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문명 - 석기시대의 비밀
리처드 러글리 지음 / 마루(금호문화)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서평을 쓰는데다가, 오랜만에 전공서적에 대한 서평을 쓴다.

이번 추석 때 책 3권을 읽자고 목표했는데, 이제 겨우 1권 마무리했다. 남은 이틀 동안 2권을 읽을 수 있으려나~모르겠지만 일단 다 읽은 놈부터 처분하겠다! 이 책의 제목을 한번 잘 보자. 필자는 처음에 이 책을 딱 보고 ‘아~이거 또 공상에 가까운 얘기를 쏟아 붓는구나~미스테리한 발견물들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초거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보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일단 책장을 넘겨보니 일단 목차부터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맨 처음의 ‘서문’과 맨 뒤의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바로 구입을 결정해서 집에 와서 읽기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그동안 논문이다, 일이다 중간 중간 읽다 말다 하다가 방금 겨우 다 읽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내용이었으며(필자의 전공이 역사고고학이다 보니 더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읽으면서 내내 멍~한 기분이 들 정도로 쇼킹한 내용도 많았다. 어쨌든, 인류 문명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으면서 완전히 맛이 갈 정도로 감탄했었던 기억이 났는데(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최근에 구입한 『문명의 붕괴』까지 전부 다 읽고 한 번에 서평을 쓰려고 아껴두는 중! 추후 공개할 생각이다), 이 책을 보면서도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올해 읽었던 고고학 전공서적 중에서 Top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일단 뭐부터 쓸까? 생각해보니 내용이 하나같이 전문적이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지라 먼저 목차를 소개하고 각 챕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필자가 애용하는 3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봤더니 책 표지가 없는 곳도 있었으며, 모두 다 목차나 간략한 내용 소개가 없어서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정보를 얻을만한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예스24에 1개, 알라딘에 1개뿐이어서(평점은 나쁘지 않은 듯~별 4개 정도) 독자들이 이 책에 알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사의 홍보 정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알려지지 않으니 점점 인기도 시들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예스24에서는 절판까지 됐다).

암튼 목차부터 다뤄보자. 서문과 후기를 제외하고 총 19장인데, 앞서 언급했지만 서문과 후기만 읽어도 이 책의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서문이나 후기를 먼저 보고 결정하셔도 괜찮을 듯 싶다.


1장 석기시대

2장 조어(祖語)

3장 새로운 로제타석

4장 고대 유럽의 기호 : 문자인가, 선문자(先文字)인가

5장 구석기시대 글쓰기의 기원

6장 원시과학

7장 족문(足紋)에서 지문(指紋)까지

8장 지금은 수술 중

9장 석기시대의 외과수술

10장 불을 이용한 제조 기술

11장 다시 맷돌로

12장 석기시대의 광업

13장 오커, 대지의 피

14장 비너스상 : 성적 대상인가, 성의 상징인가?

15장 종유석의 노래

16장 최초의 화석 사냥꾼들

17장 빌징슬레벤의 네 개의 뼈

18장 성지의 조각상

19장 새벽의 돌인가, 위조의 새벽인가?

자아~목차 한번 보시라.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처음에 이 목차를 보고 ‘오잉!! 뭐야? 석기시대를 논하는데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목차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석기시대를 논하며서 지금 ‘文明’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것도 모자라, 언어와 문자, 과학과 예술, 의술, 제조업과 광업, 음악, 신앙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런던대학에서 사회 인류학과 종교적 의식연구로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학에서 ‘고대에 사용된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식물’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50대의 왕성한 고고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고고학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며, 아직 이런 연구를 수행할 정도의 수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감히~). 그래도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아아~침착, 침착!’ 그렇게 심호흡하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저자는 ‘신석기혁명’ 같은 용어를 부정한다(제목에서부터 드러나지 않는가). 이는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인류가 어느 한순간 ‘펑!’ 하고 잘나진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마치 고대 한국사회가 불교 도입과 공인으로 갑자기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고 보는 견해와 같다고나 할까? 얼마전 개봉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보니 프레데터가 자신들의 유희(?)와 성인식(?)을 위해, 인류에게 문명을 전수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에일리언을 기르게 한 뒤 종종 찾아온다는 설정이 나오던데 정말 그렇다면 또 모를까...). 위대한 고든 차일드 선생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류 문명을 정의해버리면 우리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발견돼도 무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 또한 그런 우려를 범하지 않기 위해 1장에서 석기시대에 대한 개괄을 좍 설명한다. 흔해빠진 기존의 설명과는 다르다. 뭐 어떤 석기를 쓰고, 동굴에서 살고, 뭘 먹고 살았고...이런 얘기는 없다. 다만, 기존에 석기시대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었던 유적들과 논쟁이 된 문제들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래도 석기시대에서 혁명적인 어떤 요소가 등장해 문명이 생겼다고 할 텐가?’라고 말이다.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되는 선문명, 우수한 석기시대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차탈휘익크(여기에서는 카탈후이우크로 표기되어 있다) 유적, 지중해 몰타섬과 고조섬의 석기시대 신전들, 일본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등등. 아주 흥미로운 얘기들로 1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2장으로 넘어가면 여기서부터 5장까지는 주로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문명의 척도로써 꼽는 것이 ‘문자와 언어’인데, 저자는 이미 구석기시대 때부터 이런 문화가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뭐 저자가 주장한다기보다는 이미 기존에 주장된 것을 정리한 것이지만 암튼).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군과 어족의 뿌리가 상당히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이 主인데,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잘 읽고 넘어가보자(필자도 딱히 할 말이 없다. -.-;).

개인적으로 3장의 내용을 재밌게 봤는데, 여기에서 쇼킹한 내용이 드뎌 나온다. 바로 수메르와 같은 중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고 알려진 문자 활동의 기원이 더 이른 시기의 주변 지역에서 이미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총, 균, 쇠』를 보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정학적인 조건, 활용할 수 있는 동 · 식물의 풍부함, 농업과 군집을 가능하게 한 자연조건 등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문명에서는 문자와 산수, 제사와 신관, 정치와 전쟁 등이 생겨났고, 중동의 문명은 외계인이 전수해 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에 반대한다. 드니즈 슈만-베세라는 근동에서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효과적인 회계 방식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증거를 확보하였는데, 이는 3,500~3,100년 전에 이런 문자나 숫자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존 견해보다 4,000~5,000년이나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움을 감출 새도 없이 책은 빠르게 4장으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저자는 한술 더 뜬다. 4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고대 유럽에서 문자 발생의 요소들이 구석기시대때 이미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문자라고 하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또한 ‘맹아기의 문자’와 ‘진정한 문자’를 구분할 필요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고대 유럽에서 확인된 서판이나 유물들이 확실히 어떤 기호체계를 이루고,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들의 연대가 6,000~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기존 상식의 벽에 도전해야만 한다. 중동에서 생겨난 인류 최초의 문명적 요소 중 하나인 문자 활동은 그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개하고 인류가 살기 어려웠다고 여긴 고대 유럽에서 생겨난 원시적인 문자 활동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계속 이어져 5장에서 저자는 후기 구석기시대, 더 이르면 중기 구석기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미 어떤 信標와 같은 상징물을 인지했으며, 우주론적인 상징(형이상학적인 추상의 범위?)까지도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해석에 있어 초보적인 연구단계지만, 이 분야에 대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뭐 필자도 문명과 문자가 꼭 양립해야만 하며, 상호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대한 영토와 체계적인 조직을 일궈낸 고대 잉카 문명에서도 철기나 기병,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자나 숫자 체계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허술했지만 그들은 눈부신 문명을 이뤄냈다. 이는 한자 문화권에 속한 고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양서』와 같은 중국정사 조선전을 보면 신라는 6세기에도 문자 대신에 신표를 사용했다고 하지 않는가. 전 세계에서 문자를 가진 문명이나 집단이 오히려 적다는 것을 보면 이를 두고 문명의 보편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 상한을 중기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에는 쉽사리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아! 이제 6장이다. 한 1/3 정도 지나왔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또 큰소리를 친다. ‘과학’이라...과학이라...석기시대때 원시과학이라. 과학이란 말과 석기시대와 잘 어울리는가? 암튼, 책장을 또 넘겨보자. 먼저 저자는 손도끼의 규격화를 언급하고 있다(144쪽의 그림 20을 보면 이해가 확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추상적 사고 과정을 통해 손도끼가 대칭성을 갖고, 길이와 너비 사이에 일정한 규격성을 갖게끔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도구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아마 오랜 경험에 의한 가장 쓰기 편한, 가장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어 갔을 것이다), 하나의 비례 표준에 맞춰져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멋지지 않은가? 국내에서 손도끼에 대한 이런 연구 성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 다음에 나온 네안데르탈인들의 매장풍습에 스며든 천문인식, 여러 소수민족의 숫자를 세는 민족지적 사례, 벨기에에서 발견된 빗금이 새겨진 뼛조각(이걸 두고 숫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데에는 필자도 동의하지만 어떤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이견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헝가리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태음력을 표시했을 것으로 주장되는 석기 등도 충분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석기시대 冊曆에 대한 주장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역시나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스톤헨지와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고 있는 지금 언제 기존 상식이 뒤집어질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7장은 뭐 민족지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고대 사냥꾼으로서 인류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등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예술적인 부분을 다룰 줄 알았는데 필자의 예상을 빗나갔고, 뭐 상식적인 내용이므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8장과 9장은 의술에 대한 부분인데, 8장에서는 먼저 유럽인들이 묘사한 소수민족(미개하다고 알려진)들의 민족지적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도 소수민족은 현대적인 의술이 아니라 그들만의 자생적인 의술을 시도하고 있고, 그 성공률은 상당히 높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9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석기시대 의술의 흔적들을 짚어내고 있었다. 먼저 천공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도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조금 더 언급하겠다. 이미 석기시대 때부터 뇌 수술은 실시되었는데, 오늘날도 상당히 어렵다고 여겨지는만큼 당시 의학 수준을 짐작하는 대표적인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개골은 쪼아내고, 그 안의 상처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천공술이 유럽에서는 석기시대 이후로 오히려 퇴색하여 중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석기시대가 더 잘났으며 그 이후에는 퇴색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주요 논지 중 하나이다! 기억하기를!). 이러한 천공술은 치아 수술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역시 놀랄 정도로 정교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때 이미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예전에 <로마> 시즌 1을 보면서 폴로의 머리에 박힌 철편을 뽑아내기 위해 천공술을 실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상당히 묘사를 잘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보다 수천 년 이전에도 아마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10장은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잘 언급이 안 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불이라고 하면 구석기시대때 처음으로 불을 쓰기 시작했다, 라고 언급하고 나서 청동기와 철기시대때 금속가공을 위해 불을 잘 다루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간의 구석기시대와 불은 크게 연관이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석기제작과 연관되어 물의 사용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며 신석기시대때 토기 제작을 언급해야 겨우 불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석기 제작에 사용된 부싯돌 등의 재료에 열처리를 하는 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열처리를 통해 처트(chert 혹은 角巖 : 가장 잘 알려진 부싯돌 재료)를 좀 더 쉽게 박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석기 가공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돌니 베스토니체와 인근 유적에서는 2만 6,000년 된 토제품 6750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500~800℃의 불에서 의도적으로 열충격을 통해 폭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무당과 같은 일종의 심령술사가 일종의 사냥 의식곽 같은 제사를 위해 그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싯돌에 대한 열처리나 이러한 토제품의 의도적인 열충격 등이 토기 제작, 금속 제작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수천 년 앞서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즉, 필요에 의해, 기능을 위해,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히 제사와 유희, 어떤 의식적인 부분을 위해서도 기술은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훗날 토기를 제작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자 후손들은 선조들이 다른 곳에 사용했던 방법을 차용했던 것 뿐이었다.

11장의 ‘맷돌’은 석기시대 도구에 대한 기존 상식의 한계를 상징한다. 흔히 맷돌은 여성이 쓰는 것으로서 농경을 통해 나온 곡물을 가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8만 년 전의 멧돌 잔해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토된 바 있다(당연히 이런 주장은 대체로 부인되고 있다). 남아공 플로리스배드 유적에서는 뭔가를 갈아 생긴 마모의 흔적이 남은 석기(4만 8,900년 전)가 확인되었고, 남아공 부시먼록셸터 유적에서는 4만 3,000년~4만 7,000년 전의 맷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호주 커디스프링스 유적에서도 3만년 된 맷돌이 확인되었다. 당시 이들 지역에서 농경이 있었을까? 더 놀라운 것은 맷돌질보다 절구질은 그보다도 이른 시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활비비(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로 천공술에서도 사용된다)와 창을 더 멀리, 손쉽게 던질 수 있게 도와주는 투창기 등 저자는 다양한 도구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비단 돌로 만들어지지 않아 오늘날 다 썩어버린 수많은 도구들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오늘날 확인되고 있다고 말이다. 도구를 통해 과거 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까지 고찰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챕터였다.

12장은 광업에 대한 부분인데, 오커(ocher : 철광석)라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슴뿔로 만든 채굴도구로 지하 수십 m 아래에서(유고슬라비아 루드나 글라바의 동광은 깊이가 20m가 넘는데, 유적은 최소한 7,000년이 넘었다) 석기시대인들이 오커를 캤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선사시대 유럽에서의 채광기술을 조사한 결과, 석기시대 채광기술은 후기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200년경이 되어야 겨우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천공술과 마찬가지로 채광기술 역시 중간에 공백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장 역시 오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 철광석이다. 즉, 석기시대때 철광석을 사용하기 위해 채광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걸로 철기를 만들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이 붉은 색을 이용해 바디 페인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쇼킹한 얘기를 하나 더 한다. 맷돌과 절굿공이가 흔히 농경의 새벽을 선포하듯 아주 후대에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은 곡물이 아닌 오커를 가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장에서 나온 불을 이용한 열처리가 필요했고 말이다. 지금까지 주욱 봐왔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아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석기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14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뚱뚱한 비너스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손보기 교수가 언급이 되어 있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뷜렌도르프의 비너스(가장 널리 알려진)’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성적 모티브를 가진 조각상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뭐 전체적인 내용이나 결론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너스상이 단순히 다산의 상징이나 성욕의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가진 우주론적 의미의 상징이다. 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뭐 이 정도? 암튼 여기도 별로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챕터다.

그리고 드디어 15장! 이 책에서 가장 쇼킹했던 부분인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자그마한 타악기 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거대한 동굴의 종유석을 그대로 악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여기에 나온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서, 저런 연구까지 했을까 싶었다. 뭐 현대에 동굴 안에 식당을 꾸민다거나, 동굴 안을 개발해 관광이 가능하게끔 한다거나, 실제 파이프 오르간을 안에 들여놓아 웅장한 음색을 낸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때 동굴을 악기로 썼다니. 그저 충격일 뿐이었다.

16장은 생각의 전환을 조금 더 하게끔 하는 챕터였는데, 석기시대 사람들도 자기들보다 이른 시기의 문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영국 노퍽에서는 조개화석이 박힌 손도끼가 발견되었는데, 조사자는 손도끼 제작자가 정 가운데에 부채꼴의 아름다운 조개화석을 돋보이게끔 손도끼를 만들었다고 자신한다. 또한 남아공 마카판스가트의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진 자갈 역시, 그 신기한 모양에 석기시대 사람이 수집했다고 이해한다(왜냐하면 그 자갈에 찍힌 사람 얼굴 모양은 조사 결과,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고 판명됐으므로).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꽃다발을 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니 넘어가려고 했는데, 뒷장에서 더 놀라운 얘기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네안데르탈인의 미적 감각에 의한,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갖다놓았다는 것도 있지만 죽은 사람이 내세에 도움이 되라고 갖다놓은 약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천공술을 해내고, 훌륭한 사냥꾼이자 도살꾼이었던만큼 절개수설에 능했던 그들이므로 약초학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하~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절로 무릎을 쳤다. 단순히 애도의 의미가 아닌 내세에 대한 생각, 어떤 의도가 있는 행위였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17장은 16장 마지막 부분(약초학과 꽃에 대한 내용)과 연결되어 네안데르탈인의 곰 숭배 의식(기존에 알려져 있던 상식)이나 여러 의식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었으며 18장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16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매장의 복합체는 두 개의 상수(매장 구조물과 사람의 유골)과 두 개의 변수(분묘의 부장품과 관련 시설)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런 복합체는 중기 구석기시대라는 먼 옛날에 등장했으며, 그때 이후 그 어떤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이나 설계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17장 말미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인류 발달사에 대해 표준 모형과 누적 모형이 있다. 전자는 초기 미술로 증명되는 상징적 활동의 폭발과 인류 혁명이라고 묘사되는 것의 폭발적 출현을 의미하며, 후자는 상징적 행동의 기원을 전기 구석기시대나 중기 구석기시대에 두는 것인데, 시간이 오래 될수록 시간의 파괴력과 극적인 지질학적 · 기후학적 변화를 견딘 유물이 적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18장에는 다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역사시대의 수렵 채집인이 때때로 농업적 생활양식을 채용하기를 내키지 않아 한 것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만족했기 때문인 것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일상성에 기초해서 계속 사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전한 종류의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에 일어난 보다 단순한 석기 제작 기술로의 회귀는 필시 그런 석기가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변화 욕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그런 과감한 발명품들이 우연히 잊혀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지금 호모 에렉투스가 기존에 알려진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 고향(아프리카)을 떠나 아시아나 유럽,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기존 상식의 벽에 맞춰 모두 무시해야만 하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재밌는 실험고고학적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유적에서 육안으로 석기 및 박편과 자연적으로 깨진 돌을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필자와 같은 비전공자는 당연하겠거니와, 전공자조차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하물며 신석기시대때 간석기가 아닌 더 이른 시기의 뗀석기라면).

그래서 실험을 했단다. 한번은 유적 주변에서 나는 규암 표본을 선택해서 200번 정도 찍는 작업과 400번 정도 절단하는 작업을 거친 후 마모흔적을 실제 석기와 비교하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결과를 쉽게 안 믿는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유적 주변의 경사면 바닥에서 2,000개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멩이들을 조사한 결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는 12~15m 높이에서 규암 자갈 100개를 던져 깨뜨린 뒤 바로 그 박편을 수습해 실제 석기와 비교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인공 유물들로 보이는 박편화하고 파괴된 돌멩이들은 이것들과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더 많은 석기를 상대로 실험을 하면 닮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타자하는 유명한 원숭이만큼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 즉, 사실은 사실대로 믿자는 것이다.

최근 베레카트람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미술이 최소한 25만 년 전에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뼈에 일부러 모양을 새기는 것은 전기 구석기시대 때로 올라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연유로 이스라엘 하요님 동굴에서 나온 후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인정하고, 똑같은 유적에서 나온 중기 구석기시대의 조각된 뼈는 ‘기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한다. 중기 구석기시대의 뼈가 후기보다 더 광범위한 표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타르타리아의 서판이 수메르 문자보다 늦은 시기라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이를 문자 시스템의 하나로 인정하다가, 그것들이 수메르 문명보다 앞선 것이라고 밝혀지면서 기존 논점을 모두 폐기한 것도 해당될 것이다(마치 전통고고학을 비판하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나? -.-;).

전반적으로 필자에게는 상당히 유익하고 재밌었으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와 비교하면서 읽을만한 것도 많았고, 외국으로 나가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고마운 책이었다. 다만, 비전공자나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지금까지의 인기도와 서점 내에서의 홍보현황만 봐도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하지만 고고학이나 인류 문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좀 참고 읽다보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도판이나 도면 등이 많이 없기도 하고, 글자체나 자간, 글 간격도 다소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디자인이지만 이런 것들도 한번 이겨내 보시기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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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개봉한지 반년이 지나서야 본 전쟁 영화가 있다.

바로 맷 데이먼 주연의 <그린존>인데, 일반적으로 ‘그린존’이라고 하면 안전지대, 뭐 이런 걸 뜻한다. 영화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한창인 당시 미군 사령부 및 연합군임시행정처(CPA)가 자리 잡고 있던 후세인의 바그다드궁을 개조한 기지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그린존’이라고 불리는 공간과 그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교차하여 보여주면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이라크 전쟁을 통하여 미국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 등에 대해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다 보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원작은 책이라고 한다. 바그다드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이 그 기간 동안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담담하게 작성한 책 『그린존』이 바로 그것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엄청나게 상도 많이 받고 평단의 평가도 좋은 책이었다(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3480481). 어쨌든, 지금은 영화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자.

이라크 전쟁(1~2차 모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지금까지 많이 나왔다. 예전에 후세인의 보물을 놓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쓰리킹즈>(1999)라는 영화가 있었으며(그냥 코믹스러운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폭발물처리반 EOD를 사실적으로 다뤄 극찬을 받았던 <허트 로커>(2008)가 있었다(평가가 엄청 좋던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다). 또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해병대에 대해 현실감 있게 그려낸 미드 <제너레이션 킬>(2008)도 있었다(사실적인 묘사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나름 재미있게 봤다). 뭐 이 밖에도 더 많은 영화가 있었겠지만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은 제외하자. 암튼 이런 영화들과 이번에 봤던 <그린존>은 분명 다른 내용, 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영화였다.

일단 액션이나 첩보라는 측면에서는 감독의 기존 영화들(<본> 시리즈의 2~3)과 비교했을 때 큰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떠나서 영화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제너레이션 킬>에서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작전 하달과 전투, 전공과 전리품 획득, 병사들 개개인의 전쟁에 대한 생각과 고민 등에 대해서 영화는 많이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트 로커>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주인공의 자기 성찰과 임무에 대한 긴장감 묘사 등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것 같다. 원작인 책을 안 봤지만, 책의 내용을 대강 검색해 본 결과, 영화는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부분, 다루고자 했던 부분을 충실하게 따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터 감독은 대량살상무기 수색대 MET-D의 팀장인 로이 밀러를 통해 끊임없이 ‘대체 대량살상무기는 어디 있는 거야?!!’를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음모로 인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중동에서의 정치 · 외교적 우위를 확보한 미국이 석유자원까지 장악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에리히 폴라트와 알렉산더 융이 쓴 『자원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지금 강대국들이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경쟁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암튼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보다는 덜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미국의 狂的인 전쟁 옹호를 비판하고 있다. 로이 밀러는 자기 팀을 이끌고 수차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아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량살상무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이 문제를 반문하고,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따져보지만 오히려 장군님한테 “넌 시키는 거나 잘해! 그럼 됐어!”라고 한소리 듣는다. 참 대단한 용기다~어쨌든 그 모습을 본 CIA의 마틴 브라운은 로이 밀러에게 접근하고, 이 전쟁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자고 한다. 이러한 마틴 브라운의 모습은 CPA측에서 근무하는 정보국 수장인 클락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물론 로이 밀러와 클락 휘하의 특전사 부대장 역시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라이벌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이다.

이 영화에서 필자가 계속 눈여겨 본 부분 중에 단순히 감독이 전쟁의 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의문에 의문을 제기한 것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큰 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감독은 여기에서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건 바로 ‘이라크인 스스로가 바라보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라크인 하나가 로이 밀러에게 후세인의 심복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소를 알려주고, 이윽고 그 둘은 끊임없이 한 조가 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그 둘의 끊임없는 대화와 서로에 대한 비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미국 정보부에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끊임없는 정보를 주고 있다고 하는 이라크 내의 믿을만한 소식통 마젤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후세인의 심복 장군으로서 이미 미국에게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히려 잘 됐다고 하면서 침공을 단행! 밖에서는 병사들에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으라고 하면서 윗대가리들은 ‘그린존’에서 술 퍼먹고 노닥거리면서 전승국으로서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이 밀러는 마젤란을 찾아 사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영화는 끝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라크인들에게 있어 이 장군은 그저 후세인의 심복으로서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한 독재자의 하수인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정말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무엇일까? 자기들의 시각으로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일까? 정작 당사자인 이라크인들의 마음은 뭔지도 모르면서?’

부시 父子가 그토록 까부시고 싶어 했던 이라크. 이제 이라크는 후세인이라는 독재자 대신 미국이라는 더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압제 하에 놓인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는 마지막에 로이 밀러가 미국의 음모를 폭로하는 리포트를 각 유명 언론의 기자들에게 메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뭐 그 사실이 정말 공개됐는지, 미국 내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 모든 미국인이 인정한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이 승리했다고 승전 선포를 했지만, 여전히 이라크는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화려한 액션과 숨 막히는 스릴도 물론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영화를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감명 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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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란(花木蘭), 우리가 흔히 아는 뮬란의 한자 표기이다.
이 이름은『목란사(木蘭辭)』라고 하는 중국의 장편 서사시에 처음 나오는데 “同行十二年,不知木蘭是女郎”, 즉 '동행한지 12년, 목란이 여자인 줄 몰랐다.'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있어 그가 여성임에도 십여년을 남장을 하고 전장터에서 활약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장편 서사시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에서 지어졌으며, 남조 陳나라 시절의『고금악록』에 처음 수록되었다고 하는데(http://ko.wikipedia.org/wiki/%ED%99%94%EB%AA%A9%EB%9E%80)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서사시가 남북조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있던 구전 형식의 설화를 이 시기에 와서 문자로 기록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필자가 처음으로 봤던 뮬란의 배경은 이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뮬란'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바로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1998)'이다. 필자가 이때 고등학생이었으니, 정말 오래 전에도 나온 영화다. 

이 애니가 월트디즈니에서 그간 방영했던 영화 중 몇번째로 인기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당시 아주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도 만들어졌지만, 그건 극장 상영은 안 됐고,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다고 한다(물론 못 봤다). 암튼 이때의 배경은 한나라였으며, 상대역(?)은 흉노족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조금 헤깔렸다. 영화에서 나오는 '위'가 춘추전국시대때 위가 아니라면, 남북조 시대의 북위일텐데, 그럼 만화에서 나왔던 한나라는 뭐지? 그건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었던 것인가? 암튼, 애니를 봤을 때 설원을 배경으로 수천명의 흉노군이 내달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뮬란의 활약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느낌을 좀 되살려보려는 의도가 컸긴 하다. 사실 필자는 이걸 다운받아서 이미 한번 봤는데,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평소 영화관을 '시간 축내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잘 안 간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왠만한 일 제쳐두고 가는 편이다) 봤다는 얘기는 안 하고 한번 더 극장에서 보긴 했다. 그 이면에는 '아무리 큰 스크린으로 봐도(필자의 모니터는 23인치) 극장 스크린만 하겠느냐!' 라는 생각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극장에 들어섰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부분은 뭐 애니와 큰 차이는 없었다. 말괄량이로 선머슴같이 무예 연마를 거듭해온 뮬란과 그와 친한 같은 마을의 동생 소호(성룡의 아들이란다. 나중에 다시 보니 정말 닮았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화목하게 살던 마을에 이변이 닥친다. 유연 족장이 9개 부족을 통합해 살기 좋은 북위를 공격하기 위해 남하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막기 위해 뮬란의 아버지가 징집된다. 당연히 뮬란은 남장을 하고 軍鎭으로 들어가게 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뭐 잘 헤쳐나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태를 만나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게 된다. 큰 위기가 한차례 다가오지만 마침 유연족이 쳐들어오고, 뮬란은 유연족 대장의 목을 쳐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한다. 그 공로로 문태와 뮬란은 끊임없이 전공을 쌓고, 십여년의 전쟁동안 북위는 유연족을 상대로 계속 승리한다. 전쟁에 지친 유연족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족장의 아들 문독(아주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의)이 아버지를 죽여 다음 족장이 되고, 전쟁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결국은 뮬란이 문독 죽이고, 잡혀간 문태 되살리고, 문태는 유연족 공주와 혼인해 두 나라는 평화를 찾고, 뮬란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고...이런 식이다.

먼저 내용을 다 떠나서 여기에서 제작진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가 궁금했다. <적벽대전>, <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이 만든 전쟁액션이라고 크게 떠들었는데, 솔직히 그것들보다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솔직히 말하면 <적벽대전>보다는 못 했고, <삼국지-용의 부활>이랑은 뭐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일단 영화의 목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 뭐 그런게 딱히 안 보였다.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조운 자룡에 대한 영화라고 하지만, 너무 각색된 부분이 많고 실제 역사와도 거리가 있어 솔직히 와닿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부제는 '전사의 귀환'이라고 하는데, 뮬란이 이전 시기에 보여졌던 그런 영웅 혹은 전사의 이미지로 이 영화에서 그려졌나? 아니다! 아니면 애니메이션처럼 온갖 역경을 다 헤쳐나가고 결국 나라까지 구한 대단한 여걸의 이미지로 그려졌나? 아니다! 물론 조미가 본래 중성적인 역할을 많이 하니깐, 이 영화에서도 중성적인 이미지로 스토리를 이끌어 간 것은 맞다. 하지만, 계속 전쟁에 대해 고뇌하고, 연정을 품은 문태가 없어졌다고 나약하게 나뒹구는 모습은 뮬란을 인간적으로 표현하는데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 정체성을 잃게 했던 것 같다. 차라리 부제에 걸맞게, 혹은 기존 뮬란의 이미지에 맞게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뮬란을 전략적인 인물, 부하를 사랑해 한몸처럼 여기는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 등으로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일단 캐릭터 설정에서 조금 안 맞았던 것 같다. 감독이 의도한 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뮬란을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면 그냥 처음부터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게 나았을 것 같다. 뮬란의 주변 인물, 즉 뮬란이 사모했던 문태나 뮬란을 끝까지 믿고 따라줬던 소호를 더 부각시켜 그들과 같이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게끔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뮬란이 아무리 나약하고, 모자란 모습을 보여줘도 그 두 사람은 끝까지 주변에서만 빙빙 돌며 뮬란 곁을 지킨다. 주인공이 뭔가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점, 그렇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사의 귀환이니, 액션대작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고 대규모 전투씬도 몇차례 영화에 등장했다. 특히 마지막 전투씬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왠 갑자기 모래 폭풍?? 너무 싱겁고 이상했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필자는 차라리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설원을 배경으로 내달리던 흉노족 기병의 모습이 더 다이나믹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 3>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씬과 <반지의 제왕 2>에서 보여줬던 다소 부족한 전투씬을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분명 영화가 돈도 더 많이 들였고, 실사인데다가, CG 기술도 얼마든지 투입시킬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런 다이나믹한 전투씬 하나 집어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여담이지만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다이나믹한 전투씬은 없었다. 그냥 전투씬만 있었지).

거기다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를 또 헤깔리게 한 것이 있었다.
잉? 왠 갑옷이 전부 찰갑이야??? 양당개같은 갑옷이 분명 있을텐데 왜 그러지?? 거기다가 장수들이 전부 검을 들고 싸우는게 아닌가?? 이것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순간 '이게 시간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인가?'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기도 했다. 어떻게 刀를 들고 싸우는 병사는 한명도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남북조시대가 되면 궁전수의 운용이 힘들어지면서 노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유연족의 기마궁수에 비해 당시 유행했던 중장기병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도 NG였다. 시대 착오적인 장수가 검을 들고 싸울 뿐, 북위의 기병들 중 어느 누구도 중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갑주와 무기는 시대 미상이라는 점 또한 이 영화를 전쟁액션의 장르에 집어넣기 부끄럽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배경이 한나라였다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中國古代兵器圖說』과 같은 책 1~2권만 봐도 영화 속 고증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대장군이란 자가 뮬란을 시기해 적진에 뮬란과 그의 부하들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문태가 자신이 왕자임을 밝혀 포로로 끌려가고 동료 부대원들을 살려낸다. 뮬란은 다시 영웅적인 기질을 발휘해 혼자 적진에 들어가 유연족 공주를 설득해 문독을 암살하는데 성공하고...(뭐야 이거...) 어설픈 정치적 논리가 등장하고, 캐릭터들의 성격이 영화 후반부 급하게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더 일관성이 없어졌다. 문태는 갑자기 왕자라고 밝히고, 조미는 문태가 없을때는 내내 나약해지다가 갑자기 혼자 문태 구한다고 유연족 진영으로 들어가고, 유연족 공주와 문태가 급 결혼하면서 양국이 평화로워지고...전쟁액션이라고 떠들었으니깐 일단 영화 전분부, 중반부에 전투씬 끊임없이 보여주다가 '아! 이제 영화 끝날 시간이네~'하니깐 갑자기 뮬란을 시기하는 대장군을 집어넣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바꿔가며 급하게 마무리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것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지도 못 했고, 그렇다고 아예 시원한 액션으로 도배하지도 못 했고, 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목란사』의 내용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시중에 화목란에 대한 책이 몇권 있던데...

암튼 2번 봐도 그저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다만, 자국의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을 자국의 기술력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별 3개는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사>라는 영화를 했었는데, 솔직히 관객동원수는 얼마 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점수를 그리 낮게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역사를 우리 기술력으로, 우리가 영화화했다는데 의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의의는 있겠지만, 영화 자체는 결코 <적벽대전> 등과 비교해서는 안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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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하자마자 연구소 선배들(물론 남자들 -.-;)이랑 다 같이 관람한 영화가 있다(그런데 왜 지금 리뷰를 쓰는지 물어보지 말라. -.-;). 바로 이 영화 <로빈후드>다. 아마 개봉 당시 분위기들이 기억이 나실텐데, <글레디에이터>의 신화가 깨진다느니, 뭐 하느니 이러면서 극찬을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아직도 <글레디에이터>만한 액션이 결합된 시대극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일단은 각설하고 영화 얘기 한번 해 보자. 

로빈훗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기존에 여러개가 있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최근에 검색해보니 작년에 영국 BBC에서 만든 드라마도 있다고 하더라. 그중 1976년에 <로빈과 마리안>이라는 영화가 했었다는데, 이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암튼 대강의 내용을 보니 이건 로빈훗이 좀 나이가 들었을 때 얘기같고, 그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1991년에 개봉한 <의적 로빈훗>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정말 흠뻑 빠져 봤던 영화도 바로 이 영화였다. 당시 <늑대와 함께 춤을>의 주인공으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케빈 코스트너가 바로 이듬해에 찍은 영화인데, 여기에서 그는 '영웅' 로빈훗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은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다시 구하려고 해도 참 구하기 어렵다), 당시 케빈 코스트너가 귀신같은 활솜씨를 보여주며 농민 반란군(산적이라 해야 하나? 암튼)을 이끌던 모습은 필자에게 영웅이란 저런 거구나~라는 것을 알려준 영화였다. 그리고 이번에 러셀 크로우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가 바로 <로빈후드>다. 영화 예고편 등을 보면 감독은 분명히 얘기한다. <로빈후드 더 비기닝>이라고! 그동안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감독이 얘기하려 한다고 말이다. 

한때 <베트맨 더 비기닝>, <다크나이트> 등 베트맨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그 베트맨이 어떠한 고뇌를 갖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평범한 부잣집 아드님이 어떻게 럭셔리 영웅, 베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무게있게 다룬 영화들이 나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아마 이 영화도 그런 새로운 시도? 혹은 신선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분명 성공적이었다. 특히 로빈훗을 일반 평민, 하지만 大意를 갖고 장렬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들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 설정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로빈훗이 실존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 아직도 학계 혹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http://ko.wikipedia.org/wiki/%EB%A1%9C%EB%B9%88%ED%9B%84%EB%93%9C) 기존에는 평민으로 보기도 했지만, 록슬리의 영주로 보는 등 이견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활을 기가 막히게 쏘는 평민으로 등장시켜서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또한, <글레디에이터>에서 보여준 영화 초반부 관객들을 압도하는 스펙타클한 전투씬 대신에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사자왕 리처드의 퇴각로 확보 전투(프랑스 여기저기를 까부시고 다닌다)를 전반부에 보여주고 있었는데, 고증이나 묘사가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 국가의 전투는 스케일이 다르구나~를 영화를 보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음~그런데 지난 영화들을 봐도 로빈훗의 활약 시기는 다 사자왕 리처드 시기로 그려내는 것 같다. 사자왕 리처드는 1189~1199년까지 재위했었으며, 흔히 무용과 기사도의 정신에 빛나는 전형적인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오히려 정치적인 통치력면에서는 무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려내고 있었으며,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면서 아크레에서 수천명의 포로를 학살했다는 내용 역시 영화에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물론 로빈훗의 사실적인 대답에 리처드는 좋아했지만, 결국 그들은 전투가 끝나면 처벌받기 위해 형틀에 묶이고 만다. 정직한 영국인이라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 그러다가 그만 전투에서 리처드가 죽게 되고, 영국의 필립 2세는 리처드의 동생 존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존의 절친 고프리 경을 매수한다. 

뭐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기본 스토리 라인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사실 3차 십자군 원정에서 리처드는 무사히 귀국하고 있었고, 필립 2세가 존을 왕위로 올려놓는다고 하자 무리하게 귀국을 서두르다가 배가 난파당하게 된다. 그래서 육로로 유럽 대륙을 횡단하다가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에게 잡히게 되고,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신병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엄청난 몸값을 치뤄 돌아온 다음 존을 밀어내고 다시 왕이 된 리처드는 필립 2세와 싸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고, 거기에서 42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 즉, 영화에서는 중간에 잡혀 몸값을 치루고 다시 복위하여 프랑스와 싸우러 갔다는 내용을 은근슬쩍 십자군 원정 귀국길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버무려 버린 셈이다. <글레디에이터>에서도 뭐 큰 스토리 라인은 따왔지만 세부 역사적 사실은 각색이 많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대립적인 두 라이벌로 감독은 영국을 구할 영웅 '로빈훗'과 영국을 프랑스에 팔아먹은 배신자 '고프리 경'을 내세운다. 로빈훗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어느 날 록슬리 가문의 아들로 둔갑하고 록슬리 경의 며느리 마리온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고프리는 멍청이 존 왕을 부추겨 윌리엄 마샬을 쫓아내고 최고 권력자로 등극해 각 영지를 돌며 세금을 쥐어짜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필립 2세와 내통해 대규모 프랑스군이 영국 해안에 상륙해 영국을 정복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영화의 전반부가 로빈훗의 십자군 원정에서의 활약과 귀국길과 관련된 스토리가 전개된다면, 중반부로 넘어오면서 또라이 존 왕의 왕위 등극 후 폭정, 고프리 경의 악행, 외롭게 영지를 지키는 마리온의 강인한 활약 등이 돋보인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는 영화 초반부 살짝 아쉬웠던 대규모 전투씬이 등장하게 된다. 실제 영국 웨슬리와 프레시워터 해변에서 촬영했다고 하는 마지막 전투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만드는 멋이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 프랑스군이 대규모로 저 당시 영국을 침공했고, 이를 막아낸 역사적 사실은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사실이다. 앞의 전투씬이야 영화의 극적 요소를 절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대헌장에 서멍하겠다고 존 왕이 약속하고 각 영주들은 그제사 병력을 내놓으며, 이 전투에서 고프리 경을 죽일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로빈훗은 이 전투의 승리로 일약 영국의 대영웅이 되어 버린다. 그럴려면 이 전투는 꼭 필요한 요소였다) 등장시킨 것이지만 대헌장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웠다. 1215년 6월 15일에 존 왕이 서명한 대헌장을 통해 영국왕은 어느 정도 봉건영주들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프랑스를 몰아내기 위해 서명하겠다고 약속한 존 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로빈훗을 영국의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의적 로빈훗>에서 리처드가 로빈과 마리온의 결혼을 축하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론이었으나, 오히려 필자는 이것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 어떤 분이 이 대헌장을 권리장전으로 오해하시기도 했는데(http://cafe.daum.net/v76/ISxF/343?docid=17F6H|ISxF|343|20100911004436&q=%B7%CE%BA%F3%C8%C4%B5%E5&srchid=CCB17F6H|ISxF|343|20100911004436), 오해를 푸시기 바란다. 권리장전은 대헌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문서이니 말이다.

또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이 망치를 들고 싸우는 로빈훗을 두고 말이 안 된다, 궁수가 무슨 망치냐? 라는 꼬투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궁수는 그럼 장거리에서 활만 쏘고, 적이 가까이 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스타크래프트에서처럼 무빙 샷을??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무기 외에 보조무기를 착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취급되었고, 저 당시의 궁수들 역시 활 하나만 미친듯이 사용했다고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거기다가 로빈훗은 주인공인데, 망치랑 활 2개밖에 사용 안 한건 오히려 애교로 봐줘야 하지 않나? 요즘 액션영화 보면 주인공들이 온갖 무기를 다 잘 사용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는가.

영화를 보면 종종 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영화 1편보다 앞의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한 베트맨 시리즈도 그랬고, 스타워즈 시리즈도 그러했으며,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렇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성격의 영화가 전작들보다 인기를 끄는 경우도 많았다. 필자가 볼때 그런 인기의 비결은 '이유있는 내용 전개'때문이 아닐까? 갑자기 새로운 배경, 새로운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했던 내용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됐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 그런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번 영화는 캐릭터 설정, 스토리 라인, 전투씬 등등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써붙여놓고 엄청나게 광고한 것처럼 '<글레디에이터> 10년 신화'를 깨드릴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별 1개를 비워둔 이유를 간단히 적고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더 비기닝이 뒤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은 이미 기존에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구축되어 시리즈로 연재되었던 영화들이 많다. 베트맨이 어떠한 활약을 하는 영웅인지, 스타워즈의 우주관이 어떠하며,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 어떤 사이인지,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T-800과 T-1000이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등등 기존에 나왔던 영화를 통해 이미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 그것을 유지했던 영화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로빈후드'는 앞서 그런 전작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맨 처음 언급했던 76년 작품과 91년 작품은 일단 캐릭터 설정이나 주변 배경, 스토리 라인에 있어서 이번 영화와 큰 상관이 없이 서로 다른 영화로 인식되는 게 더 크다. 그런 상황에서 '더 비기닝'을 표방했으니 무슨 영화의 '더 비기닝'이란 말인가? 아니, 영화가 아니라 단순히 로빈훗이라는 인물에 대한 '더 비기닝'적 성격의 영화를 만든게 아닌가~하는 반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빈훗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설이나 명확한 설명도 없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다는 것이 과연 유리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글레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에서도 로빈훗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며 그의 전성기를 그린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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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간만에 괜찮은 영화를 한편 봤다. 예전에 <춤추는 대수사선>은 그럭저럭 볼만했는데, 나머지 일본 영화들은 확 와닿는게 딱히 없어서 가끔 일본 드라마는 보지만,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일단 특이해서 본 영화가 있다. ‘황금빛 졸음’이라는 의미의 ‘Golden Slumber’가 영화의 제목인데, 감독은 영화 내내 이 제목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쉽게(?) 정리해 보겠다. 주인공인 아오야기는 2년 전 아이돌 스타를 위기에서 구해줘 유명인이 된 일반인이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 친구인 모리타가 낚시하자고 그를 불러내서는 약을 탄 물을 먹여 차에서 자게 만든다. 마침 근처에서는 고향을 찾은 젊은 신임 총리가(Naver 영화에서 검색해보니 그 총리는 반미 성향을 가진 인물이란다. 영화에서는 딱히 안 나온 거 같던데 암튼) 퍼레이드 도중 爆死하게 된다. 그리고 모리타도 차 안에서 爆死하고. 그때부터 아오야기는 도망가기 시작하는데, 거대한 권력의 손아귀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계속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딱 보고, ‘어? <프리즌 브레이크>랑 초반 설정이 비슷하네~’라고 느꼈다. 다만 차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 설정에 신경을 좀 더 쓴 것이랄까?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석호필의 형아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그런데 거대한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간다. 물론 동생인 석호필이 이를 구하러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여기에서도 평범한 일반인 아오야기(택배기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차이라면 그는 2년 전 유명 아이돌 스타를 구해줌으로써 일반인 아닌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대사였던, ‘이미지다! 이미지!’에 어울리는 삶이랄까? 사람들은 한때 유명했던 사람이 총리를 암살했다는 것에 더 자극받고, 더 이슈화할 수 있고, 열광할 것이다. 총리 암살을 지시했던 권력층은 이런 대중과 언론의 힘을 교묘히 이용해 한 사람을 몰락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음...주인공이 정말 평범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석호필이 뭐였더라? 특이한 병(?)인가 뭐가 있어서,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지 않았는가. 또한 이런 스릴러(음모론이 가미된)물을 보면 주인공이 한 능력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는가(거대 권력층과 맞서려면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컨스피러시>에서도, <세븐 데이즈>에서도 그렇고 주인공은 뭔가 하나 잘난게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딱히 그런게 안 보였다. 즉, 감독은 같은 스릴러라고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이를 다르게 풀어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인공의 월등히 뛰어난 능력이 돋보이지 않는 대신, 감독은 그를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해주는 수많은 주변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대학 때 친구, 전혀 모르는 연쇄살인범(그나마 가장 능력자), 역시 전혀 모르는 병원 환자,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 등등.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 역시 특출난 인물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1명 빼고). 그래서 더 해학적인 느낌이 난다랄까? 일본 영화 특유의 코믹스러움(그 긴박한 도주과정에서 주인공 주변의 친구들은 지속적으로 주인공에게 묻는다. 그 아이돌 스타와 잤냐고~ㅋ)도 자연스레 배어나오고 있어 더 훈훈한 느낌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건 원작이 있는 영화란다. 그에 대한 스포츠조선의 기사가 있어 약간 발췌해본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entertainment/201009/20100903/a9c75140.htm).

아사코 코타로의 원작 소설과 비교해 볼 때,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소설과는 약간 다른 < 골든 슬럼버>를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스릴러'와 '인간애에 근거한 신뢰'가 튼튼한 두 개의 골격을 이뤘다. 소설에서 스릴러의 긴장은 공권력과 개인간의 추격과 도망에서 나왔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감시-거짓-폭력과 권력'으로 개인을 무력화시키는 거대하고 부당한 공권력 묘사가 대폭 줄었다. 우선 센다이 시내 전체를 도청, 녹화, 감시하며 아오야기의 동선을 바짝 뒤쫓던 시큐리트 포트가 사라졌다. 또한 권력을 가진 추격자들의 압박과 폭력이 줄었다. 예를 들어, 후배 가즈를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고문과 폭력이 지극히 은은하게 깔려있고, 추격자들이 옛 연인 하루코의 아이까지 납치하려 했던 행동도 빠져 있으며, 빨간 헤드폰 장총의 무차별 난사와 살생도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아오야기의 소심하지만 살기 위한 절박한 육탄전과 달리기도 줄었다. 대신 영화는 인간적 신뢰의 축을 대폭 살렸다. 소설에서 인간적 드라마를 비중 있게 취하고, 소설에는 없었던 따뜻한 에피소드를 더하기도 했다. 반면 스릴러적인 요소를 줄였다. 관람 도중 가끔 감동하고, 가끔 웃는 것은 좋지만, 명색이 스릴러 원작인데, 긴장마저 '가끔'이라는 것은 약간 난감하다.

아하~원작은 정말 스릴러 같은 소설이고, 이번 영화에서는 전혀 다르게 그걸 표현했구나. 위의 기사 글만 보면 원작은 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와 같은 내용이 아니었나 싶었다. 긴장감이 강하게 배어있는 전형적인 스릴러물 말이다. 아직 영화 <이끼>를 보지 못 했지만, 영화화된 작품은 만화 원작과 많이 다르며, 감독이 다르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원작과 달라도 꽤 인기가 있었던 걸 보면 영화도 나름 재밌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봤을 때 필자 역시 소설은 보지 못 했지만 영화는 꽤 재밌게 봤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 소설 그대로 만들었다면 오히려 식상한 스릴러 영화라고 느껴서 별로 감흥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아~스릴러 영화를 이렇게 풀어쓸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드라마적인 전개가 강했던 것 같다. 자극적인 격투신이나 추격신, 피와 살이 튀는 잔인한 장면, 스릴러 특유의 도청과 감시, 추격과 도망 등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깐. 오히려 주인공 아오야기를 도와주는, 언론플레이에 쉽게 속지 않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유대관계를 그려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 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약점이 될 수도 있긴 하다. 아무리 일반인들이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권력층의 힘 앞에서는 솔직히 鳥足之血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일이 너무 잘 풀리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비꼬는 해학적인 해석때문이 아닐까? ‘너네 권력층이 아무리 잘나도 우리 서민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고!’ 라고 말이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탈출에 성공한 아오야기는 성형을 하고 딴 사람으로 살아가며(평생 숨어살아야 한다. 불쌍하게스리~어떻게 보면 베드엔딩인가?), 그 대신 어떤 시체가 발견되고 아오야기로 밝혀져 사건은 종결된다. 순간, ‘어? 아오야기 그렇게 죽이려던 사람들이 DNA 분석 이런 거 안 해볼까? 어떻게 속였지? 그냥 넘어간건가?’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게 화려한 액션영화나 스릴러물에서도 이런 설정이 나오지만, 그 주인공들은 원래 잘난 놈들이라서 이런걸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아오야기는 안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건 뭐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감독도 원래 그런거 고민 안 하고 넘어가는 설정 같기도 하고. 오히려 젊은 총리는 누가 죽이려고 했으며, 어떤 음모 과정이 전개되어 모리타가 친구를 이런 위험에 빠뜨렸는지 등등은 전혀 나오지 않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프리즌 브레이크>와는 전혀 다른 전개~정통 스릴러물을 즐기려고 이 영화를 봤다면 정말정말 후회할지도 모른다(얼마 전 필자는 <뮬란>을 보고 나오는데, 뒤에 앉았던 남자 2명이 ‘액션도 별로고, 스케일도 안 크고, 전투씬도 별로 없다!’라고 하면서 투덜댔던 일이 있었다. 속으로 ‘그럴려면 미리 알아보고 딴 영화를 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필자는 별 기대를 안 하고 봤기 때문에(검색을 안 해봐서 내용도 모르고 봤다) 지금 이렇게 재밌다고~글을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글을 끝맺자. 영화의 제목이자, 모리타가 죽기 전에 아오야기에게 들려줬던 노래,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이것은 모리타가 속세에 찌든 현재의 모습(부인이 빠찡코 중독이어서 빚이 산더미처럼 불었고, 이 음모에 가담하면 빚 탕감을 해주겠다는 제안에 친구를 팔아먹게 되는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열정 가득했던 대학 때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사과의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죽기 직전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으라는 친구의 말에 아오야기는 성형을 하고 신분이 불분명한 상태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또한 이 노래는 주인공 아오야기가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되새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음모에 휩싸여 주변 사람들이 다치고, 자기 자신의 삶도 망가지는 이때에 이 노래는 현실도피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영화 중간마다 자꾸 회상신이 나오는 것도 그때문인 것 같다. 이 노래 솔직히 영화에서 처음 들어봤지만, 상당히 듣기 좋았다. 잔잔하니 잠도 잘 오고~ㅋㅋㅋ

일상에서 스릴러적 요소를 찾아낸 영화라고나 할까? 전혀 스릴러물 같지 않은 스릴러물이라서 더 끌렸던 영화다.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영화이기에 한번쯤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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