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 -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
최선주 지음 / 주류성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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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류성은 역사, 고고학 관련 서적을 많이 발간하는 출판사로 나에게는 한국의 고고학계간지로 더 친숙한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박물관과 관련된 몇몇 책(박물관이란 무엇인가?, 박물관학의 기초, 문화재 보존과학)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던 차에 흥미로운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라.

제목을 보아하니 박물관 큐레이터, 학예사 또는 연구사, 학예연구사 등으로 불리는 직업군에 대한 책이었다. 큐레이터는 널리 알려진 직업군은 아니지만 관련 전공 분야(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등)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직종이다. 큐레이터에 대한 책들은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 등등 다양한 시각에서 큐레이터를 바라본 책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현직 국립박물관 관장이 지난 30년 간의 소회를 담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고고학 · 미술사학계의 원로 선배님들이 자서전 또는 연구서 형식으로 책을 남기시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이는 후배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 많은 도움을 주곤 했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일까? 아니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책 제목만 봐도 기대가 된다. (이보다 조금 일찍 나온 책으로 한번쯤, 큐레이터도 눈에 띈다. 19년 차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큐레이터, 불상을 마주하다>에서는 저자가 처음 공부를 시작해 큐레이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 큐레이터로 지내면서 본인의 전공인 고려 불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정리하고 있다. <2부 특별전, 이 땅의 특별한 이야기>는 저자와 함께 한 특별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박물관에서 전시 결과물만 접하는 우리들에게는 신선한 소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3부 박물관, 숨겨진 이야기>은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실무적으로 느꼈던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부분과 주목해야 하는 부분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저자는 '흔히 크기만 하고 못 생긴 불상'으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서두에서 꺼내고 있는데, 몇장 넘기지 않았음에도 불교와 불상, 부처와 보살상 등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의 석조불두, 운반하는 데에 엄청난 공과 시간을 들인 하사창동 고려 철불, 국립춘천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인 강릉 한송사 터 보살상, 삼화령 애기부처 등 불교전공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불상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소개하고 있다. 이는 2018년 국립박물관 최우수 전시로 뽑힌 국립춘천박물관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 특별전에서 절정에 달한다. 마치 서랍장에 담긴 작은 불상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꺼내 포장을 벗겨 바로 눈앞에서 그와 관련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자 한자 눌러 쓴 원고가 정겹다.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저자가 당시 받았던 감동과 흥분, 그리고 원고를 작성하면서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새겼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경주박물관의 관장이자 고위 공직자이지만, 저자도 처음에는 열정이 넘치는 풋내기 큐레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과 노력, 고민과 응전의 시간이 있었다.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어느새 '라떼'라는 장난 섞인 단어로 치부되는 요즘, 1부의 내용을 살펴보고 난 뒤의 느낌은 저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하는 고민과 함께.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프로필을 자랑스럽게 꺼내며 나의 지난 치적을 화려하게 소개한, 전형적인 공적비 같은 자서전처럼 서두를 꺼내지 않아서 좋았다. 오히려 기교 부리지 않고 저자의 당시 생각과 기분, 느낌과 이를 대하는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서 부담없이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수십쪽에 달하는 내용이 눈에 쉽게 들어오면서 책이 읽히는 것도 그탓일게다. 저자의 지난 삶의 일면을 약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분좋게 다음 장을 넘겼다.

 

2부는 저자가 큐레이터로 성장해 온 과정을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30대 초반 처음으로 맡은 기획 전시 <고려 말 조선초의 미술>을 시작으로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까지 엄선한 11건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중 절반 이상의 전시를 관람했던 필자였기에 책을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이 전시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아아~이건 나도 정말 기억에 남는데,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등등. 큐레이터로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감정들이 아스라히 느껴졌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는 정말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난관에 봉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불상의 받침대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로 몇날며칠을 밤을 지새운다. 정작 관람객 중 불상이 아닌 불상 받침대에 주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저자가 담당해왔던 전시에서도 그런 면모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저자와 같이 했던 동료 큐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도 생동감있게 전해지고 있다.

 

히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유별났다. 다들 볼품없다고 여겼던 관촉사 은진미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마침내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국보로 승격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던 일화, 용산으로 새 터전을 옮긴 하사창동 철불좌상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일화, 군부대 승인을 얻어 강릉 한송사 터를 답사해 한송사 터 석조보살좌상의 받침대를 찾아 이때 얻은 실측자료로 받침대를 만들어 전시에 활용한 일화, 진구사 터 석조비로자나불이 지금의 자리에 안치되기까지의 일화 등 불상에 대한 저자의 노력이 오백나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현대 작가와의 협업, 기존과 달리 개방된 공간에서의 전시 기획, 편안하고 푸근한 전시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박이 난 오백나한은 각종 언론과 TV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여러 번의 순회 전시를 거치며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자칫 그냥 지나치면 수장고 한켠에서 언제 다시 세상의 빛을 볼지 모를 유물이겠지만, 큐레이터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다른 불상도 그렇겠지만, 오백나한을 바라보는 저자가 어떤 느낌일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부는 저자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고 있었다. 박물관 심벌마크에 대한 생각, BTS가 공연한 원랑선사 탑비, 전쟁의 참화를 겪은 선림원종, 손기정 투구를 통해 본 기증문화재에 대한 생각, 수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사랑하는 어린이박물관의 미래, 군장병을 비롯한 현지와 밀착된 국립박물관의 노력,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관람객에게 더욱더 다가가려는 국립박물관 등 큐레이터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담백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1부와 2부가 일반 관람객들, 혹은 박물관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소재라면 3부는 현직 큐레이터들이 한번쯤 되새기며 읽어볼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과거사를 자랑하고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선배 큐레이터로서 걸어왔던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수백 명의 후배 큐레이터, 그리고 그들이 근무할 국립박물관이 변화 · 발전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본인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서 본인이 '학자적 큐레이터', '큐레이터적 학자', '학예 행정직'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밝히고 있다. 눈 앞의 업무에만 매달리다 보니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 하고 그냥 스쳐지나간 문화재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보다 더 강하게 본인을 채찍질하고, 더 많은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문화재를 대했으면 더 많은 문화재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저자의 손을 거쳐 어떤 문화재들이 전시되었는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름의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자신의 실수도, 자신의 후회도 이렇게 솔직하게 남기고 있으니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결론이든지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또 하나의 큐레이터가 생겨날지도, 아니면 본인의 꿈을 접는 사람도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 말미에 남긴 글은 분명 좋은 느낌을 전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큐레이터들은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자 시간을 잇는 사람들이다.

손때 묻은 유물을 다루면서 그 가치를 찾고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로 살아온 국립박물관은 나의 일터이자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만지고, 이어온 나의 삶은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국립박물관 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훗날 나의 시간들도 누군가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여러분들은 책을 다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우리는 박물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금동불상과 석조불상, 대형 철조불상을 예배의 존상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곤 한다. 또 큐레이터로서 불상을 마주하게 되면 특별전의 전시 품목으로 여기거나 연출 대상인 이른바 ‘오브제‘로만 고민하게 된다. 특히 머리나 몸체만 있는 불상을 전시할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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