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의 재조명 - 삼국사기 사서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 1
김상 지음 / 북스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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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때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김상이 쓴 2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인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읽은지는 꽤 됐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이제서야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적게 됐다.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거창하면서 희한(?)하기까지 하다. 삼국사기를 통해서 삼한사를 재조명한다고? (대개『삼국사기』에는 삼한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삼국지』동이전에 더 많은 기록이 있다고 보지) 거기다가 辰王은 알겠는데, 전기진왕시대는 뭐야? 그럼 후기진왕시대도 있다는 소린데? 그런 시기구분은 처음 보는데? 라고 느낄만한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맞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삼한의 마한, 진한, 변한은 지금껏 우리가 접했던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살펴본 삼한이다. 거기다가 진왕에 대한 해석도 기존에 나온 학설들과 달라 굉장히 신선하고 참신하다. 어떻게 보면 첫번째 책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어려운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필자 역시 1번 읽고는 내용이 제대로 이해돼지 않아 2번 이상 읽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기존에 필자가 갖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다르며, 필자가 그간 봐왔던 방법론과 달랐기 때문이라는 소리도 되겠다.

현재 각 서점 싸이트를 보면 이 책에 대한 리뷰는 거의 없다. 찾아보니 알라딘에 1개가 있는데, 그닥 많은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혹시 이 책을 안 읽어본 분들에게 이 책이 어떤 것이다~라고 소개하는 의미도 있고, 필자가 읽고 난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오늘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아! 미리 말해두지만, 김상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김상의 새한국고대사'라는 인터넷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도 살펴볼 수 있다. 책으로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굳이 책을 보지 않겠다~하는 분은 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첫번째 책이 광개토태왕능비와『삼국사기』를 비교하고, 백제사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삼국사기』와『삼국지』를 비교하고, 가야-신라사 중심이라는 차이점이 있단다(저자의 말). 이 책의 목차를 봐도 저자는 가야사를 상당히 앞부분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는 가야사가 한-일 고대사를 모두 엮고 있는 열쇠와도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이전에 가야사에 대해 공부한 것이라고는 철제집단의 형성과 활약상(?)에 대해 쓴 글이 전부([뿌리아름]가야와왜 게시판 13~21번 글)인지라 그닥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가야가 한-일 고대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나? 싶었다. 실제 저자는 칠지도도 백제 파트가 아닌 가야 파트에서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왜 그런지 알게 됐지만, 암튼 이처럼 신선한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종종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본질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판받고 있는데, 그렇게 봤을때 이 책 역시 유사역사학의 한 축에 속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단 한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은 일단 Pass하도록 하겠다).

저자가 보는 가야사는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눈다. 물론 이는 한국 고고학계나 고대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단, 둘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6가야로 가야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단순히『삼국유사』의 영향?), 최근에는 김태식 선생님의 연구로 인해 가야사를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구분하고, 전기의 맹주를 금관가야, 후기의 맹주를 대가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김태식 선생님의 저서나 논문을 보면 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 설을 따라 패널을 만들어두고 있다. 즉, 가야가 단순히 6국만 있었다고 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헌사학적 입장에서 보면 전기와 후기는 하나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고고학적으로 봤을때 분명 가야지역에는 문화적으로 단절된 시기가 온다. 금관가야가 몰락하고 바로 대가야가 득세하여 후기가야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당시 가야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즉, 중간에 가야 지역의 삼한백제에게 정복당하여 국권을 잃고 광개토태왕이 삼한백제를 깨부시자 그 휘하에서 다시 독립한 것이 5세기 초라고 보는 것이다. 기존의 학설은 고고자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 했다고 한다면, 저자의 생각은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물론 고고자료에 금석문이나 문자기록이 주루룩 적혀 있지 않는 이상, 문헌기록과 일 대 일로 완벽하게 등치시키지는 못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단, 어느 정도 개연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 정도는 따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시작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셈이다. 

일단 이 책이 어떤지 간단하게 얘기했으니 뒤이어 책 전체 내용을 다 열거하지 않고, 중간중간 필자가 눈여겨 본 부분 위주로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1.『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저자는『삼국사기』나 <광개토태왕릉비>에 나오는 왜의 실체가 다른 것이며(뭐 엄밀히 말하면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전자의 왜는 임나, 후자의 왜는 삼한백제로 보는데 백제에 임나가 속해있던 시기가 있었으니 양자는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다),『삼국사기』의 왜는 신라와 지겹도록 대결하는 것으로 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왜로서 임나를 지목하고, 왜의 세력 변화에 따라 왜인, 왜국 등으로 신라측에서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고 적고 있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의 서부에 한인, 왜인, 중국인 할 것 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았다는 것은 뭐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명백하게 왜라고 기록된 세력이 임나라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2.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 복원 시도

예전에 필자가 까페에 썼던 글을 저자가 인용하면서, 백제 3루왕의 재위기간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필자는 그때 백제 초기 6왕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지만, 한번 뒤집어보면 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을 일반화하려 했던 것 같다. 암튼, 이것을 저자는 辰王이라는 존재를 내세워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한성백제가 결국은 삼한백제(필자가 말하는 비류백제, 난 둘 사이의 용어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게 더 구분하기 쉽다고 보기 때문에 이 용어를 고집하는 편이다)에 속하게 되고, 그 담로국으로 지위가 전락함으로써 백제 왕력에 들어가지 않는 인물들이 생겼는데, 백제 초기 왕들의 재위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것은 이때문이다~가 저자의 주장이다. 이 역시 참신한 주장인 것은 마찬가지.

3. 말갈백제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

말갈백제. 말갈이 어떻게 백제랑 한데 엮일 수가 있지? 저자는 고이왕과 眞氏를 말갈계로 해석했다. 그리고 한반도 중부 한강유역에서 확인되는 거대한 적석총(밑변의 규모만 따지면 장군총보다도 큰)을 말갈계 무덤으로 보고 있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말갈은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물길-읍루-말갈-여진 등의 계보를 가진 집단은 아니며, 한반도 말갈로 따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은 고구려 산하에 소속된 집단으로서 적석총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고분이라는 주장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서 한강유역의 적석총을 백제 묘제 중 하나로 가르치면서 하는 말이 '전성기인 근초고왕때 고구려와 대등해진 백제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구려의 묘제인 적석총을 차용해 만들었다'인데, 필자는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의문이 들었다. 거짓말~당시 고구려가 백제에게 그 정도로 의미가 큰 대국일리도 없을 뿐더러, 근초고왕이 정말 그렇게 영토를 확장하고 고구려를 까부시는 등 활약을 했다면 굳이 고구려 묘제를 차용했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이 통일을 하고 만주 지역을 되찾아 한국 현대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는 중국식 무덤이나 미국식 무덤(뭐가 있을까?)을 따라했다는 소린데...그게 합당할까 싶다. 말갈백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필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3세기 한강유역의 역사를 공부할 때 상당히 자극이 되게 했던 내용이다.

4. 북방 이주민의 유입과 신라의 강성

전기신라, 중기신라, 후기신라 등 저자는 신라 역시 왜와 비슷하게 국력의 변화에 따라 시기 구분을 하고 있다. 신라 역시 한성백제(온조백제)나 가야처럼 삼한백제에 속한 적이 있는데, 이때 신라 왕력에도 백제 초기 왕력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긴 재위기간들이 확인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러다나 북방에서 여러차례 유목세력이 이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을 키운 신라가 점차 세력을 불려 결국은 고구려, 백제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한창 고고학계에서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이 비단 유목세력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있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는 영남 지역에서 확인되는 북방계 문물을 고구려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직접적으로 흉노-선비계로 해석한 것 같다. 뭐 필자 또한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논리는 오히려 장한식의『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보다 더 나아보인다. 

뭐 이 정도?

인터넷 상이나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많은 연구가 진전된 주제들이 이 책에서 대부분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상당히 도전적인 필체로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인 큰 틀은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와 관련된 학설과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필자 역시 김성호 선생님의 비류백제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완존히! 하지만 저자의 책은 그보다 더 논리적이며, 그보다 덜 추측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공격받을만한 여지는 적다.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지가 적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좋은(?) 현상이다(최근 후속편을 책으로 내신다고 하니 또한 크게 기대하고 있는 바이다). 

물론, 이 책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고자료로 역사를 가늠하는 필자에게 있어 뭐랄까, 문헌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서 이렇게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 것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기존의 통설이나, 파격적인 새로운 견해나 고고자료로 가늠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그 진실성을 밝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영남 지역에서 나오는 북방식 문물, 이동식 솥과 같은 유물은 분명 북방식이다. 이는 신경철 선생님도 수차 언급한 바 있는데, 북방식 문물이 고구려 것인지, 아니면 흉노-선비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흉노-선비나 고구려에서 출토된 이동식 솥에 대한 고찰없이는 정확한 판단이 내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있어 확실하게 흉노-선비계로 규명하고 있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첫번째 책과 인터넷 공간 등에서). 그런 부분은 분명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영산강 유역의 거대 옹관묘 등에 대해 일제시대때 도굴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우리가 원하는 유물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도 평양 일대의 낙랑고분이 일제강점기때 무수히 파헤쳐지고 유물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인정한다. 그건 분명히 그걸 파간 사람에 대한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그런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즉, 이 역시 추측성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공격의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의 공백기간에 대해서도. 분명 고고자료 상으로도 공백기간이 시작될 즈음 금관가야가 무너지는 경향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공백지대로 백제와 신라의 문화적 요소가 투입되는 것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것을 딱! 삼한백제의 가야지역 정벌과 삼한으로의 편입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국내에 남아있는 삼한 70여개국을 비정한 연구성과들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놀랐다. 비정의 근거는 다 지명을 갖고 하는 말장난(죄송합니다만, 고고자료 없이 그런 비정은 분명 추측 50% 이상이기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선학들께 죄송합니다)이었다. 즉, 이것들은 참고사항은 될 수 있지만, 필수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삼한의 70여개국을 찾을려면 각 지역마다 그 중심 취락 혹은 중심 성곽이 될만한 것들은 추려서 토기, 철기 등과 같은 유물 1~2점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필자는 그런 연구성과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엄청나게 규모가 큰 연구가 될테고,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제대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무슨 삼한백제를 따지겠는가. 

이처럼 고고자료를 갖고 한국 고대사를 재단하면 아직도 부족한 것이 수두룩하다(재야든, 강단이든). 하지만 고고자료의 한계성만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 역사고고학이라면, 어떻게든 고고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이 사실(fact)인지 아닌지 입증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문헌의 기록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델, 해석이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의 이 책은 그간 한국 고대사에 있어 막힌 부분을 어느 정도 뚫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보는 분들, 역사를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솔직히 비추지만, 조금만 더 관심갖고 본다면 분명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될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기존의 생각에 자극을 주고 다소 혼란함을 주는 책이야말로 그 사람의 지식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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