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자가 쓴 고구려사
강인구 외 옮김 / 학연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李 · 孫 두 선생님의 내용 전개에서, 고구려 왕들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고 인색하며, 고구려의 국가정책은 대부분 부도덕한 행위로 일관되게 貶下하고, 고구려와 중국 정권의 갈등과 충돌 부분에서는 사료의 취사선택과 평가에서 불균형이 자주 발견되며, 국제관계에서 冊封과 朝貢이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국제관계를 지나치게 사실관계로 확대하였다는 일반의 평이 있었다. 예를 들어 對隋 · 對唐 전쟁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국측만을 일방적 主로 기술하고 고구려를 상대위치에 놓고 짧게 기술함으로서 이 책이 高句麗史인지 中國史인지 의문이 든다는 말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사상 중심사고에서 나온 주장, 고구려를 속방시한다든가, 변방정권시 한다든가 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면, 특히 고구려의 문화에 관하여는 탁월한 안목과 오랜 현장경험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느 저서보다 정확하고 자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독자들에게 큰 써비스가 될 것으로 믿는다.

역사는 李 · 孫 두 선생님의 깊은 학문적 업적과 높은 학자적 양심을 굳게 믿는 입장에서 이 現狀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싶다. 하나는 中華思想이 아직도 중국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필요하였던 사상 통합이 상존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시대적 환경도 영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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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p.22)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이 책의 장단점을 잘 표현한 글이라 생각해서 옮겨왔다. 맞다. 이 책은 동북공정과 함께 추진된 고구려 중국사 만들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억지 주장을 펴는 부분도 있고 황당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잘 정리해놓은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즉, 이 책을 읽고 중국 학계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소리이다. 

먼저 이 책은 고구려사에 대해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본래 제목도『高句麗簡史』였으니까 말이다. 편차의 목차는 고구려의 흥기, 확장, 통치, 고구려와 중원의 관계, 강역, 도성, 경제, 외교, 멸망, 문화 이렇게 10개로 이뤄져 있으며 2명의 공저자가 반반씩 나눠서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양자간에 겹치는 내용도 다소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몇몇 요점만 잘 집어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책을 주욱 보면 알 수 있는 점은 비록 이 책의 주인공은 고구려지만, 역사서술의 주체는 중원 왕조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중국 군현이나 주변 세력에 대한 고구려의 정복 결과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무신왕이 남쪽으로 낙랑군을 공격하자 후한의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낙랑군을 수복하게 된다. 그 사실을 두고 저자는 고구려의 세력확장이 제한을 받았지만 한반도 북부지구의 점령은 동한의 인가를 얻게 되었다(p.53)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실력으로 점령한 영토를 두고 마치 후한과 협상을 벌여 영토를 양분해 다스리기로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더불어 모본왕에 대해 논할때는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하북정벌전'이라 부르는, 고구려의 하북지방에 대한 약탈전과 관련된 내용은 아예 기재하지도 않았다(p.54). 단지 그가 포악하고 정치를 잘 못해 부하에게 죽었고 그로 인해 대무신왕이 닦아놓은 기반이 흔들렸다는 해석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국조태왕에 대해서는『후한서』의 기록을 참고하여 그가 즉위 69년, 76세의 고령으로 죽었다는 해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 부분은『삼국사기』에 적힌 국조태왕의 기록과 다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주인장 역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중국측 해석이 적절하다고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 기록을 책에서는 국조태왕이 한의 현도군을 공격했다가 5만명이 패하고 전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거론했는지 몰라도 한국 학계와 다른 내용들은 눈여겨볼만 했다. 또한 연개소문에 대해 굉장히 악감정을 갖고 책을 썼는지 연개소문 당시 고구려인들 스스로 그 폭정에 못 이겼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당위성을 그 부분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고구려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니 그리 되면 고구려 문화가 중국과 많이 다르고 또 우수하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중국은 진한 시대 이래 일찍이 노예제 통치를 벗어나 봉건사회 대발전기로 진입했지만 고구려는 770여년간 노예제 통치를 유지했다고 적고 있다. 역대 통치자들이 군사력에만 힘을 쏟아 생업에는 힘쓰지 않았으며 그나마 노예제도 발달된 노예제가 아니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p.103). 하지만 뒤에 가면 고구려의 노예제 통치는 발달된 노예제에 속한다고 한 부분(p.107)이나 5세기를 전후로 해서 노예제 생산관계가 완강하게 존재하고는 있지만 이미 쇠퇴하여 해체되고 있었다(p.209)는 내용이 나와 논지에 일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을 아니라고 전제하고 억지로 끼워맞추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치는 부분은 고구려의 군사 업적과 관련해서 간간히 눈에 띈다. 209년 산상왕때의 환도성 천도를 공손강의 고구려 침략과 맞물려 해석하는 부분(p.129)이나 안시성에서 고구려군 45만의 지원군 중 15만이 대패하였다는 대목(p.160), 고-당 전쟁 이후 고구려는 10개의 성과 4만의 병력을 잃었지만 당군은 강대한 고구려군의 저항 아래 2천여명이 전사하고 물자를 낭비했다는 해석(p.161) 등이 그러하다. 고구려사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보면 웃어넘길만한 부분들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은 뒷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흘승골성,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 장안성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구성한 고구려의 도성 부분과 중국에서 출토된 각종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고구려의 경제 부분과 문화 부분이 그러했다. 한국 학계와 다른 입장 차이를 떠나서 한국학자들이 쉽게 제시하지 못하는 중국 본토의 자료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이 주제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자료들을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겠지만 일단 그러한 자료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라 본다. 

역자도 이미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중국 학자가 쓴 책이므로 사관이나 자료 해석에서 있어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해석을 하는 부분들이 있어 이를 토대로 우리의 견해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 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어떤 자료들을 갖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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