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명나라 때다. 일단 무협 영화 중에 명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많이 못 봤던 것 같기도 한데...(아닌가? -.-;) 시작부터 그게 좀 독특했다. 솔직히 명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 세트며 소품 등을 준비했겠지만 필자에게는 그닥 확 와닿지 않았다. 아니, 뭐랄까? 명대라는 것을 느끼게 할만한 것이 무언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해야 할라나?

대략의 주인공은 일반 무협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 절세무공 혹은 불멸의 영생 등을 얻기 위해 온 무림이 난리를 친다. 좀 특이한 거라면 전 무림이 혈안이 되어 찾으려는 것이 바로 달마의 사체라는 것이다. 대개 무림비급이나 뭐 이런 걸 찾을때면, 숨겨진 고수의 연공실, 혹은 숨겨진 비책이나 선약 등을 찾거나, 은둔고수를 찾아 몇갑자의 무술을 단숨에 전수받아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달마의 사체를 찾는다는 설정이라 좀 독특하다. 달마의 사체만 찾으면 뭐가 다 해결된다는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영화를 계속 봤다. 달마가 죽은 뒤 누가 그 무덤을 파서 사체를 둘로 쪼갰는데, 명나라 황실은 지앙(정우성)의 아버지(명의 재상)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명한다. 하지만 黑石(검은 돌 3개를 죽일라는 사람 집에다 갖다 놓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의 설정은 명나라 관리들에게 엄청난 돈을 상납받으며, 조정을 주무르고 맘에 안 들면 죽여버리는 베일에 싸인 암살단으로 나온다)이라고 불리는 암살단이 쳐들어와 사체를 빼앗기 위해 지앙의 온 가족을 몰살시킨다. 그 와중에 암살단원 중 1명인 세우가 등장하고, 지앙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다시 한번 더 싸우지만 결국 심장에 칼을 맞고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영화가 스무스하게 지나간다. 일반 무협영화처럼 이제 곧 복수가 시작되겠지~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도망간 세우는 성형을 하고, 정징이라는 이름으로(이때부터 양자경이 등장)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딴 동네로 이사가서 비단이랑 복주머니 같은 것을 팔면서 살아가는데 그 동네에서 우편배달부로 살아가는 '강아생'이라는 사람과 만나 이윽고 사랑에 빠진다. 강아생의 적극적인 대쉬에 자신이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는지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먼저 결혼하자고 청혼해 버리고,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산지 반년 정도 지나고, 둘은 남들이 볼 때 별탈없이 지내는 평범한 부부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전당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떼강도가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게 됐고, 정징은 그만 숨겨둔 절세무공을 발휘해 떼강도를 물리치고 남편을 구해낸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강아생, 그리고 그런 그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며 따르는 정징.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흑석이 떼강도 두목에게 당시 사건 정황을 듣고 결국 정징을 찾아내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솔직히 여기까지가 1시간 조금 넘은 시간동안 진행된 내용인데, 솔직히 보면서 정우성이 대체 언제쯤 뭔가 보여줄까? 라는 기대감과 약간의 지루함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2시간 거의 다 지나가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다.

뭐 결론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내용이 전개될지 대강 감들이 오실 것 같다. 약간 스포일러 좀 하자면(죄송 -.-;), 정우성은 흑석이 예전에 죽인 줄 알았던 지앙이 마찬가지로 성형을 해서 강아생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처음부터 정징의 정체를 알고 결혼을 했던 것이다(정징은 정우성 얼굴 고쳐준 그 의사한테 가서 또 성형을 하고, 그 의사는 정우성이랑 절친이고...뭐 이런 관계). 이게 가장 큰 줄거리이고 요 중간중간마다 흑석의 또 다른 고수들인 마법사나 레이븐, 옥(세우가 나가고 나서 새로 뽑은 여자 암살단원, 완전 잔인하고 못된 캐릭터) 등이 등장해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다.

스토리 얘기는 고만하고, 그럼 딴 얘기 좀 하겠다.

일단 이 영화는 기존의 무협액션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이 영화의 감독, 제작진들의 이전 영화들을 살펴봤을때 분위기가 약간 틀어졌다고나 할까? 단순히 진중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영상미가 넘쳤던 무협액션(<와호장룡> 봐봐라. 무협액션 영화가 그렇게 운치있게 만들어질 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취권>이나 <황비홍>, <엽문> 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아닌가)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약간의 유희를 집어 넣었다고나 할까? 정우성은 강아생을 연기하면서 연신 수더분하고 착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연기를 계속 펼친다. 그런 순수함에 정징은 그를 더 사랑하게 된 것일테고, 그는 철저히 자기의 과거를 속이면서 복수의 칼날만을 갈았을 것이다. 그런 정우성의 연기는 옛날에 봤던 <똥개>에서의 모습을 살짝 연상시킨다(물론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빙했는지, 실제 했는지 모르지만 대사 치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연기력에 플러스가 됐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 말미에 정우성의 존재가 밝혀지고, 정징의 존재도 밝혀지면서 흑석의 두목 왕륜의 존재가 밝혀지는 대목에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온 것도 일종의 유희랄까? 앞서 이 영화의 배경이 명대라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 했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절감했다. 흑석 두목 왕륜은 9품 문서담당 내시였으며, 그런 자신의 삶이 싫어 무술을 미친듯이 연마해 자신의 삶을 가리고 흑석을 운영하면서 관리들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동창은 아니었지만, 그가 내시라는 점이 상당히 역설적이게도 합리적이었다? ^^;). 일부러 목소리도 변조하고 수염도 붙이고 다니는 대목에서 뭔가 모를 코믹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그가 달마의 사체를 얻기 위함은 고자에서 정상 남자로 변신(?)하기 위함이었다니, 그 대목에서 뭔가 모를 충격이 왔다. 기존의 무협영화와 달리 뭔가 색다른 결론, 뭔가 신선한 내용 전개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분위기 말고 눈에 띄는 것은 좀 더 다이나믹한 액션씬이었다. 솔직히 <와호장룡> 같은 영화는 무협액션보다는 조금 미화해서 예술영화 풍이었다. 와이어 액션이 뻔한 나긋나긋한 동선과 부드러운 칼놀림, 선비끼리 부채로 싸우는 듯한 그런 분위기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게 오히려 기존 무협영화와 달랐고, 세계인의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에 큰 호평을 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무협영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조금 기운 빠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무 지극히 현실적인 <황비홍>, <엽문>같은 영화는 좀 단조로운 감이 없지 않다. 화려한 액션 말고 딴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고 뭐 그런 거 말이다(무조건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화려한 액션씬만 보여줘야지, 어설픈 드라마, 멜로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좀 NG다!). 그렇게 봤을때 이번 영화는 <와호장룡>식 액션을 조금 더 다이나믹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굉장히 멋있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과 같은 액션씬이 여럿 나왔는데, 정우성의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무지 힘들었을 것 같았다.

세번째는 무협영화이면서 독특한 내용 전개와 반전, 캐릭터 설정을 했다는 점이다. 먼저 소재나 시대가 독특했음은 앞서 언급했고, 캐릭터 설정도 잠깐 얘기했지만 좀 더 하자면...나쁜 놈 두목은 공식적으로 내시, 음성적으로는 명나라를 휘어잡는 무림의 짱!, 남자 주인공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얼굴을 바꾸고 복수를 다짐하는 어리숙한 바보, 여자 주인공은 역시 얼굴을 바꾸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한때 완전 잘나가던 여자 암살단원, 그밖에 가족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지만 무시무시한 독침을 사용하는 무술 고수 암살단원과 마술과 무술을 같이 사용하는 암살단원, 살인을 즐기는 못된 여자 암살단원 등 캐릭터 설정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정말 그런 애들이 있었을 법 한. 또한 얼굴을 바꿔 다른 삶을 살지만 결국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존재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이런 건 그동안 무협소설에서는 종종 나온 소재지만, 무협영화에서 나온 적은 없지 않나 싶다. 오우삼의 명작 <페이스 오프>와는 다르지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정우성의 연기력도 안정적이었고,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 설정도 무리없이 흘러가서 재밌게 감상한 영화였다. 또 오랜만에 보는 멋진 무협영화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런지는 모르지만, 이번 6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영화인들이 10분간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였다니 외국 사람들 눈에는 더 괜찮게 보였나 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가 고대 중국 버전으로 재현되었다고도 하던데, 글쎄~그것보다는 더 운치가 있다는 점에서 동양인들에게 더 잘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의 선전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기 전!! 몇몇 지적하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1. 영화 제목을 왜 '검우'에서 굳이 '검우강호'로 바꿨나?? 원래 제목이 더 좋은데...무협 영화라서 '강호'가 들어가야 한다고 누가 주장했나 보다. 영화의 운치를 절감시키는 효과가 있는 제목이었다고 생각한다.

2. 한국 영화 포스터에 각 캐릭터를 설명한 대목이 웃겼다. 정우성을 두고 '신분을 감춘 비운의 암살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가족을 암살자들에게 잃고 신분을 감춘 비운의 아들내미였을 뿐이다. 쌈 잘 한다고 암살자는 아니지 않는가? 또한 마법사 역할로 나오는 대립인을 흑석파의 책사로 적고 있지만, 영화 안에서 그가 정말로 지략을 쓰는 장면은 별로 없다. 영화 후반부에 마치 짜고 친 것처럼 왕륜을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실패하고...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문락이 분한 레이븐은 독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흑석파의 암살자...라고만 밋밋하게 소개할 뿐이고, 양자경은 당대 최고의 여검객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어!? 분명 얘가 실력이 짱인 건 알지만 암살자인데...이렇게 양자경과 정우성을 소개하고 나니 마치 정우성이 나쁜 놈 같고, 양자경이 착한 놈 같잖아? 이건 일부러 그런건가? 아니면 영화를 안 보고 포스터만 대강 얘기듣고 만들었나?? 쩝.

3. 지앙은 성형 전 흑석이 쳐들어오자 가족을 잃고 자기도 죽을 뻔 했다. 그런데 몇년 후 성형하고 나서는 레이븐과 함께 온 암살단원들을 모두 물리칠 정도로 실력이 월등해진다. 그리고 여유를 잃지 않고, 적들 앞에서 칼을 갈기까지...그동안 피나는 훈련과 연습을 해 온 것일까? 왜 이렇게 잘나졌지?? 지앙의 과거 내용도 스킵하는 식으로 좀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난 솔직히 정우성이 성형한 지앙 역을 했다기보다는 지앙과 관련된 뭔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나올 줄 알았었다. 왜냐면 초반에 지앙이 맥없이 암살단들에게 져서...주인공인 정우성이 그렇게 약할리 없다! 고 생각했으므로.


뭐 이 정도??? 그래도 전체적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봤다. 특히 오우삼 감독의 영화기도 하고, 정우성이 이번 영화 대박나서 비(<닌자 어쎄씬>)보다 더 크게 성공하라는 의미에서 별 5개 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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