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해양사 연구
윤명철 지음 / 사계절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사 권위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대륙사관(?)을 전혀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사관과 해양사관을 적절히 조화한 '해륙사관'을 기준으로 고구려사를 바라봤다. 흔히 해양대국이라고 한다면 백제를 꼽는 것이 다반사였다가 최근에 고구려의 해양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고구려의 해양능력에 대해서 잘 쓴 책을 꼽자면 주인장은 이 책을 꼽곤 한다. 단순히 제목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과 역사를 서술하는 시각 자체가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해양능력을 언급한 책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꼽는 '고구려사를 공부하려면 꼭 봐야하는 책' 중의 하나로서 똑같은 역사적 사실도 해륙사관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또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직접 뗏목을 타고 고대의 항로를 탐사하기도 했으며(거의 실험 고고학 이상의 수준) 그런 체험과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고대인들의 해양능력에 대해서 자신만의 생각을 설파한 바 있다. 그를 바탕으로 비단 고구려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정확히 말하면 고조선인들의 해상능력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즉, 고구려인이 갑자기 해양능력을 배양한 것이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받아들인 유산의 일부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이처럼 해양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재구성한다.
그의 주장 중 독창적이고 이전과 다른 견해들이 많은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그는 고구려 광개토호태왕이 남진하는 도중, 백제의 북방 요충이라고 불리는 관미성을 강화도 일대로 비정한 바 있었다. 고구려가 한강 하구를 장악하면서 이후 수군에 의한 상륙작전이 용이하게 되었고 수만의 대군이 수군 상륙작전에 의해서 백제로 진격할 수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그는 한다. 물론 관미성에 대해서 파주 등의 내륙 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처럼 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해양사적인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가장 독창적이라면 바로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에 대해서 기존과 달리 해석한 부분이다. 기존에는 대부분 장수태왕의 평양천도에 대해서 서수남진이니 뭐니 하면서 백제,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압박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심지어는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중국에 대해 후퇴하게 된 경향을 갖게 되었다, 라고 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흔히 중국의 동해안과 발해만, 한반도의 서부를 말발굽형으로 이루는 지역을 '환황해지역'을 저자는 '동아지중해'라고 명칭하며 보다 넓은 시각으로 고구려사를 이해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평양 천도는 보다 적극적인 천하 경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견해에 주인장도 동조하며 최근에는 그런 견해에 동조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저자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인 해양사 분야는 특히 관련 문헌 기록도 적고, 그에 대한 고고학적 성과물도 적은 분야다. 그래서 기존에는 독립적인 분야로서 연구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문헌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할때 부속적으로 언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항로나 항법, 항구에 대한 부분은 어느정도 문헌으로 추정이 가능할테지만 배의 승선인원이나 배의 구조, 규모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고고학적인 성과물 중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배들이 대부분 고려시대 이전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배 1척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고려시대 배인데 고대의 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참고자료가 될지언정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뗏목을 타고 고대 항로를 탐사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저자는 해양사라는 분야의 연구만을 고집했고 결국 一家를 이뤄낼만큼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입장도, 사대주의적인 입장도 따르지 않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고구려와 오의 교류 사실을 해석한 부분이 바로 그러한데, 그는 고구려가 오와 교류한 것은 해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전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3세기 당시, 고구려는 동방의 맹주로서 위촉오 삼국의 대립이 계속되는 중원 문화권과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그때 오의 사신을 목 베어 위에 보내고 위와 손잡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위와 손잡기 이전, 고구려가 오와 사신을 교환한 것에 주목하여 그것은 고구려가 해양국가였던 오에게서 수군활동과 선박을 건조하는 등의 기술들을 배웠을 것이라고 하였다. 기존에 간과했던 부분을 해양사적인 입장에서 재해석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적극적인 결론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오와 고구려의 교류가 고구려측이 오에게서 해양정보를 배웠다고 해석한 부분이 그것이다. 실제 오의 해양활동은 기껏해야 장강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대만이나 월남지역에 대한 진출 역시 원양항해가 근해항해였었다. 그리고 고구려 역시 고조선때부터 전해져내려온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근해항해를 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고구려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혹은 오나라보다 못한 상태에서 오와 교류함으로써 해양능력을 배양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오나라 사신에게 말을 선물로 줬는데 오나라 배가 적어서 미처 다 못 실었다는 것만 봐도 고구려와 오의 해양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몇번의 오와의 교류가 고구려의 해양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줬다고 하기에 해양 능력은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하이테크 기술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주인장의 견해다. 이처럼 몇몇 부분에서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결론을 못 내린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고구려 해양사 관련 최고의 서적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