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란(花木蘭), 우리가 흔히 아는 뮬란의 한자 표기이다.
이 이름은『목란사(木蘭辭)』라고 하는 중국의 장편 서사시에 처음 나오는데 “同行十二年,不知木蘭是女郎”, 즉 '동행한지 12년, 목란이 여자인 줄 몰랐다.'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있어 그가 여성임에도 십여년을 남장을 하고 전장터에서 활약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장편 서사시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에서 지어졌으며, 남조 陳나라 시절의『고금악록』에 처음 수록되었다고 하는데(http://ko.wikipedia.org/wiki/%ED%99%94%EB%AA%A9%EB%9E%80)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서사시가 남북조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있던 구전 형식의 설화를 이 시기에 와서 문자로 기록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필자가 처음으로 봤던 뮬란의 배경은 이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뮬란'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바로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1998)'이다. 필자가 이때 고등학생이었으니, 정말 오래 전에도 나온 영화다. 

이 애니가 월트디즈니에서 그간 방영했던 영화 중 몇번째로 인기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당시 아주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도 만들어졌지만, 그건 극장 상영은 안 됐고,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다고 한다(물론 못 봤다). 암튼 이때의 배경은 한나라였으며, 상대역(?)은 흉노족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조금 헤깔렸다. 영화에서 나오는 '위'가 춘추전국시대때 위가 아니라면, 남북조 시대의 북위일텐데, 그럼 만화에서 나왔던 한나라는 뭐지? 그건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만들었던 것인가? 암튼, 애니를 봤을 때 설원을 배경으로 수천명의 흉노군이 내달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뮬란의 활약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느낌을 좀 되살려보려는 의도가 컸긴 하다. 사실 필자는 이걸 다운받아서 이미 한번 봤는데,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평소 영화관을 '시간 축내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잘 안 간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왠만한 일 제쳐두고 가는 편이다) 봤다는 얘기는 안 하고 한번 더 극장에서 보긴 했다. 그 이면에는 '아무리 큰 스크린으로 봐도(필자의 모니터는 23인치) 극장 스크린만 하겠느냐!' 라는 생각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극장에 들어섰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부분은 뭐 애니와 큰 차이는 없었다. 말괄량이로 선머슴같이 무예 연마를 거듭해온 뮬란과 그와 친한 같은 마을의 동생 소호(성룡의 아들이란다. 나중에 다시 보니 정말 닮았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화목하게 살던 마을에 이변이 닥친다. 유연 족장이 9개 부족을 통합해 살기 좋은 북위를 공격하기 위해 남하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막기 위해 뮬란의 아버지가 징집된다. 당연히 뮬란은 남장을 하고 軍鎭으로 들어가게 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뭐 잘 헤쳐나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태를 만나 둘의 사이는 급 친해지게 된다. 큰 위기가 한차례 다가오지만 마침 유연족이 쳐들어오고, 뮬란은 유연족 대장의 목을 쳐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한다. 그 공로로 문태와 뮬란은 끊임없이 전공을 쌓고, 십여년의 전쟁동안 북위는 유연족을 상대로 계속 승리한다. 전쟁에 지친 유연족이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족장의 아들 문독(아주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의)이 아버지를 죽여 다음 족장이 되고, 전쟁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결국은 뮬란이 문독 죽이고, 잡혀간 문태 되살리고, 문태는 유연족 공주와 혼인해 두 나라는 평화를 찾고, 뮬란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을 살고...이런 식이다.

먼저 내용을 다 떠나서 여기에서 제작진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가 궁금했다. <적벽대전>, <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이 만든 전쟁액션이라고 크게 떠들었는데, 솔직히 그것들보다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솔직히 말하면 <적벽대전>보다는 못 했고, <삼국지-용의 부활>이랑은 뭐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일단 영화의 목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 뭐 그런게 딱히 안 보였다.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조운 자룡에 대한 영화라고 하지만, 너무 각색된 부분이 많고 실제 역사와도 거리가 있어 솔직히 와닿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부제는 '전사의 귀환'이라고 하는데, 뮬란이 이전 시기에 보여졌던 그런 영웅 혹은 전사의 이미지로 이 영화에서 그려졌나? 아니다! 아니면 애니메이션처럼 온갖 역경을 다 헤쳐나가고 결국 나라까지 구한 대단한 여걸의 이미지로 그려졌나? 아니다! 물론 조미가 본래 중성적인 역할을 많이 하니깐, 이 영화에서도 중성적인 이미지로 스토리를 이끌어 간 것은 맞다. 하지만, 계속 전쟁에 대해 고뇌하고, 연정을 품은 문태가 없어졌다고 나약하게 나뒹구는 모습은 뮬란을 인간적으로 표현하는데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 정체성을 잃게 했던 것 같다. 차라리 부제에 걸맞게, 혹은 기존 뮬란의 이미지에 맞게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뮬란을 전략적인 인물, 부하를 사랑해 한몸처럼 여기는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 등으로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일단 캐릭터 설정에서 조금 안 맞았던 것 같다. 감독이 의도한 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뮬란을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면 그냥 처음부터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게 나았을 것 같다. 뮬란의 주변 인물, 즉 뮬란이 사모했던 문태나 뮬란을 끝까지 믿고 따라줬던 소호를 더 부각시켜 그들과 같이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게끔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뮬란이 아무리 나약하고, 모자란 모습을 보여줘도 그 두 사람은 끝까지 주변에서만 빙빙 돌며 뮬란 곁을 지킨다. 주인공이 뭔가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점, 그렇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사의 귀환이니, 액션대작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고 대규모 전투씬도 몇차례 영화에 등장했다. 특히 마지막 전투씬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왠 갑자기 모래 폭풍?? 너무 싱겁고 이상했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필자는 차라리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설원을 배경으로 내달리던 흉노족 기병의 모습이 더 다이나믹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 3>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씬과 <반지의 제왕 2>에서 보여줬던 다소 부족한 전투씬을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분명 영화가 돈도 더 많이 들였고, 실사인데다가, CG 기술도 얼마든지 투입시킬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런 다이나믹한 전투씬 하나 집어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여담이지만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다이나믹한 전투씬은 없었다. 그냥 전투씬만 있었지).

거기다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를 또 헤깔리게 한 것이 있었다.
잉? 왠 갑옷이 전부 찰갑이야??? 양당개같은 갑옷이 분명 있을텐데 왜 그러지?? 거기다가 장수들이 전부 검을 들고 싸우는게 아닌가?? 이것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순간 '이게 시간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인가?'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기도 했다. 어떻게 刀를 들고 싸우는 병사는 한명도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남북조시대가 되면 궁전수의 운용이 힘들어지면서 노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유연족의 기마궁수에 비해 당시 유행했던 중장기병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도 NG였다. 시대 착오적인 장수가 검을 들고 싸울 뿐, 북위의 기병들 중 어느 누구도 중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갑주와 무기는 시대 미상이라는 점 또한 이 영화를 전쟁액션의 장르에 집어넣기 부끄럽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배경이 한나라였다면 고증이 잘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中國古代兵器圖說』과 같은 책 1~2권만 봐도 영화 속 고증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대장군이란 자가 뮬란을 시기해 적진에 뮬란과 그의 부하들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문태가 자신이 왕자임을 밝혀 포로로 끌려가고 동료 부대원들을 살려낸다. 뮬란은 다시 영웅적인 기질을 발휘해 혼자 적진에 들어가 유연족 공주를 설득해 문독을 암살하는데 성공하고...(뭐야 이거...) 어설픈 정치적 논리가 등장하고, 캐릭터들의 성격이 영화 후반부 급하게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더 일관성이 없어졌다. 문태는 갑자기 왕자라고 밝히고, 조미는 문태가 없을때는 내내 나약해지다가 갑자기 혼자 문태 구한다고 유연족 진영으로 들어가고, 유연족 공주와 문태가 급 결혼하면서 양국이 평화로워지고...전쟁액션이라고 떠들었으니깐 일단 영화 전분부, 중반부에 전투씬 끊임없이 보여주다가 '아! 이제 영화 끝날 시간이네~'하니깐 갑자기 뮬란을 시기하는 대장군을 집어넣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바꿔가며 급하게 마무리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것을 현실감있게 그려내지도 못 했고, 그렇다고 아예 시원한 액션으로 도배하지도 못 했고, 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목란사』의 내용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시중에 화목란에 대한 책이 몇권 있던데...

암튼 2번 봐도 그저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다만, 자국의 서사시에 나오는 주인공을 자국의 기술력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별 3개는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사>라는 영화를 했었는데, 솔직히 관객동원수는 얼마 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점수를 그리 낮게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역사를 우리 기술력으로, 우리가 영화화했다는데 의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의의는 있겠지만, 영화 자체는 결코 <적벽대전> 등과 비교해서는 안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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