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얼굴
존 키건 지음, 정병선 옮김 / 지호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존 키건.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쟁역사학자 중 한사람이다.『선데이 타임즈』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어로 씌어진 전쟁에 대한 6권의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라고 극찬한 책을 쓴 저자. 주인장이 존 키건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책을 읽으면서가 아니다. 존 린의『배틀, 전쟁의 문화사』를 읽을때 존 린이 존 키건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다. 과연 그가 누구길래 이런 비판을 받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존 키건의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이 책은 그 첫번째 책이다. 이 책은 1974년에 출판되었고 그의 핵심 사상이 담겨 있는『세계전쟁사』보다 무려 20년 전에 출판되었다. 즉, 그가 전쟁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최초로 정리한 것이기에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하나씩 알게 될 그의 사상을 접할때 부담감이 덜할테니 말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아쟁쿠르 전투, 워털루 전투, 솜 전투 이렇게 3가지 서로 다른 전투를 통해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하고자 하였다. 조금 순서를 바꿔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전쟁'의 본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흔히들 전투, 전쟁 이런 말을 쓰지만 정작 다양한 공간, 다양한 시간 속에서 행해진 이런 행위들이 공통적인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과연 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하는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으로 저자는 '인간'을 꼽고 있다. 인간의 행위라는 점에서 그것들이 전투 혹은 전쟁이라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을 인식하는 사상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을 정치사가 아닌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마치 철학처럼) 이해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 접근방법부터가 주인장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뒤이어 책장을 넘기면서 그 신선함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주인장이 그렇게 많은 전쟁사 관련 서적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처럼 전투 및 전쟁을 분석한 책은 보질 못 했다. 저자는 단순히 거시적인 시각에서의 국제관계나 몇몇 영웅적인 지휘관의 리더쉽에 국한한 전투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병사 개개인에 대한 세밀한 고찰에 보다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병사 개개인에 대한 피상적인 고찰을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세부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을 살펴봐야만 한다. 먼저 저자는 전장에 나선 각 병종들간의 전투상황을 세분화하였다.

아쟁쿠르전투에서는 궁수 대 보병 및 기병, 기병 대 보병, 보병 대 보병에 대해 살펴봤고, 워털루전투에서는 기병 대 기병, 기병 대 포병, 기병 대 보병, 포병 대 보병, 보병 대 보병에 대해서, 솜 전투에서는 보병 대 기관총 사수, 보병 대 보병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혼란스러운 전장의 상황을 저자는 각 병종들간의 전투로 분석함으로써 당시 전투를 보다 생동감있게 복원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복원이 가능할 정도의 충분한 자료(다양한 시각에서 쓰여진 연대기, 전쟁참전용사들의 증언이나 전후 개인집필기록 등등)들이 있기에 이러한 연구가 가능할테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책이 없었다는 것은 저자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주인장이 놀랐던 부분은 각 병종들간의 전투상황만 자세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부수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는 사실이다. 아쟁쿠르전투에서는 포로 살육 명령에 대한 부분을 심도있게 고찰했다. 이 부분은 그간 여러 책을 봤어도 심각하게 다룬 적이 없었는데 저자는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한 다음, 그 명령에 대한 여러 의의를 도출해냈다. 책을 1/4 정도 읽었을때 이러한 저자의 분석을 보고 거듭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워털루전투에서는 백병전에 대해서 자세하게 거론하고 있었으며 솜 전투에서는 포격과 무인지대에서 본 광경(지루한 참호전의 상황을 생동감있게 표현)에 대한 장을 집어넣었다. 하나같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서술방식이었는데 이 책이 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이 다시금 주인장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책들 중에도 이와 같은 서술방식을 채택한 책은 보질 못 했다. 확실히 전쟁역사학의 대가라고 불릴만 했다. 

또한 저저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부상병' 부분이었다. 시대가 흐를수록 부상병은 더 많이, 더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겨났지만 그만큼 전장에 바로 치료될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투의 목적이 적을 더 많이 살상하는 것이기에 군의관과 전투수행자의 이런 의지는 늘 충돌해왔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전투를 분석했기에 저자의 이런 시각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략 400p에 걸쳐 3가지 서로 다른 전투를 경험하게 되는데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없진 않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전투를 바라봤기 때문에 다소 사변적인 해석이 등장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은 주인장도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두번 세번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분명 3가지 전투에 대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시각과 다른 시각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책도 다른 책들처럼 전투가 벌어지게 된 원인, 그 주인공들(영웅적인 혹은 역사적인 인물들), 전투의 경과와 결과, 전후 역사에 미친 영향 등등을 서술하고 있다. 다만 그런 부분들 이외에 남들이 다루지 않는 부분들까지 다루다보니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하게 시간을 들여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지막에는 국방대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의 박균열 연구원이 이 책을 읽고 남긴 서평이 실려 있어 한국학계의 시각도 알 수 있고 이 책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서 박균열 연구원이 평가한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한번 정리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정치와 국가에 의한' 로마식 역사관이 아닌 '지리적 위치와 인간의 행동에 의한' 그리스식 역사관을 선택하고 있음
2. 많은 사료를 동원하여 전쟁의 다양한 대립 양상 및 대치 국면을 보여주고 있음
3.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참전병사들의 인식, 전투에 투영된 사상 등 역사 해석에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하고 있음
4. 전투가 진행되면서 개개 병사들이 겪는 경험과 병영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예화를 제시하고 있음

더불어 단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꼽고 있다.

1. 전쟁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른 연구 방법론에 비해 빈약함
2. 정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성이 보이고 있음

장점은 뭐 주인장이 느꼈던 부분과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겠고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보다 단점 부분에서 박균열 연구원은 저자가 내린 전쟁에 대한 정의가 빈약하다는 평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의 다른 연구에서 전쟁을 '집단적 살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쟁의 아주 원초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는 셈인데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단순히 그렇게만 정의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그러한 정의는 오늘날의 국가나 민족을 그 자체만으로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개개인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다른 저작을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박균열 연구원의 비평은 주인장이 앞으로 염두에 둬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당연히 정치에 대한 인식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고 밝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에 대한 의미는 아직도 유효한 부분이 많다. 비록 그가 당시 사용했던 '정치'의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위의 2가지 단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을 알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박균열 연구원의 서평이 실려 있어서 앞으로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부분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존 린의 책을 보면서 존 키건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 그 전후에 나왔던 여러 전쟁사 관련 서적들 중에서 단연코 秀作으로 꼽을 수 있다 하겠다. 전제왕권하에 쓰여진 왕조기록이 대부분인 동양에서 이러한 연구성과가 나오기 힘든 것에 대한 반대급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연구성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학자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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