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같은 경우, 원제목인 통천제국의 적인걸보다는 한국식 제목(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가 너무 식상해서 말이지. 어제는 검우강호를 보고, 오늘은 적인걸(이하 생략)을 보고, 연이어 무협영화 2편을 봤다. 어떻게 보면 적인걸은 무협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협액션이 빠진 것은 아니니...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추리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다. 배신과 음모, 모략과 반전 등의 요소가 없었던 영화들은 없지만(화려함이 극에 달한 <황후화>같은 영화도 뭐 이런 소재들이 다분히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 소재 자체를 영화화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하겠다), 이번 영화처럼 고대 당나라의 수사일지를 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은 없었다. 

적인걸이라는 인물은 예전에 측천무후 관련된 책(기억이 잘 안 난다)을 봤을 때, 잠깐 봤던 기억이 난다. 뭐 내용은 측천무후 시절 실력 위주의 중신들이 많이 등용되어 활약했다~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저자의 결론은 '그래도 측천무후 시절 공포정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고, 그 힘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격으로 활약하던 악인들도 있었다~' 뭐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唐史에 대해 관심이 적은 건 아니지만, 측천무후와 관련된 부분은 그닥 관심이 없어서 관련 자료를 몇번 뒤적거린게 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로 나온다니 인터넷에서 끄적거리면서 검색을 좀 해 봤다. 최근의 측천무후에 대한 연구사적 성과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치세 동안 백성들은 평안했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대강 보면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민주화 후퇴, 언론 탄압, 국민에 대한 정보 통제 등등에 대한 문제가 많았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 준비야 장면 내각때부터 이뤄졌다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력있게 밀어붙인 것도 사실이니~뭐 그때의 부작용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고. 암튼, 측천무후에 대한 평가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 이 점 또한 흥미로웠다.

그럼 이제 영화 얘기 좀 해 보자.

영화는 측천무후의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건조가 한창인 120m 높이의 통천부도(通天浮屠)라는 거대한 불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용문석굴의 비로자나불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건축물은 정교한 CG로 작업되었는데, 영화 초반부터 보는 이로 하여금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암튼, 로마의 사신단에게 이 건축물을 소개해주던 당나라의 관리가 갑자기 자연발화하게 되고, 영화는 긴장감있게 흘러간다. 자연발화한 당나라 관리를 조사하던 대리사(당시 법집행기관)의 책임자 역시 자연발화하는 등 사건이 심각해지자 감옥에 갇혀 있던 적인걸을 다시 불러오라고 명한다. 여담이지만 어떤 분 블로그에서 말하길, 이 자연발화 CG를 우리나라 스탭진이 담당했다고 하던데 맞나 모르겠다.   

그는 측천무후의 대리청정을 반대해 반역죄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간지 8년째였다. 측천무후가 적인걸을 필두로 자신이 총애하는 상관대인 정아, 대리사의 부책임자(?) 배동래에게 이번 사건의 조사를 명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는데 여기에서 어리숙한 척 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적인걸의 친구로 적인걸이 감옥에 들어갔을때 그 역시 감옥에 들어가 왼팔 하나가 잘렸던 사타충이 바로 그였다. 

그는 목숨을 부지해 이후 궁궐의 보수 책임자로 일했고, 지금은 통천부도의 건축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역시 과거 대리사에 일했던 경험을 살려, 따로이 사건을 수사했고, 적인걸 일행에게 중요한 단서를 알려준다. 여기까지 봤을 때 뭔가 감이 오긴 했다. 저 어리숙한 양반이 뭐가 있구나~하고 말이다. 암튼, 그렇게 사건 수사가 계속되고 알 수 없는 집단들에게 계속 공격을 받는 적인걸 무리. 결국 정아(원래 그를 싫어했지만 적인걸을 어느새 사랑하게 되버린 그녀)는 매복에 걸려 적인걸을 구하고 죽게 되고, 배동래 역시 매복에 걸려 자연발화하고 만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남긴 증거때문에 적인걸은 결국 측천무후 정치의 실체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자연발화의 원인과 주범, 거기서 더 나아가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에 대해 모든 걸 다 알아버린다.  

전체적으로 느낌은 <셜록홈즈>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여담이지만 <셜록홈즈>를 보면서는 <일루셔니스트>와 <프레스티지>를 떠올렸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소설 속의 인물을 참 잘 살렸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도 참 재밌게 이야기를 잘 짜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적인걸은 당나라의 명신보다는, 중국사에 길이 남는 유명한 판관 4명 중 하나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라마로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판관 포청천! 실제 중국 내에서도 포청천이 가장 유명하단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진 판관은 바로 적인걸인데 이는 네덜란드인 고라패라는 사람이 그에 대한 책을 서술했기 때문이라고 한단다(http://cafe.daum.net/ijkhanmoon/Vzk1/76). 뭐 원전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좀 뜨면 원전이 번역되서 좀 발간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암튼 영화를 주욱 보면서 원래 내용이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가 재직하면서 해결한 사건이 17,000여 건인데, 이후 상소가 단 1건도 올라오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판결은 늘 정확하고 공정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싶다. 어떻게 단 1건도 상소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흐음. 그럼 영화를 보면서 눈여겨 본 부분 몇가지만 얘기하고 마무리하자. 

1. 화려한 CG와 웅장한 스케일이 눈에 확 띈다. 스케일 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시대극보다도 컸던 것 같다. 장안성(그런데 정아가 배동래를 비롯한 대신들 앞에서 측천무후의 명을 공표하는데 東都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 같던데...그런 낙양 아닌가? 쩝...)의 화려한 모습을 CG로 재현했는데, 성 주변의 수운으로 수십척의 배들이 드나들고, 항구에는 엄청난 숫자의 장막이 펼쳐졌으며 외국인-중국인 할 것 없이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활기차게 생활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았다. 화려함은 <황후화>만 못 했지만, 그래도 측천무후의 머리 장식이나 복장은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다.  

2. 영화 초반부의 설정이 마음에 든다. 적인걸은 맹인 행세를 하면서 감옥에서 일하는데(난 처음에 진짜 맹인인 줄 알고 눈을 나중에 어떻게 살리지? 라는 생각에 한 3~4초간 고민했다능...-.-;), 그 일이라는 것이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중 처리가 된 것들을 불태우는 것인 것 같다. 그는 올라온 상소들을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계속 알았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지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 게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 했지만, 영화에서 묘사한 바가 신선해서 눈에 띄었다. 또한 적인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 그런 설정을 보여줌으로써 이후 측천무후 시절, 그가 명신으로 활약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복선을 깔아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3. 인물 간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적인걸이지만, 그를 도와주는 2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상관대인 정아와 대리사의 배동래다. 적인걸을 처음에 미워했으나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된 정아, 그리고 그런 정아를 남몰래 아끼는 배동래. 극 중간중간마다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장면들이 조금 있었으나 철저하게 마지막까지 그것들을 배제했다. 정아는 측천무후에게 살면서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냐?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 라고 물으면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 속내를 비추는데 만족해야만 했다(그런 정아의 마음을 적인걸이 아는 것 같지는 않았고 -.-;). 즉, 철저하게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적하는데 있어 어설프게 로맨스를 집어넣지 않은 점이 좋았다. 또한 적인걸 일당이 각각 쓰는 무기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면서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런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이 영화를 봄으로써 적인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는 점, 그리고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이 있다는 점, 그래서 그걸 보고 싶게 했다는 점이다. 어떤 분이 영화에 대한 댓글에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정치적 이야기 뭐 이런 것을 알고 싶었는데 이건 아니다' 뭐 이렇게 쓴 걸 봤다. 이 영화 자체가 측천무후의 등장에 따른 당시 정치사를 사실적으로 다루려는 목적이 없는만큼 그런걸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냥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것 뿐이니 말이다(그래서 앞에서처럼 <셜록홈즈>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실존인물이고, 이 안의 인물들과 배경이 실제 사실에 어느 정도 근거했다고 하더라도 내용면에서 비판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밖에 중간중간 좀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자연발화의 원인인 서역산 '적염금귀'라는 독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 걔네를 끓여서 만든 물을 마시거나 피부에 닿으면 자연발화가 된다는 것인지, 걔네들은 만지기만 해도 그런 것인지, 걔네들이 물으면 그런 것인지 다 뒤죽박죽 섞어놔서 좀 의아했다. 또한 영화 마지막에 측천무후의 퇴위를 '적인걸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라고 한 것도 조금 NG였다. 실제로 그는 측천무후 집권 내내 재직했고 부와 영예를 누렸던 인물로서, 영화 상에서야 적염금귀에 중독당해 지하의 귀신도시(鬼市-한대에 장안성이 무너진 부분에 형성된 할렘가랄까?)로 들어가 살지만 실제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영화상의 설정을 갖고, 영화 말미를 저렇게 장식하나? 싶었다.  

암튼, <검우강호>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영화라서 즐겁게 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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