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김용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와 제목을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과 진순신이 대담 형식으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언급한 책이다.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도 아직껏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삼국사기 사서 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재미있는 영산강유역 고대사』를 집필한 김상 선생님의 책들을 보다가 김상 선생님이 인용하신 참고문헌에 있길래 찾아서 읽게 되었다.  

이 책 128쪽에도 나와있지만 진순신 선생님의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간 국서가 중국 쪽에서 수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臣)'이라고 써야 합니다. 중국의 국서에도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요.' 라고 적혀 있다. 즉,『삼국사기』등에 남아있는 삼국 후기사를 서술한 부분에 나온 중국과의 외교문서(특히 수 · 당)의 신(臣)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외교 관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598년 영양태왕이 수나라의 대군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뒤 수나라에 보낸 외교 국서에는 '요동분토신원(遼東糞土臣元)'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요동 변방에 사는 신하 (고)원은…' 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당시의 수와 고구려간의 국제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 한줄의 내용 때문에 이 책이 어떤 책인가~하고 흥미가 생겨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봤다.  

다 읽은 지금의 기분은...음~뭐랄까. 두 사람의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삼국(한, 중, 일)의 역사였으며, 하나의 주제를 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비교사' 혹은 '비교사적 관점'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전부 전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삼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기존에 생각치 못 했던 부분, 혹은 기존에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기존에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이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유명한 역사연구자가 아닌가. 김용운 선생님은 혹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겟지만, 한국수학사를 전공한 몇 안 되는 분이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 혹은 문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분이다. 또한 진순신 선생님이야 뭐 주인장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연구자이자 소설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다른 참신한 시각에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담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큰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제1부 동아시아의 정신을 탐구한다. 제2부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다. 제3부 동양적 기초로부터 미래를 조명한다. 제4부 한국의 영세중립과 AU가 세계를 구한다.' 인데 보면 알겠지만 삼국의 역사 쟁점이 되는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삼국의 문화, 문화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 각 문화적 요소가 서로 다른 이유 등을 언급하면서 현재와 과거 역사의 관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며, 앞으로 삼국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나름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다른 책에서 다루지 못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장이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삼국, 아니 동아시아의 문화적 공통성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교'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유교를 '절대화', 일본의 유교를 '교양', 중국의 유교를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유교가 각 나라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효'를 강조한 한국, '의'를 강조한 중국, '충'을 강조한 일본 등 유교의 영향 혹은 민족성은 각 나라마다 독특한 성질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그러한 민족성에 따라 유교와 같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한국은 '정통성', 중국은 '공존', 일본은 '습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유교는 오히려 중국에서 생성되어 각지로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정통성이라든가, 엄격한 유교적 이론이 강화된 것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유교라는 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학문 혹은 종교성을 지닌 이론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인 물이 썩듯이) 비판이 생기고, 반론이 생기고,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주자학이 뿌리깊게 내린 뒤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친 양명학도 배척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마치 마리우스파 기독교가 로마 밖으로 뻗어나갔던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있어서 한국은 '명분', 중국은 '다양성', 일본은 '치밀'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했다. 왜 삼국이 서로 남긴 기록의 성격과 분량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명분과 정통성을 챙기는 이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후대 사학자들은 선조들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는데 더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한자의 본토(중국)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정통과 고전적인 모습을 한국이 간직하고 있을테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제1부에서 주로 유교를 포함하는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이뤄졌다. 제2부에서는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주로 언급이 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국은 '정(政)', 중국은 '정(正)', 일본은 '화(和)'라고 한다. 즉, 일본의 경우, 종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습합)나 유교를 대하는 태도(교양)에서처럼 좋으면 받아들이고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자~는 식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들의 잘못도 이미 지난 일인데 왜 자꾸 들추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통과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즉, 이는 각국이 서로 다른 민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인을 이해한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유연한 태도로 현재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일본의 외교관과 역사관 등을 다루었는데 제2부에서 재밌었던 것은 '충(忠)'에 대한 삼국의 태도였다. 한국은 정몽주식 충이라면, 중국은 의의 충이고, 일본의 개의 충이라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싫어도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일본의 성문화가 지극히 개방적인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얘기한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을 많이 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중국의 전통 안에 녹여내는데 반해 한국은 정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대국이 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제3부에서는 근대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대담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상업의 중요성이 화두에 올랐다. 알다시피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국가 성장에 있어 한계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국가였으며, 특히 일본은 서구 사회와 이른 시기부터 접촉하여 근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和'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해 사회적 변혁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과거 일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또한 타국을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이나 식민지 경영에 대한 죄과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한, 중, 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하나로 묶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야만 한다고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척화정책을 답습한 북한의 폐쇄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삼국은 서로 다른 말과 서로 다른 스타일의 유교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동양 공통의 정신 기반인 한자와 유교를 공유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서구사회에서 동양의 유교정신을 주목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삼국이 노력한다면 아시아 공동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두 사람 대담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국가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요, 어떻게 보면 삼국의 문명을 비평한 책도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삼국의 문화 및 문화의 근간을 통해 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국은 지형도, 기후도 다르며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민족성이 달랐다. 당연히 역사가 진행된 과정 또한 달랐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삼국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동아시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치체에 해당하며, 역사적으로 수천년간을 교류해온 역사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국경이 나눠져 있고, 언어와 정치체제도 각각 다르지만 아시아 공동체를 이뤄 다가올 시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며,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어떻게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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