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발견
김용만 지음 / 바다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새로 쓰는 고구려 문명사'

 이 책의 소제목이다. 문명사라.

이 책을 처음 본 때는 2000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제 마음놓고 책을 볼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샀던 고구려사 관련 서적이 앞서 언급했던 노태돈 선생님의 '고구려사 연구'와 김용만 선생님의 '고구려의 발견'이었던 것 같다. 아마 여름쯤 책을 샀다고 생각되는데 이 두권의 책을 산 이유는 아무래도 앞서도 얘기했지만 당시 어줍짢은 주인장의 시각으로도 이 두권의 책이 좋은 개설서이자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이 사실이다.

 2001년 9월 25일, 한통의 이메일이 날라왔다.

 김용만 선생님이 주인장이 당시 운영하고 있던 또 다른 까페 회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다가 주인장을 한번 보자고 연락했던 것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역시나 '고구려의 발견'이라는 책을 쓴 분이 맞았다.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과의 인연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이어져 주인장의 공부에 좋은 도움을 많이 주시고 계신다. 아마 주인장이 갖고 있는 고구려사에 대한 관념의 대부분이 앞서 언급한 두권의 책으로 완비되었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그렇게 주인장의 고구려사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고, 이 책은 그만큼 주인장에게 많은 애착이 가게한 책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저자는 이 책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썼다.

 '고구려는 역사상 가장 크게 실패한 나라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위대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주지 못 한다면 당연히 크게 실패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고구려에 대해 극히 단편적인 부분밖에 알지 못 한다.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로마사는 당시 시저의 하녀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오히려 적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고구려사는 극히 적으며, 그나마 전해지는 것도 대부분 중국측 기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구려'라는 감히 넘어서지 못할 존재에 대해서 기억하고, 상기하고, 떠올리는 것이다. 만약 고구려에 대해서 제대로만 알고 있었다면?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이 책의 구성은 일단, 논문의 집합체로 이뤄진 '고구려사 연구'와 많이 다르다.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대중서로의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읽기 편하고 그 내용도 한결 더 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부담감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점수를 딴 셈이다. 주인장이 늘 말하지만 김용만 선생님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중서지만 결코 가볍게 역사를 다루지 않는 그 구성때문이다. 역사를 아무리 잘 전달한다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연구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알려지지 않으면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김용만 선생님의 책은 상당히 읽기에 부담이 없으며 여러 고구려 연구자들이 내놓은 책 중에서 학문적 목표와 대중적 목표를 가장 잘 겸비한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책의 첫장을 한장, 두장 살펴보면 알겠지만 고구려의 강역도를 여러개의 권역으로 구분한게 눈에 띌 것이다. 주인장은 이 책을 처음 보고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뒤에 보면 알겠지만 지도를 거꾸로 그려서 고구려의 영역권을 표시한 지도 역시 볼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그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시각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정말 참신하다는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앞선 고구려의 강역도를 여러개의 권역으로 구분한 지도는 노태돈 선생님이 말씀하신 고구려 천하관을 보다 자세하게 구체화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각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역사적 설명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고구려를 지리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게 하였다. 주인장은 당시 책을 처음 봤을때는 이 부분을 간과했지만 지금 다시 보면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새삼 느끼곤 한다.

 참신한 지도와 함께 주인장을 사로잡은 것은 책의 내용이었다.

주인장이 애초 고구려사를 공부할때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서적들을 주로 탐독했음은 앞서 말한바 있다. 그런 주인장에게 노태돈 선생님의 '고구려사 연구'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게 하였다는 것 역시 말했었다. 거기에다가 김용만 선생님의 '고구려의 발견'은 보다 폭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였다. 뭐랄까? 당시 주인장이 느끼기에 이 책은 강단의 기본적인 통설에 저자 스스로의 새로운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주인장이 갖고 있던 생각들과 상당부분 닮았기 때문에 주인장은 이 책을 보면서 정말 괜찮다는 생각을 자꾸 가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요서 일대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권 확립에 대한 부분이나, 고구려 말기 연개소문이 이끌어나가는 고구려와 수-당과의 대전이 문명대전으로 규명지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고구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후자에 대한 부분은 주인장이 앞서 썼던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에 대한 서평으로 생각을 정리한 바 있기에 넘어가도록 하겠다. 주인장은 이 책을 보면서 영역권이나 영토에 대한 개념을 새로 다잡을 수 있었다. 특히 요서 일대에 대한 생각이나 북방 민족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고구려가 정말,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것에 한치의 모자람이 없는 대단한 존재였구나~하는 생각을 고집하게 해줬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생활사'에 대해 정리한 점이다.

앞서 주인장은 '고구려사 연구'가 단순히 정치사를 다룬 서적이 아니라 고구려사를 전체적으로 언급한 통사 성격의 서적임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책에는 생활사나 문화사에 대한 언급이 적었기 때문에 아쉬웠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아쉬움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고분벽화와 그동안 간과하고 넘어간 각종 자료들을 갖고 저자는 당대 고구려인의 생활과 문화까지 멋드러지게 정리했던 것이다. 주인장이 아직도 기억나는 부분은, 특히 고구려인의 음식인 맥적에 대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인장도 몇차례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그 시발점은 바로 이 책이었다고 다시 한번 밝히고 싶다.

 '고구려사 연구'가 대단히 뛰어난 고구려사 입문서라면 이 책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아마 고구려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주인장이 언급한 이 두권의 책으로 이미 기본적인 토대는 마련한 셈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물론 주인장은 이 두권의 책을 본 다음에 반드시 봐야할 몇권의 책에 대해서 앞으로 계속 서평을 쓸 생각이다. 늘 말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교과서적인 내용을 가진 책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며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권의 책은 상당히 중요하고도,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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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지음 / 사계절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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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설서, 지침서, 입문서

이런 표현을 받을만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물며 역사나 고고학 등 전공자가 많고 전공 서적으로서의 특수성이 보장되는 분야에서 이런 명칭이 붙을만한 책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대단한 책일 것이다. 주인장은 노태돈 선생님의 책, '고구려사 연구'에게 감히 이런 명칭을 붙이고자 한다. 비단 주인장만 이렇게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 이런 오만을 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당당하게 이렇게 주장할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히도록 하겠다.

추모왕의 건국설화와 계루부, 초기 고구려의 왕계부터 시작해 고구려의 부체제 연구, 영역국가로의 발전과 5~6세기 전성기를 맞이하는 고구려, 6세기 정세변동과 고구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사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는 통사(通史)이자, 또한 다소 어렵겠지만 고구려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좋은 입문서(入文書)이자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을 세울수 있는 개설서(槪說書) 겸 지침서(指針書)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째서 주인장이 이처럼 자신있게 말하는지 한번 봐주길 바란다.

책은 전반적으로 노태돈 선생님이 수십년간, 오래도록 연구해오신 고구려사에 대한 다양한 논문들을 정리하고 수정/보완한 것이다. 특히 고구려 초기 정치체제 연구에 있어서 '부체제'라고하는 부분은 오늘날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기까지 하였으니 그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은 노태돈 선생님의 여러 생각들 중에서 '부내부'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부내부 하나를 노태돈 선생님이 정립해주심으로써 고구려 초기사에서 갖고 있던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주인장은 이 책이 여러 논문을 정리한 것이어서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분명히 고구려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만하다고 하였다. 그 내용은 물론 우리가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배웠던 단순한 고구려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 어느정도 역사 관련 교양 과목을 듣거나 역사학, 혹은 고고학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둘씩 그 내용들을 이해하다보면 고구려사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두고 흔히 고구려 정치사 서적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주인장은 그런 견해에 반대한다. 주인장도 고구려 초기사에 대해 글을 써봤지만 어떤 나라든지, 초기사에 대해서 언급하다보면 당연히 정치체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나라의 국가적 성격, 사회 조직, 성장 과정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장은 이 책이 단순히 고구려 정치사를 정리한 책이 아니라 고구려 통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구려사가 흔히들 정치사에 치중해 연구되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서 얻어진 각종 연구 성과들이 이후 고구려 전쟁사, 해양사, 문화사, 생활사, 미술사, 고분사 등에서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책의 가치를 우리는 새삼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주인장은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몇가지 중요한 개설서로 애용한 책이 있는데 그중 첫번째가 바로 이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먼저 추모의 출자와 연관지어 고구려의 국가적인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 초기 고구려 왕계와 계루부의 기원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에서 도움을 얻었고, 해씨 왕조에서 고씨 왕조로 넘어가는 1~2세기 고구려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내부' 개념을 상기했으며 전성기 고구려인이 가졌던 천하관 개념 역시 선생님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었었다. 마지막으로 귀족연립정권과 연개소문에 대한 부분 역시 선생님에게서 기본적인 줄기를 얻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즉, 주인장이 700여년 고구려사를 관통하는데 있어 노태돈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다른 견해를 갖는 부분도 많지만 기본적인 줄기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을 주인장이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구려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사책에서 흔히 우리는 고구려의 최대 영토에 대해서 너무 작다, 이게 뭐냐~이런 반응을 보인다. 민족주의 사관의 영향을 받아 한때 <환단고기>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을때 사람들은 기존 강단 연구자들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해 혹독한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의 수십, 수백배 더 강력한 제국이었는데 오늘날 너무 축소평가받는다는 것이 그 요지일 것이다. 그런 시류에 주인장 역시 휩쓸렸던 것이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선생님의 책을 통해 고구려사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반인들이 비난하는 강단의 연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고구려에 대해 우리가 너무 극단적으로 확대 혹은 축소하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한 우리가 영토나 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 고구려의 발전상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주인장에게는 소중한 책임에 틀림없다. 아마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인장 이상으로 좋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활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두고 정치사 서적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생활사에 대한 독립적인 파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태돈 선생님이 책에서 고구려인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해서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맹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도 그것을 정치적/사회적으로 해석하는데 주력했기에 생활사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을 뿐이다. 즉, 고구려사 전반을 다룬 통사로서도 그 효용성이 많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모자란 생활사 부분을 잘 채워줄 좋은 개설서가 또 하나 있는데 이는 나중에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두 권의 통사만 정독한다 해도 고구려사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세우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주인장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 부록으로 딸린 '부여국의 경역과 그 변천', '고구려-발해인과 내륙아시아 주민과의 교섭에 관한 고찰'이라는 글 역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부여는 고구려가 파생된 나라이며, 발해는 고구려에서 파생된 나라이다. 흔히 북조(北朝)라고 통칭하는 나라들인데 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개설서나 관련 논문이나 연구성과가 고구려나 발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부여나 발해 교섭사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장은 늘 가슴에 이런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주인장에게 이 책은 고구려사는 이런거다! 라는 것을 알려준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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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란 무엇인가 동문선 현대신서 10
폴 빈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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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란 무엇인가...

 제목만 보면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맞다. 카 교수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가 문득 떠오를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역사철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고고학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역사학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카 교수의 책은 필독해야할 대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입문서나 개설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인장은 이 책을 고고학 입문서로 적극 추천한다.

책의 페이지수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고고학에 대해서 어렵게 설명하지 않은 책이다.

그냥 고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충실하게 읽는 이로 하여금 정보를 전달해 줄 뿐이다. 어려운 학술 용어는 물론이고 복잡한 내용은 거의 없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개략적인 소개와 더불어 고고학의 구성, 고고학이 차지하는 위치,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등에 대해서 그야말로 이제 막 고고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에게 참으로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은 처음에 '고고학자'하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 2가지를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첫째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멋진 모습의 고고학자, 엄밀히 말하면 보물수집가나 탐험가에 더 가까운 모습이며 둘째는 중절모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배나온 할아버지가 안경에 묻은 먼지를 털며 흙구덩이에 있는 모습이 그것이라 한다. 상당히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이지만 이 두 모습은 모두 고고학자의 모습이 맞다. 주인장 역시 고고학이나 발굴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때는 첫번째 모습을 떠올렸지만 발굴도 다녀오고 고고학에 대해 배우면서 첫째 모습을 갖추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구나~하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 중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은 고고학이 더 이상 보물 수집이나 약탈적인 것에서 벗어나 순수한 학문 추구라는 목적을 따라 독립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시간 고고학은 역사학의 한종류로서, 인류학의 한종류로서 부차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고고학은 첨단 과학과의 만남을 통해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노력하고 있다. 고고학 없이는 역사학도 인류학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여러 종류의 사료 중에서 1차 사료가 갖는 가치는 감히 함부로할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가치때문에 앞으로 고고학이 갖는 진정한 가치가 더 발전될 것이라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고고학을 하고 싶으면 돈 벌려는 생각은 버려라'

배고픈 인문학자. 하지만 돈보다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명예를 전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고학자가 갖는 가치는 위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학도 마찬가지지만 고고학을 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더 이상 슐리만과 같이 보물을 발굴해 그로 인해 부를 얻는 시대는 지나갔다. 고고학자는 아직도 땅 속에서 햇볕을 보길 원하는 수많은 유물, 유적들을 후손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사명감을 지닌 위대한 학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앞으로 고고학자의 길을 걷고자하는 주인장에게 이 책이 정말 잠깐의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듯이 주인장처럼 고고학도로서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 고고학이라는 인문학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와 내용을 전해줄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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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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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때가 벌써 5년전이니까 막 신입생으로 대학교에 들어간 때다. '동양사의 이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몇가지 책들을 주고 5장 분량으로 서평을 써오라고 했는데 그때 주인장이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에도 역시 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미천했던지라 약간의 강제성을 빌어 조선사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싶었던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물며 송시열이라는 사람이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 넘게 거론될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데 궁금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최근 주인장이 조선사에 대해 약간의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어 구입해서(당시에는 빌려서 봤다) 1번 더 읽었는데 처음과 느낌이 약간 다른지라 이렇게 글을 남긴다.

우선 이덕일은 성리학의 대가, 조선조 최고의 학자, 송자라고도 불리는 송시열을 두고 조선 전체와 한국사가 낳은 비극이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기실 주인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주인장 앞에서 조선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조선사만 나오면 주인장 입에서는 '쓰레기'니 '쓸모없는 역사'니 '부끄러운 나라'니 이런 얘기들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주인장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증오하고 싫어한다. 오죽하면 한국사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외부 민족의 역사가 침투한 것 같다고까지 하겠는가. 그런 조선사에서 주인장이 유일하게 관심을 표명하고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조선의 학문적 성과와 정치 체제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가이자 고명한 학자이신 플라톤이 늘 말하던 철인정치가 실행된 나라는 역사상 조선이 아마 유일하고 또 가장 잘 실현되었을 것이다. 학자이자 사상가이자 철학가였던 사대부가 곧 관료로서 학문과 국가를 지배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가 생겨 여러 부처에 담당 전문가가 관료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지만 대학 교수가 전부 나서서 국가를 이끌어나간다면 어떻겠는가? 약간 웃음이 나오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실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러한 체제로 운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선의 뛰어난 학문적 성과와 정치 체제 속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이 송시열인데 어찌 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겠는가.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붕당(朋黨)이 아닐까 하는데 여기서 붕당이 어쩌구 저쩌구, 붕당의 변천사가 어쩌구 저쩌구 떠들 생각은 없다. 다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선조 시기에 이르러 조정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전랑이라는 자리를 두고 붕당이 갈라지고 이때 동인과 서인으로 불리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동인이 우세한 위치에 서게 되지만 곧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되고 조일전쟁이 끝날때까지도 북인, 남인, 서인 세 당파가 정치적으로 대립 혹은 협력하면서 조선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조일전쟁 이후 광해군이 소북파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고 국정이 흔들리자 서인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된다.

바로 이 서인의 총수가 송시열이며 서인과 남인이 100여년간 공존하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는 동안 조선의 사대주의는 그 도를 더해갔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인조 시대때 조선의 임금이 적장에게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거행한 역사를 갖고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삼전도의 굴욕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진 것일까? 이미 조일전쟁으로 전쟁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낀 조선이 어째서 청나라의 1, 2차 침입에 무방비였던 것일까. 인조 즉위와 서인 집권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송시열과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송시열은 뛰어난 유학자요, 대철학가였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서인 정권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반대파를 조용히, 지속적으로 억누르며 존속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

송시열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표적인 북벌론자였다. '효종의 노신', '효종때의 신하'라는 접두어가 항상 따라붙을 정도로 그는 효종 시대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효종의 북벌은 조선의 꺼져가는 마지막 불빛을 불태우듯 활활 타올랐고 우리는 후세에 그런 북벌 의지를 기리며 조선의 저력을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북벌을 주장하고, 효종의 의지에 더불어 북벌을 실행한 실권자가 바로 송시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효종이 적극적으로, 일생일대의 숙원으로 북벌을 여겨 실천했다면 송시열은 반청복명의 기치 아래 약간의 노력으로 대내외적인 명분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가식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북벌을 대했던 것이다. 애초에 공통의 목적을 갖고 추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지만 나아가는 방향이 점차 틀어지자 양자간에 이견(異見)이 생기고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와중에 효종이 급사하게 된다. 강력한 의지로 북벌을 주장해 그것을 실행에 옮겨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신하들의 무수히 많던 반대 의견도 간단히 압도해 버릴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조선 제일의 권력자가 갑자기 이유없이, 몇가지 의혹만 남긴채 죽어버린 것이었다.

 저자가 이 책말고도 다른 몇가지 조선사에 대한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의 왕들은 굉장히 많은 수가 독살의 의혹을 안고 사망하였다. 왕권의 강약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효종의 경우도 피해갈 수 없는 의혹을 품고 있다. 왕이라고 하는 최고 권력자가 친위 세력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채, 독살이라는 허술한 방법으로 세상을 등지는 나라가 한국사에 또 어디있단 말인가. 어쨌든, 효종이 죽음으로써 그가 평생의 사업으로 추진하던 북벌의 불꽃은 사그라든다.

 이후 서인의 장기 집권은 날이 갈수록 더해진다. 효종의 모후인 조대비의 복제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했던 것이다. 실제 남인이 주장하는 3년설이 맞지만 서인은 1년설을 주장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생각해보자. 이미 조선 사회는 왕이라는 최고 집권자의 존재보다는 정치적인 입지, 실리에 의해 당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며 그 당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요구된 고도의 정치적 실체에 입각한 사회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인장이 앞서 얘기했던 조선 사회의 뛰어난 정치 체제다. 기실 절대군주제를 표방한 나라에서 이처럼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정당 정치가 실현된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철인정치의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속칭 '예송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이 애초에 서인의 송시열과 남인의 윤후 사이의 학문적인 논쟁에 불과했었는데 점점 두 사람이 속한 당쟁의 당론으로 대변되면서 문제가 변질/확대된 것이다. 거기다가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자 이번에는 서인측에서 3년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송논쟁이 더 이상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송시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사적 사실들이라 생각한다.

 이 예송논쟁 사건 이후 서인은 실각하지만 남인의 분열로 인해 송시열과 서인은 재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서인도 송시열을 당수로 하는 노론과, 윤증을 당수로 하는 소론으로 분열되고 송시열은 숙종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억지를 부려 결국 사약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인의 거두가 쓰러지자 남인이 득세했지만 결국 붕당 정치의 폐해를 두려워한 숙종에 의해 숙청되고 붕당 정치는 바닥을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영,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대거 숙청된 남인을 대신해 노론과 소론에 의한 일당 독재체제에 가까운 국정 운영이 이뤄지게 되고 조선이 멸망하는 날까지 변질된 붕당 정치가 조선 사회를 피폐케했던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일제가 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위해 주장한 식민사관 중 하나인 붕당론이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당시 사회는 급변하는 시대였다. 일반 서민들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변화가 요구됐고 자연스레 거기에 맞춰 흘러가던 시대였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성리학을 주장하고 거기에 맞춰 고집스럽게 조선을 다스리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그 거대한 시류에 당당히 맞서서 존재했고 일개 학자에 불과한 그가 조선을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실체는 그가 죽은 후에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생전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하물며 그가 마지막 사약을 받는 모습까지도 어쩜 그렇게 극단적인 양자의 표현이 등장하는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반대파에 있어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되었던 그가 서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 심지어 왕보다도 더 권위있고 중요한 존재로 우선시 되었단 말인가.

 주인장은 저자의 송시열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지지한다. 그가 처음에 조심스럽게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한 것처럼 송시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분명 조선사에 있어서 손꼽히는 대학자였으며 그가 끼친 학문적 영향은 대단히 많을 뿐더러 그 영향력도 엄청나다. 그런 그의 학풍을 따르는 무수한 후진들이 이후 조선을 좌지우지했고, 조선은 점차 망국의 조짐을 보였으니 이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송시열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협소한 시각으로 사회, 정치를 바라봤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나아가지 못 하게 했다. 또한 그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당을 위해서 그가 주장하는 대의와 그의 지식을 교묘히 위장한 위선자이기도 했다. 그가 조금 더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조금 더 너그러운 입장을 지녀 물러설 줄 알는 겸양함을 지녔더라면 조선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확고한 정치 체제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붕당 정치와 조선 사회 속에서 송시열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송시열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한번쯤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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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이덕일씨 책 접한 게 바로 이거였는데 정말 충격이 대단했죠 송시열이라는 인물 자체는 제껴 두고라도, 어쩜 이렇게 붕당 정치와 예송 논쟁을 일목요연 하게 정리했는지 감동 그 자체였답니다 지금은 이 분 시각에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하긴 합니다만... ^^

麗輝 2005-10-0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덕일은 현재 최고의 대중 역사서적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시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 책은 즐겨보는 편입니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 세계전쟁사 001
김성남 지음, 노경민 그림 / 수막새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우선 성남이형의 책이 나온 것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하며 그간 형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생각하니 주인장이 직접 책을 쓴것마냥 기쁘다. 그동안 전쟁사, 군사학에 있어 주인장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새로운 시각을 넓혀줬었던 형의 책은 애초 기대만큼이나 주인장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 책이었다.

일단, 전쟁이라고 하는 분야를 역사의 한 종속물, 다른 학문의 하위개념으로 보지 않고 독자적인 개념으로 이해해 서술한 부분이 와 닿았다.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그는 비슷한 생각을 내비쳤는데 거기서 그는 전쟁이라는 부분을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집합체, 생동하는 존재로 언급했었다. 똑같은 하나의 전쟁이 지휘관의 입장과 부하의 입장에서 봤을때 각각 다르다는 것과 전쟁이라는 것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려고 했었다. 다음의 그의 생각에서 우리는 그가 전쟁이라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기존 관념에 일침을 가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더러는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테고, 더러는 전쟁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즉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 --

이처럼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도 역시 전쟁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우쳐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로마 격언으로 시작한 책은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트로츠키의 말로 끝맺는다. 전쟁이라고 하는 부분이 인류 문명사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했으며 결코 다른 학문의 종속물이나 하위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시대별로 역사를 구성하지 않고 몇몇 테마별로 단락을 나눈 것이 눈에 띄었고 마치 역사스페셜의 3D를 보는듯한 자세하고 신선한 전장 지도가 인상깊었다. 아울러 기존에 알고 있던 몇몇 전투에 대해 새로운 해석, 합리적인 해석을 도출해내는 점이 돋보였다.

이 3가지 특징만으로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도 몇몇 장수와 정복군주에 대한 전략전술을 소개하는 책이나 고구려나 백제의 정복 과정을 국력의 변화, 국제적인 질서와 연계해 총체적으로 언급한 논문이나 책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개의 전투를 중심이 갖는 의미를 되살리고 그 전투가 당시 미쳤던 파급효과에 대해서 언급했던 책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군사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과 접목한 전쟁사가 우리에게 밀접하게 다가설 수 있는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나 싶다. 독자들이 그동안 느끼고 있던 갈증감을 해소해줬다고나 할까?

주인장이 특히 주의깊게 봤던 부분은 황산벌 전투, 천문령 전투, 탄금대 전투, 성양 전투 부분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황산벌 전투는 이전에 주인장도 글을 몇번 쓸만큼 관심이 높았던 부분이었다. 결사대라는 단어에 주목해 계백이 이끌었던 부대가 죽음을 불사한 자살부대가 아니라 계백의 사병적 성격을 지닌 정예병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주인장에게 당시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끈 5천군이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해석은 참신한 것이었다. 전투의 규모가 달라지면서 당시 나당 연합군의 백제 원정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으며 백제 멸망에 대한 이해도 달리할 수 있었다. 당시 백제는 국경을 돌파한 신라군에게 제대로 된 병력도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국력이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발해 건국의 기반이 된 천문령 전투는 기존에 단편적인 사료들을 통해서 당군에게 쫓겨가던 여러 유민들이 천문령 골짜기에서 매복과 기습으로 적을 무찔렀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다양하고 자세한 전장 지도와 함께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주인장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착군대의 힘과 유목세력의 용병적 군대의 차이점에 대해서 일정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고 천문령 전투가 전쟁사적 관점에서 바라봤을때 어느 정도로 중요하고 대단한 전투였는지에 대해서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발해가 건국하고 동북방에 또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형성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당의 입장에서 봤을때 천문령 전투가 얼마나 뼈아픈 패배였겠는가 싶기도 하다.

탄금대 전투는 주인장이 1차 조일전쟁에서 가장 미스테리로 여겨졌던 부분이었다. 주인장의 선조이기도 한 신립 장군이 당시 야인들과 오랜 세월 겨뤘던 당대 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요새를 버리고 왜 하필 탄금대로 갔을까에 대한 오해를 풀게 해주었다. 강병이 아니기에 배수진을 치고 싸울수 밖에 없었다는 기록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적의 전력을 무시한채 북방 야인들을 상대하듯 기병을 앞세우고 강제징집된 병력들의 전의를 불러일으키려고 배수진을 쳤다가 대패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성양 전투 부분은 남아있는 사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새롭게 재현해냈다는 것이 우선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당대 백제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였으며 성양 전투로 인해 동아시아에 어떤 국제 질서가 성립되었는지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백제군이 적을 유인해 안심시키고 전략적 후퇴를 하였다가 다시 들이쳐 적을 대파했다는 대목은 전혀 생각치 못 했던 것이라 더 새로웠던 것 같다. 백제의 대륙진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내용들이 자꾸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의 숭문천무 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다가오는 냉정한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반문한다. 보다 많은 전투에 대해서 실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지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전투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전쟁이라고 하는 주제를 갖고, 전쟁사와 군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한국사가 주인장에게 새롭게 다가온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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