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전쟁영웅사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강유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사(戰爭史) 혹은 군사사(軍事史) 관련 서적들을 보면 그동안 정치사 위주로 서술된 책이 많았고 그런 분위기를 비판하며 최근에는 보다 세부적인 내용, 즉 병사 개개인이라든가 전략보다 전술적인 면 등에 치중한 내용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그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로마의 '전쟁 영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그리스 역사가들과 달리 인간 개개인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정치사 위주로 역사를 서술했고 이 책이 로마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전통(?)을 충실히 이행했나~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어쨌든, 제목에서부터 주인장이 큰 관심을 갖고 읽어본 책이었고 결론적으로는 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몇몇 위대한 로마 장군들의 일생을 통한 로마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저자야 개개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 전쟁을 거듭하며 성장한 로마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저자는 파비우스, 마르켈루스부터 시작해 15명 이상의 로마 장군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으며 그들이 수행한 굵직굵직한 전쟁들은 이후 로마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봤을때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처음으로 꼽은 전쟁이 바로 한니발과 치룬 '제2차 포에니 전쟁'이며,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 또한 '제2차 포에니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했다고 하는데 세계사에 당당히 '로마'라는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포에니전쟁까지는 무려 4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갑자기 한국사의 '신라'가 떠올랐다. 그리고 신라에게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어떤 것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마 백제와 한수 유역을 공략한 것과 가야 諸國을 정복한 전쟁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한니발이라는 그 유명한 이름과 함께 등장한 로마 장군들부터 저자는 언급하고 있었다.

그간 로마사에 대해서는 개설서 정도만 읽어왔기 때문에(그나마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는 완독하지도 못했다) 로마 군제나 전쟁사 역시도 개설적인 내용 정도만 알아왔었다. 그렇기에 로마 장군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로마 장군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군사령관으로 임명되는데 필요한 정규교육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대화, 약간의 군복무 시절의 경험, 개인 스스로의 연구에 의해 습득되었고 장군은 군대를 지휘하면서 본인의 리더쉽을 발휘해야만 했다고 한다. 태학이나 경당을 통해 국민들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시켰던 고구려나 어릴 때부터 사냥과 전투로 몸을 단련했던 북방 유목민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로마 장군들은 한마디로 아마추어였고, 맡은 바 임무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로마 장군들은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그 중 10여명이 넘는 장군들은 이 책에 소개된 것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로마 스스로가 훌륭한 군사자원을 지닌 국가였기 때문이다. 일생에 있어 군사활동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그런 군사활동을 통해 부와 권력과 영토를 늘려왔던 국가, 징병에 의한 시민군이 주축이 되어 내전과 원정까지 모든 전쟁을 수행했던 국가...바로 로마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다소 전제적인 조건부터 동양의 전제군주적 국가와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군사적 업적과 전쟁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또 대단해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주욱 보면서 알고 있던 인물을 꼽자면 파비우스, 마르켈루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티투스, 트라야누스, 벨리사리우스 정도였다. 나머지 인물들은 그들이 수행한 전쟁과 관련해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있지 못 하거나 이름조차 기억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저자 역시 책의 서문에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분명 로마는 전쟁으로 다져진 국가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활약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음으로서 로마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주인장처럼 로마 전쟁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쟁 혹은 전투에 대한 극히 세부적인 분석보다는 이처럼 포괄적인 개념 하에 당시 시대사를 개괄하는 것이 더 적합했다. 게다가 동양 전쟁사에 익숙한 주인장이기에 세부적인 작전이나 전투에 대한 내용보다는 정치사적인, 대전략적인 전쟁에 대한 언급이 더 쉽게 이해되기도 했고 말이다(잘 알다시피 동양은 서양에 비해 전쟁이나 전투에 대한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이 많지 않아 당시 전쟁상을 생생하게 복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처럼 모르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니발을 무찌르고 젊은 나이게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종전 후에는 정치판에서 쫓겨나 실의 속에 죽었다는 사실과 폼페이우스가 로마의 알렉산드로스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특히 그러했다. 공화정이라는 독특한 체제 속에서 특정 인물의 권력 집중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로마 원로원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것도 아마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폼페이우스에 대해서는 드라마 ROME에서의 이미지(뚱뚱하고 배나온 노회한 정치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남아있었기에 저자가 서술한 내용들이 생소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카이사르에 대한 역사기록이 본인이 남긴 기록 이외에 다른 것이 남겨져 있지 않아 그는 행복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비평도 참신했다. 분명 그 또한 인간이고 실수투성이에 고집스러웠지만 역사는 그를 帝政 로마를 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옥타비아누스 시절 절정의 위세를 자랑하며 천하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단 제국의 틀이 완비된 다음에는 더 이상 대규모 원정을 감행하지 않고 내적 안정을 이루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나 포에니 전쟁같은 대규모 전쟁은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를 두고 페르시아 세력과 다투거나 유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함락한 일, 다키아를 속주로 만들기까지의 전쟁 등이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전쟁에 불과했다. 군대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으며 전쟁 양상 또한 바뀌어갔다. 유스티니아누스 휘하에서 복무했던 천재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는 이전의 로마 장군들처럼 5만이니, 10만이니 하는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군사적 업적을 남겨 비잔틴제국의 영토 확장 및 제국 유지에 크나큰 공적을 넘겼다. 끊임없이 교류하며 다투고 화합하기를 반복했던 동방사회, 북방사회, 중원사회와 달리 유럽은 로마가 몰락한 이후 그러한 제국이 다시는 등장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수십만의 대군이 격돌하는 대규모 전쟁이 유럽에서는 벌어지지 않았고 군사적으로 월등히 뛰어났던 로마의 발자취는 후손들에게 군사적 유산으로만 남겨질 뿐이었다. 이 점도 동양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로마 전쟁 변천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다만 그 중심에 전쟁의 최고사령관이 있었고 그 인물을 통해 그 전쟁을 서술했다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했기에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역사로 배우고 있고, 만약 다른 인물이 갈리아 지방을 정복했다면 그 내용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최고 지휘관에 따라 전쟁 양상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만약 파비우스가 한니발에 맞서지 않았다면 로마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카이사르가 아닌 다른 인물이 갈리아를 정복했고 그가 루비콘 강을 건너 폼페이우스와 맞섰다면 그 인물은 한낱 반란군 수괴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즉, 저자는 병사 개개인보다 그 병사들을 지휘했던 지휘관 한명에 촛점을 맞췄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내용이 개설적이고 포괄적이 되었을 뿐이지, 저자가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을 채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전쟁으로 보는 로마사를 서술하는데 있어 저자가 택한 방법이 가장 적합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암튼 요즘 학계 분위기와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지만 기본을 잊지 않게 해줬다고나 할까~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익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사를 알고 싶으신 분 혹은 로마 전쟁사를 알고 싶으신 분에게는 적절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책이 다소 두껍다 보니까(540p) 읽는데 지루한 감이 없진 않다. 주인장도 며칠에 걸쳐 읽었으니까.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했지 않은가. 읽고 나면 분명 주인장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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