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김용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와 제목을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과 진순신이 대담 형식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도 아직껏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삼국사기 사서 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재미있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집필한 김상 선생님의 책들을 보다가 김상 선생님이 인용하신 참고문헌에 있길래 찾아서 읽게 되었다.  

이 책 128쪽에도 나와있지만 진순신 선생님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간 국서가 중국 쪽에서 수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臣)'이라고 써야 합니다. 중국의 국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요.' 라고 적혀 있다. 즉,『삼국사기』등에 남아있는 삼국 후기사를 서술한 부분에 나온 중국과의 외교문서(특히 수 · 당)의 신(臣)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외교 관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598년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뒤 수나라에 보낸 외교 국서에는 '요동분토신원(遼東糞土臣元)'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요동 변방에 사는 신하 (고)원은…' 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당시의 수와 고구려간의 국제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한줄의 내용 때문에 이 책이 어떤 책인가~하고 흥미가 생겨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은...음~뭐랄까. 두 사람의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삼국(한, 중, 일)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주제를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비교사' 혹은 '비교사적 관점'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전부 전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삼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 혹은 기존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기존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이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명한 역사연구자가 아닌가. 김용운 선생님은 혹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한국수학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분이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혹은 문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또한 진순신 선생님이야 뭐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연구자이자 소설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담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큰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제1부 동아시아의 정신을 탐구한다. 제2부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다. 제3부 동양적 기초로부터 미래를 조명한다. 제4부 한국의 영세중립과 AU가 세계를 구한다.' 인데 보면 알겠지만 삼국의 역사 쟁점이 되는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삼국의 문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 각 문화적 요소가 서로 다른 이유 등을 언급하면서 현재와 과거 역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앞으로 삼국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책에서 다루지 못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장이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삼국, 아니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교'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유교를 '절대화', 일본의 유교를 '교양', 중국의 유교를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교가 각 나라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효'를 강조한 한국, '의'를 강조한 중국, '충'을 강조한 일본 등 유교의 영향 혹은 민족성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질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그러한 민족성에 따라 유교와 같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한국은 '정통성', 중국은 '공존', 일본은 '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유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생성되어 각지로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정통성이라든가, 엄격한 유교적 이론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유교라는 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학문 혹은 종교성을 지닌 이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인 물이 썩듯이) 비판이 생기고, 반론이 생기고,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뿌리깊게 내린 뒤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양명학도 배척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마치 마리우스파 기독교가 로마 밖으로 뻗어나갔던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어서 한국은 '명분', 중국은 '다양성', 일본은 '치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했다. 왜 삼국이 서로 남긴 기록의 성격과 분량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는 이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후대 사학자들은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는데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자의 본토(중국)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정통과 고전적인 모습을 한국이 간직하고 있을테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제1부에서 주로 유교를 포함하는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이뤄졌다. 제2부에서는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주로 언급이 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은 '정(政)', 중국은 '정(正)', 일본은 '화(和)'라고 한다. 즉, 일본의 경우, 종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습합)나 유교를 대하는 태도(교양)에서처럼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자~는 식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들의 잘못도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자꾸 들추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통과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즉, 이는 각국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을 이해한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유연한 태도로 현재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일본의 외교관과 역사관 등을 다루었는데 제2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충(忠)'에 대한 삼국의 태도였다. 한국은 정몽주식 충이라면, 중국은 의의 충이고, 일본의 개의 충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싫어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일본의 성문화가 지극히 개방적인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얘기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을 많이 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중국의 전통 안에 녹여내는데 반해 한국은 정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대국이 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제3부에서는 근대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상업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국가 성장에 있어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였으며, 특히 일본은 서구 사회와 이른 시기부터 접촉하여 근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和'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사회적 변혁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과거 일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타국을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이나 식민지 경영에 대한 죄과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한, 중, 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하나로 묶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야만 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척화정책을 답습한 북한의 폐쇄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삼국은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유교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공통의 정신 기반인 한자와 유교를 공유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유교정신을 주목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삼국이 노력한다면 아시아 공동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 대담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국가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삼국의 문명을 비평한 책도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삼국의 문화 및 문화의 근간을 통해 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국은 지형도, 기후도 다르며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민족성이 달랐다. 당연히 역사가 진행된 과정 또한 달랐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동아시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체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수천년간을 교류해온 역사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국경이 나눠져 있고, 언어와 정치체제도 각각 다르지만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 다가올 시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며,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어떻게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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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과학자들은 정말 대단해 - 삼국 시대를 빛낸 과학자들
김용만 글, 시은경 그림 / 계림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주인장이 예전에『삼국시대 여성들은 정말 대단해』라는 책의 서평을 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여성이 아닌 과학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아~먼저 이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다. 앞서 나온 책과 이번에 나온 책의 제목을 보면 뭐가 딱 떠오르는 것이 없나 한번 물어보고 싶다. (4~5초 정도 고민해보고 ^^) 그렇다. '여성'과 '과학자'는 지금까지 역사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 한 대상이었다.『삼국사기』를 비롯한 정사류에 여성이나 과학자에 대한 기록이 많이 실려있는가? 아니면 발굴조사로 밝혀진 옛날 사람들 중에 여성이나 과학자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는가? 정답은 'No'다! 이전 책에서 저자는 말한 적이 있다. 역사는 지금까지 남자의 역사였던 'Hi스토리'였지 'Her스토리'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당연히 시중에 이런 삼국시대 과학자에 대한 책이 나온 적도 없다. 여성에 대한 책이 처음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어린이용 책이야 말할 것도 없고~그렇기에 주인장은 일단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책장을 펼쳤다. 

그럼 목차를 한번 보자.

1장. 기술자가 왕이다.

       임금님은 대장장이! - 석탈해

       기술자가 신이다! - 고분 벽화에 그려진 기술자 신들

       백제 기술자는 높은 직급의 관리였다

       옷감 짜는 왕비 - 세오녀

2장. 뛰어난 작품을 만든 기술자들

       황룡사 9층탑을 건설한 백제 기술자 - 아비지

       백제의 후예 -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

       탁월한 불교 예술의 장인 - 양지

       금당 벽화를 남긴 종합 예술인이자 과학자 - 담징

3장. 후대에 이름을 남긴 기술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의 창업주 - 유중광

       신라의 무기 기술자 - 신득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든 주종대박사 박종일

       무령 왕비의 은팔찌에 이름이 새겨진 다리

       일본에 술 빚기를 전한 백제의 기술자 - 수수허리

       뛰어난 침술로 이름 높았던 안작득지

       말의 병을 고친 수의사 - 승려 혜자

       기록에 남은 삼국시대 의사들

4장. 놀라운 삼국시대의 기술

       고대 금속 공예 기술의 최고 경지 - 백제 금동 대향로

       백제의 놀라운 초정밀 기술의 결정체 - 운모장식

       신라의 자동 로봇 - 만불산

       동아시아 예술의 꽃 - 고구려 고분 벽화

       신라 과학의 결정체 - 석굴암

       고구려 건축 기술의 종합체 - 성

       제왕의 학문 - 천문학

       해상왕 장보고를 만든 배무이 기술

       목판 인쇄술의 시작 - 다라니경

       신라에도 있었다 - 해시계, 물시계

       삼국 시대의 냉장고 - 신라의 석빙고

5장. 과거로부터 배워 미래를 준비하자

       이유부터 살펴보자 - 왜 조선 시대에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 삼국 시대 기술 발전의 원인

       기술자를 꿈꾼다면 구진천을 배워라

       미래는 어떨까 - 지식과 기술의 시대

일단 여기서 퀴즈 한번 내보자. 목차 중에서 4장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몇개나 되는지 한번 짚어보자. 일단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던 챕터를 한번 짚어보겠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의 책 표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린이용 책이다). 먼저 2장의 양지, 3장의 유중광과 안작득지, 4장의 만불산, 신라의 해시계와 물시계를 꼽을 수 있겠다. 명색이 역사 공부하는 대학원생인데 이렇게나 모르는게 많다. 창피하게시리. 암튼 목차에서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포스가 느껴졌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어린이책이라고 무시할게 못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석탈해 얘기를 하면서 돌궐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아마 대장장이 출신이 왕이 되는 사례를 따진다면 석탈해보다 돌궐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돌궐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은 주인장이 알기로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석탈해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대무신왕이 부여를 공격할때 도움을 준 부정씨 세력을 대장장이 집단으로 이해했다. 솥을 만들어서 갖고 왔으리라는 해석인데, 이 부분에 대해 주인장은 아직 판단 보류 중이다. 왜냐하면 솥을 갖고 온 집간이긴 하지만 저절로 밥이 지어져 고구려군이 배불리 밥을 먹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식량을 담당했거나 경제적으로 고구려군을 원조해준 집단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 부분은 실제 역사 기록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Tip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뒤이어 저자는 기술자에 대한 얘기와 고구려 수레 및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주인장은 27쪽의 삽화가 마음에 들었는데,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보자. 당시 고구려의 교통수단을 말이다. 어린이들이 이 삽화를 보면서 부모님과 어떤 얘기를 나눌지 궁금하다. 요즘도 당연히 다리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니까 이 삽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옛날에 무슨 나무 다리를 저렇게 크게 지을 수가 있냐고 물어볼지 말이다. 어쨌든 고구려와 신라가 수천대의 수레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해 줌으로써 어린이들이 조선시대의 가마꾼에서 벗어난 인식을 갖게끔 한 것은 참 바람직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백제와 신라에서 박사라는 관직이 있었고, 이들이 높은 벼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마 어른이라고 해도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모를 내용일 것이다. 요즘 '박사' 혹은 '박사님'이라고 하면 흰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하얀 실험용 가운을 걸친 모습을 많이 떠올리는데, 과거의 박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지적 탐구를 했으며, 각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고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사회적인 대접을 받았었고 말이다. 뒤이어 신라의 길쌈 문화와 주몽과 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이 책을 주로 읽을 독자들에게 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힐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히 흰색 와이셔츠에 안경 쓰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나 두들기는 일보다는 이렇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술직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인장이 주의깊게 봤던 부분은 양지에 대한 것인데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석장사에 대한 내용도 그렇고,『삼국유사』에 남아있는 양지의 작품들도 그렇고 말이다.『삼국유사』는 분명 읽어봤을텐데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주인장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리라. 어쨌든, 이런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장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묘사의 장륙불상과 사천왕상 및 전각과 탑의 기화, 사천왕사 탑의 팔부신장, 법림사의 세 부처와 좌우 금강신, 석장사의 3천 부처 벽돌탑, 분황사 모전석탑의 인왕상, 문무왕 화장터로 추정되는 능지탑의 소조상, 감은사 동서 쌍탑의 사리구 등 양지의 손길이 미쳤다고 하는 작품들은 오늘날 하나같이 국보급 대접을 받는 문화재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양지의 손길을 탔다니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이 사람은 정말 하늘이 내린 인재(天才)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가 신라인으로 유학을 갔든, 중앙아시아에서 귀화한 사람이든 그건 중요치가 않다. 이런 대단한 인물이 한국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 지금껏 모르고 살아온 내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양지에 이은 등장인물은 담징인데 저자는 그가 금당 벽화를 남겼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주인장이 알기로 그런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금당벽화를 그린 인물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담징은 다만 고구려에서 건너가 채색과 종이와 먹을 만들고, 연자방아를 만들어 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예전에 이 사실을 수업 시간에 듣고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역시 담징이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호류사에 남아 있는 백제 관음상이나 옥충주자, 천수국 만다라수장을 봤을때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장인들이 건너가 그것들을 만들었던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이 부분은 주인장도 관련 자료를 추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은 자제하도록 하겠다.

그밖에 유중광에 대한 얘기도 처음 알았는데, 곤고구미[金剛組]라는 회사가 578~2006년까지 무려 1428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고건축 전문 건축회사라니 정말 놀랄 따름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고건축을 복원하거나 수리할때 일본의 문화재 복원팀이 건너온다는 얘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또한 무령 왕비의 은팔찌에 이름이 새겨진 다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국사책이나 일반 역사책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읽고 놀랄만 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이 은팔찌를 보면 그 세공의 정밀함이나 문양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의 이 팔찌를 만든 사람이 중앙아시아 계열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보기도 한다. 이미 백제는 금동대향로 등 엄청나게 아름다우면서도 국제적인 물건을 만들었던 나라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침술로 유명한 안작득지나 수의사로 이름을 날린 혜자 스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기병을 다량 보유했고 그만큼 목장에서 기르는 말도 많았을 고구려에서 말을 고치는 수의사(馬醫)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구려사를 다룬 연구서적에서 혜자 스님의 마의 활동을 알리는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밖에 저자는 왕유릉타나 소수니, 독치자 등의 유명했던 의사를 소개하고『고려노사방』이나『백제신집방』,『신라법사방』,『신라비밀법사방』과 같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서적을 인용하여 삼국시대 약재나 의료술에 대한 내용을 Tip으로 다루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인삼이 고구려, 백제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고구려가 백제를 제압한 후 백제의 인삼 교역권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충분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106쪽의 고려 진주조개 이야기나 107~110쪽의 만불산 이야기는 정말 어린이들에게 동심의 나래를 펼치게 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저절로 움직이는 만불산 기계장치는 아마 지금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이다. 고려 진주조개와 같은 정교한 세공품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그런 것이 있다면 눈으로 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신라시대 해시계와 물시계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만약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남아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마치 왕흥사지 목탑 주변에서 발견한 운모장식판을 봤을때 느꼈던 그런 카타르시스가 전해질 것이다. 그 운모 장식판을 처음 뉴스에 실린 사진으로 접했을때 어찌나 놀랐는지 아직도 그때 기억이 난다. 콧바람에도 날아갈 정도로 얇고 가볍고 깨지기 쉬운 운모를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만들 정도면 그것을 만든 사람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이며, 그 노력은 또 어느 정도이겠는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5장. 과거로부터 배워 미래를 준비하자'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조선 시대 학문을 배운 선비보다 장인과 상인이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기술자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낮았고, 당연히 조선 시대에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못 했다고 강변한다. 게다가 조선은 사치를 멀리 하고 상업 발전을 억누르는 사회였으며, 외국과의 교류도 적고 전쟁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력의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 했다. 그에 비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는 조-일전쟁(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은 엄청나게 많은 도자기 기술자들을 잡아가 일본 도자기를 전 세계적인 교역품으로 만들어냈다. 당연히 양국간의 국력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삼국 시대에는 왜 과학이 발달했는지도 알려준다. 삼국간의 치열한 경쟁은 상대방보다 내가 더 잘 살게 하기 위해 기술력의 발달이 요구됐던 사회였다. 산업 스파이가 오고 갔으며, 기술을 이전해주는 대가로 군대를 빌려오기도 했다. 저자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삼국 시대의 기술 발전의 원인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왜 삼국 시대에 비해 조선의 기술력이 쇠퇴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무리를 짓는다. 기술에는 조국이 없지만 기술자에는 조국이 있다고 말이다.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많은 이들이 과학에 관심을 쏟아 국가 발전에 힘쓴다면 삼국 시대처럼 우리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더 풍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자칫 학교에서 덜 배우고, 오해하기 쉬운 과학 기술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을 봄으로써 그런 부분을 메꿀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전에 나온 여성에 대한 책처럼 이 책 역시 독자들에게 스스로 역사가 무엇이며, 과학자가 왜 중요한지, 기술 발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주인장은 개인적으로 이전 책보다 이 책의 삽화가 어린이용 책에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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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문화 살림지식총서 144
신규섭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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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 소개하고자 한다. 여자친구 집에 있어서 한번 펼쳐 봤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인데, 아마 다른 분들도 부담없이 1시간여 정도만에 다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이 책을 주인장이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중 가장 큰 것은 '아! 내가 페르시아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한창 히타이트에 꽂혀서 관련 서적들을 뒤졌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세계사책에서, 혹은 페르시아 역사를 부차적으로 다루던 역사책 등에서(주로 그리스 관련 서적이었던 것 같다) 봐 왔던 페르시아와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불과 100쪽도 안 되는 책을 보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머리를 '탁! 탁!' 치면서 본 적은 독서를 시작한지 어언 20여년이 넘었지만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목차는 간단하다. 순서대로 한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페르시아 문화 새롭게 엿보기 

2. 중세 학문의 본향 

3. 이란계 이태백 

4. 인류 최초의 문명 

5. 불교와 페르시아 

6.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7. 쉬아파와 수피즘

8. 돈황과 서역 

9. 올리브 나무 사이로 

10. 이란의 현대 문화

한번 목차를 보자. 여기서 딱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주인장은 3번과 5번 목차를 딱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태백이 이란계라고? 또 페르시아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고?? 주인장은 페르시아사에 대해 많이 알지 못 한다. 기껏 알고 있는 것을 꼽자면 예전에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조의 시조인 키루스 대왕에 대한 역사소설을 한번 읽은 적이 있고(서평도 썼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과 관련된 책 몇권과 영화(300)를 봤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전쟁 관련된 부분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다시 되돌아보면 주인장이 알고 있는 페르시아는 그리스라는 자그마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중동의 거대 제국, 다민족 국가, 엄청난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남겼던 나라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주로 전쟁(혹은 군사부분) 관련된 내용을 주로 공부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 이상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3번과 5번 목차를 보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목차에서 한번 놀란 주인장은 '페르시아 문화 새롭게 엿보기'(일반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인 듯 싶다)라는 장의 첫 줄을 읽고 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이란은 왜 아랍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을까?'

'어...진짜~그러게 왜 가입 안 했지?' 생각해보니 이란은 이라크를 위시한 아랍국가들과 정치적인 행보도 다르게 행했었다. 왜 그럴까? 저자는 당당히 말한다.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장은 또 혼란을 겪었다. 이란은 왜 아랍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지? 주인장이 알고 있는 아랍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변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혼란은 당연했다. 저자도 책에 적고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물론 주인장처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 저자는 세계 이슬람권 중 중동 이슬람권은 크게 아랍 이슬람권과 페르시아 이슬람권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그 중 이란은 페르시아 이슬람권이라고 했다. 페르시아 이슬람권의 신앙은 조로아스터교와 불교로 이어지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범신론적인 토대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슬람교는 유일신 사상인데 왠 범신론? 책을 읽을수록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이해가 갔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의 전통을 갖고 있던 페르시아는 외래 종교인 이슬람이 들어오자 쉬아(시아) 이슬람을 주창하였으며, 순니 이슬람과는 차별성을 두었다고 말이다. 오늘날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권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 등으로 대략 3개국 4개 지역권이며 중앙아시아에 2천 5백만 명, 서남아시아에 1억 4천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즉, 아랍 이슬람권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22개국의 셈족 지역이며, 페르시아 이슬람권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아리안족 지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불과 3페이지 정도 읽었을 뿐인데, 주인장이 페르시아에 대해서, 아니 그보다 중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全無하다는 생각에 할말을 잃었다. 내 지식이 요 정도밖에 안 됐구나. 하아~한숨만 나왔다.

책장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주인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어나갔다. 페르시아의 과학 기술이 동시대 서양보다 뛰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알코올이 페르시아인 의학자 라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또 처음이었다. 또한 저자는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리던 '알파라비', 이슬람 신학의 최고봉 '가잘리', 이슬람 사상과 관련하여 순니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를 창시한 '알아쉬아리', 이슬람 최고의 학당으로 불리는 내저미예 대학을 설립한 셀주크 왕조의 재상 '내저몰 몰크', 대수학의 아버지 '알콰레즈미', 지구 공전을 주장한 '나시룻딘 투시', 무슬림 의학의 선구자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학자로 꼽히는 '라지',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의사로 꼽히는 '이븐 시나', 전설적인 무슬림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 등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페르시아인으로서 학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소개하는 책자나 언론을 많이 못 봤다고 비판했다. 주인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의 이름을 왜 주인장은 거의 다 처음 보는 것을까? 학교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거지? 그 흔한 갈릴레이의 일화는 소개하면서 왜 나시룻딘 투시라는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거지??

책은 점점 쇼킹(?)한 내용을 담는다. 이태백은 이란계란다. 중국인이 아니라. 아무리 당 왕조가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세계제국이었다지만 그 훌륭한 한시들을 남긴 詩仙 이태백이 페르시아 사람이라니. 또 저자는 세계 최초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은 이란 고원의 원주민으로서 북동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 평원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이란 고원의 중앙부에서 발원한 문화를 갖고 이라크로 넘어가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심 라지의『이란 고대 종교』라는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은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페르시아가 불교 국가였다는 사실, 안세고나 안현과 같은 인물이 모두 페르시아인이었고, 심지어는 보리 달마도 남천축인이 아니라 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사실들을 밝히고 있는데 깜짝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니체와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마 페르시아사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면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주인장도 이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몰랐기에 이 부분도 재밌게 읽어 나갔다. 저자는 석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등의 성인이 기원전 5세기 경에 동-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태어난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모두 그보다 이른 시기 조로아스터라는 선구자가 사상적 토대를 닦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니체는 조로아스터가 30세에 산에 들어가 10년 고행 끝에 설교를 시작한 것에 비해, 예수는 불과 40일간의 고행 끝에 설교를 시작했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에는 청년 특유의 결함(미숙과 경솔)이 있었다고 비판했다고도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정말 참신한 내용들이 가득해서 정신이 없었다.

또한 쉬아파와 수피즘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수피즘에 대한 것을 읽다 보니 도교의 무위자연과 상당히 비슷한 사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페르시아의 애르펀이나 이슬람의 수피즘을 한국에서는 단순히 신비주의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회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회교는 중국의 소수 민족인 회족이 믿는 이슬람교를 지칭하는 것일 뿐, 큰 차이는 없지만 대부분 회교를 이슬람교의 卑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정말 짧지만 그 내용은 굵직굵직한 것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란 영화를 언급하면서 이란의 현대 영화들이 페르시아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몰랐는데 2002년 한해에만 국제 영화제에서 100여 개 이상의 상을 휩쓴 것이 이란 영화라니 정말 놀랄 따름이었다. 이걸 보면서 우리 나라가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 밖에 저자는 이란의 시, 예술, 문학 등을 언급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페르시아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서양이 그들의 막장 사회를 개혁할 대안으로 동양의 유교에 주목하는 신 유교주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몰랐던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주인장은 이 100쪽도 안 되는 책에서 처음 알았다니, 그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주인장, 아니 주인장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 중에 과연 페르시아 문화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다 덮은 지금...다른 분들이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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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9-06-2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총서는 워낙 다양한 필자들이 나오다 보니 함량미달의 책도 종종 있어서 고를 때 주저하곤 하는데 이 책은 읽어 보고 싶네요.

麗輝 2009-06-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 살림지식총서 안 그래도 시리즈가 워낙 많아서 마린님 말씀대로 잘못 고르면 엉망인 책들이 많은데...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안 그렇더라고요. 분량이 얼마 안 되는데다가 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깐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저자가 조금 과대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페르시아 불교 관련된 부분) 전체적으로 무난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역사 - 초·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춘 한국사 백과
김용만 지음, 오지은 외 그림 / 청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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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만에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책을 읽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은 주인장이 한국사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전체 한국사를 다루고 있는 백과사전식 서적이며, 부제처럼 초 · 중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수업에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럼 주인장이 왜 초 · 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는 한국사책을 봤을까? 일단은 저자의 이름을 보고 읽어본 것도 있지만 한번 훓어본 결과, 결코 내용이 쉽거나 간단하여 애들 책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자세하게 읽어보고 이렇게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그럼 이 책에 대한 주인장의 생각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목차'와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는 기존과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흔하디 흔한 한국사 책과 달리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전에 썼던『지도로 보는 한국사』를 보면 그 역시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시각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들쑥날쑥 역사가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같은 주제별로 묶어서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그 점이 눈에 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같은 주제로 묶은 챕터 안에서는 왕조사 순대로 서술해서 혼동을 피했다. 또 하나는 무역과 해양 시대, 소외된 자들의 역사라든가, 양인과 천민 등등 기존에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독립된 장으로 끄집어내서 다루고 있어 독특하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에도 써 있지만 1,200여 컷의 다양한 도판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충분히 한국사를 이해하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p.15) - Good

토기를 사용한 집단의 문화적 특징과 지역적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토기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표현은 고고학에서는 기본적인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국사책이나 역사학 쪽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단군조선이 세워지기 이전 신석기시대때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방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는데(이는 저자가『지도로 보는 한국사』때부터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 겨레는 처음부터 한반도에서만 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는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문화 원류의 하나인 이 지역 문화도 우리가 앞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은 참신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를 한반도의 역사와 동일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시각은 고쳐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전쟁의 시대(p.22~23) - Good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정말 잘 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개념적인 설명을 잘 해놓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전쟁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일은 별로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도 총 한번 안 쏘고 전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 어린 애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FPS 총게임을 아무리 해봐도 전쟁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전쟁에 대해 다룬 장이 있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서 병법(군사학)이 생겨나고, 전문 군인이 생겨나고 무기의 발달도 있었다는 설명은 적절했다고 본다. 전쟁을 단순히 몇몇 영웅들의 독무대로 여기는 현상(그리스 영웅들의 전쟁이나 삼국지 무장들의 전투)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전사의 시대에서 군대의 시대로(p.28~29) - Good & Bad

먼저 전사와 군인의 차이를 분명히 언급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사와 군사의 차이점을 크게 두지 않는다. 왜 선사시대에는 전사나 몇몇 영웅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며, 시대가 후대로 오면서 대규모 군대가 전쟁에 동원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쉬었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후 전쟁이 줄어들면서 군인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 귀족들은 오히려 제도를 바꿔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설명은 전사와 군대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해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쟁은 살인과 방화 등 평상시에는 범죄였던 모든 행동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삽화의 설명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본질을 잘 설명한 대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 무사의 모습 도판은 의문이다. 그냥 평범한 남성이 평상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것이 어째서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시 고구려 무사는 귀족의 자제가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훈련을 받았다고 설명하기 위함인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무사라고 한다면 갑주를 걸치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 부분은 좀 의문이다.

4. 광개토태왕과 장수왕(p.32~33) - Good

고구려의 성공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한 변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야말로 광개토태왕~장수태왕 시절을 설명하기 딱 좋은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부분을 콕 집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또한 태학을 설립해서 문서 행정에 능한 관리를 키웠다는 설명도 적절했다. 또한 이 시기 고구려가 지역 강국에서 대제국으로 변신했다는 표현도 적절했다. 고구려가 처음부터 강대국이 아니었던만큼 이런 성장 과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사책이나 한국사 책에서는 이런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물론 관련 전문 연구성과에서는 표현하지만 말이다.

5. 백제와 신라의 동맹과 반격(p.34~35) - Good

삼국 가운데 가자 약했던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에서 어떻게 벗어나 성장해 삼국통일을 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우연이 아니라 신라의 저력에서 비롯됐다'고 말이다. 학자들 중에는 진흥왕을 두고 대단히 결단력있는 배짱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고구려와 같은 강대국의 간섭을 뿌리치고, 백제마저도 적으로 만든 사내이기 때문이다. 가끔 학계에서는 신라의 통일을 두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아무리 외세를 빌렸다고 하더라도 신라가 그만한 역량이 없었다면 결코 삼국통일을 이루지는 못 했을 것이다.

6. 고구려와 수, 당나라의 대전(p.37) - Good

고구려의 승리 원인을 두고 저자는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온 적군에 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 강했기 때문에 고구려가 고-수, 고-당 전쟁에서 계속 이겼던 것이라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이나 무기, 외교전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새로 쓰는 연개소문傳』에서 문헌에 기록된 당나라 측의 전쟁명분과 달리 고구려 측의 전쟁명분이 무엇이었는지 추정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부분인만큼 이 책에 적힌 내용도 그러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7. 삼국통일전쟁(p.39) - Good

앞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앞섰던 신라 사람들의 강한 의지가 마침내 나태해진 백제, 내분에 빠진 고구려, 전쟁 의지가 약해졌던 당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삼국통일에 대해 평하고 있다.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국사책에 나온 내용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8. 철, 인삼, 도자기 교역(p.47) - Good

저자는 인삼 교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언급하고 있다. 광개토태왕이 백제 인삼의 수출권을 빼앗았다는 대목이나 은과 담비가죽이 고구려의 대표 수출 상품이었다는 내용은 아마 국사책뿐만 아니라 왠만한 역사서적에는 없는 내용이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때부터 인삼이 중요한 약재로서 널리 교역됐다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 또한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을 읽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책을 읽고 학교 선생님께 찾아가 여쭤보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럼 선생님들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9. 제주도에 천년왕국이 있었다(p.66~67) - Good

제주도의 독자적인 역사가 사라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독자적인 건국신화가 살아있는만큼 제주도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실제 고고학적인 증거를 살펴봐도 양자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부분에 대해 저자는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이를 '소외된 자들의 역사'라는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런 지역사는 국사책에서 다루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짚어준 것은 굉장히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10. 이 땅에 온 이방인들(p.70~71) - Good

저자는 우리가 단일민족국가라는 사실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문화 · 사회적으로는 단일민족일지 몰라도 혈통까지 순수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275개 성씨 중 절반에 가까운 136개의 성씨가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주인장도 잘 몰랐던 부분인데 재밌었다. 특히 아라비아 덕수 장씨라는 성씨는 처음 보는 것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안씨는 대부분 胡人들의 성씨라는 연구결과가 있는데(안록산 등) 그렇게 봤을때 서역 출신 성씨가 있다는 점은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성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11. 천신과 조상신, 신선(p.82~83) - Good

불교 전래 이전의 우리 종교에 대해 저자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믿은 최고의 대상은 하늘신인 천신이라는 점, 해와 달은 천신의 대행자이자, 각 나라의 시조 또한 시조신으로 받들어졌다는 점,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신선이 되고 싶어했다는 점 등을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선약(신선이 되는 약)을 만드는 연금술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들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충분히 흥미있어 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2. 불교와 삼국 시대 예술(p.86~87) - Bad & Good

저자는 일본의 국보 1호인 미륵반가사유상을 두고 삼국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삼국 사람이라는 것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현재 미륵반가사유상의 제작자를 두고 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으로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삼국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제작자에 대한 국적 논란이 있다~라는 사실을 명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석굴암의 가치가 크기가 아닌 재질에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크고 멋있는 규모에 도취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석굴암이 어째서 세계사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대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3. 화랑도와 국학 교육(p.94) - Good

삼국 시대가 전쟁이 치열했던 시대이므로, 당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 武였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글은 부대의 표시나 명령문 정도만 알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이다. 즉, 경당에서도 그 정도의 기초적인 글자만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 경당을 지금의 학교와 동일하게 생각하기 쉬운 아이들에게 이런 지적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4. 북방 민족과의 전쟁(p.107) - Good

저자는 고려의 사대를 조선의 사대와 다른 것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실제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를 쓰다가 거란의 연호를 쓰기도 하고, 양자의 연호를 같이 쓰기도 하고 아예 연호를 안 쓰기도 하며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타국의 연호를 쓰는 것은 그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자국의 연호를 써주길 원한다. 이런 부분을 분명히 명시해야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사대주의, 사대외교에 대해서 그 실체를 자세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강감찬의 귀주대첩'(p.110~111)이라는 부분에서도 고려, 송, 거란이 대등하게 정립했으며 고려는 태조 이후 북진정책을 포기하고 평화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15. 몽골의 침략(p.115) - Good

저자는 고려 최강의 부대인 삼별초가 몽골과 싸우지 않고, 무신정권이나 지켰다고 평가한다. 즉, 삼별초는 고려 정부가 몽골에게 항복하면 당장 몽골군에게 죽거나 해체될 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몽골과 싸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몽골과 싸웠지만 점차 고려 지배에 대항하는 자주정신의 상징으로 인해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삼별초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6. 도자기와 조선 통신사(p.146) - Bad

저자는 9세기 신라에서도 청자를 만들었고, 고려 시대에는 상감청자 같은 명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감청자는 순청자보다 급이 떨어진다. 서긍『고려도경』을 보면 순청자, 상형청자 등의 우수성은 언급하고 있지만 상감청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즉, 상감청자는 12세기 중엽에 생겨난 것으로 순수하게 아름다운 청색의 자기를 만들어낼 기술력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에 그 대신 상감과 금입사라는 멋을 부려 그 점을 보완했던 것이다. 하지만 멋을 부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상감청자는 더 화려하게 변화했으며 단기간에 발전하였고, 그와 더불어 만들기 어려운 상형청자와 멋이 없는 순청자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순청자는 문신귀족적인 멋이 있다고 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상감청자는 무신귀족적인 멋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려의 순청자는 자기 제작의 원조격인 중국보다도 뛰어나 당시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기도 했으며, 상감청자는 고려만의 독특한 제품이기도 하지만 원의 침입을 받으면서 그 기술마저 쇠퇴하게 되기 때문에 상감청자보다는 순청자를 명품이라고 지칭해야 옳을 것이다.

17. 성리학의 시대(p.154~155) - Good

저자는 성리학에 대해 독립적인 장을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주인장 또한 이 부분은 국사책에서 공부할때 굉장히 어려워하고 난해해한 부분이었는데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성리학의 장점과 단점을 분명하게 기술한 것이 좋았던 부분이다.

18. 분단과 민주국가의 진통(p.242~243) - Good

국사책에는 현대사에 대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교과 과정상 배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대사 아니면 중세사 위주에 치중하고 근 · 현대사 연구자는 많이 없다. 이는 시중에 나온 각 시대별 연구서적의 숫자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현대사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최근까지 군부독재정권이 유지됐던 것을 두고 수천년간 왕권국가에서 살았던 경험에 의거한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인장 역시 현대사가 취약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뭐 간단하게 18가지 정도를 꼽아봤다. 어느 정도 주인장이 아쉬웠던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짜임새있게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각 챕터마다 시계와 시계추 형태로 디자인한 연표(연표는 어차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거니깐)가 보이는데 그 점도 참신했으며, 뒤에 붙은 연대표를 단순히 시기별로 나누지 않고 왕과 정치, 전쟁, 문화, 종교와 사상, 경제와 생활 등 챕터별로 나눠서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B.C 10,000년 이전 전쟁을 두고 '인간과 짐승 간의 먹고 먹히는 투쟁이 있었음'이라고 쓴 부분은 좀 쇼킹했다. 이런 내용은 국사시간에 전혀 배우지 않는데다가 아이들이 미처 생각치 못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다. 구석기시대 인류는 여러 영장류 중의 하나였고, 보다 강한 맹수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었을테니 말이다. 전쟁은 곧 살기 위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또한 특별 부록으로 만든 한국사 지도도 보기 좋았는데, 역시 선으로 국경선을 그리지 않는 저자 특유의 지도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단점을 굳이 꼬집어 보자면, 책에 실린 삽화들 중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몇개 있다. 고인돌을 만드는 사람들이 고조선 사람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우가우가' 원시인들처럼 표현하고(흙도 거적떼기에 나르고 있다. 산간 오지에 사는 원주민도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도구를 사용한 인류인데 이건 뭐) 집 짓는 고조선 사람들은 옷을 제대로 갖춰입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삽화야 책을 쓴 저자가 그린 것이 아니니깐 이렇게 잘못 그려진 것을 보니 아마 출판사측에서 따로 작업한 것을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점이 전체적으로 책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암튼 전체적으로 국사책의 단점을 충분히 보완하면서도 내용면에서 결코 초 · 중학생이 만만히 볼 수 있지 않은, 전문적인 내용도 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책은 단순히 아이들만 읽지 말고 부모님도 같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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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바꾼 세계사 세계의 전쟁사 시리즈 4
김후 지음 / 가람기획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 나중에 알았지만 이 책이 제43회 한국백상추란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마도 '활'이라고 하는 무기를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출간된지 상당히 오래 된 책인데 그간 주인장이 내내 봐야지~봐야지 했다가 이제야 구해보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연구서적이라기보다는 개설서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정보 전달이라는 측면에 있어 상당히 잘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이 책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저자는 먼저 활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세계 각지에서 쓰였던 활의 종류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그 다음으로 1부 말미에서 스키타이, 훈, 투르크, 몽골 등 기마궁수를 동원해 일대 제국을 형성했던 유목민족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그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2부 말미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만 아니라면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활을 이용해 크게 세력을 떨친 세력에 대해 언급한 개략적인 역사서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한국의 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국궁의 구조와 제작법, 종류, 여러가지 화살과 궁도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으며, 한민족의 군사 전술 변천사 또한 나름 의미있는 테마로 정리된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최종적으로 복합각궁의 약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는 책 표지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복합각궁(우리가 흔히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는 만곡도가 심한 활로 예맥각궁이라고 불렸다고 함)이 부여에서 만들어져 그와 우호관계였던 흉노(훈으로 일괄 지칭하는 듯 하지만)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이후 중국에서 널리 쓰이던 노궁과 함께 투르크 세력에게 전해져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구미인들이 터키의 활을 최고로 꼽는 것은 국궁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으며, 우리 민족이 발명한 예맥각궁을 갖고 훈족과 몽골의 칸들이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인 것 같았다. 주인장이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백년전쟁 동안 영국의 장궁병이 프랑스군에게 있어 어떠한 군사적인 우위에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그러던 차에 접한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조금 의외였고 참신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장은 지금까지 복합각궁의 기원이 우리 민족이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거리 무기인 활은 선사시대부터 각 지역별로 만들어져 사용되었겠지만, 보다 강력한 관통력과 사거리를 지닌 복합각궁은 특정 지역에서 만들어져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우리 민족에서 만들어진 활이 유목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다~라는 것에 촛점이 맞춰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물론 유목민족의 역사를 비주류 혹은 야만의 역사로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목민족이 오직 활이라는 무기의 강력함때문에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복합각궁만이 전장에서 확고한 전략적 우위를 보여줬던 무기도 아니었으며, 여러 종류의 활(노 포함)이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전장에서 활용되었던만큼 그 다양한 활의 용례 혹은 발전상 등을 보여줬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물론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위력적인 무기로 활용되던 기간에 서양에서는 비겁한 무기라 하여 전문적으로 활이 쓰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도 분명히 활을 전장에서 활용했으며, 백년전쟁 기간에는 영국의 장궁병이 그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한편 인도와 동남아시아 각지, 아프리카에서도 활은 무기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각궁에만 주목하여 서술한 것은 조금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활을 통해 본 세계사적인 서술이 없기 때문에 연구사적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 동서양의 전쟁을 서로 비교하여 서술한 부분이나 조선 각궁과 영국의 잉글리시 롱 보우를 비교한 내용 등은 적절한 비교여서 재밌게 봤고 또 유용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여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고두막한이 나온다던가, 400년 경자대원정때 광개토태왕이 동원한 5만의 군대가 모두 기병이라고 서술한 것, 광개토태왕 시절 유연 원정이 있었다고 서술한 것, 광개토태왕비에 아신왕이 백제가 아닌 십제의 왕이었다고 한 것 등등 중간중간 원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저자가 추정한 내용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이것 역시 활 혹은 활에 의존한 전략전술에 주력하다보니 이런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80점 정도를 주고 싶은 책이다. 그간 온라인상에서 활과 화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면 늘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봤는데 충실하게 정리된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소 편향된 내용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많이 아쉬웠다.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보충해서 증보판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와 관련된 연구서적 혹은 개설서가 없기 때문에 연구사적 가치가 높은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기에 한번쯤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이만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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