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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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1994년 1월 1일 NAFTA 발족일날 무장봉기한 멕시코의 혁명군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조직의 부사령관인 마르코스라고 하는 사람이 세계 유수의 언론기관과 주고받은 편지와 성명서를 모아 만든 책이다. 일단 다소 엉뚱할지도 모르는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이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말해야 할 듯 싶다.

주인장은 이번에 '영상으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듣는다. 원래는 학점을 꽉 채워서 들으려고 이런저런 수업을 찾던 중에 후배들이 이 수업이 괜찮다는 얘기를 해줘서 수강신청을 하게 된 과목이다. 그리고 실제 3시간 수업 중 1시간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강의하고 2시간은 라틴 아메리카에 관련된 영상을 보는 것이어서 널널했다. 중간고사나 리포트는 없었고 단지 발표 1개와 기말고사만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기말고사는 상당히 두꺼운 책을 읽고 그 안에서 서술형으로 문제를 내는 거였지만 어차피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걱정될 건 없었다. 문제는 발표 준비였다. 지난 학기에 하도 발표수업에 질려버려서 이번 학기에는 발표수업을 하나도 안 들으려고 고르고 골랐는데 미처 이 수업에 발표가 있다는 건 체크를 못 했던 것이다.

주제는 고고미술사학과나 혹은 역사와는 전혀 관련없는 것들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와 정치, 경제상황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탱고나 삼바, 축제, 벽화작가들, 군부독재자들 뭐 이런 식이었다. 그 중에서 뭘 고를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사파티스타를 같이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사파티스타? 그게 뭐야? 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혁명군인데 체 게바라 만큼이나 유명한 아이템이라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 사파티스타에 대해서 조사하기로 하고 이런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관련 논문도 생각보다 적었고 개설서격으로 나올만한 책도 없었다. 물론 없어야 정상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노란색 표지에 박힌 검정색 스키마스크를 쓴 한 인물. 이 사람이 바로 EZLN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였던 것이다.

EZLN이 활동하는 멕시코 동남부의 치아파스州는 멕시코에서 가장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난한 곳이다. 뭐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와 외세 자본이 이 곳에서 모든 천연자원을 뽑아가면서도 정작 이 곳 원주민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과테말라에 속해있던 이 곳은 몇몇 엘리트주의자들에 의해 멕시코로 이탈하여 복속되었고 그 이후 줄곧 수탈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사파티스타 몇몇 혁명군이 1983년에 도착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애초에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가지고 이 곳에 도착해, 위로부터의 지도와 교육을 통한 혁명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은 오랜 아즈텍-마야 문명지였던 이 곳의 사상과 정신에 감응하여 독특한 혁명사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인 마르코스는 실질적으로 이 반군의 지도자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는 이곳 마야 원주민이 아닌 까닭에 사령관이 아닌 부사령관직에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은 CCRI-CG라고 하는 군사조직이 있고 그 대리인으로서 마르코스가 활동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JBG라는 행정조직도 새롭게 꾸려 각 자치도시 운영에 있어서 군사적인 성격을 배제하는 진일보를 겪기도 했다. 복면을 쓴 그의 모습은 탈냉전 시대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에 도전하는 반란의 상징이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략 덕분에 포스트모던 전사로서의 이미지도 얻고 있다.

그의 이름인 마르코스는 군사 검문소에서 죽임을 당한 한 친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그는 멕시코 사회가 가면을 벗으면 자신도 가면을 벗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멕시코 사회가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은 그 위선과 실체를 알게 되어 엄청나게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지만 본인이 가면을 벗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냉소적으로 멕시코 사회를 비웃기도 한다. 실제 그들이 쓰는 스키마스크는 우리 모두가 동일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검은색인 이유는 불씨를 안고 살아가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숯검정색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라는 모토 아래 활동하는 혁명군의 자서전 격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그는 멕시코 중산층 가정 출신의 백인으로, 프랑스에 유학해 파리대학교를 졸업한 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중 원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킨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렇기에 그는 원주민 공동체를 지도하는 사령관직을 거부했다. 그의 학식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책에 나와있는 그의 편지와 성명서들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우아하다. 혁명군의 문체가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 유수의 언론은 그를 두고 최고의 문학가라고 칭할 정도로 그의 글솜씨와 학식은 대단하다. 혁명군 지도자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내용을 읽어보면 EZLN과 마르코스는 하나같이 멕시코 정부의 진실된 모습과 양측간의 평화로운 협상을 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절대 악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를 실현해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실제 이들의 요구조건을 보면 국가를 전복시키거나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들은 없다. 단지, 민중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토지개혁이나 원주민, 여성, 소수민족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이런 모든 부분들 때문에 그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을 실현한 최초의 혁명군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멕시코의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정말로 대단한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것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을 연구한 연구서적도 아니요, 그에 대한 개설서도 아니다. 다만 그 혁명군을 이끌고 있는 부사령관이라는 사람이 조직을 대표하여 전세계에 호소했던 내용을 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호소력짙은 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만든다. 비록 그 책을 읽는 사람이 멕시코에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의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조용한 분노의 그림자, 우리의 길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쌀 것입니다'

마르코스가 '원주민과 캄페시노의 주 평의회, 멕시코 민중, 전세계 민중과 정부, 국내 및 전세계 언론에게'라는 제목으로 1994년 발표한 성명서에 나온 말이다. 이만큼 사파티사트민족해방군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어서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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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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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옹정제(雍正帝)는 청(淸) 왕조의 5대 군주로서 성명은 ‘애신각라 윤진(愛新覺羅 胤縝)’이고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헌제(憲帝)’이다. 열정적으로 대외정복 사업을 수행했던 강희제의 넷째 아들로 황위 계승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그였지만 정말 뜻하지 않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청을 다스리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옹정제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양심적인 독재군주'라고 칭하면서 그가 대단한 위임임을 역설하고자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항상 청나라의 황금시대로 여겨지는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이어지는 약 150여년간의 치세에 포함되어 설명되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강희제와 건륭제 사이에 즉위했던 군주였기에 그랬다기보다는 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학풍 속에서 옹정제는 두 군주들 사이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런 옹정제를 저자는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내어 본래의 빛을 되찾아주는 작업을 한 셈이었다.

  사실 평자 역시 옹정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리포트를 낼 기회를 맞이해서 읽어보고 관련된 자료를 조금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자가 옹정제를 두고 세계에서 제일 가는 독재군주이자 정치가였다고 호언장담한 것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그만큼 옹정제에 대해서 평자가 아는 것이 전무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중의 하나겠지만 그보다는 옹정제에 대한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 쓰여진 이 책이 옹정제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전해줌으로써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강희제와 건륭제를 정복형 군주에 비한다면 옹정제는 철저한 내정지향형, 즉 수성형(遂成形) 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희제 시절에는 내부적으로 ‘오삼계의 난’이라고 하는 청 왕조의 생사를 결정지을 정도의 대규모 전란이 있었으며 건륭제 시절에는 준가르부로 대표되는 서부 지역을 평정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쟁 하나만으로는 그들을 정복형 군주라고 할 수는 없으니 두 군주 치세때에는 청 왕조가 군사력을 이용해 어려차례의 활발한 대외 정복이 이뤄졌던 때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옹정제 치세에는 이렇다 할 대규모 전란이 없었다.

  우리가 흔히 옹정제를 잊고 강희제와 건륭제만을 논하는 이유는 또 하나, 옹정제의 재위 기간이 다른 두 군주에 비해 지나치게 짧았던 점도 한몫 담당한다고 본다. 거기에다가 역사에 화려하게 기록될만한 대외 정복 기사가 지나치게 적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이 강희제와 건륭제만을 논하고 마는 알 수 없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얼핏 들으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흔히 시작과 끝을 중요시 여기는 풍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옹정제의 치세는 청 왕조 초기, 청 왕조가 기틀을 확실히 잡아가던 그 시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었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저자 역시 옹정제가 북경에 입성한 이후 3대째 황제가 된 인물로서 한 왕조의 흥망성쇠는 3대쯤에 결정난다고 보고 있으니 옹정제의 치세가 청 왕조에 있어서 일종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런 몇가지 생각들을 가진채 간단하게 서평을 남기고자 한다.

Ⅱ. 책의 구성과 비평

  이 책은 중국의 거의 모든 분야와 서아시아에 걸쳐 방대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등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로 활약하던 저자의 연구 서적 중 하나이다. 저자는 특히「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로 불리는 13년간 옹정제가 지방 관아와 주고 받았던 비밀편지들을 주 사료로 채택하여 옹정제의 치세를 평가하고 있다. 

  옹정제는 종래 중국의 어떤 제왕도 해내지 못하였던 훌륭한 정치를 행하고 일찍이 중국 역사가 경험하지 못하였던 공정한 사회를 건설해서 만민이 안심하고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군주였었다.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청조의 군주에게 특별히 내린 임무이며 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청조와 만주인은 중국인한테는 물론이고 하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며 그 일가는 자손 만대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말이다. 이것이 옹정제의 확고한 신념이었고 거의 종교적인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이 신념을 당시의 만주인 특유의 성실함과 강한 인내심으로 실행에 옮겼는데 그 증거가 바로 앞서 언급한「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였던 셈이다.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서술함으로써 비록 교양서적이지만 옹정제에 대해서 굉장히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한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희제로부터 건륭제까지의 치세가 왜 청 왕조 최고의 태평성대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옹정제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실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부록을 제외한 본문의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머리에
1장 고뇌하는 노황제
2장 개가 되고 돼지가 되라
3장 그리스도에 대한 맹세
4장 천명을 받들어
5장 총독 삼인방
6장 충의는 민족을 초월한다
7장 독재정치의 한계
 
        1. 남들과는 다른 타고난 처세술

  개인적으로 처세술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 처세술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옹정제 역시 처세술에 있어서 훌륭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는 분명히 강희제의 4번째 황자, 사아거로서 황위 계승권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은지 오래였다.

  후술하겠지만 강희제가 황태자로 지목한 이아거의 말썽으로 인해 청 황실은 많은 내부 문제를 겪은 바 있다. 옹정제가 젊은 나이에 등극하지 못하고 한창때에 등극한 것만 봐도 애초에 강희제가 사아거인 그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잘 알 수가 있다. 이와 더불어 그 와중에 옹정제는 자신의 처신을 잘 했고 그런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모습이 결코 우연히 다음 제위를 넘겨 받은 것이 아님을 드러내보였던 것이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옹정제는 사아거의 신분으로 태자인 이아거의 행동을 보면서 어느정도 제위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던 것 같다. 물론 다른 황자들도 다 그랬겠지만 사아거는 유독 다른 야심찬 황자들과 달리 정치권과 결탁하지 않았다. 이 말은 곧 옹정제가 당시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세력들과 모의해 다음 제위에 대한 욕심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고도의 심리전인 동시에 최고의 처세술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렇게까지는 평하지 않고 단지 옹정제가 사아거로서 학문에 정진하고 권력에 욕심이 없음을 밝혔고 그로 인해 강희제의 눈에 들어 황제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평자가 보기에는 분명 당시 옹정제는 제위를 넘볼 수 있는 계승권상에 있었으며 그럴만한 능력과 야욕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옹정제는 당시 붕당을 이루어 서로 권력을 다투는 정치판을 보고 일종의 회의감과 붕당의 부정함, 정치판의 양면성을 꿰뚫어보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제위를 꿈꾸는 그로 하여금 더욱 학문에 정진해 더 영민한 군주가 되게끔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실제 그가 즉위하여 행한 일련의 독재정치의 수단, 즉 112책 분량에 달하는「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와 함께 군기처(軍機處)의 설치는 그러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옹정제는 준가리아 토벌을 계기로 신속한 용병과 기밀보존을 목적으로 1729년 궁내에 임시로 군수방(軍需房)을 설치하였으며, 이를 1732년에 판리군기처(辦理軍機處)로 개칭하고 독립적인 상설관청으로 개설하였다. 처음에는 이 곳에서 군사상의 사무만을 보았으나, 점차 황제의 자문에 응하고 조칙을 작성하고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중요사항까지 처리하여 중요한 국무 전반에 걸쳐 심의 결정하는 국가 최고기관이 되었던 것이 바로 군기처였다.

   ‘하늘이 모르는 일도 황제는 안다’라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로 공포 정치가 이뤄졌고 옹정제가 죽자 모든 백성이 환호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독재정치는 상당히 엄격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옹정제의 정치행보는 황제가 되자 그제서야 생각해낸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늘로부터 절대권력을 이임받아 만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은 그가 이미 제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의 가슴 속에 항상 남아있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그만의 처세술이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2. 꼼꼼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세심한 성격

  저자는 옹정제가 성격이 내성적이고 유약하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고 있다. 솔직히 청 왕조같은 대제국의 대외정책은 그 지도자의 성격이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했을 때 앞서 봤듯이 옹정제는 강건하고 진취적인 기상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확실하며 꼼꼼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의 그런 성격은 앞으로 서술할 그의 정치 스타일과 그의 치세 중에 있었던 몇가지 일화를 보면 잘 알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가 서술하기를 만주족은 대륙을 지배하면서 한화(漢化)되어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고 하면서 가족 제도나 아주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러지 못 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독재 군주로서의 황제는 가족이라는 사사로운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선 왕조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부득이하게 형제들을 내친 옹정제를 봤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재 군주로서 그는 항상 만인의 위에 당당하게 서야만 했으나 그의 유약한 성격이 이런 점에 있어서 어느정도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고, 옹정제는 스스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는 그 성격으로 인해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얻었으며 청 왕조의 정치체제를 공고히 다져놓았다. 이 말은 곧 그가 ‘청 왕조 제 2의 건국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 될 것이다.

  사실 만주족은 그 수가 수백만에 불과한 군대식 사회조직을 갖춘 기병이 중심인 군단을 운용하던 동북방의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그 이전에 있었던 몇몇 정복 왕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비슷한 실례로 만주족과 비슷한 배경의 몽골족은 유라시아를 정복하였고 거대한 대륙을 본국인 대원 울루스와 4한국으로 분할하여 다스렸지만 그 치세는 채 100년을 제대로 넘기지 못 했다. 하지만 청 왕조는 오늘날 중국의 계승선상에 존재했던 마지막 왕조로서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라고도 일컬어지던 나라였었다. 원 왕조보다 그 영토는 적을지 몰라도 중국사에 끼친 영향은 그보다 더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차이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청 왕조의 경우는 옹정제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청 왕조는 중국사의 여러 왕조들 가운데 평균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또한 단 한명의 무식한 군주가 등장하지 않았고, 독살이나 내분으로 비명횡사에 간 군주는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청 왕조가 멸망한 이유는 원 왕조가 그러했듯이, 한족의 반란때문이 아니라 서양 세력의 침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당시 청 왕조의 지배를 받던 모든 백성들은 청 왕조를 정통성이 있는 명 왕조의 계승국가로 여겼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면에는 옹정제의 치세가 아주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실 강희제 치세에만 해도 청 왕조는 거대한 영토에 걸맞는 제국적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 했었다. 역사에는 가정이란 것이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 옹정제가 아닌 다른 정복형 군주가 즉위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분명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다음에 즉위할 건륭제가 이룬 업적을 본다면 역시 그에 앞선 옹정제의 치세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평자가 보기에는 옹정제의 이런 성격에서 기인한 그만의 정치 스타일이 청 왕조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3. 뚜렷한 통치 철학과 뛰어난 정치감각

  옹정제에 대해 논할 때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사에서 가장 강대했던 왕조야말로 바로 청 왕조라고 생각하는데 그 강성함 이면에는 역시 옹정제가 잘 닦아놓은 정치 체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옹정제는 중앙 관제상 종래의 내각은 형식을 중히 여겨 정무가 막펴 잘 처리되지 못하는 단점을 안고 있음을 알고 별도로 황제 측근의 군기처대신(軍機處大臣)을 두고, 군기처가 내각을 대신하여 6부를 지배하게 하였다. 이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것으로 중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치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옹정제가 이런 정치적인 개혁을 한 이면에는 전통적인 농경민족인 한족(漢族)이 아니라 탄력적인 사고를 지닌 반농반목의 만주족(滿洲族)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자고로 무슨 일에 있어서나 경직된 사고가 아닌 탄력적인 사고를 지닌 자야말로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지방의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도 크게 신경을 써서, 지방대관에서 주접(奏摺)이라는 친전장(親展狀)에 의해 정치 실정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황제 스스로 뜯어 보고 주필(朱筆)로 주비(朱批:비평)를 써서 발신인에게 반송하여 지시, 훈계를 내렸는데 이것들 중 일부를 모아 편찬하고 또 이 책의 주요 사료로 채택된 것이 바로 앞서 여러번 언급했던「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다.

  이것 역시 앞선 왕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아마 저자도 옹정제를 논할 때 이 부분을 가장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싶다. 옹정제는 즉위했을 때부터 청 왕조가 들어서기 전부터 대륙에 만연했던 전통적이고 비효율적인 국가 체제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그것을 자신이 바로 잡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행한 정치적인 개혁은 하나같이 대단히 훌륭하고 대단히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특히 지방대관들과 나눈 주접이라는 서신은 옹정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것이다. 청 왕조는 몽골족의 원 왕조와 달리 대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려고 하였가. 그 결과, 철저한 계급주의와 원리주의, 무력 통치를 실행했던 원 왕조와 달리 지배자가 직접 백성을 사랑하고 위할 줄 아는 너그러움과 아량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결국 청 왕조의 치세하의 백성들은 모두 천자의 덕을 칭송하고 자신이 청이라고 하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옹정제 치세하의 독재 정치는 백성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 청 왕조는 수백년의 시간을 더 유지할 수 있었음도 잊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이처럼 여러 통로를 통해 얻은 정보들은 황제에게 접수되어 하나같이 주옥같은 정책 실행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청 왕조는 그 기반을 공고히 하였으니 옹정제가 행한 정책들이야말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또 주목할 것이 당시 지방관리의 봉급이 지나치게 적었으므로 그들에게 양렴전(養廉錢)을 지급한 것인데 말 그대로 ‘청렴 결백함을 기르는 돈’이라는 뜻이며 이는 오늘날 보아도 대단히 합리적이고 뛰어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과는 다른 일인독재체제하의 봉건국가에서 관리라는 것은 명분과 실익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돈방석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탐관오리로 인해서 수탈받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옹정제는 당시 어느 정도 묵인되었던 관리들의 생존을 위한 수탈을(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법적으로 규제하고 대신 충분히 살만한 생계비를 지급하는 쪽을 택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신망을 얻은 것은 물론이요, 관리들과 중앙 정부간에도 이득이 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밖에 지방의 천민들을 헤아려 양민으로 만들기도 했으나 이것은 그가 행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그는 청 왕조를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백성들이 잘 사난 왕조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

  이렇게 간단한 몇가지 사례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듯이 옹정제는 정치력에 있어서 대단히 탄력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이는 그가 그만큼 뚜렷한 통치 철학을 갖고 있었고 그에 따른 뛰어난 정치감각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학습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이런 것들이 갖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옹정제 당시 총독 삼인방으로 불리던 톈원징, 리웨이, 오르타이 등은 모두 앞에 봤던 옹정제의 정책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사람들인데 옹정제같은 군주 밑에서 그와 같은 정책을 무리없이 수행한 것을 보면 이들의 능력 또한 대단했던 것 같다.

  이처럼 옹정제가 갖고 있던 정치적 능력은 저자가 책에서 표현한 이상이라고 평자는 본다. 명군(名君)과 명신(名臣)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봤을 때 신하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는 임무를 주어 수행케해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이야말로 옹정제가 보여준, 모든 군주들이 가져야할 정치적 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4. 유순한 성격과 다른 무서운 결단력

  아무리 옹정제의 성격이 유순하고 부드럽다고는 하나 그런 성인적인 면모 못지 않게 군주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결단력과 위엄, 소위 카리스마일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옹정제는 단지 성격 탓에 아버지 강희제, 아들 건륭제와 달랐을 뿐이지 그가 위엄이나 결단력이 없던 인물, 즉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수누 일족과 관련된 기독교 문제도 슬기롭고 위엄있게 잘 해결했으며 그 다음으로 윈난, 구이저우, 광시의 산간에 사는 토착민인 먀오족이 토사(土司:토착 호족) 밑에서 반독립적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개혁했다. 즉, 정부에서 파견하는 관리인 유관(流官)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는, 개토귀류(開土歸流)의 정책을 펴서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영토를 확실하게 내지화(內地化)했던 것이다.

  당시 티벳이나 먀오족, 통족 등은 중원 밖의 영역이라 하여 간접적인 통치만을 했었는데 명대부터 그들에게 직접적인 통치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옹정제 치세때에 이르러 대륙 남부에 널리 거주하는 먀오족을 본격적으로 직접 다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 정책에 대해 반란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 철저하게 시행된 정책에 그들은 속소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이 옹정제는 어떤 일에 있어서 한번 결심한 바는 곧바로 실행하였으며, 성급하게 실행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해서 한번에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저자가 언급하듯이 그가 신하들에게 황제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호령하는 것을 떠나서 그야말로 진정한 군왕의 면모를 훌륭히 갖춘 지도자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평자는 앞서 옹정제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 강희제, 건륭제와 달리 소극적이고 크게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었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으니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토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대외적으로 티벳의 동란을 평정, 지배체제를 확립하면서 서북 지방에서 강성하던 준가르부를 공격해 격파한 일이다. 옹정제의 치세 중후반에 행해진 이 대외 정벌은 그동안 청 왕조를 다스려온 옹정제의 의지이자 당당함의 표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오정제는 그 치세가 13년으로 아버지인 강희제(61년), 아들인 건륭제(63년)에 비해 극히 짧았지만 중국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리고 그가 늦은 나이에 즉위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그렇게 짧은 치세라고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지 못한 일들을 해냈다. 바로 청 왕조를 내부적으로 다듬고 고쳐서 기본 틀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야말로 옹정제가 칭송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Ⅲ. 맺음말

  중국사상 가장 강대했던 왕조이자 동시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하고 강대했던 왕조, 그 왕조의 기틀을 다진 옹정제를 보는 저자의 시각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왜 지금까지 이런 시각의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이런 인물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평자 본인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옹정제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뒤엎을 정도로 참신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그가 마지막에 강조했던 옹정제 독재정치의 한계에서 인간 옹정제를 뒤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천하의 모든 일을 본인이 직접 관장하고 주재하느라고 개인의 영달과 황제로서의 부귀영화는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 한 사람, 거기다가 독재군주로서 포기하기를 강요받아야만 했던 사생활을 통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옹정제를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죽으면서 그가 13년간 이뤄놓은 통치체제가 옹정제 치세만큼이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점 또한 주목할만 하다. 왜 옹정제는 하루에 20~30통, 많을 때는 50~60통의 주접을 읽어야만 했을까? 세상만사를 혼자 다 처리할 수는 없을뿐더러 그 자리가 황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정제가 그렇게 했던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가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일을 맡겨도 마음에 들지 않을 바에야 자신이 직접 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자는 앞에서 총독 삼인방으로 불리던 옹정제 치세의 관리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청 왕조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독재자가 죽은 이후 그만의 독재정치는 다시 재현되지 못 했다.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이 아니라 특출난 개인적 능력에 의해 유지되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비록 그 형태는 남았어도 다시 그처럼 철저하게 운영되지는 못 했던 것이다. 즉, 빛 좋은 개살구 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옹정제라는 인물이 대단하게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고, 그의 치세가 청 왕조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올바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한국사에서 비교해 본다면 아버지 고국원왕때의 엄청난 국난을 이겨내고 왕위에 올라 조카인 광개토태왕이 대제국을 이룩할 수 있게끔 토대를 마련한 소수림왕과 옹정제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시 고국원왕때의 끔찍한 국난이나 광개토태왕 시절의 위대한 대외정복 사업에 대해서는 언급하면서도 그 사이 즉위했던 소수림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소수림왕이 없었던들, 우리가 오늘날 아는 자랑스런 고구려사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만 글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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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해양사 연구
윤명철 지음 / 사계절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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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사 권위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대륙사관(?)을 전혀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사관과 해양사관을 적절히 조화한 '해륙사관'을 기준으로 고구려사를 바라봤다. 흔히 해양대국이라고 한다면 백제를 꼽는 것이 다반사였다가 최근에 고구려의 해양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고구려의 해양능력에 대해서 잘 쓴 책을 꼽자면 주인장은 이 책을 꼽곤 한다. 단순히 제목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과 역사를 서술하는 시각 자체가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해양능력을 언급한 책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꼽는 '고구려사를 공부하려면 꼭 봐야하는 책' 중의 하나로서 똑같은 역사적 사실도 해륙사관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또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직접 뗏목을 타고 고대의 항로를 탐사하기도 했으며(거의 실험 고고학 이상의 수준) 그런 체험과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고대인들의 해양능력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을 설파한 바 있다. 그를 바탕으로 비단 고구려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정확히 말하면 고조선인들의 해상능력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즉, 고구려인이 갑자기 해양능력을 배양한 것이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받아들인 유산의 일부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이처럼 해양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재구성한다.
그의 주장 중 독창적이고 이전과 다른 견해들이 많은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그는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이 남진하는 도중, 백제의 북방 요충이라고 불리는 관미성을 강화도 일대로 비정한 바 있었다. 고구려가 한강 하구를 장악하면서 이후 수군에 의한 상륙작전이 용이하게 되었고 수만의 대군이 수군 상륙작전에 의해서 백제로 진격할 수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그는 한다. 물론 관미성에 대해서 파주 등의 내륙 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처럼 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해양사적인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가장 독창적이라면 바로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에 대해서 기존과 달리 해석한 부분이다. 기존에는 대부분 장수태왕의 평양천도에 대해서 서수남진이니 뭐니 하면서 백제,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압박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심지어는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중국에 대해 후퇴하게 된 경향을 갖게 되었다, 라고 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흔히 중국의 동해안과 발해만, 한반도의 서부를 말발굽형으로 이루는 지역을 '환황해지역'을 저자는 '동아지중해'라고 명칭하며 보다 넓은 시각으로 고구려사를 이해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평양 천도는 보다 적극적인 천하 경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견해에 주인장도 동조하며 최근에는 그런 견해에 동조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저자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인 해양사 분야는 특히 관련 문헌 기록도 적고, 그에 대한 고고학적 성과물도 적은 분야다. 그래서 기존에는 독립적인 분야로서 연구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문헌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할때 부속적으로 언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항로나 항법, 항구에 대한 부분은 어느정도 문헌으로 추정이 가능할테지만 배의 승선인원이나 배의 구조, 규모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고고학적인 성과물 중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배들이 대부분 고려시대 이전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배 1척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고려시대 배인데 고대의 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참고자료가 될지언정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뗏목을 타고 고대 항로를 탐사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저자는 해양사라는 분야의 연구만을 고집했고 결국 一家를 이뤄낼만큼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입장도, 사대주의적인 입장도 따르지 않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고구려와 오의 교류 사실을 해석한 부분이 바로 그러한데, 그는 고구려가 오와 교류한 것은 해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전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3세기 당시, 고구려는 동방의 맹주로서 위촉오 삼국의 대립이 계속되는 중원 문화권과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그때 오의 사신을 목 베어 위에 보내고 위와 손잡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위와 손잡기 이전, 고구려가 오와 사신을 교환한 것에 주목하여 그것은 고구려가 해양국가였던 오에게서 수군활동과 선박을 건조하는 등의 기술들을 배웠을 것이라고 하였다. 기존에 간과했던 부분을 해양사적인 입장에서 재해석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적극적인 결론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오와 고구려의 교류가 고구려측이 오에게서 해양정보를 배웠다고 해석한 부분이 그것이다. 실제 오의 해양활동은 기껏해야 장강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대만이나 월남지역에 대한 진출 역시 원양항해가 근해항해였었다. 그리고 고구려 역시 고조선때부터 전해져내려온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근해항해를 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고구려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혹은 오나라보다 못한 상태에서 오와 교류함으로써 해양능력을 배양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오나라 사신에게 말을 선물로 줬는데 오나라 배가 적어서 미처 다 못 실었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와 오의 해양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몇번의 오와의 교류가 고구려의 해양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줬다고 하기에 해양 능력은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하이테크 기술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주인장의 견해다. 이처럼 몇몇 부분에서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결론을 못 내린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고구려 해양사 관련 최고의 서적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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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경영하라
진대제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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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주인장은 이런 성공(성공의 개념은 각자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한 사람들이 쓴 자서전격의 생활 지침서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몇몇 유명한 사람들이 쓴 인생 성공기, 경영 리더쉽에 대한 글을 몇번 본 적이 있으며 한때 유명했던 '칭찬'과 '부지런'이라는 코드에 맞춰 쏟아져나왔던 수많은 책들 중 일부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특출나게 주인장에게 강한 인상을 준 책들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고 뻔한 소리들만 하는 책도 있었다.

예를 들면 '시계를 5분 먼저 돌려놔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5분간 명상하라' '운동을 꾸준히 해라' 등의 뻔한 이야기들 있지 않은가. 누구나 다 알지만 그 자신의 의지박약으로 못 하는 부분들 말이다. 그런 내용의 책들을 볼때면 저런 내용으로 책을 써서 팔아먹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그런 책이라면 나도 쓰겠다, 고 말이다. 그래서 종종 주인장이 원치 않은 기회, 예를 들어 남이 적극 추천해주던가(주인장의 성향을 알기에 남이 적극추천하지 않는 경우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대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책을 접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전화로 책 10권만 주문하라고 하신 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같이 보려고 살 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진대제 장관은 그간 어머니와 친분이 있으셔서 그동안 몇번 얘기는 들었지만 주인장에게는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냥 삼성전자 사장, 그러다가 공무원이 된 사람, 아들의 영주권 문제로 한때 곤욕을 치뤘던 사람 정도가 주인장이 갖고 있는 그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였고 어머니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칭찬한 것을 몇번 들은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주인장은 이공계쪽은 전문도 아니거니와 좋아하는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그가 이룬 업적의 중요성만 깨달을뿐,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에 황우석 박사 사건도 주인장에게 있어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치뤄진 몇몇 문화행사보다도 비중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세미나때 발표를 위해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라는 책을 다시 보고 있었는데 마침 집중도도 떨어질 때가 됐고 해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어머니가 '너도 1권 가져가서 보라'고 하셔서 집어봤는데 내용도 어렵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아서 결국은 앉은 자리에서 3시간만에 읽어버렸다. 뭐랄까, 진짜 '진대제'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안이 벙벙하다고 해야하나, 멍해졌다고 해야하나~거의 그런 심정으로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주인장은 거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영웅설화 1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하면 좀 심한 과장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주인장이 모르는 분야에서, 주인장이 신경쓰지 않던 분야에서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진대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인장에게는 한마디로 Shocking이었다.

미국 굴지의 기업 IBM에서 엄청난 연봉과 출세를 보장받던 연구원이 대뜸 한국으로 넘어와 반도체 산업을 자기 손으로 일으키겠다고 한 포부, '조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일본을 집어 삼키겠다!'고 말하던 저자의 포부가 책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질 정도였다. 책 내용은 아무래도 저자의 활동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주이기 때문에 전문용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에 대한 내용도 실려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런 부분들은 주인장도 제대로 이해는 안 하고 그냥~그런 게 있구나, 하고만 넘어갔지만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긴장되고 안타까운 순간이 책을 통해서 주인장에게 그대로 전해졌던 셈이다.

특히 세계최오의 16M D램을 개발하기까지, 그가 대학에 가서 유학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전공공부를 하다가 길이 막히면 타 전공수업을 들으면서까지 열과 성을 다해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은 그의 저력과 끈기가 참으로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주인장 역시 공부 좀 한다고 설쳤지만 저 정도로까지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10,000시간만 집중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그걸 실현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세계최고의 IT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책은 그냥 저자가 자신의 지나간 삶을 이야기하듯이 서술했기 때문에 쉽게쉽게 읽혀졌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그의 공직생활을 서술한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왜냐하면 주인장이 그동안 갖고 있던(비단 주인장뿐만 아닌 일반인들도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줬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영주권 문제를 비롯한 그에 대한 몇몇 그릇된 고정관념으로 장관이 되자마자 사퇴가 어쩌구저쩌구 했던 언론들의 공격이 주인장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해 부정적이지도,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시각으로 지내왔던 주인장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그런 면들이 참 한쪽면만 보고 과장시킨 것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이유없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 안 되는데 이 책이 그런 주인장을 깨우치게 한 셈이었다.

게다가 '10년 뒤 유비쿼터스 라이프의 하루'라는 챕터는 차후 유비쿼터스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었는데 일종의 짜여진 이야기였다. 이런 방식의 서술은 예전에 고구려인의 삶에 대해 서술했던 김용만 선생님의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보고 참신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역시 참신하다고 느꼈다. 그것이 정말 픽션이라고 할지라도 정말 가능성이 있을 것만 같았고 영화에서 보던 삶들이 지금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이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책이 뒷부분에서 저자는 우리는 할 수 있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강조했다. 세계최고의 IT 강국이자, 전세계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이 분야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WBC에서 한국이 일본을 2연파 한 이후로 6:0으로 완패당한 날이다. 비록 우리가 아쉽게 졌지만 우리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솔직히 그 와중에는 왜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따구밖에 못 하느냐, 병역특례를 해줬더니 기가 풀렸다느니 하면서 막말을 했다. 그 경기를 집에서 보면서 책에서 봤던 부분이 생각났다.

'남들은 우리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평가해 주는데 우리 스스로는 언제나 비관적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듯 비관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면에는 뭔가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암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더 높은 곳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서 전진한다는 것만은 맞는 말 같다. 그러니 인류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사람같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진짜 CF에서 나오는 말처럼 나는 자랑스런 '슈퍼 코리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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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 우루아드 - 전2권 세트
장 크리스토프 이사르티에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세계 소설의 새로운 경향 Faction(Fact+Fiction)을 완벽하게 구축한 작품.
출간되자마자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기독교 문화권의 여러 나라에 파문을 일으킨 작품.
출간과 동시에 전 유럽을 강타한 고고학 스릴러.

이 책에 붙은 여러 수식어들이다.
'다빈치코드'가 출간되고 바티칸에서 상당히 불편해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 정도의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이기에 붙은 수식어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이 고고학 스릴러를 표방하는만큼의 강렬한 인상은 없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히 파격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주인장이 느낀 감정은 단순히 재밌는 소설이다~라는 것 이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전 유럽을 경악케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이라크 전쟁이라는 현실적 사건과 맞물려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부합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팩션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란다. 하지만 주인장은 별로 새롭지 않았다. 이는 비단 주인장만 느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김진명 류의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쓴 작품들을 보면(최근의 살수를 제외하고) 모두 현실적인 사건과 역사적인 사건을 결부시켜서 교묘하게 스토리를 진행시켜왔다. 그렇기에 그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주인장이 보기에는 한국의 역사소설을 쓰는 왠만한 작가들이 이런 식의 구성을 즐겨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빈치코드나 이번의 우루아드가 주인장에게 재미있었던 것은 그 소재에 있었지, 그 구성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루아드는 분명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하는 수메르 문명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만으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기원과도 맞닿아있는 수메르 문명을 소재로 쓴 역사소설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양에서 나온 이런 류의 소설은 창세기, 혹은 성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히려 스키타이,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등의 문명이 소외시된 것이다. 그나마 이집트문명 정도가 문학적 세계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고나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 소설이 기본적으로 잡고 있는 줄거리는 상당히 유치하다.

성경 혹은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고대 인류의 선조격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수명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복제인간과 첨단과학 문명에 대한 언급,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을 창조해낸 최초의 인류 문명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수백살, 수천살을 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게 되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현실감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마치 단군이 정말로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고 환단고기의 수많은 군주들이 수백, 수천살동안 살면서 나라를 다스려왔다는 식의 기록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었을때의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어린 애들이나 볼만한 상당히 유치한 이야기들이 많다. 마치 고대 뮤 대륙이나 아틀란티스 문명에 대해서 쓴 과거의 상상력에 의존한 잡설들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현실감있게 묘사됨으로써, 또 그것이 현실적인 사건과 결부되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서 작가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스토리 구성의 한 매개물로 등장시킨다. 고고학(더 정확히는 성서고고학)을 통해 이미 종교적인 신화로만 치부되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책이 나옴으로써 사람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와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책인 셈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릴러라고 말하기에는 끝이 조금 밋밋한 부분이 있다. 작가가 결말을 마무리짓지 않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뭔가를 암시하는 투로 끝냈다고나 해야 할까? 책 뒷부분에는 번역가와 실제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있어 조금 독특했는데 작가는 후속작을 더 쓸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결말이 어느정도 이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전체적으로 긴장감있게 짜여져 있지 않다는 면에서는 스릴러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나 싶다.

단, 성경 이전의 수메르 문명, 오늘날 미스테리하다고 말하는 수메르 문명에 대해서 첨단과학문명의 산물이 낳은 문명이라는 식의 스토리 전개를 과감히 선택한 부분은 상당히 참신했다고 할만하다. 그러면서도 신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복제와 첨단의술로 장수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었기에 창조론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현재 학계의 현실적인 견해들도 적절히 수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 소설책이면서도 저자는 뒤에 참고문헌을 서술하여 자신의 견해들 중 픽션인 부분과 팩트인 부분이 어디어디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스릴러라고 하는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최초의 시도를 한 작품이라는 면에서는 그럭저럭 봐줄만도 하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석유 문제를 비롯한 국제 역학 관계의 주도권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이 소설에서처럼 종교적인 이유에서 그런 황당한 폭력행위를 했다면? 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읽는 내내 상당히 재밌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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