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음 / 국립문화재연구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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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한국 고고학계의 최신 정보를 잘 정리한 유일한 잡지! 보다 더 많은 부수가 발행되어야 하겠지만, 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 ^^ 유적과 유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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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과 신들
주원준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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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지막 리뷰 이후에 근 10개월만에 쓰는 리뷰 같다. 그만큼 그동안 게을렀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각설하고, 오늘 소개할 책은 오랜만에 종교 관련 서적으로 정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이신 주원준 선생님이 모 학회에서 관련 주제로 발표하는 걸 듣고 나서였다. 발표 내용도 워낙 신선했지만(기존에 성경 혹은 예수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 책은 없었다), 뒷풀이때 선생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고대근동학 및 구약학은 물론, 개신교나 천주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주효했다. 거기다가 예전에 읽었던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라는 책의 번역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역시나 구약학이나 고대근동학 이외에도 종교와 관련된 역사 전반에 능통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했고.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프롤로그에서 간단하게 고대 근동의 지리학적 개념, 언어, 탈신화화와 재신화화(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큰 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성경의 번역과 성경의 현주소?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쪽 지식이 거의 없는 필자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부분이 상당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8장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들이 다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면,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을 이해하면서 당대 역사와 문헌들에 접근해야지, 과학과 합리성에 의존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부터 언급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성경에 신화의 언어가 풍부하다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당대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근동의 종교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어떻게 차별화했는지를 서술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밖에 고대근동학의 정의(막연히 고대 근동을 연구하는 학문은 성서고고학, 히타이트 고고학 등으로 불리는 줄로만 알았다)라든가, 고대 근동의 시간적 폭, 고대 근동의 언어를 기준으로 한 지역 구분 등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했던 것은 독일의 신약성서학자인 불트만(Bultmann, R.)이 제시한 탈신화화(脫神話化, Entmythologisierung)’라는 개념이었지만 말이다.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현대인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제시한다는 개념. 그런데 역시나 그 용어가 갖는 표면적 의미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김원룡 선생님이 처음 제창하신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나 애덤 스미스의국부론에 드러난 자유방임경제및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개념들도 모두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으나 최근에 이를 새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암튼, 저자는 신화는 마냥 겉의 신화적 요소를 껍질 까듯 벗겨버리고 속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1쪽에 적절한 표현이 나온다. 성경은 바나나처럼 껍질은 버리고 과유만 얻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양파처럼 껍질과 과육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자체를 온전히 섭취해야 한다, 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탈신화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신화화(再神話化, Remythologisierung)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증거물이 바로 창세기의 첫째 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들이 섬기던 자연신들을 하느님이 1주일 만에 만들어버린 피조물(소위 말하는 天地創造)로 전락시켰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비교가 부적절할지도 모르지만 마치 마블 코믹스의 슈퍼영웅 세계관을 보는 듯 했다.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영웅들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아이언맨, 엑스맨, 헐크, 토르, 고스트헬 등은 중하급 영웅들이며, 그보다 훨씬 뛰어난 초신적 영웅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결과, 뿌리 깊은 자체 신화가 없는 미국인들의 손을 거쳐 세계 각지의 신화적 영웅은 탈신화화하고 재신화화를 거쳐 새롭게 등급이 매겨진 셈이 됐다. 그에 따라 천둥의 신 토르는 북유럽에서 최고신에 준하는 지위를 얻고 있지만, 마블 코믹스에서는 슈퍼맨 정도의 레벨에 불과하다. 물론 슈퍼맨은 최고 레벨의 영웅이 아니고 말이다. ^^; 고대 근동의 수많은 도시국가 및 제국의 수많은 신들이 많아봤자 그보다 높은 레벨의 신에게는 한줌거리도 안 된다는 식의 이스라엘인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재밌으면서도 신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저자는 성경 번역이 사실적 일치가 아닌 상징적 일치를 더 고려해서 이뤄져야만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사실 이런 부분은 실제 종교인이 아닌 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역사로서의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시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다 살펴봤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바로 무엇인가? 라는 것까지! 이후 책에서 이야기할 것들을 맛보기로 다 보여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해당 분야의 지식이 상당한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 필자처럼 無知한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책 내용 중 필자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과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 등을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본론은 크게 6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첫째는 하늘(), 둘째는 달(), 셋째는 바람(), 넷째는 강(), 다섯째는 피(), 여섯째는 가시나무(). 일단 고대 근동하면 딱 연결되는 주제라면 달이나 강 등이 떠오를 수 있겠고, 일반적인 신화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하늘과 바람 피 등이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대략의 이미지만 떠올릴 뿐, 앞으로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명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기대감이 크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하늘신(天神)은 동서고금을 떠나 항상 최고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신화속 신과 영웅들은 모두 하늘에서 살며,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있는 생명을 관장하고, 모든 천재지변을 관장한다. 비도, 구름도, 눈도, 태풍도 모두 하늘이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신은 고대 근동에서도 최고신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야훼는 그런 자연신과 동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하늘()은 있을지언정 하늘신(天神)은 없다. 하늘은 그저 공간적 범위,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 중 하나이자 하느님이 계시는 공간일 뿐이지 절대 그 하늘 자체가 신적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이 야훼 하느님만의 것은 아니었다. 페르시아의 공식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의 대표적 호칭도 이러했는데,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페르시아의 종교관을 과감히 차용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바빌론 유수 이후 이스라엘인들이 대제국 페르시아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산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 그 호칭이 담고 있는 페르시아의 신과 신앙까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호칭만 가져와 자신들의 신에게 선사한 것이다(페르시아인들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이야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사실들을 당시 페르시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종교가 타 종교를 변화시켰다고 좋아했으려나? 실제 저자는 신바빌론 제국의 마르둑 사제들이 제국 내 왕권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신들의 족보를 새로 정리했다는 내용을 적고 있는데, 당시 이러한 종교정책의 부작용이나 반대 입장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는 고구려 내에서 부여 신화를 고구려 신화 안에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적용 가능한 사례일 수 있어 자못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야훼 신앙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관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마태오 복음의 하늘의 너희 아버지’, ‘하늘의 내 아버지와 같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중얼거리는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늘은 하느님과 동의어가 됨으로써 탈신화화를 넘어 재신화화가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주제부터 흥미진진하게 끝을 맺으면서 두 번째 주제로 바로 넘어가겠다. 두 번째는 이다. 고대 근동은 달신이 왕권 신학의 핵심 상징으로서 중교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유일한 지역이다(일반적으로 태양신이 보편적이다, 지근거리의 제우스-쥬피터를 보라. 더불어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얼굴이 쥬피터의 그것을 따왔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도 떠오른다). 실제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동부와 서부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달랐으며, 시간에 따라 달신의 지위가 변하기도 한 것 같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하느님 또는 하늘의 개념이 유입된 것처럼, 달신 숭배사상은 신아시리아 제국의 팽창과 함께 찾아온 종교적 위험요소였다.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은 달 역시 피조물로 만들어 버리고, 달신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것이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고대 근동 세계관의 전복이라고 하면서 창세1장을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이라는 표현으로 대변하고 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바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환인이 환웅을 보필해서 내려 보낸 이들이 바로 풍백(風伯)을 비롯해 우사(雨師)와 운사(雲師)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신들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그중 바람신은 해양 민족에게도 중요한 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대 근동에서 바람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며, 계절별로 각각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은 사람들의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바람신 역시 다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구약성경에서 바람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훼와 관련된 바람만 존재할 뿐이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일뿐더러, 바람이 불면 하느님이 현현한다는 징조로 쓰였다(영화나 드라마에서 신이 바람소리를 나면서 순식간에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아마 이와 비슷한 개념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도 재밌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루아흐(바람, )가 주님이 지나가신 흔적이요, 표징일 뿐이지 그 자체는 아니라고 주절주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그들의 끈질긴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네 번째는 인데,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 관심 있던 부분이었다. 메소포타미아 하면 2개의 강(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이 떠오르는 만큼 강과 관련된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저자는 도입부에 이런 표현을 쓴다. ‘현대인은 나일 강과 나일 강의 신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고대 근동인들에게 하늘신 없는 하늘이나 강의 신 없는 강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세상이나 사랑 없는 연인들과 같은 표현이다라고 말이다. 으음~쉽게 이해가 됐다. 그렇지. 그런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요즘의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되겠지.

 

처음 나오는 것은 나일 강이다. 고대 근동의 신 대부분이 자연 현상에 기반을 둔 인격신임에도 불구하고 나일 강은 강 자체가 아니라 강의 범람만이 인격화되었다고 한다(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인데, 그만큼 나일 강의 범람이 갖고 오는 사회적 변화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저자도 구약성경이 나일 강 범람의 신인 하피신에게 유독 침묵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큼 나일 강 범람이 미친 문화적·사회적 영향이 컸다는 소리를 역설적으로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더불어 혹시 중국에도 황하가 아닌, 황하 범람에 대한 이런 신화적 요소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강으로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나오는데, 본디 이 두 강은 고대 근동에서 신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들의 신성은 사라지는데, 그건 바로 수메르시대부터 일곱 주신의 하나이자 최고신 아누(하늘신)의 아들이요, 풍요의 신 두무지의 아버지인 엔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언급했던 신들의 계보 정리로 최고신의 지위를 얻은 마르둑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데, 지하수의 신이자 대표적인 선신(善神)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엔키의 흔적 또한 앞서 살펴본 하피신의 흔적만큼이나 구약성경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이 역시 이스라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다양한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선별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고 이로운 것을 수용하되 자신들이 함부로 삼키지 못하는 거대한 신성들은 아예 건드리지 않고 제외시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역시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합리성과 치밀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리라.

 

암튼, 이 두 강 역시 탈신화화를 거쳐 이집트의 북쪽 경계를 의미하는 지리적 용어로 쓰이거나, ‘저 멀리 북쪽 끝을 의미하는 신화적 강의 의미로 쓰였다(마치 무협소설에서 막연한 무림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용어 北海처럼 말이다). 그밖에 강은 심판의 의미도 있는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것이 정의를 판결하는 강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 역시 강의 신은 사라지고 탈신화화한 표현인 셈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재 성경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확실히 기존의 단순히 안개’, ‘로는 확실하게 의미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고대 근동 언어를 당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보다 확실하게 성경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전달된다는 저자의 생각이 잘 표현된 챕터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은 . 초반에 나오는 담을 통해 본 단군과 단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흥미로웠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혹은 비상식적(?)인 아마추어들의 이야기에도 이렇게 각주를 할애해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야 하나? 암튼, 창세기를 보면 일종의 말놀이(pun 또는 wordplay)로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아돔을 찾았기 때문에 에돔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는 라시드 앗 딘의집사3부작(칭기스칸기-부족지-칸의 후예들)에서도 나오는 비슷한 내용인데, 수렵 집단에서 흔하게 확인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자화된 역사를 남기기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비정주문명에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유대인들이 왜 헤롯왕의 이스라엘 통치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한 뒤에 본격적으로 피의 신 이야기로 향했다.

 

피의 신 하면, 좀 잔인하고 희생제의를 해야 할 것만 같고 이런 것만 떠올렸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피는 치유나 생명의 의미가 강했다고 한다. 물론 고대 근동에는 다무라는 피의 신이 있었지만, 구역성경에서 피는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피가 갖고 있는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죄악이 씻겨 나가는 상징이요, 생명의 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면서 흘린 예수의 피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을 언급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라는 표현은, 예수 역시 고대 근동의 종교심을 공유했다는 근거이며, 그가 셈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피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주가 사용되는 것 역시. 그리고 그 말은 곧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도들 역시 셈족의 종교심을 소통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구원자의 피가 온 세상과 인류를 깨끗하게 만든다는 셈족의 종교심은 이스라엘인에게는 자연스러웠지만, 로마인(인도-유럽어족)들에게는 그렇지 못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말을 곧 인육식사로 오해했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져 로마의 박해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예로부터 이러한 문화적 인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대 교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마지막은 가시나무(조성모 노래 말고. ^^;;). 나무는 뭐 우주목, 세계목 등등으로 불리며 동서 신화 곳곳에서 신적 존재로 숭배받아온지 오래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나무는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가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스라엘인이 아시리아인과 달리 나무를 인격체로 표현하면서 나무에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도 종류에 따라 신성과 숭배 정도가 다른데, 그중 가시나무야말로 고대 근동 종교와 구약성경을 꿰뚫는 상징이자 신양성경의 핵심 상징이요, 유다교 라삐들과 교부들의 성찰에도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나무라고 적고 있다(기존에 가시나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설명한 책은 본 적이 없다. 물론 관련도서를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2가지 같았다. 첫째는 가시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현재 천주교의성경, 개신교의표준새번역에서는 이를 모두 단순한 관목인 떨기나무로 번역하는데, 그렇게 되면 본래의 상징성이 잘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번역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이자 영웅설화라고도 할 수 있는길가메쉬 서사시를 보면 길가메쉬가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무릅쓰면서 진리를 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곧 가시가 참진리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표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예전에는 그 가시나무가 작은 덤불의 일종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이를 가시가 달린 높이가 10m 이상 자라는 거대한 야자나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 저자는 수종의 일치보다는 그 나무에 얽혀 있는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럼 숨 가쁘게 달려온 고대 근동의 종교적 모티프와 구약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이 책은 따로 에필로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챕터인 ‘7. 그러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를 한 장으로 떼어 마지막 에필로그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암튼, 제일 처음에 나온 이야기임에도 마지막까지 기다려 몇 자 더 적어보고자 한다.

 

여기까지 주욱 읽고 나면, 그럼 이스라엘인들은 고대 근동의 모든 종교관을 다 수용해서 그걸 탈신화화하고, 야훼라는 하나의 신적 존재를 만들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는 재신화화 작업 밖에는 한 것이 없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처음에 저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도 똑같은 의문이 들었으니깐). ,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고유성은 없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마치 고대 삼국의 문화 중 문화를 제외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얼마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일 게다. 솔직히 이렇게 물어봤을 때 뭐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저자는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그리고 이는 당연하다고,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도 고대 근동 세계의 일부였으며, 오히려 제국을 이루지 못한 약소국이었기 때문에(실제 책 중간에는 강대국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도시가 믿던 신을 못 믿고 上國의 신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큰 제국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을 무작정 받들고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성찰의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이란 비어 있지만(), 사실은 한 분을 향하는 태도’, 영성으로 꽉 차 있는 비움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불교의 과는 분명 다르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한편으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심성은 블랙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블랙홀로 모든 것이 들어가고 화이트홀로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고 알려져 왔으며, 그 중간을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웜홀이라고 한다(물론 블랙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론적인 존재지만). 그렇게 봤을 때 블랙홀처럼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를 빨아들인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웜홀을 통과하듯 그 종교적 모티프들을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를 거쳐 화이트홀로 뱉어낸 것만 같았다. 블랙홀과 웜홀, 화이트홀이 하나로 연결되었지만(입구-통로-출구) 각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고대 근동의 종교 또한 그리스도교와 동시대에 존재하고 서로의 종교적 모티프들을 공유했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면, 우리가 흔히 환빠라고 말하는 집단이 숭배(?)하는환단고기류의 책들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탈신화화하여 재신화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야기도 변모하면, 단순히 위서다, 진서다~라는 이분법적 평가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다. 전체적으로 오랜만에 읽은 책이 생각 외로 유익하고 알차서 좋았으며, 성경에 대해서도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과거에는 늘삼국사기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당대인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지, 지금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신 주원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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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2-06-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들렀는데 역시나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책들만 소개해 주셔서 늘 감사드려요^^

麗輝 2012-06-12 14:10   좋아요 0 | URL
marine님, 너무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
그간 게을러서 책을 멀리했더니 이제서야 인사를 드리네요~
암튼,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자아!! 드디어 <최종병기 활>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는 것 같다. 

<최종병기 활>이 조금 있으면 700만 고지를 돌파하려는 이 찰나(클릭)에 감상평을 남기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나~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몇자 적도록 하겠다. 

영화의 내용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 단순하니깐? 최고의 추격 액션영화로 꼽고 싶은 <테이큰>, 한국판 테이큰으로 꼽는 <아저씨>, 테이큰, 고대 중미 버전인 <아포칼립토> 등등과 내용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그냥 테이큰이 워낙 잘 알려진 영화고, 감명깊게 봤기 때문에 위와 같은 수식어를 쓴 것이지, 어느 영화가 먼저 개봉됐냐, 마냐를 따지고 싶진 않다. 참고하시길. ^^;). 

줄거리를 보자면~ 누군가 주인공의 주변 인물을 납치해간다. 이를 구출하러 주인공이 떠난다. 이때 주인공은 남들과 뭔가 다른 졸라 뛰어난 스킬을 갖고 있다. 당연히 나쁜 놈들을 하나둘씩 제거해가고 납치된 인물을 구해온다. 이게 기본 스토리 라인이다. <테이큰>에서는 친딸이, <아저씨>에서는 옆집에 사는 친한 소녀가, <아포칼립토>는 본인이 납치(?)되었다가 탈출해서 가족을 지키는 내용이며, <최종병기 활>에서는 그 대상이 친동생이다. <테이큰>과 <아저씨>의 주인공이 전직 특수요원 출신이고, <아포칼립토>의 주인공이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냥꾼이라면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은 曲射가 가능한 조선 최고의 신궁이다(늘 이런걸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주변 사람을 지킬라면 나도 뭔가 대단한 스킬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음냥...-.-;). 더불어 <테이큰>에서는 유럽에 상주하고 있는 국제적인 인신매매단, <아저씨>에서는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마약밀매, 장기매매 등을 하고 있는 조직폭력단, <아포칼립토>에서는 마얀지, 잉칸지 뚜렷하게 안 나왔지만 암튼, 중앙정부(?)에 희생용 포로를 제공하는 전문 인간사냥꾼 집단이 主敵으로 나온 반면, <최종병기 활>에서는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군사집단 중 하나인 청나라 팔기군(클릭)을 상대하고 있다. 

일단...이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감상을 작성하기 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한번 다뤄보겠다. 

그건 바로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토>의 표절 논란 부분이다.  

조선일보 - 8월 27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영화 '아포칼립토' 표절 논란 

이데일리 스타in - 9월 9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vs '아포칼립토', 얼마나 비슷하기에 

이밖에도 이와 관련한 많은 블로거들의 포스팅도 있고, 관련 기사도 더 있지만 네이버에서 검색된 최근 기사 2개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것만 읽어봐도 전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김한민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인터뷰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무비위크 - 9월 9일자 기사 '최종병기 활' 김한민 감독, "내 영화가 표절이라고?" 

감독은 <라스트 모히칸>과 <10,000 B.C>도 <아포칼립토>와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그랬다. 굳이 따지자면 <라스트 모히칸>에는 검치호라든가, 재규어라든가, 호랑이가 안 나왔다는 것 정도? 추격씬도 비슷했고,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비슷했다. 특히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설정이 진일보한 것이다~라는 감독의 말에는 적극 공감하는 바다(영화의 압권이라고 한다면, 절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는 장면을 꼽고 싶다). 암튼, 전체적으로 기존의 표절 논란에 대한 부분에서 필자는 감독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혹자는 '아포칼립토가 있었기에, 최종병기 활이 가능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력시대의 전투방식을 '한국'과 '중미'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잘 표현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자가 비슷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들 개별의 몫이 아닐까 싶다. 만약 <최종병기 활>이 <아포칼립토>의 한국 버전이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필자의 얘기를 좀 더 해보도록 하겠다. 

   
 

1. 무기의 참신함 

'최종병기'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어감에서 주는 강렬함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활'은 근력시대 최고의 원사무기로서, 우리나라의 활솜씨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인정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시대극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이 주인공으로서 활약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과거 <무사>에서 안성기가 활을 쏴대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 했으며(어디까지나 장창을 휘두르는 정우성이 주인공이었으니깐), 요즘 나오는 사극들을 봐도 '활'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판국에 이처럼 활이라는 무기 하나에 집중해서 스토리를 끌어낸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더군다나 주인공인 남이의 주특기는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혹은 '도저히 날아올 수 없는' 각도에서 쏴대는 곡사가 아닌가. 마치 <원티드>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팔을 안쪽으로 휘면서 총을 쏴 총알이 말도 안 되게 휘어 날아가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이 영화로 인해 정말 기존의 총격 액션과는 차별화된 신선한 영화가 나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게 딱 떠올랐다(근데 따지고보면 똑같이 곡사인데, 아무도 <최종병기 활>에 대해서는 <원티드>를 표절했다고는 안 하는 것 같다. ^^;;). 즉, 기존에 '활'만 갖고 만들어낸 영화가 없어 그것만으로도 참신한데, 아예 프로토 타입이 아니라 '곡사'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떡! 하니 세상에 등장했기 때문에 일단 소재면에서 별 5개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다. 

2. 긴장감과 속도감 

활은 근력이 최대점에 달할 때까지 당겨서,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과녁을 조준하고, 뒤이어 가볍게 활시위를 놓음으로써 다음 이야기가 전개된다(명중인지, 불발인지). 이는 분명 총과는 다른 방식이다. 스나이퍼들이 적을 조준하고 과녁을 맞추는 과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그런 푹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숨을 죽이고 과녁을 바라보는 그 이전에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 하나가 더 추가됨으로써 극 전개의 완급 조절이 됨과 동시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뒤이어 속도감이 배가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봤을때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잘 연출된 것 같다. 

무조건 속사를 하는 것으로도 '우와! 멋있다!'가 나올 수 있지만(예전에 드라마 <주몽>에서 송일국이 눈을 가리고 화살을 땅에 꽂은 채 보지 않고 속사를 해서 과녁 정중앙을 관통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이다), '끼기긱~' 하면서 힘겹게 활시위를 당겨, 화살 끝을 과녁에 조준한 뒤 1~2초간 정적이 흐르고 이내 화살이 날아가는 연출이 한결 더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로빈후드>도 괜찮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영화 속에서 굳이 따지자면 두 장면 정도 나올 듯 싶다. 로빈이 고프리 경을 향해 화살을 쏴 한번은 얼굴을 스치고, 영화 막판에는 목을 관통하게 했던 것 정도랄까?), 긴장감과 뒤이은 속도감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종병기 활>이 더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현실감 

우리나라 사극극이라 하면 필자가 늘 지적하는 것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ROME> 시즌 1~2를 요새 다시 보고 있는데, 그 현실감은 절대로 우리나라 사극이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한 현실감도 잘 살린 것 같아서 좋았다. 백두산 호랑이를 보고 겁에 질려하는 청나라 전사(실제 호랑이가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면 오금이 저리다는 걸 잘 표현했다)도 그렇고, 무거운 갑주(물론 경량화했다곤 하지만)를 입고 계속 달리다가 헐레벌떡 낙오된 청나라 전사도 그렇고, 남이가 중간에 대나무를 잘라 급하게 애기살을 만드는 모습이라든가, 청군의 화살을 집어 재활용하는 모습도 그랬다(물론 함경도 일대에 대나무가 없어서 그렇게 애기살을 만드는 설정에 무리가 있긴 하지만). 

또한, 만주족 전사들이 만주어를 쓰는 모습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오호라~' 이거 정말 현실감있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만주어를 모르기 때문에, 배우들의 만주어 실력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저런 시도를 하면서까지 현실감을 배가시키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필자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중국과 한국, 일본 사신들이 만나면 이렇게 통역을 하거나, 외국어를 쓰는 모습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 사극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지 않은가? 암튼, 이런 것들이 다 기존에는 세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던 모습들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반갑게(?) 와 닿았다.

 
   

올해 <최종병기 활>이 어디까지 고공행진을 계속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성공한 이 영화가 이후 등장할 한국 영화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이다. 물론 이후 청나라의 기둥(?)이 될 도르곤을 호색한에, 불에 타 허무하게 죽는 것으로 그린 것은 좀 심했지만, 어차피 팩션인데 어찌하랴. 그냥 극중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이기 위한 장치(그래야만 쥬신타가 완전 눈이 뒤집혀 남이를 쫓아올 테니깐)로 선택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설정을 했다고 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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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괴수 영화! 필자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이미 한국 영화계는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라는 영화를 통해 '한국형 괴수영화'가 무엇인지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7광구>는 <괴물>의 뒤를 잇는 기대작이자, 보다 큰 스케일, 보다 화려한 CG로 무장한 새로운 괴수영화로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아래 기사는 개봉 직전 기사인데, 대부분의 기사들과 내용은 비슷하다). 

8월 3일 - 파이낸셜뉴스 기사 '7광구' 예매율 압도적 1위, 블록버스터 최강자 탄생! 

그런데...갈수록 흥행과 평가에서 엇갈린 반응을 엇더니만 결국에는 일찌감치 영화를 내리고 말았다. 

8월 5일 - 뉴스엔 기사 '7광구' 첫날 흥행스코오, '해운대'보다 높아..천만 되나 

8월 8일 - 뉴스엔 기사 애증의 '7광구' 폭풍흥행, 볼까 말까..'너 때문에 미치겠다' 

8월 11일 - 미디어다음 기사 '7광구' 혹평 입소문에 흥행 내려앉나 

8월 13일 - 뉴스엔 기사 '블라인드' 스크린수, '7광구'보다 적은데..순위는 앞서 

8월 26일 - 스타뉴스 기사 '7광구' 스크린수 733개→7개..사실상 종영 

8월 29일 - 뉴시스 기사 '7광구' 폐쇄 초읽기, 어쩌다 이 지경 됐나 

100억 이상이 들어간 대작에다가, 화려한 CG와 출연진으로 큰 관심을 모았는데도, 왜 망했을까? 

그에 대해서 필자가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적인 기준에 의거한 것임을 참고하시길. ^^ 

1. 뚜렷하지 않은 캐릭터 

하지원은 여전사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혀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가 되려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것보다는 그냥 드라마 <씨크릿 가든>에서의 스턴트우먼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느낌이 난다. 그만큼 액션이 뭔가 부족했다는 것! 안성기는 늘 그렇듯이 정신적 지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간간히 활약했는데 마치 영화 <무사>에서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밖에 오지호, 이한위, 박철민, 송새벽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이 영화에서 활약(?)했는데, 그게 정말 NG였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모든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박철민의 캐릭터, 그리고 앞선 영화들에서 보여준 송새벽의 캐릭터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이 영화와 맞지 않을 정도였다. 

앞서 <고지전>의 경우에는, 오히려 캐릭터들 사이의 극중 대립이 돋보여서 좋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꼽는다면, 안성기 이후 이클립스호(시추선)의 캡틴을 맡은 황인혁 역할의 박정학과 하지원과의 대립인데 이마저도 중심을 잃고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개인적으로 박정학이 영화 초반에 보여준 침착하고 다소 이기적인 모습은, 영화 후반에서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 의아할 정도였다.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처럼 하더니만 그것도 아니고). 영화 후반부에는 전대 캡틴이었던 안성기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하지원과 약간 트러블이 생기는가 싶더니 그것도 결국 안성기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괴물과 싸우면서 흐트러지고. 캐릭터끼리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단순히 하지원이라고 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만 돋보이다 보니 어설픈 영웅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데 어쩌랴. 영웅물이 제대로 되려면 제대로 된 스토리와, 주변 캐릭터들의 확실한 희생 및 보조 등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특히 하지원의 연인으로 나오는 오지호의 역할은 그야말로 안습! T.T). 

2. 어설픈 CG 

깜짝 놀랐다.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오는 배경이 마치 합성한 것과 같은 어설픈 느낌이랄까? 좋게 말하면 영화 <씬시티>에나 나올법한 이질적인 화면처리 같았고, 나쁘게 말하면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여러번 지적된 어설프기 짝이없는 배경 및 CG를 보는 것 같았다. 대체 100억은 어디에 다 들어갔단 말인가? 어떤 기사 보니깐 98% 이상이 다 CG 처리되었다는데.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만 보고서는 오오~CG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예고편에 나온 것들은 영화 전체 중에서 CG가 가장 잘 표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찍는 내내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했고, 얼마나 힘들게 촬영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평가까지 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시추선을 멀리서 찍은 전경 등이 굉장히 어설펐는데, 종이배경을 합성시킨 것 같은 느낌이 아주 강하게 났다. 예전에 <괴물>에서는 정작 주인공(?)인 괴물이 어설펐다는 네티즌들의 평가가 많았고, 그에 대해 제작진들은 일부러 그런 느낌의 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얘기를 했었던 기사를 봤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에서는 괴물은 상당히 잘 표현됐다는 생각이 든다(봉준호 감독의 <괴물>보다도 더!). 그런데 주변 배경이라든가, 기타 CG들이 어설퍼서 괴물의 생생함이 많이 감퇴했다는 느낌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 오지호가 죽고, 하지원과 단독으로 싸우는 괴물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CG는 수준급이었다고 생각한다. 단, 아직까지 헐리웃 영화 속에서 나오는 3D, 혹은 일반 영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두가지 정도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솔직히 괴물 나오는 SF 영화에서 배우들의 조합에 문제가 있고, CG가 엉성하면 뭐 볼게 있나 싶다. 그밖에 이 영화에 대해 스토리를 언급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토리에 대해서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괴수 영화라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니만큼, 비현실적인 설정에 기인해 스토리를 짜야 하는데 거기에서 얼마나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현실적인 꺼리들이 나오겠나 싶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미군부대의 악성폐기물 무단 방류에 따른 괴물 탄생으로 이야기가 시작했지만 정작 왜 괴물이 달랑 한마리만 생겨났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 정도로 생물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면, 수질오염이라든가, 다른 환경적인 오염도 엄청났을텐데 그런 것도 없고. 그리고 이번 영화 <7광구>에서는 원래 심해에 존재했던 괴생물체를 인간의 욕심으로 크게 부풀려서(?) 아구와 물개를 뒤섞어놓은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괴수 영화의 스토리로 큰 문제는 없지 않나 싶다. 

영화 <고질라>도 그렇고, <용가리>도 그렇고, 왜 그런 괴수가 태어나게 됬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등장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봤을때 개인적으로 원래 있었던 괴물인데 사람이 외계로 가는 바람에 만나게 되는 '에일리언'이나, 원래 있었던 괴물인데 사람이 약간의 조작을 가해 크게 만들어낸 '7광구의 괴물'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뭐 굳이 따지자면 좀비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8일 후><28주 후>, 베트맨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린 <베트맨 비긴즈><다크나이트>, 혹은 최근에 개봉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처럼 영화 속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분명하게 얘기해주는 영화들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7광구>는 기본적으로 괴수와 싸우는 인간의 혈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만도 시간이 부족할테고, 이처럼 친절한(?) 사전 설명은 생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에일리언 1>에서 일단 괴물이랑 미친듯이 싸우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가 한국 영화 중 괴수를 다룬 최초의 영화였다면, 분명 평가는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봉준호 감독이 수년전에 영화 <괴물>로 이미 그런 시도를 한 바 있고, 그 영화는 전반적으로 흥행도 성공하고 평가에서도 호평을 받았었다. 그리고 수년 후 더 나아진 기술력과 연출력을 갖고 과감하게 같은 분야에 도전했음에도 이처럼 실망스러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 혹평을 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괴물>에 나오는 괴물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괴물의 설정은 신선함보다는 익숙함을 선사했고, 그러한 익숙함은 배우들의 캐릭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아마 그 점이 하지원 혼자 고군분투해도 이 영화를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 하는 마이너스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끊임없이 이러한 괴수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에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리라는 생각은 한다. 솔직히 이렇게 앉아서 인터넷에 몇자 끄적거리는 필자가 뭐라고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므로 그점 다시 한번 밝히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드느라 고생한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고생하셨다는 한마디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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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제목만 봐도 전쟁영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포스터를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휴전선을 따라 지겹게 지도에서 한줌 정도 되는 땅뙤기를 빼앗기 위해 싸우는 고지전. 한국전쟁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 바로 고지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몇몇 영화가 있지만(최근에 개봉한 영화로는 <포화 속으로>나 <적과의 동침>이 있겠다), 영화 속에서 고지전에 대해 묘사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일단 소재부터 독특했다. 

거기다가 전쟁의 시간적 배경 또한 아주 독특하다. 

전쟁 초반을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시점을 다룬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 그것도 휴전협정에 조인이 된 다음부터 치열한 고지전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 대한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에서 검색한 것을 그대로 옮겨본다(클릭).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애록고지는 가상의 공간인데(감독이 Korea를 뒤집어서 aero-K라고 했단다. 머리 좋은데? ^^), 일단 동부전선의 실제 상황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뭐 전쟁 중이기에 나이 어린 청년이 대위가 되고,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다. 암튼, 그런 특진 과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깐 생략하도록 하겠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감상 포인트로 삼았던 몇 군데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된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고, 그가 함께하는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표와 수혁은 고지 탈환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나 신임 중대장의 무리한 작전으로 엄청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악어중대의 어리지만 베테랑인 대위 신일영(이제훈)과 중위 수혁의 단독 작전으로 위기를 모면한 채 후퇴한다.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단독 행동을 하는 악어중대원들을 못 마땅해 하던 중대장은 중화군과의 함화공작 전투를 벌이던 중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중사 오기영(류승수)에게 사살위협을 가하고 그 순간, 수혁은 망설임 없이 중대장을 쏴 버린다. 눈 앞에서 벌어진 상관의 죽음,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은폐하는 그들과 무표정한 수혁. 순식간에 하나가 된 중대 전체에 은표는 당혹감을 느낀다. 

사라진 지난 2년, 그에게...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 전쟁의 본질을 그려냄 

영화 초반부 북한군에게 사로잡힌 강은표는 북한군 장교 현정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너네들이 왜 지는지 알아? 너네들은 왜 싸우는지를 모르고 보기 때문이야~" 라고. 

그렇게 영화는 초반부에 한국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점을 던진다. 이후 풀려난 강은표는 인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휴전이 되길 바라는 베테랑 군인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강은표는 거기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절친 김수혁을 만나는데, 수혁의 계급은 사병이 아닌 중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한 김수혁은 더 이상 전쟁에 두려워하며 벌벌 떨던 이등병이 아니었으며, 애록고지 전투를 담당하는 악어중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악어중대 간부와 몇몇 군인이 북한군과 내통(?)하고 있음이 밝혀지게 된다. 실상은 이렇다. 악어중대 부대원들은 어차피 고지를 서로서로 점령하는 마당에 보급품이나 각종 물자를 다 옮길 필요가 뭐 있냐? 싶어서 놔두고 갔다가 북한군이 이를 몽땅 가져간 사실을 알게 되었고, 훗날 그 구덩이를 통해 서로 먹을 것도 놓고, 편지도 전해주고 했던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시공간적 배경을 좀 옮겨왔다고나 할까? 

암튼 이를 두고 강은표 대위는 딜레마에 빠진다. 알고 봤더니 어리바리한 중대장이 오면 악어중대는 알아서 그를 제거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왔던 것이다. 오직 삶. 삶에 집착하는 악어중대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상명하복 등은 일반 부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필자는 어떻게 보면 이게 전쟁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은표 대위처럼, 국가를 위해, 휴전을 위해, 무의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大意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전쟁이 끝나갈 시점, 자신의 전공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터로 왔다가 김수혁 중위에게 머리에 총 맞고 죽는 어리바리한 유재호 대위같은 사람도 있었을테고. 그렇지만 대다수의 군인들은 악어중대원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이 다 무에 소용이냐? 그냥 죽지 않고 살아가고, 맡은 바 임무만 수행하면 돼지. 거기에서 북한군 옷을 입든, 북한군이 주고 간 술을 마시든, 북한군과 편지 및 사진을 주고 받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웰 컴 투 동막골>이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는 남한군과 북한군과의 만남이 다소 코믹스러운 소재로 그려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더욱더 현실성이 부각되었다. 안 그래도 얼마전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일이 실제 전방에서 벌어졌음을 확인한 기사(클릭)가 나기도 하지 않았는가. 단순히 <태극기 휘날리며> 혹은 <포화 속으로>에서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의 활약상만을 강조하지도 않고,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처럼 한국전쟁 및 그 이후의 분단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지만도 않아서 그 점이 깊게 와닿았다. 

 2. 현실감있는 전장과 캐릭터 묘사 

솔직히 이 영화 전체 분량에서 실제 전투씬은 그리 비중이 높지 않다(실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고지전이라 하면 말 그대로 구릉 정상부를 향해 미친듯이 돌격해서 적의 진지를 빼앗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장면이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고지전'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분위기가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면부에 늘어서 있는 군막사들, 참호 속의 모습, 나이는 어린데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약(무슨 약인지 까먹었다)을 무절제하게 복용하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 하는 악어중대장. 평소에는 철없이 웃고 놀다가 전투에 돌입하면 진지하게 작전에 임하는 부대원들. '2초'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죽이지 못하는 강은표 대위.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부대원들. 정전협정 후 12시간동안 한뼘이라도 더 차지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그치는 연대장.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작전을 고집하는 펜대 굴려 진급한 중대장. '2초'라고 하는 스나이퍼의 존재(그간 한국전쟁 영화에서 스나이퍼에 대한 묘사는 너무 없었다) 등등. 

군사훈련과 실제 전투가 영화의 태반을 차지하는 <실미도>라든가, 형제의 헤어짐과 상봉을 내내 대규모 전쟁과 함께 그려낸 <태극기 휘날리며> 등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의 영화였다. 특히 전장 속의 인물 심리 묘사(개인적으로는 신임 중대장의 말도 안 되는 작전지시에 흥분하며 반박하는 신일영 대위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가 뛰어났는데, 이는 각 배우들이 그만큼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신하균과 고수의 극 중 대립(?)은 마치 <유령>에서 최민수와 정우성이 보여준 대립과 비슷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물론 그보다는 긴장감이 덜 했지만.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결국 둘이 화해한다). 다양한 캐릭터의 배우와 적절한 대립구도는 각 배우들의 열연과 맞물려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그리고 그런 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7광구>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상 두가지 관전 포인트로 인해 필자는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소재의 특이성부터 시작해서, 현실감있는 묘사, 기존 영화와는 많이 다른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본 영화, 고지전. 관객수는 필자의 기대나 생각만큼 많이 모이지 않았지만 분명 잘 만들어진 멋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쯤 더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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