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때가 벌써 5년전이니까 막 신입생으로 대학교에 들어간 때다. '동양사의 이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몇가지 책들을 주고 5장 분량으로 서평을 써오라고 했는데 그때 주인장이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에도 역시 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미천했던지라 약간의 강제성을 빌어 조선사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싶었던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물며 송시열이라는 사람이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 넘게 거론될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데 궁금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최근 주인장이 조선사에 대해 약간의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어 구입해서(당시에는 빌려서 봤다) 1번 더 읽었는데 처음과 느낌이 약간 다른지라 이렇게 글을 남긴다.

우선 이덕일은 성리학의 대가, 조선조 최고의 학자, 송자라고도 불리는 송시열을 두고 조선 전체와 한국사가 낳은 비극이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기실 주인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주인장 앞에서 조선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조선사만 나오면 주인장 입에서는 '쓰레기'니 '쓸모없는 역사'니 '부끄러운 나라'니 이런 얘기들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주인장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증오하고 싫어한다. 오죽하면 한국사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외부 민족의 역사가 침투한 것 같다고까지 하겠는가. 그런 조선사에서 주인장이 유일하게 관심을 표명하고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조선의 학문적 성과와 정치 체제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가이자 고명한 학자이신 플라톤이 늘 말하던 철인정치가 실행된 나라는 역사상 조선이 아마 유일하고 또 가장 잘 실현되었을 것이다. 학자이자 사상가이자 철학가였던 사대부가 곧 관료로서 학문과 국가를 지배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가 생겨 여러 부처에 담당 전문가가 관료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지만 대학 교수가 전부 나서서 국가를 이끌어나간다면 어떻겠는가? 약간 웃음이 나오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실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러한 체제로 운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선의 뛰어난 학문적 성과와 정치 체제 속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이 송시열인데 어찌 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겠는가.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붕당(朋黨)이 아닐까 하는데 여기서 붕당이 어쩌구 저쩌구, 붕당의 변천사가 어쩌구 저쩌구 떠들 생각은 없다. 다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선조 시기에 이르러 조정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전랑이라는 자리를 두고 붕당이 갈라지고 이때 동인과 서인으로 불리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동인이 우세한 위치에 서게 되지만 곧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되고 조일전쟁이 끝날때까지도 북인, 남인, 서인 세 당파가 정치적으로 대립 혹은 협력하면서 조선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조일전쟁 이후 광해군이 소북파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고 국정이 흔들리자 서인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된다.

바로 이 서인의 총수가 송시열이며 서인과 남인이 100여년간 공존하며 조선을 좌지우지하는 동안 조선의 사대주의는 그 도를 더해갔다고 주인장은 생각한다. 인조 시대때 조선의 임금이 적장에게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거행한 역사를 갖고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삼전도의 굴욕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진 것일까? 이미 조일전쟁으로 전쟁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낀 조선이 어째서 청나라의 1, 2차 침입에 무방비였던 것일까. 인조 즉위와 서인 집권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송시열과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송시열은 뛰어난 유학자요, 대철학가였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서인 정권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반대파를 조용히, 지속적으로 억누르며 존속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

송시열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표적인 북벌론자였다. '효종의 노신', '효종때의 신하'라는 접두어가 항상 따라붙을 정도로 그는 효종 시대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효종의 북벌은 조선의 꺼져가는 마지막 불빛을 불태우듯 활활 타올랐고 우리는 후세에 그런 북벌 의지를 기리며 조선의 저력을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북벌을 주장하고, 효종의 의지에 더불어 북벌을 실행한 실권자가 바로 송시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효종이 적극적으로, 일생일대의 숙원으로 북벌을 여겨 실천했다면 송시열은 반청복명의 기치 아래 약간의 노력으로 대내외적인 명분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가식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북벌을 대했던 것이다. 애초에 공통의 목적을 갖고 추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지만 나아가는 방향이 점차 틀어지자 양자간에 이견(異見)이 생기고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와중에 효종이 급사하게 된다. 강력한 의지로 북벌을 주장해 그것을 실행에 옮겨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신하들의 무수히 많던 반대 의견도 간단히 압도해 버릴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조선 제일의 권력자가 갑자기 이유없이, 몇가지 의혹만 남긴채 죽어버린 것이었다.

 저자가 이 책말고도 다른 몇가지 조선사에 대한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의 왕들은 굉장히 많은 수가 독살의 의혹을 안고 사망하였다. 왕권의 강약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효종의 경우도 피해갈 수 없는 의혹을 품고 있다. 왕이라고 하는 최고 권력자가 친위 세력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채, 독살이라는 허술한 방법으로 세상을 등지는 나라가 한국사에 또 어디있단 말인가. 어쨌든, 효종이 죽음으로써 그가 평생의 사업으로 추진하던 북벌의 불꽃은 사그라든다.

 이후 서인의 장기 집권은 날이 갈수록 더해진다. 효종의 모후인 조대비의 복제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했던 것이다. 실제 남인이 주장하는 3년설이 맞지만 서인은 1년설을 주장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생각해보자. 이미 조선 사회는 왕이라는 최고 집권자의 존재보다는 정치적인 입지, 실리에 의해 당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며 그 당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요구된 고도의 정치적 실체에 입각한 사회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인장이 앞서 얘기했던 조선 사회의 뛰어난 정치 체제다. 기실 절대군주제를 표방한 나라에서 이처럼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정당 정치가 실현된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철인정치의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속칭 '예송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이 애초에 서인의 송시열과 남인의 윤후 사이의 학문적인 논쟁에 불과했었는데 점점 두 사람이 속한 당쟁의 당론으로 대변되면서 문제가 변질/확대된 것이다. 거기다가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죽자 이번에는 서인측에서 3년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송논쟁이 더 이상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송시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사적 사실들이라 생각한다.

 이 예송논쟁 사건 이후 서인은 실각하지만 남인의 분열로 인해 송시열과 서인은 재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서인도 송시열을 당수로 하는 노론과, 윤증을 당수로 하는 소론으로 분열되고 송시열은 숙종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억지를 부려 결국 사약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인의 거두가 쓰러지자 남인이 득세했지만 결국 붕당 정치의 폐해를 두려워한 숙종에 의해 숙청되고 붕당 정치는 바닥을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영,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대거 숙청된 남인을 대신해 노론과 소론에 의한 일당 독재체제에 가까운 국정 운영이 이뤄지게 되고 조선이 멸망하는 날까지 변질된 붕당 정치가 조선 사회를 피폐케했던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일제가 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위해 주장한 식민사관 중 하나인 붕당론이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당시 사회는 급변하는 시대였다. 일반 서민들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변화가 요구됐고 자연스레 거기에 맞춰 흘러가던 시대였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성리학을 주장하고 거기에 맞춰 고집스럽게 조선을 다스리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그 거대한 시류에 당당히 맞서서 존재했고 일개 학자에 불과한 그가 조선을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실체는 그가 죽은 후에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생전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하물며 그가 마지막 사약을 받는 모습까지도 어쩜 그렇게 극단적인 양자의 표현이 등장하는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반대파에 있어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되었던 그가 서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 심지어 왕보다도 더 권위있고 중요한 존재로 우선시 되었단 말인가.

 주인장은 저자의 송시열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지지한다. 그가 처음에 조심스럽게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한 것처럼 송시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분명 조선사에 있어서 손꼽히는 대학자였으며 그가 끼친 학문적 영향은 대단히 많을 뿐더러 그 영향력도 엄청나다. 그런 그의 학풍을 따르는 무수한 후진들이 이후 조선을 좌지우지했고, 조선은 점차 망국의 조짐을 보였으니 이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송시열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협소한 시각으로 사회, 정치를 바라봤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나아가지 못 하게 했다. 또한 그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당을 위해서 그가 주장하는 대의와 그의 지식을 교묘히 위장한 위선자이기도 했다. 그가 조금 더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조금 더 너그러운 입장을 지녀 물러설 줄 알는 겸양함을 지녔더라면 조선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확고한 정치 체제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붕당 정치와 조선 사회 속에서 송시열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송시열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한번쯤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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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이덕일씨 책 접한 게 바로 이거였는데 정말 충격이 대단했죠 송시열이라는 인물 자체는 제껴 두고라도, 어쩜 이렇게 붕당 정치와 예송 논쟁을 일목요연 하게 정리했는지 감동 그 자체였답니다 지금은 이 분 시각에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하긴 합니다만... ^^

麗輝 2005-10-0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덕일은 현재 최고의 대중 역사서적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시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 책은 즐겨보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