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철야다. 작업실에서 새벽을 맞아보고 싶었다. 그 새벽 봐 둔 목욕탕도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고 말이다. 그런 날도 있었다. 아침 해장국밥까지 챙긴 날.


-3.


야근이다. 그제 철야라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저녁 쉬어줄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무심코 시작하다보니 열시에 가깝다. 그래도 밑작업을 해둔 곳에 손이 가는대로 놓아두었더니 제법 봐 줄만하다. 퇴청길에 마트에 들러 하이볼 두 캔에 과메기를 시식해본다.  유일한 애청프로그램을 본다. 시큰거리는 곡들이 제법이다.


-2


작은 공연(기타연주), 시낭독, '다다르다'란 시다. 내년 봄 시집 출간예정인 서진배시인의 도움이 밋밋할 수 있는 전시에 멋진 꽃한발 드리운 듯하다. 12월 2일 저녁 4시 작가와 만남 이벤트 진행중이기도 하다. 숙소들이 예약이 들어차, 결국 에비앤비까지 동원하여 주택 2층을 빌려 손님맞을 준비도 해둔다.


-1


오늘 오전 팜플릿(도록) 마지막 준비작업이다. 어제 야근한 작품도 좋아해주신다. 사진찍고 작업한 내용들 추스리고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간추린다. 한 사이드에는 간택되지 못한 작품들도 가득하다.



0


파란색. 파랑.  정작 본인을 잘 모르겠는데 여러 번 잘 어울린다 한다. 바다를 좋아해서인가. 바다를 자주 봐서인가. 바다를 그때그때 그리고 싶어서인가. 자주 그리워해서인가. 바라만바 좋아서인가. 가끔 바닷가 카페에서 앉아 책을 마무리지으면 그렇게 울렁거리고 아득하고 좋다. 그 책을 바다와 함께 갈무리라니.



1. 


석고부조 색칠과 다중시선 작품 손만 보면 된다. 또 다른 만남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2. 


토요일 돌아와 <응시> 석고부조 작품을 탈형해본다. 드디어 건조완료? 조심스럽게 뜯어나간다. 손에 수분이 느껴진다. 어쩐다, 조심조심. 겨우 망가뜨리지 않고 탈형을 했지만 겉바속촉이라니. 테두리를 자르고 다시 난방패널 가동이다.  그래그래 흐르지는 말아라.


3. 


석고 작품들 채색을 해본다. 여벌로 한 작품 귀퉁이부터 시작하는데, 자꾸 색이 죽는다. 어쩐다 아무래도 조소 흙이 남아서인 듯싶다. 나머지를 과감히 치솔로 북북 씻는다. 모서리가 닳든 말든 세게 치카치카다. 비누도 묻히고 세제도 묻히고, 그런데 모서리가 툭, 에구 어쩐다. 간신히 부여잡고 테이블에 놓는다. 말라라. 붙어라. 채색은 은은하게 해야한다. 습기가 있으니 그래도 낫구나. 해나가다가 에폭시 레진 생각이 나 응급처방이다.


4.


밤새 카톡카톡이다. 도록내지, 표지, 엽서, 포스터안 오탈자와 문의까지 한밤중에도 특근작업을 하셨구나. 보내온 시간이 새벽 세시가 넘는다. 세부 내용들이 들어오지 않아, 출력을 해두면서 붙인다. 하나하나 관객의 입장에서 읽어낸다. 호흡도 수정글도 그림도 배경칼라도 마음에 든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다싶다. Gypsy와 귤의 도움이 크다. 그러고보니 벌써 4년 전부터 같이 작업을 했구나. 구력도 붙었다는... ...


5.


14일 화요일 출근길. 확인한 도록에 실수한 부분이 떠오른다. 이런. 판화를 혼합재료로 기재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수제 젤라틴판으로 작업한 건데. 


다행이군. 아직 시간은 기다려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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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세대 2023-11-2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다르다에 다다르기까지 삶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따로 보고 같이 보고... 그리고나니 우연과 중첩이구나. 거듭난‘나‘에 다다르다

소슬바람 2023-12-23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감을 깨워주는 작업, 작품 고맙습니다
 















-1. 


어제도 바쁜 하루다. 추가면접까지. 살아가는 방식에 제 각각이다 싶다. 글을 남긴다는 것이 책만 올려놓고 생각을 잇지 못하고 급히 다른 일들을 보다나니 퇴근 시간에 가깝다.


0. 


동료가 요청한 책을 들여다본다. 서론-목차-그림과 요약본...제법 잘 된 책이다. 중독을 다룬 책 <<도파민네이션>>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기계발서식 미국식요약방식의 서술 방식이 별로 고통을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며칠 지나면 남는 것이 별반 없을 지도 모르겠다.


1. 


페북의 한 친구가 이동권 실습을 웹툰?만화로 다룬 이야기를 보다. 아차 놓친 게 있어 말고리를 잡고 싶어서다. 속도. 목발을 짚고서 이거나 아프거나 노인이거나, 노약자로서의 속도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놓친다. 행정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더 더군다나 이들의 말의 강도를 잡아채지 못한다. 그런 속도를 추체험해본 적이 없어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보이는 행정, 느린 것들은 모두 뒤안으로 숨기고 싶은 속내. 단계를 거쳐 올라가면 그런 정상인들의 체계에서 그 온도는 점차 식어간다. 온기는 온 데 간 데 없다. 그들의 속도도 문제다. 시선만이 문제가 아니다. 느릿느릿 겪어보지 못한 자들이 윗자리에 머무르는 관행이 지금을 망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평생 영감 소리를 듣거나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못한 자들. 밥도 운전도 수발도 내 손으로 겪지 못하는 자들. 


2. 


거스르는 감속의 시선.  거슬러 올라가는 몸이 겪는 시선들. 그 시선들의 온기가 스러져가는 것들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듬고  그 곁으로 온기를 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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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로볼: 막내가 가지고 놀아, 하나 사서 놀아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오른손, 왼손. 아니지 아니야, 오른손은 잘 되는데 왜 왼손은 되지 않는거야. 그러다가 유투브를 보게 된다. 빠르게가 아니라 원심력을 느끼면서 천천히..천천히 ...조금 속도를 올리면 되는거야. 빨리빨리가 아니란다. 그렇게 하다보니 왼손왼손..왼손 하다보니 작업실에서 양팔이 욱신거린다...결국 맨소레담 듬뿍 발라주어 통증을 가라앉혔다...지난 밤..  전완근, 손목 터널증상에 좋을 듯...


-2.


파파보이: 삼십대 초중반 면접을 보는데, 이 친구들 꼼꼼하다. 자세히도 본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정작 본인들이 현장 확인까지 하고도, 또 결재를 받는다. 그러면 결정을 왜 내린 것인가 싶다.


0. 


면접대기. 두 분이나 펑크를 낸다. 짬짬이 앞에 놓인 벽돌책 진도를 나간다. 에셔의 창작론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불러낸 녀석들에 의해서 조종되는 영매인 듯한 느낌을 가끔 받는다. 그것은 마치 그들 스스로 어떤 모양으로 보이게 할지 결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까지 나의 비판적인 견해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태어날 때의 크기에 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로 아주 까다롭고 고집이 센 녀석들이다. 524 <<괴델, 에셔, 바흐>>








2. 이 창작론은 훈데르트바서의 식물성의 사유와 비슷하다. 자랄 때까지 충분히 숙성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린 기다리지 못한다. 뭘 이뤄야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서 이기도 하다. 천천히 그냥 자라게 놓아두어야 한다. 고 지난 전시에서 얘기를 해두었건만, 물아일체의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기는 할 것이다. 어떻게 그 상황을 만들어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3. 폴발레리는 천재는 없다는 관점에서 부단히 노력했고, <테스트씨>를 발명하기도 했다. <<피렌체 사람들 이야기>>도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볕뉘


몸이 필 때가 있다. 잘 기다리고 빨리 낚아채려 하지 말고, 기다려주라. 그러면 또 그 녀석이 물고올 것이다. 헌데 잘 믿지를 않는다. 어쩌면 낡은 단어에 매여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의 온도를 올리는 것에 집중하라. 어쩌다어쩌다가 점점 패턴을 갖게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누구나 다른 경험의 세계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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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23-11-07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이 시들고 있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책
소개에 .. 웃프고도 흥미롭습니다!!

여울 2023-11-07 09:28   좋아요 0 | URL
꽃 피우듯 피워보세요.
 



















0.




펼쳐둔 <<괴델,에셔,바흐>> 책에 짬짬이 눈길이 간다. 대략 몇 장을 읽을 수 있었는데, 관심가는 대목을 밑줄긋기를 해 본다.  이 대목은 선문답(공안이라고 써있다.) 부문이기도 하고, 사둔 조주록이 기억

나기도 한다.



-1.


가을 볕과 하늘이 좋아 이동중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보고싶은 할아버지 할머지 삼촌....친구들 다 만나고 계실 줄 몰라. 참 기분좋은 시간들이겠네. 정작 놓아주지 않는 건 나였지. 그렇군 했다.


-2.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라는 책이 겹친다. 부분은 전체에서 나온 것이고,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 자본주의를 살아내는 우리들이 불행한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번지는 책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지름길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니 반갑게도 두 권의 책이 나와있다. <<봄의 창의성>> <<대화란 무엇인가>> 번역서가 없어 아쉬웠는데, 가을을 매듭짓기에 좋은 책들이 될 것 같다.


1. 괴델,에셔, 바흐의 대위법을 갖춘 책은 자기-순환구조에 빠진 그물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란 문제의식을 가진 책이고 아마 이십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체계가 있는 책이다. 


2. 깨달음은 얕은 것이기도 하다. 깨달음의 깨달음. 그 껍질은 계속 얇아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 앎이 아니라 삶의 농도를 고민하는 이라면 대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밑줄을 다시 새겨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3. 오랜만에 작업실에서 늦도록 작업한다. 여러가지가 물밀듯 들어올 때가 있다. 조주간만은 차이의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달이 차오를때가 있다. 몸도 아이디어도 차 오를 때가 있기도 하다. 잘 기다려야 한다. 꼼지락거리며 뭐라도 하면서... .. 어젠 달이 조금 기울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만월이었다.


볕뉘


긴장된 깊이 읽기. 동-서, 서-동, 서양-동양의 사고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플랑크길이에서 시작되어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나 애초에 모든 것이 점에서 시작되고, 시공간을 지나 얽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다가 접는다. 접자... ...앙꼬없는 찐방, 찐빵없는 앙꼬.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동.서서.동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사물들은 한 각도에서 보면 복잡하게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 과수원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면 전혀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다른 특정한 각도에서 보면 아름다운 규칙성이 나타나지. 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같은 정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지. - P317

논리로부터 벗어날 경우에만 깨달음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원론은 세계를 개념적으로 나누어 범주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원론을 벗어날 수 있는 인상을 주지만 세계를 범주들로 쪼개는 것은 사고의 위층 훨씬 아래에서 일어난다:사실 이원론은 개념적으로 나누는 만큼이나 세계를 지각적으로 나누어 범주화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 지각은 본질적으로 이원론적 현상이며, 이것은 깨달음의 추구를 힘겨운 투쟁으로 만든다.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말에 대한 의존을 극복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이로서 깨달음의 적이 논리라고 하는 것은 아마 틀린 것이고, 그 적은 오히려 이원론적이고, 언어에 의한 사고이다. 그런데 사실, 언어에 의한 사고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지각이다. 지각하자마자 대상과 세계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세계를 부분들로 쪼개며 그로 인해 진정한 길을 놓치는 것이다. - P339

그 길은 보이는 사물에 속하는 게 아니다. 안 보이는 사물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는 사물에 속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물에 속하지도 않는다. 참된 길을 찾지 말아라. 공부하지도 말아라. 이름 붙이지도 말아라. 참된 길 위에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하려면 네 자신을 하늘과 같이 활짝 열어두거라. - P343

그것 자체가 영원인 죽음은 눈송이가 깨끗한 대기속에서 녹아 사라지는 것 같은 것이다. 한때 우주 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하위체계였던 눈송이가 이제는 한때 그 눈송이를 포함했던 더 큰 체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간다. 구별된 하위체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의 본질은 어떻게든 여전히 남아있고 앞으로도 남게 될 것이다. 그 눈송이는 딸꾹거리지 않는 딸꾹질과 읽히지 않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세계를 떠돈다...... - P345

조사의 관문: 때가 되면 익는 과일처럼 너의 주관성과 객관성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꾼 벙어리와 같다. 자기만 알 뿐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 이 상태에 이르면, 자아의 껍질이 박살나고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일 수 있다. 그는 날카로운 칼을 가진 위대한 전사와 같다. 부터가 그의 길을 막으면 부처를 베어 쓰러뜨릴 것이고 조사가 장애가 되면 조사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생사의 길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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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월의 마지막 날. 일터에서 회의를 했고, 라이딩 마무리 400k를 채우느냐고 고민했지만 한번 달려주는 걸로 마무리한다. 대박이라는 막걸리에 두부계란부침, 깻잎반찬, 족보에 없는 황태 미역 두부 미소된장국, 갓지은 밥으로 매듭을 짓다. 야전침대용 노르웨이 담요도 도착하고, 오전 여러 아이디어들이 삐죽삐죽 올라온다 싶어. 드디어 준비가 되어가는구나 한다. 몸이 차오르고 있어, 기운내보자 한다.


1.


길은 집착할 수록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길-마음이라는게 있다면 아마 마음을 비우는 쪽이 더 낫다 싶다. 길-회의, 진리-회의라는게 있다면 회의라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길이나 진리를 좀더 뚜렷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믿지 못할텐데. 그런 회의의 자세가 좋다.  팽팽한 두 힘의 줄다리기가 아니라 세 가닥의 줄다리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 하나 더하면서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는 방법. 


2. 


한 친구가 강연마무리 자료를 자세하게 보았던지 루쉰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

는다. 그래서 이욱연의 책의 1부 2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우연으로 사유하는 것은 비단 과학의 사유에 근거한 것만이 아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미결정이란 말 이후가 아니다. 니체는 친절하게도 우연이란 가장 오래된 귀족이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진리를 지우고, 진선미에 가로로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더 가깝게 가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공짜가 없듯이 나만의 길로 가 보는 것이다. 실수실수실수.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것이 곧 길이다 싶다. 


볕뉘.


벽돌책이 다시 눈길과 손길에 들어온다. 1/3지점, 다시 잇고 있다. 그래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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