다. 자기만 봐달라고, 주변을 전혀 살필 줄 모르는 인간들 역시 늘 있어왔다. 


촘촘하게 자신의 손톱만한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부류들. 쥐어짜내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잘라버리는 인간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왕정을 꿈꾸던 자.

생명과 안전이라는 장벽을 허물려고 하던 자.

조그마한 이익을 더 손아귀에 쥐려고 시스템을 쥐어짜는 자. 모두 한 통속임을 잊지 말기를. 더 이상 그런 자들을 곁에 두지 않는 사회가 되길 세밑에 기원해본다. 


배리어가 아니라 배리어가 아니라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도 생명과 안전이 숨쉬는 일상을 꿈꾸고 바래본다.


볕뉘


2024년 올 한해도 반갑고 고마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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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공간적 제약이 일상을 숨쉬고 있다. 당연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과 답변이라는 이분법의 테두리는 많은 것을 놓친다. 한강작가의 빛과 실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처럼, 질문, 새로운 질문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안으면서 여러 가능성들을 찾아간다.


다소 당황스러운 책이었다. 나에겐. 장별로 편차가 느껴지며 대학원생 리포트같은 느낌도 있어 온전히, 일관되게 집중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바라드의 팬으로서 다음의 문구가 숨쉬는 몇몇 편들을 그래도 인상깊다는 말을 전한다.


기억은 단순히 인간 마음의 주관적 능력이 아니라, 인간과 마음은 세계의 시공간물질되기spadetimemattering 풍시경 landtimescape의 일부다. 기억은 세계의 구체성, 즉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 퇴적된 역사성의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세계의 세계되기 속에 기록된다. 111

 

과학과 정의, 물질과 의미는 때때로 교차하는 분리된 요소가 아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서로 융합되어 있으며, 어떤 사건도, 아무리 에너지가 넘쳐도 둘을 분리할 수 없다. 화학적 처리나 원심분리기, 핵폭발로도 분리할 수 없다. 137

 

절단은 의지적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일부인 더 큰 물질적 배열에 의해 주체적으로 제정된다. 우리가 물질을 제정하는 데 참여하는 절단이 중요하다. 사실 윤리는 기하학적 계산이 아니다. 타자는 결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타자와 우리는 우리가 제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로 그 절단을 통해 공동 구성되고 얽혀 있다. 절단은 사물을 함께 그리고 따로 자른다. 절단은 외부에서 제정되는 것이 아니며 단번에 제정되는 것도 아니다. 89

 

바라드가 시간 회절에 관한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것은 비결정적이다. 새것과 낡은 것은 서로 공존하며, 여러 시간성 속에서 서로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은 항상 이미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절은 방법론으로서나 물리적 현상으로서나 새로운 것의 시간성을 낡은 것과 연속성에서 단절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는 반복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시공간에 대한 심오한 경험이며,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두꺼운/지금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79

 

빛의 속도는 상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멀리 있는 물체를 볼 때 더 깊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을 볼 때 우리는 8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에 일어난 일을 현재 보고 있는 것이다. 별자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현재에 여러 다른 과거를 목격하며, 그 중 일부는 다른 것보다 더 먼 과거를 목격한다. 따라서 별자리는 과거 사건의 특정 배열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다양한 시간성의 구성, 존재하고 있는 별자리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57


볕뉘


유령학이다. 시간교란과 시간회절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정치 사회의 현실만이 아니라 세계가 그렇다. 기억은 세계의 일부다. 마음과 인간도 나누어질 수 없다. 끊임없이 교란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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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그림책이 나와 핑계삼아 도록멤버들을 만난다. 금주중으로 동화책이 나오면 곧 전달해드린다고 하면서 차 한잔와 점심식사에 지금을 담는다. 우리는 세계시민인 2030여성을 보유하고 있다. 가짜뉴스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구화의 맹점에도 날카롭게 뚫고 있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혁명성도 가지고 있다. 상식의 수준은 점점 낮아지는데, 불감과 아둔함의 시스템은 그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2. 모임:


몇 번 문자가 온다. 오래 뫔담았던 단체의 해산절차를 밟겠다는 소식에 총회투표에 위임을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히기도 쉽지 않다. 총회와 해단식이 무기한 미뤄진다. 


3. 그림;


보다는 책에 집중하고 있다. 자료는 모으지만, 직접 해내는 손이 고프지는 않다. 그렇게 기다린다. 그리고플 때까지. <유토피아>란 주제로 여기저기를 파고 있다. 낭만이 아니라 구체성이 필요하다. 어쩌면 세부묘사가 또 다른 도움과 철학을 낳을 지도 모른다.


4. 책만보:


그림작업의 손길을 닿은 책들. 그 출산을 지켜보며 또 다른 느낌이다. 공동작업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돌아다닐 아이의 거처가 궁금하다. 


5. 기 타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슬로깅이라고 할까. 반시간에서 한시간정도 일주일에 두 세번 충전을 하고 방법을 달리해보고 있다. 미루어둔 검진도 받았는데, 두근두근은 역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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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납기한이 며칠 남지 않은 책. <희망의 원리>. 마라톤 읽기를 하고 있다. 제4부 1000쪽 가까이에 다가서는 새벽이다. 지난 주말엔 동네도서관에 들러 '유토피아'란 주제로 책들을 빌려 번갈아 보고 있다. 신간도서도 보고 이리저리 책들이 같이 향하는 곳이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책. 토머스 모어를 읽기 시작한다. 물론 500년도 지난 이야기다. 그는 제주도 세 배 크기의  이상적이 나라 유토포스가 세운 유토피아를 경험한 선원 라파엘 히틀로다이오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곳에서는 오전 3시간 오후3시가 점심과 휴식 2시간, 6시간 노동만이 아니라 300년 뒤에나 말한 푸리에 생시몽의 꿈들이 여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해볼 수 있다. 54개 도시로 이루어진 연방성격의 나라는 많은 모티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김없이 유토피아의 병원은 넓고 준비가 탄탄하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빈부격차로 여전하고 혁명이라는 것도 손가락으로 셀 정도밖에 일어나지 못했다. 공화국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왕에게 참수당한다. 


세상은 왜 이리 요지부동인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완독한 뒤, <공공어린이재활병원건립운동사>가 눈에 들어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민주화운동사, 무슨무슨 운동. 이런 말들은 전부 예전의 일이나 사건, 결론이 난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 책 제목을 보고 이 단어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고 생활인은 전한다. 


 출발부터 지금까지 스토리를 꿰고 있는 데도 읽는 내내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1004배를 한 두번이 아니라 열번 이상 자신을 접었던 일. 무릎이 시큰거리고 온 몸이 떨려온다. 시장에게 항의하거나 왕따시키는 모습들에선 스스로 격해지기도 한다. 운동이 대체 무얼까. 왕년에 운동했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지는 무게는 얼마일까. 답답함은 제도권에서 더 간극이 크다는 현실이 닥쳤을 때 더 극명해진다. 될 때까지 된 것이 아니야. 지난 10년이 고스란히 읽히고 있다. 세상은 나선형이 아니야. 절망을 제대로 경험하거나 안고 있을 때, 겨우 틈을 보여주는 존재인거야. 참담하고 참혹하다.


 그렇게 읽거나 읽어내며 마지막 대담 편을 접한다. 나누고 싶고 귀 기울이고 싶은 이야기들이 언급되어 있다. 아 그렇구나 희망을 주는 사람들, 그 틈을 비집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구나. 만들어내고 하는doing 사람들과 가만있는being 사람들의 무게를 신은 재고있구나 한다. 아주 가느다란 실낱같은 희망은 존재한다. 불을 붙이는 것은 우리의 몫인지도 모른다.  유토피아는 저기가 아니라 늘 여기라고.

 

246 


만약에 한 2030년후, 더 빠르면 좋겠지만, 응답하라 2024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장애아동에 대한 치료가 세상에 부모의 몫이었데, 그게 말이 돼?’ 이런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아이들 급식비를 안 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부모들이 급식비를 냈습니다. ‘예전에 급식비를 냈어라고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그걸 왜 내?’하고 이해를 못합니다. 당연히 공공의 영역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는 겁니다.

 

247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요구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은 그들의 요구와 주장이 정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당한 요구와 주장이라 하더라도 모두 사회적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공감과 지지를 넘어 그들의 절박함이 우리의 절박함으로 이어져 가능했을 겁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시민운동, 사회운동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50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얘기 나오면 유독 적자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국민이 생명, 아이들의 생명 문제보다는 우선적으로 적자 얘기가 나옵니다.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운영 비용이라고 봐야 하는데 왜 이렇게 까지 얘기를 하지? 그런데 경찰서나 소방서와 관련해서 적자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프로축구단 대전시티즌도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적자 얘기 뒤에는 시혜적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무상의료가 아닙니다. 민간병원과 똑 같은 비용을 다 내고 있습니다.

 

253 


3년이 아니라 그 7년동안에 그 가족들과 아이들의 고통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늦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장들, 언론에서 이야기했을 때 비치는 책임감이나 말과 달리, 굉장히 게을렀고 책임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255-256 


그간 여러 단체나 당사자 운동은 사실 정부를 향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가장 기본값으로 갖고 있습니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그런데 토닥토닥은 그간 끊임없이 비판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비판과 대안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처럼 건입운동이 단순히 병원을 건립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단체로서 성격을 갖습니다. ....그동안 장애운동은 당사자 운동에 머무르다 보니 당사자와 타 단체 간 연대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토닥토닥은 운동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연대를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더구나 아이를 두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고 전 국민적 공감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로 이어졌다는 점이 운동사적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259 


공공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에서 시민들이 반드시 참여하는 것이 제도화될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음 정권 때, 또 다음 시장 때, 다음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바꿀지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제도적 틀로 반드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게 다음 숙제 일 것 같습니다. 또한 보편적인 아동의 권리로서 건강권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낼 필요가 있고 좀더 다양한 논의들이 확장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63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고 있지만 놓치는 것이 장애아동의 권리입니다. UN아동권리협약 23에 장애아동 부분도 명확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경제적 여건에 상관없이 아무런 차별 없이 장애아동들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야된다는 명확한 규정이 있고, 우리나라는 거기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걸 근거로 해서 장애아동이 우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함께하겠습니다.























볕뉘


1.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협동조합 <함께하는 연구> 집필진 세 분의 차이를 살필 수 없다. 경쾌한 독서를 해주게 해서 감사하다.


2. 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언급이 있어 고맙다. 명멸하는 단체들이 많다. 하지만 지평을 넓히는 일은 관조로 되지 않는다. 천방지축 같아 보이지만 수많은 벡터들과 열정을 담아내는 그릇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운동은 활동을 담지할 때만 생기가 돈다. 정체하고 있는 시민단체나 활동단체들은 많은 것을 참조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3. 축시는 놀랍다. 삶을 나누는 궤적이 함께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참여하고 나눈 이들의 따뜻하고 절절한 마음이 이 시인에게로 흘러들었다고 볼 수 밖에. 감사하다.


4. 원더풀하다. 감사. 편찬위원회에게도.


5. 부녀산악단 동석-선우, 마라토너 동석, 관리소장 은미, 건우. 건우네가족의 명랑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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