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북구의 신들 판타지 라이브러리 2
다케루베 노부아키 지음, 박수정 옮김 / 들녘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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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화 관련된 서적인데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던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아닌 켈트와 북구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생소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중고서점에서 덜컥 집어들었던 책이다. 책장을 처음 넘겼을 때에는 그림도 있고, 글자도 별로 없고 그래서 게임 해설서에 들어갈만한 허구의 내용인가? (게다가 판타지 라이브러리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생각했는제 맨 뒷장에 적지 않은 분량의 참고문헌을 보고는 개설서로 쉽게 내놓은 연구서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정과 신들의 세계라. 우리나라에도 외국 신화에 대해서 이처럼 연구하는 연구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학문 분야의 범위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책의 내용은 크게 켈트(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중심으로)와 북구(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를 중심으로)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 대한 신화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주인장은 켈트나 북구나 큰 차이점을 못 느끼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간 이쪽 신화에 대해서는 오딘, 토르 정도만 알고 있었고 지그프리드나 아더왕 관련된 영웅신화만 가볍게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자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쉽게 서술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야기 풀어 쓰듯이 말이다. 내용은 최대한 간결했으며 신화세계의 시작과 끝을 일목요연하게 캐릭터(신)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마치 기전체(紀傳體) 중 본기나 열전 부분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서술이 가능할 정도로 각 세대마다 활약하던 신들이 자리잡은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수평적인 느낌의 다양한 캐릭터(신, 인간, 영웅, 괴수 등)들이 활약하던 세계라면 켈트 · 북구 신화는 선후관계가 명백한 수직적인 느낌의 캐릭터(신, 거인, 영웅 등)들이 투쟁하던 세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화세계의 연표를 정리해놓은 것도 좋았다. 

켈트와 북구의 신화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다이나믹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대한 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인간과 어울려 인간과 똑같은 감정과 희노애락을 갖고 있는 신, 인간과 친근한 신의 이야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켈트와 북구의 신화는 상당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는 이들 문화권의 특징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친 환경(파도와 싸워가며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했던)에서 살던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문화는 그리스나 로마인들에게 바바리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지언정, 분명 수준높은 문화를 이룩했었고 이러한 신화 역시도 그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신화 중간중간에 보면 기독교의 전래에 맞물려 사라져가는 신화에 대해 얘기하는데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얼마전 '베오울프'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다. 처음에는 실사가 아니라 3D 애니메이션이어서 놀랐는데 암튼,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아마도)였고, 북구 신화를 기본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니 속 내용이 실제 신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라도 책을 뒤적거렸는데 일단 별로 연관성은 없었다. 책에 의하면 신화세계에 인간이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었고(물론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 로마 신화보다는 훨씬 덜), 오히려 인간의 시대가 되면 신은 존경의 대상에서 사라지면서 크기가 작아져 요정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기독교가 언급되면서 사상적인 혼란을 겪는 부분이 잠깐 언급되고 있다. 마녀에 의한 저주가 사라지듯이 북구의 신화도 사라지는 것을 묘사한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암튼 책을 읽는 내내 주인장은 신과 거인, 여러 괴수들이 등장하는 거칠면서도 오히려 사실적인(여기서는 인간 본연의 본능적인 부분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다) 내용에 상당한 흡입력을 느꼈다.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는 라그나뢰크(신들의 황혼)에서 세계가 정화되고 신과 거인족이 멸족의 위기 속에서 피튀기는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나 죽음을 생의 연결고리로서 크게 나쁘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내용,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친구나 부하를 희생시키고 배반을 밥먹듯이 하는 오딘에 대한 내용 등이 신선했다. 또한 오딘이 전투에서 용맹함을 발휘하는 신이 아닌 마술과 계략을 주로 사용하는 주신이었다는 사실이나 티르가 신들의 지장(智將)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더불어 이들 신화세계에서 주목할 점은 항상 '전쟁'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일대일 싸움이라든가, 정적을 베는 그런 복수전의 수준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대군이 붙는 전면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기원전 1세기 백제의 건국신화만 봐도 신화적 색채가 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중국의 경우도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신화적인 색채가 점점 엷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에 반해 켈트나 북구의 경우는 A.D 이후에도 이러한 신화세계가 상당히 잘 보존되고 계속 다듬어졌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사실을 상당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더왕 전설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 섬이라는 자연적 배경을 갖춘 켈트신화의 경우는 바다를 통한 외부 침입자에 의해 섬의 주인이 계속 바뀌는 내용이 그러하고, 북구신화의 경우는 여러 소국으로 난립해있던 북구 내 통치자들간의 대립과 거친 자연환경을 극복해내는 내용이 그러했다. 

왜 판타지소설이나 게임에서 켈트 · 북구 신화를 주요 골자로 삼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처럼 격렬하고 투쟁적인 요소들이 잔뜩 있는데 누가 그리스 · 로마 신화로 게임을 만들겠는가? 더불어 유럽의 중세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시기 활약하던 세력들의 사상적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켈트 · 북구 신화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이러니하기까지 했다. 로마인들이 무지하고 야만적이라 비판하던 자들에 의한 암흑시대 이후 유럽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고 더 강해져 곧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읽는 내내 상당히 재밌는 신화세계를 지닌 북유럽이나 영국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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