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신화 - 광개토의 전설
한대희 지음 / 미르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황당무계(稽)...
책을 읽는 내내 주인장의 머릿속에 떠오른 네글자다. 어떻게 이른 소설을 쓸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시중에 보면 광개토태왕에 대한 책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이 소설이지만(관련 연구서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한 듯 싶다) TV 드라마의 영향도 있고 이런저런 국민적 관심때문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무분별한 소설책의 난무는 정말 문제가 많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저 제목부터가 주인장에게 어색하게 와닿았다. 광개토태왕을 두고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연 중에 필자가 광개토태왕을 이미 전설이나 신화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서 그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주인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해모수 장군과 다물군'이라는 단어였다. 그 뒷장에 보이는 것은 '예소야'였고 말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단어들 아니야? 그렇다. 바로 TV에서 했던 '주몽'이라는 사극에 등장했던 단어들이다. 그것을 그대로 소설에 인용하다니. 황당했다. 역사소설을 쓴다는 사람이 TV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생전 처음보는 일이었다. 창의력에서 마이너스 아닌가. 그리고 페이지를 계속 넘기는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유리명왕의 태자 도절을 송씨의 아들이라고 한 점, 해명을 두고 치희의 자식이라고 한 점에서 예전에 주인장이 가졌던 생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 주인장은 유리명왕의 가계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도절을 송씨의 아들로, 해명을 화희의 자식으로, 대무신왕을 도절의 아들로 설정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런 설정을 다른 연구에서는 보질 못 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식의 가계 설정을 한 것을 보고 의아하기까지 했다. 생각이 비슷한건지, 아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활용한 것인지 말이다. 암튼 프롤르그 내용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탐탁치않은 마음으로 책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책을 읽다보니 익숙한 내용이 나왔다. 소수림왕 시절 황후의 오라비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국상 개연수가 등장하고, 태대형 가리치가 등장하고 하무지라는 절세 지략가가 나오고 이래저래 많이 보던 책에서 나온 내용과 똑같은 내용들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정립이란 사람이 쓴『광개토대제』라는 소설에 나온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대로 그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현종이 쓴『연개소문』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이후에 나오는 소설들이 모두 답습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특히나 광개토태왕 시절에 대해 쓴 소설로는 정립의 것이 거의 유일한 상태에서 그것을 베껴쓴 소설이 또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나중에 알고 경악을 금치 못 했지만 이 책의 필자는 참고문헌으로 정립의 책을 거론하고 있었다. 세상에 역사소설을 쓴다는 사람이 다른 소설을 참고문헌으로 참고하는게 가당키나 한단 말인가. 역사자료도 아니고 말이다. 참고로 말하지만, 정립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후연서』라는 사서를 인용했다는 글을 보고 할말을 잃었었다. 그런 엉터리 소설이 있다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그 소설이 광개토태왕에 대한 거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용은 점차 읽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립의『광개토대제』이후로 우리나라는 황제, 천자라는 표현에 굉장히 민감해졌고, 광개토태왕보다 광개토대제라 부르길 원했다. 또한 광개토태왕이 어렸을때 굉장히 험난한 여정을 거쳐 어렵게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당시 고구려의 왕권이 상당히 약했다는 설정을 고수했다. 더불어 후연이라는 나라와 후연의 모용수라는 인물을 크게 부각시켜 그런 강력한 나라를 상대로 싸워 이긴 고구려가 정말 대단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후연은 전연에 비해 국세가 굉장히 약한 나라였었다. 그 설정 자체가 주인장에게는 상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뻔뻔스럽게 말이다. 

게다가 실제 역사를 왜곡시킨 구성도 그렇고 황당한 내용들도 어이가 없었다. 불교 도입으로 인해 고구려의 상무정신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고구려의 왕실이 4세기 중후반 약했다는 것도 그렇고, 후연이니 백제니 30만, 40만 대군을 우습게 모집해 전쟁을 벌이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만화나 소설보다도 못한 내용들이 버젓히 책으로 쓰여 나왔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황당하다는 얘기를 주변에 했더니 누가 하는 말이...나는 책을 많이 봤으니 이런 걸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이게 진짜 역사구나, 라고 느낄 것이라고 말이다. 순간 움찔했다.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 이 책 한권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사실을 알고 믿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터넷 정보와 각종 소설들을 짜집기한 황당한 소설책. 게다가 책 뒤에는 참고문헌이라고 10권 남짓한 책들이 적혀 있었는데,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삼국사기』번역본이야 그렇다치고『상고사의 새 발견』과 같은 책은 대륙삼국설이 적힌 책인데 그런 책을 참고한 소설책이니 그 내용이야 볼짱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소설 일본서기』까지. 분명 신영식 선생님 책이나 김철준 선생님의 책을 참고했다고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는 그런 내용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비주류의 조합물이라고 할까? 아니, 비주류라기 보다는 자료같지 않은 자료들을 짜집기한 소설책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광개토태왕의 모든 업적을 신화니, 전설 따위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쓴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필자는 단순히 광개토태왕을 중원대륙을 미처 제패하지 못한 제왕, 대륙의 정벌자로서 최강자였던 인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런 80년대 사고방식을 갖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다.

별을 준다면 빈 별 반개 주기도 아까운 책이다. 주인장은 왠만하면 어떤 책이든 읽으면 단 한개의 자료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책에서는 정말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야 그렇다치고 이 책을 앞으로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저자는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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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얼굴
존 키건 지음, 정병선 옮김 / 지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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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키건.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쟁역사학자 중 한사람이다.『선데이 타임즈』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어로 씌어진 전쟁에 대한 6권의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라고 극찬한 책을 쓴 저자. 주인장이 존 키건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책을 읽으면서가 아니다. 존 린의『배틀, 전쟁의 문화사』를 읽을때 존 린이 존 키건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다. 과연 그가 누구길래 이런 비판을 받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존 키건의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이 책은 그 첫번째 책이다. 이 책은 1974년에 출판되었고 그의 핵심 사상이 담겨 있는『세계전쟁사』보다 무려 20년 전에 출판되었다. 즉, 그가 전쟁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최초로 정리한 것이기에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하나씩 알게 될 그의 사상을 접할때 부담감이 덜할테니 말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아쟁쿠르 전투, 워털루 전투, 솜 전투 이렇게 3가지 서로 다른 전투를 통해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하고자 하였다. 조금 순서를 바꿔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전쟁'의 본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흔히들 전투, 전쟁 이런 말을 쓰지만 정작 다양한 공간, 다양한 시간 속에서 행해진 이런 행위들이 공통적인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과연 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하는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으로 저자는 '인간'을 꼽고 있다. 인간의 행위라는 점에서 그것들이 전투 혹은 전쟁이라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을 인식하는 사상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을 정치사가 아닌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마치 철학처럼) 이해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 접근방법부터가 주인장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뒤이어 책장을 넘기면서 그 신선함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주인장이 그렇게 많은 전쟁사 관련 서적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처럼 전투 및 전쟁을 분석한 책은 보질 못 했다. 저자는 단순히 거시적인 시각에서의 국제관계나 몇몇 영웅적인 지휘관의 리더쉽에 국한한 전투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병사 개개인에 대한 세밀한 고찰에 보다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병사 개개인에 대한 피상적인 고찰을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세부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을 살펴봐야만 한다. 먼저 저자는 전장에 나선 각 병종들간의 전투상황을 세분화하였다.

아쟁쿠르전투에서는 궁수 대 보병 및 기병, 기병 대 보병, 보병 대 보병에 대해 살펴봤고, 워털루전투에서는 기병 대 기병, 기병 대 포병, 기병 대 보병, 포병 대 보병, 보병 대 보병에 대해서, 솜 전투에서는 보병 대 기관총 사수, 보병 대 보병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혼란스러운 전장의 상황을 저자는 각 병종들간의 전투로 분석함으로써 당시 전투를 보다 생동감있게 복원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복원이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자료(다양한 시각에서 쓰여진 연대기, 전쟁참전용사들의 증언이나 전후 개인집필기록 등등)들이 있기에 이러한 연구가 가능할테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책이 없었다는 것은 저자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주인장이 놀랐던 부분은 각 병종들간의 전투상황만 자세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부수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는 사실이다. 아쟁쿠르전투에서는 포로 살육 명령에 대한 부분을 심도있게 고찰했다. 이 부분은 그간 여러 책을 봤어도 심각하게 다룬 적이 없었는데 저자는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한 다음, 그 명령에 대한 여러 의의를 도출해냈다. 책을 1/4 정도 읽었을때 이러한 저자의 분석을 보고 거듭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워털루전투에서는 백병전에 대해서 자세하게 거론하고 있었으며 솜 전투에서는 포격과 무인지대에서 본 광경(지루한 참호전의 상황을 생동감있게 표현)에 대한 장을 집어넣었다. 하나같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서술방식이었는데 이 책이 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이 다시금 주인장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책들 중에도 이와 같은 서술방식을 채택한 책은 보질 못 했다. 확실히 전쟁역사학의 대가라고 불릴만 했다. 

또한 저저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부상병' 부분이었다. 시대가 흐를수록 부상병은 더 많이, 더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겨났지만 그만큼 전장에 바로 치료될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투의 목적이 적을 더 많이 살상하는 것이기에 군의관과 전투수행자의 이런 의지는 늘 충돌해왔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전투를 분석했기에 저자의 이런 시각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략 400p에 걸쳐 3가지 서로 다른 전투를 경험하게 되는데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없진 않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전투를 바라봤기 때문에 다소 사변적인 해석이 등장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은 주인장도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두번 세번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분명 3가지 전투에 대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시각과 다른 시각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책도 다른 책들처럼 전투가 벌어지게 된 원인, 그 주인공들(영웅적인 혹은 역사적인 인물들), 전투의 경과와 결과, 전후 역사에 미친 영향 등등을 서술하고 있다. 다만 그런 부분들 이외에 남들이 다루지 않는 부분들까지 다루다보니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하게 시간을 들여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지막에는 국방대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의 박균열 연구원이 이 책을 읽고 남긴 서평이 실려 있어 한국학계의 시각도 알 수 있고 이 책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서 박균열 연구원이 평가한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한번 정리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정치와 국가에 의한' 로마식 역사관이 아닌 '지리적 위치와 인간의 행동에 의한' 그리스식 역사관을 선택하고 있음
2. 많은 사료를 동원하여 전쟁의 다양한 대립 양상 및 대치 국면을 보여주고 있음
3.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참전병사들의 인식, 전투에 투영된 사상 등 역사 해석에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하고 있음
4. 전투가 진행되면서 개개 병사들이 겪는 경험과 병영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예화를 제시하고 있음

더불어 단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꼽고 있다.

1. 전쟁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른 연구 방법론에 비해 빈약함
2. 정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성이 보이고 있음

장점은 뭐 주인장이 느꼈던 부분과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겠고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보다 단점 부분에서 박균열 연구원은 저자가 내린 전쟁에 대한 정의가 빈약하다는 평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의 다른 연구에서 전쟁을 '집단적 살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쟁의 아주 원초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는 셈인데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단순히 그렇게만 정의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그러한 정의는 오늘날의 국가나 민족을 그 자체만으로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개개인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다른 저작을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박균열 연구원의 비평은 주인장이 앞으로 염두에 둬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당연히 정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고 밝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에 대한 의미는 아직도 유효한 부분이 많다. 비록 그가 당시 사용했던 '정치'의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위의 2가지 단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알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박균열 연구원의 서평이 실려 있어서 앞으로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부분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존 린의 책을 보면서 존 키건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 그 전후에 나왔던 여러 전쟁사 관련 서적들 중에서 단연코 秀作으로 꼽을 수 있다 하겠다. 전제왕권하에 쓰여진 왕조기록이 대부분인 동양에서 이러한 연구성과가 나오기 힘든 것에 대한 반대급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연구성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학자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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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전쟁영웅사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강유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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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사(戰爭史) 혹은 군사사(軍事史) 관련 서적들을 보면 그동안 정치사 위주로 서술된 책이 많았고 그런 분위기를 비판하며 최근에는 보다 세부적인 내용, 즉 병사 개개인이라든가 전략보다 전술적인 면 등에 치중한 내용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그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로마의 '전쟁 영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그리스 역사가들과 달리 인간 개개인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정치사 위주로 역사를 서술했고 이 책이 로마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전통(?)을 충실히 이행했나~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어쨌든, 제목에서부터 주인장이 큰 관심을 갖고 읽어본 책이었고 결론적으로는 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몇몇 위대한 로마 장군들의 일생을 통한 로마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저자야 개개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 전쟁을 거듭하며 성장한 로마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저자는 파비우스, 마르켈루스부터 시작해 15명 이상의 로마 장군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으며 그들이 수행한 굵직굵직한 전쟁들은 이후 로마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처음으로 꼽은 전쟁이 바로 한니발과 치룬 '제2차 포에니 전쟁'이며,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 또한 '제2차 포에니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했다고 하는데 세계사에 당당히 '로마'라는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포에니전쟁까지는 무려 4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갑자기 한국사의 '신라'가 떠올랐다. 그리고 신라에게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어떤 것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마 백제와 한수 유역을 공략한 것과 가야 諸國을 정복한 전쟁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한니발이라는 그 유명한 이름과 함께 등장한 로마 장군들부터 저자는 언급하고 있었다.

그간 로마사에 대해서는 개설서 정도만 읽어왔기 때문에(그나마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는 완독하지도 못했다) 로마 군제나 전쟁사 역시도 개설적인 내용 정도만 알아왔었다. 그렇기에 로마 장군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로마 장군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군사령관으로 임명되는데 필요한 정규교육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대화, 약간의 군복무 시절의 경험, 개인 스스로의 연구에 의해 습득되었고 장군은 군대를 지휘하면서 본인의 리더쉽을 발휘해야만 했다고 한다. 태학이나 경당을 통해 국민들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시켰던 고구려나 어릴 때부터 사냥과 전투로 몸을 단련했던 북방 유목민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로마 장군들은 한마디로 아마추어였고, 맡은 바 임무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로마 장군들은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그 중 10여명이 넘는 장군들은 이 책에 소개된 것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로마 스스로가 훌륭한 군사자원을 지닌 국가였기 때문이다. 일생에 있어 군사활동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그런 군사활동을 통해 부와 권력과 영토를 늘려왔던 국가, 징병에 의한 시민군이 주축이 되어 내전과 원정까지 모든 전쟁을 수행했던 국가...바로 로마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다소 전제적인 조건부터 동양의 전제군주적 국가와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군사적 업적과 전쟁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또 대단해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주욱 보면서 알고 있던 인물을 꼽자면 파비우스, 마르켈루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티투스, 트라야누스, 벨리사리우스 정도였다. 나머지 인물들은 그들이 수행한 전쟁과 관련해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있지 못 하거나 이름조차 기억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저자 역시 책의 서문에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분명 로마는 전쟁으로 다져진 국가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활약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음으로서 로마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주인장처럼 로마 전쟁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쟁 혹은 전투에 대한 극히 세부적인 분석보다는 이처럼 포괄적인 개념 하에 당시 시대사를 개괄하는 것이 더 적합했다. 게다가 동양 전쟁사에 익숙한 주인장이기에 세부적인 작전이나 전투에 대한 내용보다는 정치사적인, 대전략적인 전쟁에 대한 언급이 더 쉽게 이해되기도 했고 말이다(잘 알다시피 동양은 서양에 비해 전쟁이나 전투에 대한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이 많지 않아 당시 전쟁상을 생생하게 복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처럼 모르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니발을 무찌르고 젊은 나이게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종전 후에는 정치판에서 쫓겨나 실의 속에 죽었다는 사실과 폼페이우스가 로마의 알렉산드로스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특히 그러했다. 공화정이라는 독특한 체제 속에서 특정 인물의 권력 집중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로마 원로원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것도 아마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폼페이우스에 대해서는 드라마 ROME에서의 이미지(뚱뚱하고 배나온 노회한 정치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남아있었기에 저자가 서술한 내용들이 생소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카이사르에 대한 역사기록이 본인이 남긴 기록 이외에 다른 것이 남겨져 있지 않아 그는 행복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비평도 참신했다. 분명 그 또한 인간이고 실수투성이에 고집스러웠지만 역사는 그를 帝政 로마를 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옥타비아누스 시절 절정의 위세를 자랑하며 천하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단 제국의 틀이 완비된 다음에는 더 이상 대규모 원정을 감행하지 않고 내적 안정을 이루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나 포에니 전쟁같은 대규모 전쟁은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를 두고 페르시아 세력과 다투거나 유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함락한 일, 다키아를 속주로 만들기까지의 전쟁 등이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전쟁에 불과했다. 군대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으며 전쟁 양상 또한 바뀌어갔다. 유스티니아누스 휘하에서 복무했던 천재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는 이전의 로마 장군들처럼 5만이니, 10만이니 하는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군사적 업적을 남겨 비잔틴제국의 영토 확장 및 제국 유지에 크나큰 공적을 넘겼다. 끊임없이 교류하며 다투고 화합하기를 반복했던 동방사회, 북방사회, 중원사회와 달리 유럽은 로마가 몰락한 이후 그러한 제국이 다시는 등장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수십만의 대군이 격돌하는 대규모 전쟁이 유럽에서는 벌어지지 않았고 군사적으로 월등히 뛰어났던 로마의 발자취는 후손들에게 군사적 유산으로만 남겨질 뿐이었다. 이 점도 동양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로마 전쟁 변천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다만 그 중심에 전쟁의 최고사령관이 있었고 그 인물을 통해 그 전쟁을 서술했다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했기에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역사로 배우고 있고, 만약 다른 인물이 갈리아 지방을 정복했다면 그 내용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최고 지휘관에 따라 전쟁 양상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만약 파비우스가 한니발에 맞서지 않았다면 로마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카이사르가 아닌 다른 인물이 갈리아를 정복했고 그가 루비콘 강을 건너 폼페이우스와 맞섰다면 그 인물은 한낱 반란군 수괴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즉, 저자는 병사 개개인보다 그 병사들을 지휘했던 지휘관 한명에 촛점을 맞췄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내용이 개설적이고 포괄적이 되었을 뿐이지, 저자가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전쟁으로 보는 로마사를 서술하는데 있어 저자가 택한 방법이 가장 적합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암튼 요즘 학계 분위기와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지만 기본을 잊지 않게 해줬다고나 할까~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익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사를 알고 싶으신 분 혹은 로마 전쟁사를 알고 싶으신 분에게는 적절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책이 다소 두껍다 보니까(540p) 읽는데 지루한 감이 없진 않다. 주인장도 며칠에 걸쳐 읽었으니까.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했지 않은가. 읽고 나면 분명 주인장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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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자가 쓴 고구려사
강인구 외 옮김 / 학연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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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李 · 孫 두 선생님의 내용 전개에서, 고구려 왕들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고 인색하며, 고구려의 국가정책은 대부분 부도덕한 행위로 일관되게 貶下하고, 고구려와 중국 정권의 갈등과 충돌 부분에서는 사료의 취사선택과 평가에서 불균형이 자주 발견되며, 국제관계에서 冊封과 朝貢이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국제관계를 지나치게 사실관계로 확대하였다는 일반의 평이 있었다. 예를 들어 對隋 · 對唐 전쟁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국측만을 일방적 主로 기술하고 고구려를 상대위치에 놓고 짧게 기술함으로서 이 책이 高句麗史인지 中國史인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사상 중심사고에서 나온 주장, 고구려를 속방시한다든가, 변방정권시 한다든가 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면, 특히 고구려의 문화에 관하여는 탁월한 안목과 오랜 현장경험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느 저서보다 정확하고 자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독자들에게 큰 써비스가 될 것으로 믿는다.

역사는 李 · 孫 두 선생님의 깊은 학문적 업적과 높은 학자적 양심을 굳게 믿는 입장에서 이 現狀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싶다. 하나는 中華思想이 아직도 중국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필요하였던 사상 통합이 상존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시대적 환경도 영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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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p.22)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이 책의 장단점을 잘 표현한 글이라 생각해서 옮겨왔다. 맞다. 이 책은 동북공정과 함께 추진된 고구려 중국사 만들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억지 주장을 펴는 부분도 있고 황당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잘 정리해놓은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을 읽고 중국 학계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소리이다. 

먼저 이 책은 고구려사에 대해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본래 제목도『高句麗簡史』였으니까 말이다. 편차의 목차는 고구려의 흥기, 확장, 통치, 고구려와 중원의 관계, 강역, 도성, 경제, 외교, 멸망, 문화 이렇게 10개로 이뤄져 있으며 2명의 공저자가 반반씩 나눠서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양자간에 겹치는 내용도 다소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몇몇 요점만 잘 집어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책을 주욱 보면 알 수 있는 점은 비록 이 책의 주인공은 고구려지만, 역사서술의 주체는 중원 왕조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중국 군현이나 주변 세력에 대한 고구려의 정복 결과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무신왕이 남쪽으로 낙랑군을 공격하자 후한의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낙랑군을 수복하게 된다. 그 사실을 두고 저자는 고구려의 세력확장이 제한을 받았지만 한반도 북부지구의 점령은 동한의 인가를 얻게 되었다(p.53)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실력으로 점령한 영토를 두고 마치 후한과 협상을 벌여 영토를 양분해 다스리기로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더불어 모본왕에 대해 논할때는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하북정벌전'이라 부르는, 고구려의 하북지방에 대한 약탈전과 관련된 내용은 아예 기재하지도 않았다(p.54). 단지 그가 포악하고 정치를 잘 못해 부하에게 죽었고 그로 인해 대무신왕이 닦아놓은 기반이 흔들렸다는 해석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국조태왕에 대해서는『후한서』의 기록을 참고하여 그가 즉위 69년, 76세의 고령으로 죽었다는 해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 부분은『삼국사기』에 적힌 국조태왕의 기록과 다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주인장 역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중국측 해석이 적절하다고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 기록을 책에서는 국조태왕이 한의 현도군을 공격했다가 5만명이 패하고 전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거론했는지 몰라도 한국 학계와 다른 내용들은 눈여겨볼만 했다. 또한 연개소문에 대해 굉장히 악감정을 갖고 책을 썼는지 연개소문 당시 고구려인들 스스로 그 폭정에 못 이겼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당위성을 그 부분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고구려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니 그리 되면 고구려 문화가 중국과 많이 다르고 또 우수하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중국은 진한 시대 이래 일찍이 노예제 통치를 벗어나 봉건사회 대발전기로 진입했지만 고구려는 770여년간 노예제 통치를 유지했다고 적고 있다. 역대 통치자들이 군사력에만 힘을 쏟아 생업에는 힘쓰지 않았으며 그나마 노예제도 발달된 노예제가 아니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p.103). 하지만 뒤에 가면 고구려의 노예제 통치는 발달된 노예제에 속한다고 한 부분(p.107)이나 5세기를 전후로 해서 노예제 생산관계가 완강하게 존재하고는 있지만 이미 쇠퇴하여 해체되고 있었다(p.209)는 내용이 나와 논지에 일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을 아니라고 전제하고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는 부분은 고구려의 군사 업적과 관련해서 간간히 눈에 띈다. 209년 산상왕때의 환도성 천도를 공손강의 고구려 침략과 맞물려 해석하는 부분(p.129)이나 안시성에서 고구려군 45만의 지원군 중 15만이 대패하였다는 대목(p.160), 고-당 전쟁 이후 고구려는 10개의 성과 4만의 병력을 잃었지만 당군은 강대한 고구려군의 저항 아래 2천여명이 전사하고 물자를 낭비했다는 해석(p.161) 등이 그러하다. 고구려사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보면 웃어넘길만한 부분들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은 뒷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흘승골성,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 장안성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구성한 고구려의 도성 부분과 중국에서 출토된 각종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고구려의 경제 부분과 문화 부분이 그러했다. 한국 학계와 다른 입장 차이를 떠나서 한국학자들이 쉽게 제시하지 못하는 중국 본토의 자료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이 주제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자료들을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겠지만 일단 그러한 자료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라 본다. 

역자도 이미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중국 학자가 쓴 책이므로 사관이나 자료 해석에서 있어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해석을 하는 부분들이 있어 이를 토대로 우리의 견해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 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어떤 자료들을 갖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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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북구의 신들 판타지 라이브러리 2
다케루베 노부아키 지음, 박수정 옮김 / 들녘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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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화 관련된 서적인데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던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아닌 켈트와 북구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생소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중고서점에서 덜컥 집어들었던 책이다. 책장을 처음 넘겼을 때에는 그림도 있고, 글자도 별로 없고 그래서 게임 해설서에 들어갈만한 허구의 내용인가? (게다가 판타지 라이브러리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생각했는제 맨 뒷장에 적지 않은 분량의 참고문헌을 보고는 개설서로 쉽게 내놓은 연구서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정과 신들의 세계라. 우리나라에도 외국 신화에 대해서 이처럼 연구하는 연구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학문 분야의 범위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책의 내용은 크게 켈트(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중심으로)와 북구(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를 중심으로)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 대한 신화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주인장은 켈트나 북구나 큰 차이점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간 이쪽 신화에 대해서는 오딘, 토르 정도만 알고 있었고 지그프리드나 아더왕 관련된 영웅신화만 가볍게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자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쉽게 서술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야기 풀어 쓰듯이 말이다. 내용은 최대한 간결했으며 신화세계의 시작과 끝을 일목요연하게 캐릭터(신)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마치 기전체(紀傳體) 중 본기나 열전 부분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서술이 가능할 정도로 각 세대마다 활약하던 신들이 자리잡은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수평적인 느낌의 다양한 캐릭터(신, 인간, 영웅, 괴수 등)들이 활약하던 세계라면 켈트 · 북구 신화는 선후관계가 명백한 수직적인 느낌의 캐릭터(신, 거인, 영웅 등)들이 투쟁하던 세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화세계의 연표를 정리해놓은 것도 좋았다. 

켈트와 북구의 신화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다이나믹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대한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인간과 어울려 인간과 똑같은 감정과 희노애락을 갖고 있는 신, 인간과 친근한 신의 이야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켈트와 북구의 신화는 상당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는 이들 문화권의 특징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친 환경(파도와 싸워가며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했던)에서 살던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문화는 그리스나 로마인들에게 바바리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지언정, 분명 수준높은 문화를 이룩했었고 이러한 신화 역시도 그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신화 중간중간에 보면 기독교의 전래에 맞물려 사라져가는 신화에 대해 얘기하는데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얼마전 '베오울프'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다. 처음에는 실사가 아니라 3D 애니메이션이어서 놀랐는데 암튼,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아마도)였고, 북구 신화를 기본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니 속 내용이 실제 신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라도 책을 뒤적거렸는데 일단 별로 연관성은 없었다. 책에 의하면 신화세계에 인간이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었고(물론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 로마 신화보다는 훨씬 덜), 오히려 인간의 시대가 되면 신은 존경의 대상에서 사라지면서 크기가 작아져 요정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기독교가 언급되면서 사상적인 혼란을 겪는 부분이 잠깐 언급되고 있다. 마녀에 의한 저주가 사라지듯이 북구의 신화도 사라지는 것을 묘사한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암튼 책을 읽는 내내 주인장은 신과 거인, 여러 괴수들이 등장하는 거칠면서도 오히려 사실적인(여기서는 인간 본연의 본능적인 부분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다) 내용에 상당한 흡입력을 느꼈다.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는 라그나뢰크(신들의 황혼)에서 세계가 정화되고 신과 거인족이 멸족의 위기 속에서 피튀기는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나 죽음을 생의 연결고리로서 크게 나쁘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내용,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친구나 부하를 희생시키고 배반을 밥먹듯이 하는 오딘에 대한 내용 등이 신선했다. 또한 오딘이 전투에서 용맹함을 발휘하는 신이 아닌 마술과 계략을 주로 사용하는 주신이었다는 사실이나 티르가 신들의 지장(智將)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더불어 이들 신화세계에서 주목할 점은 항상 '전쟁'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일대일 싸움이라든가, 정적을 베는 그런 복수전의 수준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대군이 붙는 전면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기원전 1세기 백제의 건국신화만 봐도 신화적 색채가 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중국의 경우도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신화적인 색채가 점점 엷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에 반해 켈트나 북구의 경우는 A.D 이후에도 이러한 신화세계가 상당히 잘 보존되고 계속 다듬어졌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사실을 상당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더왕 전설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 섬이라는 자연적 배경을 갖춘 켈트신화의 경우는 바다를 통한 외부 침입자에 의해 섬의 주인이 계속 바뀌는 내용이 그러하고, 북구신화의 경우는 여러 소국으로 난립해있던 북구 내 통치자들간의 대립과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해내는 내용이 그러했다. 

왜 판타지소설이나 게임에서 켈트 · 북구 신화를 주요 골자로 삼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처럼 격렬하고 투쟁적인 요소들이 잔뜩 있는데 누가 그리스 · 로마 신화로 게임을 만들겠는가? 더불어 유럽의 중세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시기 활약하던 세력들의 사상적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켈트 · 북구 신화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이러니하기까지 했다. 로마인들이 무지하고 야만적이라 비판하던 자들에 의한 암흑시대 이후 유럽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고 더 강해져 곧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읽는 내내 상당히 재밌는 신화세계를 지닌 북유럽이나 영국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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