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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 역사비평사 / 2017년 2월
평점 :
오랜만에 쓰는 서평. 경주로 내려와서 처음 쓰는 것 같다.
박물관 도서실에 신청해서 책은 진즉에 읽었는데 이제사 되새김해본다.
이 책은 작년에 한창 시끌시끌했던 이덕일(류)의 사이비역사학과 그에 맞선 젊은 사학자들의 공방전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이 기획되서 완성되기까지의 주변 상황은 책 서두에 잘 소개되어 있으니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등 몇번 언론에 등장한 연구자들도 있고, 그외 신진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책 속의 내용 중 상당수는 언론에도 여러번 소개됐고, 학술지에도 소개된 것들이 있어서 새로운 부분이 많지는 않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다음까페/네이버블로그 등)에서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논의되었던 부분들이기에 큰 틀에서는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유사역사학이라고 불리던 게 사이버역사학으로 불리게 됐다든가, '환빠'라는 용어를 양산해낸 환단고기와 관련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논의들이라든가)일단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들을 살펴보자.
기경량의「사이비역사학과 역사파시즘」에서는 사이비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정의라든가, 사이비역사학을 둘러싼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 잘 소개하고 있어서 책 첫머리를 장식하기에 적절했다. 강진원의「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장미애의「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또한 현재 한국사가 처한 현실이 어떠한가를 개괄하고 있어서 이 책이 향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첫 관문을 잘 장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에 있는 3개의 장은 어려운 내용보다는, 앞으로 무슨 내용들이 나올지 판을 깔아놓는 부분인지라 가볍게 운을 떼고 있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세부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정빈과 위가야, 안정준은 '한사군(낙랑군)'에 대해서, 신가영은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기경량과 이승호는 '단군', 권순홍은 '신채호'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1부에 비해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고, 내용 자체도 더 진지한 것들인데, 2부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이 책의 저자들이 속한 모임 '젊은역사학자모임' 구성원들이 좌담에서 토론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하면서 향후 모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들과 학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역사학계와 한국 사회와의 관계, 대중성과 전문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가야만 하는 다짐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이 책에 대한 나름의 총평을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골까지는 아니라도 왠만큼 고대사, 사이비역사학(옛날에는 유사역사학), 환단고기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마추어들이나 떠들 법한 얘기들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이렇게 학술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논문이나 저작 형태로는 얼마 안 된 최근의 성과물 같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전해졌던 주장, 근거, 의견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과거에는 아마추어나 역사동호인들이 떠들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전자는 세련되고, 후자는 거친 형태로 접했다는 차이는 분명 있다) 이렇게 될줄 그때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안일함 속에서 이덕일과 같은 이가 시대 흐름을 잘 타고 헛소리를 전파하고 있으니 그 또한 재밌는 일이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내용은 진부하다. 그렇기에 재탕의 느낌이 강하고(이미 한번 학회지에도 실린 내용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별다른 편집없이 그대로 실렸기에 <신선>하다는 느낌이 적다. 이 책의 저자가 <젊은>역사학자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닥 새로울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둘째, 첫번째 평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이 책의 정확한 타겟, 즉 독자층으로 누굴 염두에 뒀는지가 불분명하다. 저자(들)은 책의 전반에 걸쳐 대중성과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계가 더 이상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방법 혹은 시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사이비역사학이라고 상대편을 규정하고 선을 긋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젊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인 입장과 중도적인 입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아! 그럼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주 독자층은 누구라고 봐야 할까? 아마추어 대중들? 젊거나 혹은 어느 정도 중진급 연구자들? 식민사학자라고 종종 매도받는 원로 학자들? 이덕일과 같은 부류를 추종하는 사람들? 아니면 전혀 역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 역사와 대중을 결부시키기 위해 저자(들)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시각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냈다는 말인가? 저쪽(사이비역사학쪽)을 꾸짖고 그쪽이 잘못됐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니면 이쪽(그 반대쪽)이 옳으니 저쪽으로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런 목적성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셋째, 이 책이 전공자들 혹은 연구자들, 아니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동호인들에게 그닥 새로울게 없다는 얘기는 첫번째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두번째에서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저쪽에 쏠린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이쪽의 주장이 옳음을 설득'하는 것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혹시 그 밖에 노리던 것이 있음에도 필자가 짚어내지 못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우둔함 탓이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2부의 내용이 약했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1부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가볍게 언급한 것은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살려 2부에서 뭔가 임팩트있게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는데, 그런게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경량의「'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처럼 작은 주제를 갖고 심도깊게 반박한 부분은 좋았다. 이는 해당 주제나 논란에 대해서 잘 몰라도 이 글을 읽음으로써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못 알려졌고, 어떻게 관련 주제를 이해하면 좋은지 알 수 있게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광범위한 주제를 십몇쪽에 담아내려다 보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 이 책의 리뷰를 검색해보면 윤내현 선생님, 이덕일은 자세하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것 없이 간단하게 반박하려 한다는 비판도 보인다)
이상 3가지 정도가 이 책을 읽고 난 필자의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이덕일과 같은 부류가 판을 치고 다닐 동안 학계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한 첫걸음의 결과물이기에 그 결과가 100% 다 옳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학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꾸준히 대중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올바른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한중일 삼국의 역사, 정치, 문화,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다. 그 이상으로 현재와 직결되는 부분인만큼 끊임없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고 잘못은 바로잡고 잘한 일은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시도가 담긴 책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진부 / 모호 / 부족 하지만 필요했던 시도! 미래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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