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지음 / 사계절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개설서, 지침서, 입문서

이런 표현을 받을만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물며 역사나 고고학 등 전공자가 많고 전공 서적으로서의 특수성이 보장되는 분야에서 이런 명칭이 붙을만한 책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대단한 책일 것이다. 주인장은 노태돈 선생님의 책, '고구려사 연구'에게 감히 이런 명칭을 붙이고자 한다. 비단 주인장만 이렇게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 이런 오만을 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당당하게 이렇게 주장할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히도록 하겠다.

추모왕의 건국설화와 계루부, 초기 고구려의 왕계부터 시작해 고구려의 부체제 연구, 영역국가로의 발전과 5~6세기 전성기를 맞이하는 고구려, 6세기 정세변동과 고구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사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는 통사(通史)이자, 또한 다소 어렵겠지만 고구려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좋은 입문서(入文書)이자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을 세울수 있는 개설서(槪說書) 겸 지침서(指針書)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째서 주인장이 이처럼 자신있게 말하는지 한번 봐주길 바란다.

책은 전반적으로 노태돈 선생님이 수십년간, 오래도록 연구해오신 고구려사에 대한 다양한 논문들을 정리하고 수정/보완한 것이다. 특히 고구려 초기 정치체제 연구에 있어서 '부체제'라고하는 부분은 오늘날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기까지 하였으니 그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은 노태돈 선생님의 여러 생각들 중에서 '부내부'라는 존재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부내부 하나를 노태돈 선생님이 정립해주심으로써 고구려 초기사에서 갖고 있던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주인장은 이 책이 여러 논문을 정리한 것이어서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분명히 고구려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만하다고 하였다. 그 내용은 물론 우리가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배웠던 단순한 고구려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 어느정도 역사 관련 교양 과목을 듣거나 역사학, 혹은 고고학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둘씩 그 내용들을 이해하다보면 고구려사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두고 흔히 고구려 정치사 서적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주인장은 그런 견해에 반대한다. 주인장도 고구려 초기사에 대해 글을 써봤지만 어떤 나라든지, 초기사에 대해서 언급하다보면 당연히 정치체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나라의 국가적 성격, 사회 조직, 성장 과정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장은 이 책이 단순히 고구려 정치사를 정리한 책이 아니라 고구려 통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구려사가 흔히들 정치사에 치중해 연구되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서 얻어진 각종 연구 성과들이 이후 고구려 전쟁사, 해양사, 문화사, 생활사, 미술사, 고분사 등에서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책의 가치를 우리는 새삼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주인장은 고구려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몇가지 중요한 개설서로 애용한 책이 있는데 그중 첫번째가 바로 이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먼저 추모의 출자와 연관지어 고구려의 국가적인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 초기 고구려 왕계와 계루부의 기원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에서 도움을 얻었고, 해씨 왕조에서 고씨 왕조로 넘어가는 1~2세기 고구려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내부' 개념을 상기했으며 전성기 고구려인이 가졌던 천하관 개념 역시 선생님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었었다. 마지막으로 귀족연립정권과 연개소문에 대한 부분 역시 선생님에게서 기본적인 줄기를 얻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즉, 주인장이 700여년 고구려사를 관통하는데 있어 노태돈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다른 견해를 갖는 부분도 많지만 기본적인 줄기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을 주인장이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구려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사책에서 흔히 우리는 고구려의 최대 영토에 대해서 너무 작다, 이게 뭐냐~이런 반응을 보인다. 민족주의 사관의 영향을 받아 한때 <환단고기>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을때 사람들은 기존 강단 연구자들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해 혹독한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의 수십, 수백배 더 강력한 제국이었는데 오늘날 너무 축소평가받는다는 것이 그 요지일 것이다. 그런 시류에 주인장 역시 휩쓸렸던 것이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선생님의 책을 통해 고구려사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반인들이 비난하는 강단의 연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고구려에 대해 우리가 너무 극단적으로 확대 혹은 축소하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한 우리가 영토나 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 고구려의 발전상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주인장에게는 소중한 책임에 틀림없다. 아마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인장 이상으로 좋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활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두고 정치사 서적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생활사에 대한 독립적인 파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태돈 선생님이 책에서 고구려인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해서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맹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도 그것을 정치적/사회적으로 해석하는데 주력했기에 생활사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을 뿐이다. 즉, 고구려사 전반을 다룬 통사로서도 그 효용성이 많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모자란 생활사 부분을 잘 채워줄 좋은 개설서가 또 하나 있는데 이는 나중에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두 권의 통사만 정독한다 해도 고구려사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세우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주인장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 부록으로 딸린 '부여국의 경역과 그 변천', '고구려-발해인과 내륙아시아 주민과의 교섭에 관한 고찰'이라는 글 역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부여는 고구려가 파생된 나라이며, 발해는 고구려에서 파생된 나라이다. 흔히 북조(北朝)라고 통칭하는 나라들인데 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개설서나 관련 논문이나 연구성과가 고구려나 발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부여나 발해 교섭사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인장은 늘 가슴에 이런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주인장에게 이 책은 고구려사는 이런거다! 라는 것을 알려준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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