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개봉한지 반년이 지나서야 본 전쟁 영화가 있다.

바로 맷 데이먼 주연의 <그린존>인데, 일반적으로 ‘그린존’이라고 하면 안전지대, 뭐 이런 걸 뜻한다. 영화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한창인 당시 미군 사령부 및 연합군임시행정처(CPA)가 자리 잡고 있던 후세인의 바그다드궁을 개조한 기지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그린존’이라고 불리는 공간과 그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교차하여 보여주면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이라크 전쟁을 통하여 미국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 등에 대해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다 보고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원작은 책이라고 한다. 바그다드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이 그 기간 동안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담담하게 작성한 책 『그린존』이 바로 그것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엄청나게 상도 많이 받고 평단의 평가도 좋은 책이었다(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3480481). 어쨌든, 지금은 영화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자.

이라크 전쟁(1~2차 모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지금까지 많이 나왔다. 예전에 후세인의 보물을 놓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쓰리킹즈>(1999)라는 영화가 있었으며(그냥 코믹스러운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폭발물처리반 EOD를 사실적으로 다뤄 극찬을 받았던 <허트 로커>(2008)가 있었다(평가가 엄청 좋던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다). 또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해병대에 대해 현실감 있게 그려낸 미드 <제너레이션 킬>(2008)도 있었다(사실적인 묘사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나름 재미있게 봤다). 뭐 이 밖에도 더 많은 영화가 있었겠지만 기억이 안 나는 것들은 제외하자. 암튼 이런 영화들과 이번에 봤던 <그린존>은 분명 다른 내용, 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영화였다.

일단 액션이나 첩보라는 측면에서는 감독의 기존 영화들(<본> 시리즈의 2~3)과 비교했을 때 큰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떠나서 영화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제너레이션 킬>에서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작전 하달과 전투, 전공과 전리품 획득, 병사들 개개인의 전쟁에 대한 생각과 고민 등에 대해서 영화는 많이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허트 로커>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주인공의 자기 성찰과 임무에 대한 긴장감 묘사 등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것 같다. 원작인 책을 안 봤지만, 책의 내용을 대강 검색해 본 결과, 영화는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부분, 다루고자 했던 부분을 충실하게 따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터 감독은 대량살상무기 수색대 MET-D의 팀장인 로이 밀러를 통해 끊임없이 ‘대체 대량살상무기는 어디 있는 거야?!!’를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음모로 인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중동에서의 정치 · 외교적 우위를 확보한 미국이 석유자원까지 장악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에리히 폴라트와 알렉산더 융이 쓴 『자원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지금 강대국들이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경쟁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암튼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보다는 덜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미국의 狂的인 전쟁 옹호를 비판하고 있다. 로이 밀러는 자기 팀을 이끌고 수차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아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량살상무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공식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이 문제를 반문하고,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따져보지만 오히려 장군님한테 “넌 시키는 거나 잘해! 그럼 됐어!”라고 한소리 듣는다. 참 대단한 용기다~어쨌든 그 모습을 본 CIA의 마틴 브라운은 로이 밀러에게 접근하고, 이 전쟁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자고 한다. 이러한 마틴 브라운의 모습은 CPA측에서 근무하는 정보국 수장인 클락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물론 로이 밀러와 클락 휘하의 특전사 부대장 역시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라이벌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이다.

이 영화에서 필자가 계속 눈여겨 본 부분 중에 단순히 감독이 전쟁의 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의문에 의문을 제기한 것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큰 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감독은 여기에서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건 바로 ‘이라크인 스스로가 바라보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라크인 하나가 로이 밀러에게 후세인의 심복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소를 알려주고, 이윽고 그 둘은 끊임없이 한 조가 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그 둘의 끊임없는 대화와 서로에 대한 비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미국 정보부에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끊임없는 정보를 주고 있다고 하는 이라크 내의 믿을만한 소식통 마젤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후세인의 심복 장군으로서 이미 미국에게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히려 잘 됐다고 하면서 침공을 단행! 밖에서는 병사들에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으라고 하면서 윗대가리들은 ‘그린존’에서 술 퍼먹고 노닥거리면서 전승국으로서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이 밀러는 마젤란을 찾아 사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영화는 끝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라크인들에게 있어 이 장군은 그저 후세인의 심복으로서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한 독재자의 하수인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정말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무엇일까? 자기들의 시각으로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일까? 정작 당사자인 이라크인들의 마음은 뭔지도 모르면서?’

부시 父子가 그토록 까부시고 싶어 했던 이라크. 이제 이라크는 후세인이라는 독재자 대신 미국이라는 더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압제 하에 놓인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는 마지막에 로이 밀러가 미국의 음모를 폭로하는 리포트를 각 유명 언론의 기자들에게 메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뭐 그 사실이 정말 공개됐는지, 미국 내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 모든 미국인이 인정한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이 승리했다고 승전 선포를 했지만, 여전히 이라크는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화려한 액션과 숨 막히는 스릴도 물론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영화를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감명 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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