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 패드에 청동 부식액을 뿌려 비닐로 밀봉을 하고 밖에 둔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예상과 다르게 거무칙칙하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써먹을까. 처박아둔다. 곰곰이 살피다보니 폭포도 바다도 섬도 한 가득이다. 거인들 모습과 해와 달도 심어둔다.
택배 박스에 온 뽕뽕이와 못쓰는 신용 카드를 잘라 톱니문양을 만들어 본다. 그런대로 봐 줄만하다.
답이 있을까.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을까. 답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큰 사건인지 수학사는 문제가 잘못된 사건들을 선처럼, 면처럼, 색처럼, 면도날처럼 드러낸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잘못된 것을 알자 칸트는 의문의 일패를 당한다. 선험적인 것은 없다. 진선미 역시 그렇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카렌바라드의 면도날>, <갈루아의 해>. 답이 없는 문제를 발견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를 오린다. 저 바다 끝 오른편엔 폭포를 그려놓고 나자, 이미 산불은 번져 불꽃이 튄다. 또 하나의 그림 위엔 폭발과 함께 화염이 가득하다. 검정 하늘. 습자지를 조금씩 찢어 붙인다. 파도가 바위를 돌아나오도록.
크리스티나도 소환하여 집과 담장을 오려 붙이면서 그림을 마치자 우연히 지구의 날이다.
먹을 쓰고 싶다. 황목에 물을 먹인 다음, 먹의 번짐을 가늠하고 싶다. 농담은 역시 쉽지 않다. 조금 번지게 하고 가지를 따라가고 결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묽게 그리고 짙게 그리고 가늘게 그리다보니 요령이란 놈이 슬그머니 스민다. 그새 손놀림이 정연해진다. 이제 감나무로 번져가고 싶다면.
역시 아직 어림없다.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울거리는 파도와 두꺼운 운무에 가린 산들. 잔잔한 바다보다는 때로 거친 파도가 나 밖의 나, 나 안의 나를 울렁이게 한다. 출렁이게 한다.
겹친 산들, 겹친 사람들, 겹친 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